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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지도가 발견된 곳은 이소노카미 신궁인데

이곳은 전설속 진무천황이 쓰던 후츠노미타마라는 검을 보관하던 장소임

구마노의 수호신인 곰을 단칼에 베어버린 검이 후츠노미타마고

그러자 구마노의 군사들은 패배했다고 함

실제로 여기서 전설속 검이 묻혀졌다고 여겨지는 장소에서

2~3세기경 제작된 검이 발견되기도 하였음



어쨌든 이소노카미 신궁은 야마토 정권의 무기고이자

정복의 상징으로서

일본열도의 다른 나라들을 야마토가 정벌하고

그 나라들의 보물, 신기 들을 헌상받거나 빼앗으면 이소노카미 신궁에 보관했다고함


후츠노미타마의 영력으로 속국들의 반란을 제압한다 뭐 이런 의미라고 추정함


여기서 칠지도가 발견됐다는 점에서 게임 끝임

일본은 칠지도를 백제를 정복하고 헌상받은 일종의 보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임



명문 자체도 동진이 전면부를 적었고 후면부를 백제가 적었을 가능성이 높음

왜냐하면 칠지도 명문의 백제 '왕세자' 는 제후국의 용어고

명문상 제후국인 백제는 '후왕'을 부릴 수 없는게 맞기 때문임



또한 전면부의 동진의 연호인 '태화'가 적혀있고

백제의 다른 어떤 유물에서도 중국 연호를 쓴 유물은 발견되지 않으므로

여러모로 칠지도는 중국과 관련이 있는 유물임이 확실함


그리고 명문이나 백제가 전해준 의도와 관계없이

일본은 이를 백제를 굴복시키고 헌상받았다고 여겨서

이소노카미신궁에 보관해왔던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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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일본서기에서도 증명되는 사실.

보통 신라나 백제에서 조공품을 바치면

일본에서 신사에 보관했음이 기록되어있다.

즉 일본에서는 백제가 보낸 칠지도를 명백히 하국이 상국에 조공한 물품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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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중국 사서에 기록된 왜왕의 조서를 보면

스스로를 '왜 백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마한) ' 7국 제군사 왜국왕이라고 자칭하며

한반도 남부 전체를 속국으로 부리는 왜왕임을 자처하고 있다.

중국에선 백제만 빼고 모두 승인해주는데,

백제는 이미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중국의 속국이 되었기 때문에

중국이 '백제는 왜 우리 속국인데 니들꺼라고 하냐, 백제는 빼라' 라고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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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왕 무의 조서를 보면 일본의 입장은 더욱 확실해진다.

일본은 이미 5세기에 스스로 바다건너 해북 95국, 즉 한반도 남부의 모든 국가들을 평정했다고 여겼으며


중국으로 가려면 백제를 거쳐야 하는데, 고구려가 '변방의 노예' (
邊隷=백제) (*주, 국뽕학자들이 쪽팔려서 변방의 속한 곳이라고 왜곡해석했다.)를 

노략질하고 집어삼키려 해서


중국으로 오기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다.
 (뜬금없이 (우리를) 이라고 각주를 넣은건 국뽕식 정신승리 날조해석이고 원문에는 그런내용 없다)


(당시 기술력으론 연안항해를 해야하므로 중국으로 가려면 백제를 거쳐야 하는데 고구려가 자꾸 백제를 치는바람에 바닷길이 종종 막힌다는 뜻이다.)

(백제를 속국조차 아니라 변방의 노예라고 비하하고 있는 왜왕의 모습)



즉 일본입장에서는 백제나 신라나 한반도 모든 남부 국가들은 변방이자 노예이며 속국이었다는 것이다.

고대 일본이 자국과 한반도 국가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5세기 당대에 작성된 제 3자의 입장인 중국사서를 통해 정확히 파악 할 수 있다.

일본은 단 한번도 한반도 국가들을 우러러 본 적이 없고

역사내내 속국으로 무시해왔단것이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