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공정하다고도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우선 위의 인물 사진들은 전부 실제 세상에 존재하는 인물들이 아니고 인공지능에게 맡긴 가상 인물 사진 제작 작업인데
보다시피 제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A.I라도 어딘가 나사가 빠진듯한 불안정한 결과를 보여줌
이것이 겨우 간단한 단순 사진 작업에 끝나는 것으로 그쳤지만
만약 군사, 정치, 역사 등의 고려할 것이 많고 민감한 체제에 쓰인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까 한번쯤 생각도 해
간혹 구글에서 쓰이는 인공지능 봇 색출 시스템 일명 캡챠는 이런 식으로 인공지능의 오점을 걸러내 사람인지 로봇인지 걸러내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지
일종의 인공지능의 학습 효과로도 걸러낼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진 자유의지에서 출발한 경험을 토대로 하는 테스트랄까
고 스티븐 호킹 박사가 쓴 저서 시간의 역사였나 호두껍질 속의 우주였나 두 책 중에 하나인데 한 번 언급된 적이 있는 문단인
그 엄청나게 똑똑한 인공지능의 자유의지 수준은 실제로는 지렁이 수준에도 못 미친다고 그러더라고
무생물이 제아무리 엄청난 고도의 지능을 갖춘다 한들 생물의 자유의지라 불리는 무언가의 의식에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라는 것이지
이쯤되면 그 자유의지란 것의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궁금증도 생기는데 거기까지는 이 대노인의 머리로도 복잡하고 깨달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쉽사리 말하지를 못하겠어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인공지능이 점점 정밀해져서 인간의 의식이나 감정을 묘사해내려는 치밀함을 갖추더라도
결국은 그 의식 행위를 하는 것처럼 계속 추려나가 더 정확하게 묘사해낼 수 있을뿐 완전한 생물의 영역에는 영원히 도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함
누군가 숲 속의 나무를 만들겠다고 이런저런 재료들을 모아 만든다 한들 그것이 완벽에 가까운 나무처럼 보일 수는 있어도 그 나무 자체는 될 수 없듯 뭐 이런거겠지?
예전에 어떤 글도 본 적이 있는데 인공지능이 판사가 된다면 단순 사건으로도 사형 선고를 내릴 수도 있다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게 마치 인간이 청소 작업을 할 때 주변의 개미나 벌레들이 같이 휘말려 죽는 변수들을 감정 이입도 없이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라나
사람 목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변수를 인지하지 못 한다는 것이랄까(자유의지 - 감정의 무인지/무자각 상태)
뭐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인공지능은 인간과 달리 시간이 갈 수록 발전하는 속도가 엄청 비약적이라는 점인데
인간이 하나의 역사를 세우기까지 약 100년이 걸렸다면 인공지능은 오늘은 1년치 역사, 내일은 6년치, 모레는 24년치... 일주일 뒤엔 260년치 이런 식으로 산술급수적이 아닌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다더라고
컴퓨터도 바보는 아니기에 계속해서 정밀한 알고리즘들을 추가시켜서 학습하게 만듦으로서 인간의 의식에 점점 치밀하게 99.99%에 근접 수렴하는 특이점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고 하네
그런데 이것은 해결 방법이 아니고 여전히 해결을 못 한채 문제를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함
인공지능이 완벽에 가까이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자유의지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아니겠어?
겨우 이거 하나가 뭐 그리 중요하겠냐고 할 수 있지만.. 재판과 같은 판사의 의지가 담긴 재량과 고려할 변수들이 많은 민감한 경우에 투입되면
인공지능이 판사라면 양형 기준에 따른 공정도는 높을 수 있지
만 수학처럼 매우 논리적이라서 엄격하기에 기준대로 처리하는 논리 파트는 기계적으로 처리는 정확하게 할 수 있겠지만
반성문 제출의 효력, 사회적 유대 관계, 현재의 심신 상태 등의 가중/감경 사유 등의 기타 미미한 감정과 관련된 변수들은 고려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무서운 이면도 생길 수 있다는 말이지
이렇게 되면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고인은 양형 기준대로 괜한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아무리 재판이라도 판사도 인간이기에 너무 양형 기준으로만 책정하지는 않는 것은 다들 알잖아?
양형의 기준에 따라 시작하기는 하지만 판사의 적당한 자유의지의 판단으로 하는 재량이 저울처럼 양쪽에서 유지되어 판결을 선고하는 것인데
뭐 이런 것을 보면 감히 쉽사리 판단은 못하지만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이유는 적절한 논리와 감정이 섞인 존재라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네
위의 판결 사고실험을 좀 더 쉽게 비유하자면 하나의 빈 구역을 미분법으로 계속해서 작게 추려나가도 그 구역의 어느 구간에서는 적당한 미분 처리를 못 해서 그 영역 부분의 정보를 통째로 버린다던가 그런거지
애초에 디지털로 아날로그의 모든 정보를 담겠다는 시작부터가 오점이야
이는 근대부터 현대의 저명한 수학자, 과학자들에게서 지적되어 온 부분이기도 하고
디지털은 아날로그의 필요 수단으로 작용해야지 아날로그의 정보들을 역으로 통제하거나 제압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면 안된다고 생각함
왜냐하면 아날로그>디지털 이 공식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자연의 물리법칙의 가장 기본이거든
다들 중학교 수학 1학년 과정 공부 해봤을 것 아닌가? 무작위적인 실수의 바다(아날로그) 안에서 규칙적인 특수값인 정수(자연수 - 디지털)가 발견된다는 사실을
뭐 양자 역학적 미시 세계 관점으로 보자면 또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양자 역학이라는 학문은 불확정성에 근거한 기반이라 머리가 아프므로 생략하겠네
외전으로는 리만 가설이 있지 뭐 요약하자면 리만 제타 함수에서 1/2영역에서만 제로 포인트가 찍히는 기현상이 존재하는데
그것들 값 하나하나가 솟수(소수 아님)인데 이것들이 전자의 에너지 준위 값을 결정하는 값과 무서울 정도로 일치한다고 그러더라고..
최근에는 실제로도 방정식하고 일치가 되는 현상도 발견되고 값들도 전부 1/2영역에서만 발견되는 특이점이 나타나거나
우리 우주 세상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도형이라는 구체의 원주율 값이 나온다거나 그래서 다시 수리물리학자들이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나
이게 왜 중요하냐면 무작위적 질서 상태에 가까운 우리 세상의 자연에서 저렇게 유달리 특수한 영역의 구간에서만 특수값(솟수)만이 도출되는 경우는 정상적인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거나 발견되는 사례가 없거든
이 세상에서 무언가 특수하다는 의미는 어떤 목적(현재와 같은 결과를 발생시킨 사건을 의도한)에 대한 무언가를 암시하는 의미인데 이 점을 보면 또 안맞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머리가 복잡하군 그래 괜히 또 철학적인 이야기로 번질 것 같아서 생략
뭐 쓸데없는 말이 길어서 미안했소만 어찌보면 인공지능 이거 예상보다 무서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씨발! 물음에대한 대답도없이 소크테스마냥 쳐사라지는건 무슨경우냐? 신비주의냐?? 지할말만하고 사라지는 쓰레기같은 철학자들은 응당 남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벌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중에 너도 포함이고
세계로부터 줄행랑치는 너의 그림자에게 오늘 사시미건 물회건 쳐먹다 노로바이러스나 걸리라고 저주한다 너는 평화나 행복을 느낄 자격이없다 오늘 회쳐질 물고기와 백조기의 차마 감지못하는 눈은 너가 버리고온세계에서 보내는 원망의 눈길이다 씨발
미안하다.
간만에 회포좀 풀었는가??
생각하는 능력, 곧 비판능력만 있다면 철학은 오직 시간과의 싸움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로부터 철학은 귀족의 학문이었다. 니체에 따르면 현대는 그 귀족다움을 잃어버린 시대, 노예들의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노예의 시간을 사는 와중에도 철학을 하는 너는 타고난 귀족 혈통이 아니겠는가. 잘하고 있다. 덕분에(간만에) 술몸살이 날 정도로 회포를 풀었다. 장삿집에
서 이매진 드래곤즈와 이문세 노래만 반복해서 들었고, 손님과 종업원에게 욕 좀 먹었다. ♥+thunder, imagine dragons♥+
예체능처럼 인문학적 능력, 곧 말 잘하기 또 글쓰기를 선천적 능력으로 여기는 학자가 많다. 대가들의 상충되는 시점을 알아보고 거기서 쾌감을 느끼는 철학적 소질이 상당해 보인다. 그런 능력은 확실히 드문 게 맞다. 왜냐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철학을 선택하지 않거든. 좋아 아주 좋아! ♥+깊은 밤을 날아서, 이문세♥+
*주) 시점=지점: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시간과 공간이고, 현대철학은 시간+(=)공간을 세계의 동일한 본질으로 여기며(물리학의 영향이기도 하다) 동시에 작동하는 현상으로 인정한다.
**시간(성): ㅡ인식론적 주관 곧ㅡ 행위 주체의 탄생/공간: 항상성, 물자체= 관찰자와 물자체가 함께 하는 세계(즉 현상계); 어떻든 있는 것은 지금 여기의 '실재'밖에 없다. 상징, 상상 모두 실재 안에 있다. 실재의 바깥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무 것도 없다. 없어야 한다.
밥은 먹었냐? 철학하느라 먹고 사느라 고생이 많다
후, 생각의 결이 흐트러질까봐 숨도 안 쉬고 문자를 찍어댔다. 오줌 좀 누자!
글이 너무 성글다. 강단철학이 가장 경계하는 짓을 지금 내가 저지르고 있다. 할 말은 많은데 또 몹시 취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순수논리학으로부터 헤겔까지 이어지는 논리학의 계보에 관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해서 올리마.
♥+here there and everywhere, beatles♥+
※앞으로는 칸트나 쇼펜하우어, 또 헤겔을 읽고 이해 안 되는 낱말들 위주로 질문해라.
흐 정확히 지금보고있는 개념에대해서 찔러주어서 고맙다 헤겔은 물자체가 존재자?의 인식과 주관에따라 계속해서 본질이 함께 변화하며 이러한 반복을 통해 가장근원적인 실재에 가까워진다??너는 헤겔을 증오하는거 같던데 참 세상돌아가는 걸보면 헤겔의 변증법?을 방법론으로써 사용하는게 아닐까 할정도로 그의 철학적 핵심사상과 맥이닿아있는거같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그리고 근거율 에대해서 내가 좀 아리까리해서 그에대해서 물어보고싶다 아그리고 '상징 상상 모두 실재안에 있다'라는 개념은 칼융의 무의식에 대한 개념이랑도 비슷하게 들리네 메를로퐁티 현상학은 아직 이해못했고 최근 라캉의 철학을 접했는데 재밌더라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이다??
질문을 좀 싸가지없게했지??? 질문도 똑똑하게해야하는데 씨발근데 나는 '질문해라'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말을 듣는 순간 '질문'에 대해서만 생각해야 하기때문이다 진짜궁금한게 분명히 있지만 아직 개체화되지않았을 뿐인 상태에서 씨발 '질문'하라?? 그럼나는 낚시줄을 애써 끊어내고 배안에그거뭐냐 '물고기 저장해놓는 공간??'에서 이미 잡은 뒤진 물고기들이나
뒤적거리다 그중 아무거나 하나라도 꺼내다가 바쳐야 하는 기분이란 말이다 이씨발롬아 이제 귀찮냐? 너도 어렵지?? 상대가 뭘 모르는지 모르니까 싸가지없게 질문하라고 친절하고 효율성있는척 하네?? 나는 '자 질문하세요' 하는 독단자새끼들 다 죽이고싶은 심정이다
시발아
"질문해라"는 말을 해놓고는 아차! 싶었다. 몹시 취했다는 핑계로서 내 부끄러움을 갈음하마. 정말로 이불킥을 할 만한 수준낮은 어휘력이었다. 반성한다.
철학자는 "끊임없이 묻는 자"라는 말이 있는데, 제대로 된 질문에 나는 벌써부터 아득해진다. 지금 네 물음은 철학사 정도가 아니라 논리학의 본문과 그 계보를 따지는 거라서 따로이 논문을 써야 할 정도다. 어렵거니와 엄청난 양의 자료와 또 그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나는 또 취중이고 내 능력의 모자람으로 말미암아 상세한 이론은 다음 기회로 미루자.
어느 조용한 날 맨정신일 때, 짤방에서 따로이 이 물음에 관한 나름의 지식을 펼쳐 보마. 문제는 네 질문의 수준에 있지 않고 내 지식의 함량미달에 있다. 어떤 질문도 잘못되거나 수준이하일 수 없다. 질문에는 함량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배에서 물고기를 저장해 두는 공간을 '어창', '단물'이라고 ㅡ뱃놈들은ㅡ 말한다.
너의 질문은 전혀 식상하지 않고 막 건져올린 생물만큼 신선하고 가치있다. 너의 물음은 철학에서의 가장 중요한 물음이며 앞으로 또 수세기가 흘러도 변치않을 개념사적 가치에 관한 것이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라깡은 내가 읽지 못했고(읽어낼 수도 없어서) 내 영역 바깥의 문제다. 그래서 무지의 소치로 한마디하자면 라깡은 내게 말장난 이상의 의미가 없다. 상징계/상상계/실재계의 구분을 도식화 개념화하여 그것으로 독특한 정신분석을 펼친 건 분명 라깡의 특별함이겠지만, 상징, 상상, 실재계는 라깡 이전에 이미 철학사의 주요 개념이다. 그 의미는
라깡의 것과 대동소이하다.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이다" 라는 말과 물자체, 그리고 인식론적 주체, 존재와 존재자는 맞닿은 개념이기도 해서 ㅡ여기서는 다만ㅡ 짧게 풀어보마. 현대(철학)는 칸트의 주체로부터 한 발 더 내딛은 상태이다. 주체마저도 힘을 쓸 수 없는 혼돈의 시기를 대표하는 말이 바로 니가 말한 '포스트-모더니즘(철학으론 탈-구조주의) 아니더냐. 주체 다음이 뭐냐? 그게
바로 타자다. 타자란 무엇이냐. 타자는 항상 나의 존재형식을 거부하는 대상. 한마디로 나의 세계 바깥에 있는 그 무엇을 가리킨다. 미시적 이질성을 일컫기도 하고 거시적 탈경계를 일컫기도 한다. 즉 타자는 네가 처음 접하는 바다생물임과 동시에 영원히 다다를 수 없는 신의 모습이다. 신의 모습을 우리가 알 수 있는가? 하는 물음으로 타자의 불가해성을 갈음하면
되겠지. 그런데 여기서의 타자는 분명 인지하고자 하는 주체, 곧 대상(세계)과 나의 관계가 선행돼 있는 듯하다. 다다를 순 없지만 아예 이 세계 밖의 대상이나 사태가 아닌 거지. 칸트의 물자체도 대상이라는 측면에서는 그와 비슷하다. 사물 자체를 칸트는 외계라고 보았다. 우리가 그걸 보고 느낄 수는 있지만 그 본질은 결코 파악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러니
'자체'로만 온전한 것이다. 우리의 주관이 개입할수록 본질(실재)과 멀어질 뿐이다. 이거 저번에 말한 플라톤의 이데아와 비슷하지? 맞다. 그래서 그런 걸 일종의 주지주의(경험주의에 반하는 인식론적 합리주의)라 하고 그 점에서 칸트는 헤겔을 참 많이 닮았다. 그런데 앞서도 말했지만 칸트는 체계적이고 낱낱이 풀이하는 특유의 습성으로 인하여 플라톤보다 훨씬 더
엄밀하고 개념의 풀이가 깊다.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논리학마저도 12범주로 묶어 체계화 도식화 한다. 헤겔은 물자체란 개념에 의지한 일이 없고, 다만 순수논리학을 더 집요하게 파고들었을 뿐인데, 그때에 나온 말 가운데 하나가 근거율이다. 동일률, 모순율, 배중률 따위 알지? 근거율은 아마 충족근거율, 쇼펜하우어가 말한 충족이유율을 가리키는 거지 싶다.
그런데 이거 아리스토텔레스의 순수논리학에서 크게 벗어난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간단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제1원인'이 그것.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빛이 있으면 응당 그와 맞서는 어둠이 있지 않겠는가. 보라, 정말로 저기엔 어둠이 있다! 는 식의 필연적 사태가 곧 근거율, 이유율인 셈. 헤겔은 그런 이론적 절차, 합리성을 추구했고 쇼펜하우어는
맞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근거율'이다 의지와표상으로서의 세계 도입부에서 나오는 단어였는데 씹노인네가 친절하게 풀이해주지않아서 그냥 대충 문맥속 뉘앙스로 대충 '이런거겠지'라고 생각하며 따로 사전적의미를 찾지않았다
'이것이있으면 저것이있다' 불교에서쓰이는 말로 들은적이있었던것 같다 음양사상과도 그 맥이 닿아있는듯하고
의지에 방점을 두었다. 쇼펜하우어에게서 의지는 이성의 우위에서 작용하는 인간적 성격이거든. 차라리 이성의 종합이 의지의 표현이라고, 이성 또한 의지를 위해 봉사할 뿐이라는 극단적(생존주의적=그러니 실존적) 평가조차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정말대단하군 고독사쿤 그렇게 바로바로 철학적 논고가 튀어나오다니 혼돈의철학세계에서 나와 이렇게 잠시나마 고독사쿤의 댓글을 볼때가 가장 행복하단말이지 아주 좃같으면서 주옥같은 철학적 담론을 볼때마다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다 고맙다
교통정리가 잘되어 비로소 뻥뚫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는기분이드는 동시에 집에서 발뻗고 푹잘수있을거같은 기분이란말이다
너는 건방지게 전문가 혹은 학자를 가장한'선배' 나 '스승'마냥 굴지말고 철학자적인 담론만 펼치면된다 나는너의 구독자일 뿐이다 씨발아
그래 옳은 지적이다. 술김에 주제넘게 나선 점에 관해서 몹시 후회한다.
노래 한 곡 올리봐라!
ㅇㅇ 현대 프랑스 철학, 곧 그 문학적 특성이란게 딴게 아니고 자의식과 관계의 황금율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것이다. 문학은 예나 지금이나 세계에 대한(세계를 향한) 지극한 나의 호소일 뿐이다.
시발 어디다가 댓글을다는거냐 진짜 패고싶게
나, 술 마시러 나간다. 술집에서 접속할게
이시발새끼 또 위에댓글 마저안읽고 또 사적영역에 심취해서 보이는것도 못보고 지나치네 시발 건방진 평가자새끼 기본적으로 남을위한 사려가 거의 결여되있는새끼다
살면서 얼마나 이런 존중과 사려를 못보고 지나쳤을꼬 철학의 욕망에대한 그 정열과 투쟁심을 주변에 조금만신경썼다면 너는아마 '행복의 철학자'가 되었을거다
고독사쿤 내가 불과 몇년전만해도 고독함과 외로움의 차이를 몰랐는데 이제는 알거같다 나는 고독하고싶지만 외롭진않고싶다 고독사쿤은 고독함과 외로움의 차이가뭐라고생각해
고독의 한자어를 검색해 보니 아니 다를까 외로울ㅡ고에 홀로ㅡ독이네. 국어사전에 비추어 보자면 고독은 개인의 단독성에 무게가 실린 듯하고 외로움은 그 기초로서 관계에 무게가 실린 듯하네
옛날 문단에선 꼰대선생들이 여러 금기어를 지정했는데, 고독도 게 중 하나야. 고독이란 말을 문장으로도 쓰면 실격이였어
고독은 무조건하고 침묵으로 삼켜야 했지. 그런데 요즘은 고독사가 흔한 일상이고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이라서 감히 문학 따위가 현실을 거스를 순 없겠지. 문학은 항상 너무 적거나 너무 많은, 과잉과 결핍을 대상으로 하거든.
고독은 선택할 수 있지만, 외로움은 외계로부터 주어지는 거니까 자의식(주체성)이 분명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현대인에게 거부감이 들 수밖에. 그런데 그런 상대적 외로움과 몰개성을 극복해야만 제대로 된 고독의 영역에 들 수 있지 않을까
'외로움'이란 고독의시간이 지나면 고독의시간동안 내안에 가득차버린 쓰레기더미건 보석이건 각종잡동사니로 가득찬 그릇을 외부로 비워버리고싶다는 그런욕망과 비슷하다 외부와의 '소통'을 통해 이를 비워내지않는다면 새로운것을 채울수없게되니 너무나 고통스럽지않겠는가????
'외로움'이주는 고통은 신체의 이상신호를 알려서 위험에서 벗어나 정상회귀하려는 감각기관이주는 신호와도 비슷하다고 볼수있는데 내가느끼는 외로움의 고통이란 외부의 관심과 사랑따위가 아니라 내안에 가득찬 '고독의 생산물?'을 외부에 쏟아버리지못할때 오는 통증이라고 말하고싶다
이댓글 직전에서 근거율에대한 너의 설명을 나열하던 댓글창을 확인하였는가????내가 너의 칭찬과더불어 내가 느끼는 '충족'과 '해소'에대한 짤막한 비유와 감상을 곁들였는데 못보고 지나친것인가??
아 물론 관심은 필요하지 최소한으로 그 최소한의 관심이란 편지가 든 유리병을 바다에띄우는 한 인간의 작지만 아주간절한 '염원'을 담을수있을 정도면된다 언젠가 어느 해안가에 닿아서 누군가가 나의 존재에대해서 어렴풋이 떠올려 줄수도있다는 일말의 실현가능성같은거 말이다
그럴 듯하네. 꼭 프랑스 철학 같다. 현대 프랑스 철학의 특징이 주체의 해체, 타자와 이질적인 것의 적극적 수용, 기존 이념의 부정 뭐 이런 건데, 그래서 이해하지 한에서만 철학적 사유이고, 이해를 못하면 말장난인데 니가 지금 꼭 그런 식이다
그래서나는 '외로움' 또한 외계로부터 주어지는것이 아닌 지극히 내적 '욕망'으로부터 피어난다고 말하고싶다 물론 외계가있기에 이런욕망이 피어나겠지만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항상 스스로 고독을 갈망한뒤 자의건 타의건 비로소 고독에빠져들게되면 어느새 그것은 외로움의고통으로 무섭게 탈바꿈되더군 고독이란 욕망이 충족되니 외로움이라는 또다른 고통이 찾아온다는점에서
*주) 이해하지 한에서만=> "이해하는 한에서만"
쇼펜하우어네 씨발
인간의 언어중에 그럴듯함을 넘어서 완벽하다고 할수있는것이 있냐?? 철학자가 씨부리는거나 서너살 애새끼가 씨부리는것과 도대체 그중 뭐가 더 '그럴듯 하다'라고 말할수있냐
흐 맞다 결국 말장난이네 분명히 내가 글을 쓸때는 내가느끼는것의 실체를 정확하게 타이핑하고있다고 나도모르게 생각하고있었던거같은데 너말을 듣고 다시보니 내가 이런좃같은말을 어디서 꺼내온건지 모를정도로 병신같네
항시 내 오만함을 경계하고 있었는데도 역시 고새를못참고 순간 너가 철학적이지못한 답변을 내놓았다고 생각한뒤 신나서 씨부린게 철학은개뿔 말장난이라는 '똥'이라니 씨발
내가 인식할수있는 영역에서 표현의 한계라고 해두지 내가 멍청해서그런건 아니다 오히려 나의 주옥같은 말을 해석못한 너의 지식함량미달이 더 과실이 크다 '말장난'은 멍청이들이 만든 핑계다 씨발롬아
'말장난' 이라는건 말장난을 위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거다 내말을 이해할수있겠냐?? 이씨발 내로남불아 말장난은 아무나치냐?? 말장난쳐도 말장난이라고 꼬나보고 지가 멍청해서 이해못해도 말장난이라하고 내가시발 60억인구를위한 보편적 언어술을 사용하지못한게 잘못이냐??
미안하다 맨정신이라 내가그만 '과오'를 저지른듯하다 나쁘게보지말아라 사과한다
아무튼 외롭지않은 철학을하려면 고독사쿤이 말한 "프랑스"철학의 이해못하면 말장난이되는 그런 전개방식은 지양해야겠군
니는 타고난 철학자다. 적성에 딱 맞다. 그래서 강단철학자들에게 조리돌림 당할 일만 남았는데, 함께 극복하도록 해보자
그래도 고독쿤덕에 오늘 나의 '외로움'이 해소가되었네 내가 잘하고있는건지 굳이 애써 무러보지 않아도 고독쿤의 주정섞인 글들속에 이미 그 '해답'이 있더라
고독쿤은 지금 존재만으로도 나도모르는 나의 추상적 의문에대한 해답을 주고있어 놀랍지않아!!!!!????
는 내가 너무 고양되었던거같다 아니지 고양을 넘어서 격양까지 나아간거같아서 갑자기 나를 낮추고싶어진다 철학이니 지랄해봐야 덧없는 성취감에뒤에 밀려오는 허무감은 잠시나마 이상의 꿈을 꾼뒤 깨어나 마주하는 현실의 지독한 선명함과도 같다
나는 약쟁이보다도 더 비겁하고 사악하다 아니 애초에 약쟁이가 과연 악하고 저급하다고 볼수있는가 걔네는 영리하기라도하다 철학은 약쟁이마저도 될수없는 부류들이 선택하는 최후의 도피처일뿐이다 나는 인간으로서 '최악의 길'을 걷고있다
이씨발롬아 '타고난 철학자'? 차라리 '타고난 루저'라고 칭해라철학이라는 단어는 그냥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진정한 철학은 애초에 존재한적도없다 씨발
철학의 탑은 무너져야한다 그게맞다 인간이 인간을 알려고한다니 철학은 인간의 지배자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철학으로써 밝혀지는게아니라 철학이 인간을 객체화시키고있다 이는 취향과 기호에맞게 개체화되고 종족적으로 퇴보된 품종강아지와 다를게 없다 원래는 똥개가 진짜 개다 씨발롬아
품종개량된 개들은 자연으로보내지면 인간의관리와 보호에서 벗어나 적응조차도못한체 뒤진다 똥개도 사람손을타는 개로 통용되는 이름이니 '들개'라고 하겠다 들개는 원래 자연에서 인류못지않게 역사가깊으며 꾸준히 살아남았다 우리는 원래 들개였고 들개로돌아가야한다
하지만 들개는 사람이 아니니 스스로의 존재에대해 사고할수없고 인간이 들개로 돌아간다 한들 분명 누군가 철학적사고의 영역에 들어설테니 인간은 또다시 철학의 토대위에서 자라고 변모하겠군 미안하다
철학은 신의선물이자 저주인걸로 하자
지금 니가 하고 있는 행동이 바로 철학(함)이고, 너는 아주 고급스럽게 그 행동을 펼치고 있다: 철학 아니라도 너는 모든 걸 잘할 수 있고; 이제라도 다른 ㅡ돈벌이되는ㅡ 공부를 해라. 너는 타고난 철학적 감수성과 사고능력을 가진듯한데 그게 되레 네 삶의 비수가 될까 두렵다
철학하지 마라. 시간낭비다. 너의 그 뛰어난 두뇌를 다른 데에 활용해라.
그말은 마치 나에게 현실에서의 호흡을 멈추라는말처럼 들리는군 슬프다 고독사쿤
또다시 아침이되어 신선한 공기를 맡으니 간밤의 허무와 고뇌가 무색할정도로 알수없는 활기가 솟아난다 아니 이활기는 고뇌하는 밤을 보내지 않았을때 맞이하는 아침의 활기보다 훨씬강력하고 평화롭다 이럴수가!
시발롬 니가 니체냐? 젊음은 니체가 빙의되기 좋은 시절이지. 부럽다. 나이 오십줄에 들어서면 간밤의 허무와 고뇌로 인해 데미지가 임계치에 도달한다. 그러면 한 며칠은 반송장처럼 살지. 나도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건데 철학의 정신은 젊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듯하다. 나이들면 철학적 사고가 둔해질 뿐더러 매너리즘을 좀체 빠져나올 수 없다.
뭐야 어디 뒤져있다가 이제나타난거냐 시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줄 알았다 니체씨발롬은 너무 폭력적이야 더나은자유를 갈구하는 이들에게는 예수 그자체지만 지옥의심연 루시퍼를 만나길 소망하는 자들에게는 'ㅈ같은 독재자'처럼보여 콧수염에서는 '아돌프 히틀러'의 광기와 고집이 느껴진단 말이다
형 빨리 씹소리들을 씨부려줘 목이 바짝바짝말라들어간다 아참 저번댓글중 중에 사랑 배려 어쩌구하는자들을 경계하라고했는데 그에대해서좀 씨부려줬으면 좋겠네
그리고 칸트의 '선험적종합판단' 에대해서 아는대로 최대한 친절하게 씨부려주길 바래 지옥에서 칸트살려내서 다시 조패버리기전에
아 저번에 추천해준 퐁티 지각의현상학 책을 읽지는못했지만 철학의골자를보고 아주 도발적이면서 모든걸 갈아엎어버리는 철학에 감탄했다 아주 짱짱짱!이라고 표현하고싶군!
저번에도 말한 듯한데 칸트의 선험은 선험주의라기보단 종합적 형식, 곧 종합판단에 이르기 위한 근본 주제(개념 또는 명제)와 절차라고 보면 된다. 플라톤에게서 이데아의 위치와 마치맞다. 그래서 칸트 또한 주지주의자로 폭넓게 이해된다. 선험이란 말 그대로 감각의 현상계에서 작동하는 경험, 또는 그러한 판단인 후험 이전의 사태를 가리킨다. 가령 수학에서의 1+1
=2 쯤의 사태가 되겠지. 이걸 경험 문자화하면 1은 주어일 테고 2는 술어이겠지. 그런데 주부의 두 1은 애시당초 술부의 2와 아무 상관없이 존재했고 동떨어진 존재자이다. 그런 그 둘(1+1)이 합쳐진 사태가 2라는 건 인위적인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존재자 외계에 자리한 세계의 형식에 가깝지. 수학이라는 연역적 사태의 존재론적 형식을 우리
낱낱의 존재자들이 거부없는 한에서 그건 내 경험 이전의 사태, 곧 선험적 사태가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논리나 신으로 뭉뚱그려 말하는 제1원인 또한 선험의 영역이겠지. 왜냐하면 그건 우리가 경험하거나 말거나 이미 그러한 세계의 형식, 존재의 형식이니까. 칸트는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형식들을 범주화한 데에서 철학사적, 인식론적 의의를 가지고 그건
철학사의 모범이 되고도 남을 만하다. 물론 현대의 분석철학(언어철학)에 의해서 그 권위는 예전만 못하지만 그의 이론적 실천은 근대철학의 진정한 태동임과 동시에 현대철학의 뿌리다. 선험적 종합판단은 그러니까 선험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칸트의 인식론이 경험론에 반하여 도달한 결론, 곧 종합(판단)인 것.
*주) 거부없는=> 거부"할 수 없는" 한에서
고독사10새) 니가 나보다 낫다. 너는 적어도 현실을 마주보며 철학을 하고 있구나. 젊음의 용기다. 나는 요즘 육체도 정신도 거의 망가졌다. 늦게 답글 달아서 미안하다.
시발롬아 어디사라졌다가 이제왔냐 고독사한줄 알았다 흐 칸트씹새끼 존나어렵다 분명 알겠는데 모르겠다 뭘알겠는지도 뭘모르겠는지도 모르겠음 그만큼 어렵다 난해하진않은데 명료하지도않다 좃같은 칸트 라캉 철학재밌더군 헤겔도재밌어 헤겔철학이 어렵다고들하는데 난뭐가어려운지 모르겠네 얼마나 멋있냐 절대정신 크 ㅋㅋ
아그리고 저번에 니체욕한건 철회한다 니체의 전달방식이 폭력적이고 도발적일 뿐이지 니체는 가장 인류를 구원하고자싶어했던 예수에 버금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아그리고 스피노자 시벌롬철학 어떻게 안되겠나? 고독사야 너가 과거로돌아가서 걔철학못나오게 죽이고와주면 안되겠냐
요며칠 자살하고 싶을 만큼 몸과 마음이 아팠다. 오늘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속이 아파서 해장술 좀 사왔다. 염려, 항상 고맙다. 좀전에 너의 글을 다시, 차근차근 읽어봤는데 니가 하는 말이 니체를 참 많이 닮았다. 줄 바꾸자. 스크롤압박이 심하다
내가 며칠전에 고독사컴언이라고 짤방판거있으니 거기로와라
요즘은 칸트보다 스피노자를 추앙하는 철학자가 더 많을 정도다. 내가 무슨 수로 스피노자를 깨부셔. 스피노자 또한 근대철학의 씨앗이고 아버지 같은 존재인데. 너랑 맞지 않으면 안 보면 된다. 그러다가 결국 만나게 되고 빠지게 된다.
새로 파라!
형 얼마전에 내가 고독사컴언 이라고 짤방판거있으니까 거기로오라고 시발좀
제목검색에 '고독사'라고치면 뜰거다
알았다. 찾아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