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옛날엔 자연에 묻는 등의 행위를 통해 자연의 기운으로 안 좋은 기운을 누름 문제는 요즘 그게 다 튀어 나왔다고함 2. 악신이 된 신이 늘어났다함 3. 악한 인간 또한 많이 늘어났다함 애기선녀 유튜브 눈팅하다 맞말이라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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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몰찬 스파르타 교수법을 추구하지요. 조국 씨 또한 딸내미 조민의 최근 행보를 아이의 성격과 역량의 발현이라며 추어올리죠. 그런 자가 타인의 불법과 부도덕을 지적하며 평생을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586씨발년놈들을 사람새끼라 여기지 않는 지점입니다.
고독사(125.188)2023-04-27 0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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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보면 열을 알죠.
고독사(125.188)2023-04-27 0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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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님은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영화든 책이든 원본(또는 영역본)으로 보는 연습을 하세요. 제자님이 좋아하는 영화 1917을 자막없이 보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강유원 따위의 전라도 586 명망가가 남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나대는 까닭은 그가 철학공부를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미친듯이 영어(외국어)공부를 했기 때문입니다. 강유원의 철학강의는 학부, 교양철학 수준
고독사(125.188)2023-04-27 0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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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고독사(125.188)2023-04-27 01: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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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정직한 사람들이 피땀으로 구축한 사회가 아닙니다. 정직한 피땀을 내 이익과 권력의 도구삼은 폭력과 사기로 점철된 사회입니다. 한국의 명망가 누구도 이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 때에 전라도 새끼들 뿐만 아니라 전국의 깡패들을 씨말렸죠. 87체제(개헌) 이후, 김영삼 문민독재가 자신의 실정을 만회하려 호남을 힘껏 껴안죠.
고독사(125.188)2023-04-27 02: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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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사태가 민주화운동으로 돌연변이하면서 586 깡패새끼들이 운동권과 결탁하여 한국ㅡ자본제ㅡ사회의 주류로 등장합니다. 이 새끼들의 민주화는 "나도 이제 돈 좀 벌어 보자; 돈이 장땡이여!"란 90년대의 캐치프레이즈와 딱 떨어집니다. 전두환 개쌍도 군부독재는 조단위로 해처먹었는데 이깟것은 장난이지. 민주화에 편승한 법조계는 민주화의 동참이라는 과거 참회성
고독사(125.188)2023-04-27 02: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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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때, 87년 6월 항쟁 때 나는 무얼 하였는가? 라는) 감상주의와 결합하여 법의 본디 정신(죄형법정주의)을 망각하고 요상한 판례 원칙을 세우기 시작하죠. "그러기에 판검사님이 좋았더라." 손해볼 게 없죠. 그러기는커녕ㅡ평생 먹물로 살아온 샌님 판검사님께ㅡ엄청난 경제적 이익이 주어졌죠. '깡패는(불법은) 돈이 되는구나.' 국졸의 깡패새끼도 억단위를
고독사(125.188)2023-04-27 02: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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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는데 서울법대 출신의 나는 최소 조단위는 벌어야 해. 무식한 전두환도 고졸의 김대중, 노무현도 대통령이 되는데 서울대 법대, 의대 출신인 내가 고작 이것밖에 안 돼! 그게 586개새끼들의 심리 기저입니다.
고독사(125.188)2023-04-27 02: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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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강유원이=>회사원 철학자=>강단철학자=>희대의 철학자=>희대의 스승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이러합니다.
고독사(125.188)2023-04-27 02: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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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헤겔 전공자이고 니체 전공자이지만, 속속들이 권력추구에 미쳐 버린 천박한 조선노묵씨발년놈들이 드디어 본성의 마키아벨리즘을 실천하는 시절이 도래한 거죠.
고독사(125.188)2023-04-27 02: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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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인냐?' 내가 살기 위해서 그의 권위를 인정해야만 하는 이익(권위) 공동체가 사회 각분야, 곳곳에서 탄생합니다.
고독사(125.188)2023-04-27 02:45:00
답글
니체의 '권력의지'는 현실의 권력 추구를 우선 함의한다. 따라서 니체주의자의 현실 권력 추구는 자연스럽다. 그러니 니체(전공자)는 빼자.
고독사(125.188)2023-04-27 02:57:00
답글
***한동훈 씨가 읽고 있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는 영역본이다.
고독사(125.188)2023-04-27 0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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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반드시 읽어야 하는가?
ㅡ역사학은 일종의 지적 허영이다. 삼국지를 열심히 읽는 자를 폄훼하는 자가 읽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아이러니이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인간 처세의 있어서 삼국지보다 별난 구석이 없다. 투키디데스까지 고대 그리스 원전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는 새끼는 정신빠진 새끼이거나 극소수의 전공자 뿐이다. 그 시간에
고독사(125.188)2023-04-27 03:17:00
답글
영어단어 한 자를 더 외우고 미적분을 복습하자.
고독사(125.188)2023-04-27 03:18:00
답글
*/1) 인간 처세"에" 있어서
고독사(125.188)2023-04-27 03:20:00
답글
강유원 씨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역사(학)는 오늘의 나를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다. 역사는 항상 타자의 시간이다. 나는 오직 나의 지금 여기를 살아갈 뿐이다. 부분들의 합은 전체가 아니며, 나 없는 전체는 존재할 수 없다. 계몽주의자 강유원은 근대적 사고를 다시 배워야 한다.
고독사(125.188)2023-04-27 03:32:00
답글
전라도식 전체주으, 아 똥구녘에 땀나는 짓이란께!
고독사(125.188)2023-04-27 03:34:00
답글
고씹/영어, 희랍어, 라틴어를 몰라도 얼마든지ㅡ강유원 씨보다ㅡ깊은 수준의 칸트를 공부할 수 있습니다. 강유원 씨를 따라 칸트 공부를 하면 평생 학부생 지식으로 그칩니다. 그럴듯한 말씀들에 휘둘리지 마세요.
고독사(125.188)2023-04-27 0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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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이 어떻게 인간의 심미적 차원에 개입하(할 수 있)냐고 물었는 데, 칸트의 라틴어 원전(무슨 단어가 있는데 기억나지 않습니다. 죄송해요. 나는 아직 공부가 많이 부족합니다!)을 내세우며 신의 언어를 내세우면 곤란하죠. 철학자들이 말하는 요상하고 어려운 고대 희랍어나 라틴어는 전부 당대의 일상어입니다!
고독사(125.188)2023-04-27 0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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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서양철학자라고 자랑하며 다니는 강유원 씨의 실체는 남보다 영어공부를 오래한 동국대 철학박사 학위 수여자입니다. 그의 독특한 점이라면 직장생활 와중에도 철학책 읽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것; 그건 그의 철학적 성과를 말하기 이전에 한없이 나약한 한국의 서양철학을 탓할 수밖에.
고독사(125.188)2023-04-27 04: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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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양철학계는 평생 누가누가 고대 그리스말을 많이 아나, 누가 라틴어를 잘 하나 따위로 서열 싸움하는 유치원생들의 난장판입니다. 아 물론 말이 중요하죠. 언어는 존재의 집이니까. 하, 근데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집으로서 언어는 우리는 아는 느낌상의 느낌 그 정반대입니다. 하이데거의 말은 우선 언어를 배우고 철학을 하자는 말이 아녜요. 그 모든 어려운
고독사(125.188)2023-04-27 0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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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비밀과 수수께끼로 가득찬 세계-언어의 진실에 철학은 당연하게 복무할 수밖에 없더란 것.
고독사(125.188)2023-04-27 0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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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본질은 언어의 본질을 밝히는 게 아닙니다. 차라리 권력의 서열(니체)을 밝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로 그게 전부입니까. 죽음을 앞둔 유한한 존재에게 과연 권력만이 전부일까요?
고독사(125.188)2023-04-27 0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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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 걸고 장담하겠습니다. 강유원 씨는 순수이성비판을 완독(본인은 삼독까지 했다던데!)한 일이 없습니다.
고독사(125.188)2023-04-27 04: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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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철학자는 머리카락을 기르고 꽁지머리로 멋낼 때, 철학책 한 번을 더 읽고 남보다 열 번은 더 생각합니다.
고독사(125.188)2023-04-27 0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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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그렇게 살아 왔다는 말은 아니구요; 그런 말이라면 밤새도록 미갤이나 하는 나의 삶은 대번에 강유원 씨의 불굴의 정신 앞에서 희화화 되겠지요.
고독사(125.188)2023-04-27 0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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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철학자는 v남들이 머리카락을 기르고 꽁지머리를 하며 멋낼 때v 남보다 철학책 한 권을 더 보고 열 번을 더 생각합니다.
고독사(125.188)2023-04-27 04:58:00
백신때문임 ㅅㅂ
파쿠(211.234)2023-04-25 19:31:00
고씹, 김영은 나보다 반드시 오래 살거라.
♥+월량대표아적심, 등려군♥+
고독사(125.188)2023-04-27 0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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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나약한 게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사회가 한없이 나약하고 느슨한 것이라서 개인의 의지는 숨쉴 기회조차 없네. 이러다 또 나는 잡혀가겠지? 정말로 나는 법원의 판관나리 앞에서 개새끼야 하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내 집도 아닌 셋방살이에서 도대체 어디서 분신자살을 해야 하지. 이 세상에 다시 오지 않으려면 타인에게 아무런 민폐를 끼치지 않고 죽어야 할
고독사(125.188)2023-04-27 05:16:00
답글
텐데. ♥+와우정사, 김동아♥+
고독사(125.188)2023-04-27 05: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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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배타고 와서 다시 노가다일을 시작할 때, 팔공산은혜사 근처에서 작업을 했는데 점심먹으러 나간 식당에서 땡중 옷을 입은 한 사내가 노태우의 생가터 위치를 물어오더라. 위치를 알려 주었고 "머때문에 카는 데예?"하고 까닭을 물었더니,
고독사(125.188)2023-04-27 05: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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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계종인디 "노태우 생가으 기운이 너무 세야써알아보러 왔어요"라더라. 이 이야기에 자그마한 거짓이 있다면 나는 천벌을 받겠습니다.
고독사(125.188)2023-04-27 0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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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라도 개새끼들에 대해서 참 할 말이 많다. 그러나 내 매제가 전라도 목포 사람이고 세상 착한 막내 이모부가 전라도 무주 사람이라서 내 못된 선입견을 억누르고 있다. 어쩌다가 대구사람이 전라도개새끼들보다 먼저 지역감정을 말하는 원흉이 되었는지 원.
고독사(125.188)2023-04-27 0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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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마음껏 지껄여라. 역사 또한 한없이 지껄이는 자의 몫이니까. 이윽고 니들만의 역사가 씌어지겠지. 그 후의 아름다운(?) 북조선전라인민공화국의 세상을 내
고독사(125.188)2023-04-27 06:11:00
답글
미리 축복하마.
고독사(125.188)2023-04-27 06:12:00
"세상 모든 아름다운 말은 군주의 몫이고, 세상 모든 저주는 저 낮은 자들을 향하게 하라." ㅡ마키아벨리.
고독사(125.188)2023-04-27 06:20:00
"왜 자꾸 저 무능력한 무직자를 위해서 복지행정을 펼칩니까!
"이건 나의 무능 탓이 아니라, 국가행정 탓이고 나의 능력을 몰라 보는 사회 탓입니다!"
고독사(125.188)2023-04-27 06:26:00
답글
ㄴ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례다. 이 사회는 회생불가의 경우로 썩었다. 이 못난 세상을 물려 주고 가서 정말로, 정말로 죄송합니다!
고독사(125.188)2023-04-27 06:30:00
마이 외롭네. 외로움이야말로 철학의 몫. 나는 어릴 때부터 외로운 사람. 어쩌면 외로우려고 태어난 사람. ♥+사랑한 후에, 들국화♥+ 고씹, 김영은 외롭지 않게 살다 가라.
고독사(125.188)2023-04-27 06:39:00
고씹/ 마키아벨리가 왜 근대 민주제로 연결되냐 하면, 그게 프랑스 대혁명 때의 주동자들이 학습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마키아벨리: 주동자들은 항상 먹고 살 만한 새끼들이지요!) 당시 군중의 심리는 우선 "그 오랜 기간 동안 너는(너희 가문은) 왜 신뢰를 구축할 수 없었느냐, 너희가 신성 가문이라면 너같은 범인은 태어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신성부정의
고독사(125.188)2023-04-30 02:35:00
답글
종교적ㅡ타 제국(대영제국에 빗댄ㅡ상실감 때문입니다. 마키아벨리즘에 따르면 강자는 영원한 강자여야 하죠. 이게 바로 파르메니데스를 승계한 플라톤의 원본주의입니다. 경험 자체(=세계)가 오롯이 거세된 한 개인의 경험(=관념)적 세계이지요.
고독사(125.188)2023-04-30 02:45:00
답글
*대영제국에 빗댄v)덧괄호v; 상실감 때문입니다
고독사(125.188)2023-04-30 02:50:00
답글
**대영제국kingdom of eng는 그 후의 역사입니다. 아무튼!
고독사(125.188)2023-04-30 03:03:00
답글
마키아벨리는 제갈량이나 사마의에 견줄 만한 책사일 뿐인데, 너무 과대포장되어 현대의 책략가(사기꾼들)에게서 전범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일단 철학(칸트)적으로 마키아벨리 같은 병신은 조지고(죽이고) 시작합시다.
고독사(125.188)2023-04-30 03:09:00
칸트(철학의 신 또는 철학하는 자)가ㅡ실패한ㅡ마키에벨리(ist)에게 하는 간단한 충고.
*마키아벨리즘의 역설입니다!
고독사(125.188)2023-04-30 03:14:00
답글
1. 절대인 군주는 민중을 신경쓸 필요가 없다.
1.1. 절대란 것은 그 어떤 머뭇거림도 걸림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1.2. 거기서의 머뭇거림은ㅡ항상ㅡ절대가 될 수 없는 것들의 변명이다.
고독사(125.188)2023-04-30 03:19:00
답글
2. 연역적 사고(=보편적 생각이라는 것)는 항상 더 크고 더 깊은 어떤 특수성을 향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세계는 피렌체의 군주와 서남 유럽의 영토까지가 전부였다.
고독사(125.188)2023-04-30 03:26:00
답글
2.1. 칸트는 실제판단 위의 필연적 판단을 인정했다.
고독사(125.188)2023-04-30 03:27:00
답글
2.2. 머뭇거리고 반성하는 것은 필연의 몫이 아니다. 필연은ㅡ나도 모르게ㅡ태어나고 만들어"지는" 것의 총체다.
고독사(125.188)2023-04-30 03:29:00
답글
한 곡 들을까?
고독사(125.188)2023-04-30 03:31:00
답글
김영/너는 니가 키우는 천 송이 장미보다 아름답다. 시인이 반성할 줄도 아는구나. 어쩌면 진짜 시인이라는 직업도 있고, 시(말함으)로써 우화등선하는 길도 있겠구나. 제발 아프지 쫌 마라 착한 시인이여.♥+rose garden, lynn anderson♥+
고독사(125.188)2023-04-30 03:39:00
답글
고씹/ 무슨 말인 줄 모르겠냐? 아리스토텔레의 10 범주를 칸트가 열 두 가지 범주로 확장하듯 철학적 범주 또한 고정된 게 아니란 것. 개념(테두리: 더 갈 데 없는)적 사유도 이러할진대 인간 일상의 생각이란 것은 얼마나 더 개판일지를ㅡ실천(경험) 영역에서ㅡ제대로 고통받아 봐야 한다.
고독사(125.188)2023-04-30 03:50:00
답글
"고통이야말로 진짜 생각이다(싯달타; 칸트-쇼펜하우어-케에르케고르-니체-에밀 시오란)."
고독사(125.188)2023-04-30 04:05:00
답글
※상상할수록ㅡ생각이나마ㅡ자유로움은 확장되겠짐만, 그런 만큼 무질서는 따라서 온다. 이거 잘 계산 못하면(계산할 수 없는 영역이다) 큰일나는데, 사회(국가)는 항상 이 어긋남을 궁리함으로써 존/멸의 갈림길에 놓인다.
고독사(125.188)2023-04-30 04:15:00
♥+분홍빛 립스틱, 김영♥+
고독사(125.188)2023-04-30 03:56:00
답글
나는 너를 좋아하니까. 내가 더 이상 댓글을 달지 않도록 너는 그만 아팠으면 좋겠어. 세상엔 시인이라는 직업이 있구나. 아프지 말고, 네게 주어진 것 다 누리고 가거라.
고독사(125.188)2023-04-30 04:40:00
답글
하지만, 나는 말장난하는 시인을 좋아하지 않아. 걔들은 가수보다 천박해.
고독사(125.188)2023-04-30 04:46:00
김영/ 너는 시를 쓰지 않아도 본디 글을 잘 쓰는 사람이지 않느냐. 끝없이 말하되, 웬만하면ㅡ이것이ㅡ시라고 말하지 마라. 현대시는 대개 개인의 넋두림 영역이라서, 니 장미같은 문체로 일기(수필)나 쓰고 살아라. 언젠가 장미의 화원 같은 세상 빛나는 문장의 대관식이 펼쳐지리라. 그 때의 니 삶 모두, 니가 내뱉는 말 마디마디가 모두 시임을.
고독사(125.188)2023-04-30 05:04:00
답글
미련갖지 마라. 니 말씀하는 마디마디가 시다. 몸이나 챙겨라.
고독사(125.188)2023-04-30 05:06:00
답글
언어의 탄생 이래, 시는 본디 세상을 구제하는 목적의 쓰임새가 아니다. 시인은 예술가이고 연예인이다. 넝의 직업윤리를 망각하지 마라; 하지만 나는 찐자 시인(너)의 혁명도 믿는다. 그러니까 이젠 그만 입원해!
고독사(125.188)2023-04-30 05:11:00
답글
서울대 철학교수 따위 강단철학자만이 개념 중심주의를 말하지, 플라톤이나 싯달타는 그저 개념어라는 교부철학의 원리없이 그저 자기 당대의 말을 썼을 뿐입니다. 원본은 구태여 개념 따위를 만들지 않습니다. 개념은 항상 사본을 만들고 해석하는 자들의 몫입니다. 거기에 인생을 허비하면 고전문헌학자로서 이름을 떨칠지언정 자신의 철학(반성)은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고독사(125.188)2023-05-04 01:48:00
♥+American pie, Don mclean♥+
고독사(125.188)2023-04-30 05:17:00
답글
윤석열 대통령 씨,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서울대 출신 검사인 게 평생 자랑이면, 문재인 따위와 비교되는 게 안 쪽팔립니까! 돈 맥클린의 노래 가사처럼, 영웅의 삶이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독사(125.188)2023-04-30 05:55:00
답글
윤 대통령님, 핵주권은 우리몫인 게 맞나요? 인간은 시작보다 끝이 중요한데, 그 끝 또한 대개는 show거짓이죠.
고독사(125.188)2023-04-30 06:16:00
답글
물론 당신 입장에서는ㅡ저 많은 군중의 환호를ㅡ쇼라고 믿을 수 없겠죠.♥+the load out stay, jackson browne♥+
고독사(125.188)2023-04-30 06:19:00
답글
그래요. 일단은 무대에 오르는 것이 중요하죠. 부디 무사히ㅡ당신의ㅡ막을 내림으로써 만인의 칭송을 받기를.
고독사(125.188)2023-04-30 06:32:00
답글
예. 나는 내가 뽑은 사람 가운데 유일한 대통령인 당신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고독사(125.188)2023-04-30 06:42:00
답글
말만 하지 말고 제발 쫌 실천해 보세요. 작금은 계엄령을 선포하여 비리 정치인, 판검사, 학계, 기업인(낱낱의 중소기업인까지) 정확한 죄형법정주의로서 다스릴 때입니다. 성문법 체제는 인간보다 법문자가 먼저 태어났습니다. 동일 범죄에 있어서 판사나 전과 18범의 깡패나 꼭같은ㅡ죄형법정주의에ㅡ
고독사(125.188)2023-04-30 06:52:00
답글
"법적" 처분을 받아야 합니다. 헌법개정 같은 개수작 말고, 이거, 이 불합리 못 고치면 현대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고독사(125.188)2023-04-30 06:55:00
답글
죄형법정주의에 v따라성v
고독사(125.188)2023-04-30 06:58:00
김영/ 너는 인서울 안에서도 대여섯 손가락에 꼽는 대학을 나오고서 왜 기죽냐?
고씹/ 일상언어가 중요하다. 틈틈이 영어공부를 핼라. 니가 스승을 정말로 좋아한다면, 스승이 시키는 말도 제발 좀 실천하자!
고독사(125.188)2023-04-30 07:09:00
답글
영어공부를 아주 많이 했었습니다. 문제는 입시용(대응하는 한국어 번역)으로 단순히 외우는데 전념했었기때문에솔직히 "그것만이라도 아는게 어디냐"라는 마인드입니다.
고독사씹새끼(39.7)2023-05-02 19:29:00
답글
"틈틈이"라는 말은 참 나에게는 너무나 가깝고 친숙한 시간의 개념인 반면 타인의 말씀일 때에는 공간적으로 느껴질 따름입니다. 일상의 틈을 매번 쪼개서 그곳에 의무적인행위를 끼워넣은 결과 그 무엇 하나도 제대로 진행되는 일이 없이 '그날의 고문관'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고독사씹새끼(39.7)2023-05-02 19: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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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본인만의 온전한 틈이란 없는것같습니다. 나만의 틈을 가지기 위해선 우선 타인의 수많은 체크리스트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내가 모두를 다 죽여버릴 정도의 힘을 가지거나, 혹은 모두를 경멸하는 사람이 되어야 비현실적인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체험할 듯 싶습니당
고독사씹새끼(39.7)2023-05-02 1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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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허영심은 이 세계를 창조한 신조차도 내려다보려하지만 나의 실천능력은 길거리 노숙자보다도 훨씬 못미칩니다. 항상 때를 기다려왔지만 그런 영화적이고 드라마틱한 순간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내가 태어난 사태 이후로 그것을 압도할만한 사태는 도래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도래하지 않을것만같다.
고독사씹새끼(39.7)2023-05-02 1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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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언젠가 그럴만한 사태가 벌어진다 한들 나는 주인공일 수 없다. 아니, 주인공을 시켜준다고 해도 이미 폼이 안난다. 이미 나이가 들고 남성형 탈모가 시작되었으며 애초에 내가 꿈꿔온 나는 영화속, 소설속 타인이었으니까. 매일 아침 각종 팝송과 가요를 들으며 고양감을 만끽해온 나의 지난 15년이 사실은 이승도 저승도아닌 제 3의 시간이자 공간이었음을 나는
고독사씹새끼(39.7)2023-05-02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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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알았다. 나는 그 노랫말에 결코 닿을 수 없었다. 내자신이 결코 그 노랫말일 수 없는건 당연한 것인데도. (나의 치밀한 mp3 선곡에 당했던 학창시절 친구들아, 미안하다잉?)
고독사씹새끼(39.7)2023-05-02 2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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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씹/ 예, 이 사회는 '틈'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나는 칸트의 모호함을 틈의 불허라 여깁니다. 오늘날로 치면 과거의 철학자들은 일종의 정신병자인데, 그 병증을 숨기고 병명을 포장하기 위해 심리주의 현상학, 심리철학 따위가 자꾸자꾸 만들어지죠.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고 근본을 바꾸어야 합니다. 물론 사회의 여타 제문제처럼 개인의 능력 밖 사태이지요.
고독사(125.188)2023-05-04 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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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우리는 스스로 그 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도덕적 자율로서 구성된 진짜 생활세계입니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세상이지요. 한데 "내가" 생활세계를 구성하는 일원이며 전적인 권리자라고 할 때 구성원(자율성) 간의ㅡ사회적ㅡ책임(=죄) 방기에 따른 문제는 필연적으로 수반됩니다. 칸트의 자율적 도덕법은 그래서 많은 오해를 낳습니다.
고독사(125.188)2023-05-04 00: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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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선택적 자유의지에 관한 문제도 충분히 숙고하지요. 이건 본디 흄의 문제라서, 흄을 의지한 칸트는 그 점을 소홀히 다룰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모호해요.(모호함 자체가 순수이성의 전부인 셈.) 다만 칸트는 그의 이론적 실천(세 번의 재출판 시도)으로서 모호함의 간극을 줄이려 노력했다는 겁니다. 이때의 간극의
고독사(125.188)2023-05-04 00: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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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의 간극"은" 외부세계(물자체)와 진짜세계(생활세계) 간의 차이이겠고, 이때의 틈은 그 둘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의 현존, 아니 실존이겠죠.
고독사(125.188)2023-05-04 0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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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험적 세계를 인정하는 칸트에게서 역설적으로, "나"는 항상 능동적입니다. 능동적어야만 주체는 탄생합니다. 사회원리상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회와의 불화를 맞닥뜨릴 때 주체는 움크리거나 아예 삶을 포기함으로써 주체적일 수도 있습니다.(너무 멀리 나갔다.) 도덕적 자율의지와 선택적 자유가 양립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칸트 전공자들의 숙제입니다
고독사(125.188)2023-05-04 0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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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또한 모든 게 시시해져 버린 신의 모습(이성)으로서 자신과 흔해빠진 경험주의자인 자신 사이에 수시로 갈등합니다. 그래서 칸트는 더 깊은 사유의 깊이(넓이)로 침잠해 갑니다. 즉 이 사유의 침잠, 나만의 틈이 유지되는 한 나는 끝끝내 이성을 향해 가고 종합에 도달하는 거라 믿는 것이죠. 결국 믿음의 문제인가? 아닙니다. 도리어 그 과정, 반성의 문제입니
고독사(125.188)2023-05-04 0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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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반성이 곧 종합이지요.(헤겔은 이걸 아리스토텔레스의 10범주를 적극 수용하여 도식화한 것 뿐입니다.) 결국 반성입니다. 이성은 반성이고, 인간은 반성의 시간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입니다.
고독사(125.188)2023-05-04 0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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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막연하게 말하는 생각함, 사유, 사변 등등의 이름은 본디 하나인데 그게 바로 "반성"입니다. 반성이 곧 비판이고, 순수이성비판은 이성적(의) 반성의 다름 아닙니다.
고독사(125.188)2023-05-04 0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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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반성 자체에는 선악, 미추, 귀천 따위의 서열이 존재하지 않아요. 그게 바로 인간의 타고난 선천적 위치란 것. 칸트를 이해할 때, 우선 중요한 지점입니다.
고독사(125.188)2023-05-04 0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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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ㅡ인류ㅡ보편(성: 경험론)이라는 화두로부터 출발했기에 의도적으로 교부철학(종교성: 신의 존재 증명) 잔재를 회피합니다. 반대로 헤겔은 인류의ㅡ이성적ㅡ특수성을 염두에 둠으로써 교부철학 따위, 신앙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착각하면 안 됩니다. 헤겔은 칸트보다 훨씬 더, 아예 처음부터 종교적인 사람입니다. 칸트에게서 인간보다 먼저 온 신의 원리
고독사(125.188)2023-05-04 0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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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따위는 없지만, 데카르트와 헤겔은 신의 원리로서 이성idea!이 먼저 주어집니다.
고독사(125.188)2023-05-04 0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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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체가 먼저 주어져 있다는 생각은 흔하고 또 쉽습니다. 하나든 둘이든 사칙연산이든 뭐든 전체로 수렴하면 그만입니다. 허나 자연의 원리로서 수학은 그런 식으로 전체에 도달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전체는 한없이 보류(집합론) 되지요. 전체는 이론이 아닙니다. 믿음의 영역이지요. 이론은 오직 개인이라는 주체의 몫이고 종합이라는 위대한 개념은 곧 주체의 과정
고독사(125.188)2023-05-04 0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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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자체를 말하는 겁니다. 세계정신이니 시대정신이니 하는 말은 결단코 실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독사(125.188)2023-05-04 01: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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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개념어는 기성 철학자들을 빌려 온 거고 칸트는 개념을 만들기 위해서 순수이성비판을 쓴 게 아닙니다.(철학은 개념 창출이란 말은 서울대 학부생이나 하는 한국식 서양철학의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도리어 그 반대입니다. 칸트에게는 세계정신 따위의 개념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목적론적 세계관이 아닙니다. 선험은 오늘날처럼 대단한 개념적 의미가 없었습니
고독사(125.188)2023-05-04 0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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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경험도 아니고 선천적인 것도 아닌, 아니 경험 속에 녹아든 선천, 선천적으로 주어진 경험칙 같은 것을 말하기 위해 '주어진a-priori' 화두일 뿐입니다.
고독사(125.188)2023-05-04 0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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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놈의 사회(국가)가 대학(원) 철학마저 전부 주입식이야!
고독사(125.188)2023-05-04 0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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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그렇다면 당신이 말하는 반성(칸트)은 무슨 뜻인가?
ㅡ그게 바로 순수이성비판이다. 그 과정이고 그 전체다. 제발 제대로 끝까지 읽고 생각 좀 하자!
고독사(125.188)2023-05-04 0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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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칸트를 공부한 사람이니까, 헤겔을 공부하여 박사학위까지 딴 나는 당근 칸트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새끼가 과연 생각하는 존재이기는 한가!
고독사(125.188)2023-05-04 0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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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도 나는 많이 읽지 못했다ᆢ라고 시작하는데, 조선노묵씨발련놈들은 기본이 수천 권을 읽고 출발하지. 하긴 구-서울시장 박원순 씨는 하버드대 도서관의 책을 전부 읽었대. 하, 서글프다 인문학이여!(당신들이 존경하는 조선조 인문학은 변변한 시소설 하나 내세울 게 없다. 천날만날 아흥다홍디리 다홍느흥디리라 외우며 홍길동전 바리때기 설화나 외우고 전승하며
고독사(125.188)2023-05-04 02: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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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고독사(125.188)2023-05-04 02: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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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전승된 콘텐츠(또 텍스트)가 무수한 것과 궁핍한 유산을 무궁무진하게 해석하는 건, 플라톤idea 사상에서 하늘과 땅 차이이다. 뭐, 플라톤을 극복하면 된다고? 하하하 영어나 제대로 배우세요 선생님.
매몰찬 스파르타 교수법을 추구하지요. 조국 씨 또한 딸내미 조민의 최근 행보를 아이의 성격과 역량의 발현이라며 추어올리죠. 그런 자가 타인의 불법과 부도덕을 지적하며 평생을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586씨발년놈들을 사람새끼라 여기지 않는 지점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죠.
제자님은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영화든 책이든 원본(또는 영역본)으로 보는 연습을 하세요. 제자님이 좋아하는 영화 1917을 자막없이 보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강유원 따위의 전라도 586 명망가가 남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나대는 까닭은 그가 철학공부를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미친듯이 영어(외국어)공부를 했기 때문입니다. 강유원의 철학강의는 학부, 교양철학 수준
입니다.
한국사회는 정직한 사람들이 피땀으로 구축한 사회가 아닙니다. 정직한 피땀을 내 이익과 권력의 도구삼은 폭력과 사기로 점철된 사회입니다. 한국의 명망가 누구도 이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 때에 전라도 새끼들 뿐만 아니라 전국의 깡패들을 씨말렸죠. 87체제(개헌) 이후, 김영삼 문민독재가 자신의 실정을 만회하려 호남을 힘껏 껴안죠.
518사태가 민주화운동으로 돌연변이하면서 586 깡패새끼들이 운동권과 결탁하여 한국ㅡ자본제ㅡ사회의 주류로 등장합니다. 이 새끼들의 민주화는 "나도 이제 돈 좀 벌어 보자; 돈이 장땡이여!"란 90년대의 캐치프레이즈와 딱 떨어집니다. 전두환 개쌍도 군부독재는 조단위로 해처먹었는데 이깟것은 장난이지. 민주화에 편승한 법조계는 민주화의 동참이라는 과거 참회성
(518때, 87년 6월 항쟁 때 나는 무얼 하였는가? 라는) 감상주의와 결합하여 법의 본디 정신(죄형법정주의)을 망각하고 요상한 판례 원칙을 세우기 시작하죠. "그러기에 판검사님이 좋았더라." 손해볼 게 없죠. 그러기는커녕ㅡ평생 먹물로 살아온 샌님 판검사님께ㅡ엄청난 경제적 이익이 주어졌죠. '깡패는(불법은) 돈이 되는구나.' 국졸의 깡패새끼도 억단위를
버는데 서울법대 출신의 나는 최소 조단위는 벌어야 해. 무식한 전두환도 고졸의 김대중, 노무현도 대통령이 되는데 서울대 법대, 의대 출신인 내가 고작 이것밖에 안 돼! 그게 586개새끼들의 심리 기저입니다.
회사원 강유원이=>회사원 철학자=>강단철학자=>희대의 철학자=>희대의 스승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이러합니다.
겉으로 헤겔 전공자이고 니체 전공자이지만, 속속들이 권력추구에 미쳐 버린 천박한 조선노묵씨발년놈들이 드디어 본성의 마키아벨리즘을 실천하는 시절이 도래한 거죠.
'아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인냐?' 내가 살기 위해서 그의 권위를 인정해야만 하는 이익(권위) 공동체가 사회 각분야, 곳곳에서 탄생합니다.
니체의 '권력의지'는 현실의 권력 추구를 우선 함의한다. 따라서 니체주의자의 현실 권력 추구는 자연스럽다. 그러니 니체(전공자)는 빼자.
***한동훈 씨가 읽고 있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는 영역본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반드시 읽어야 하는가? ㅡ역사학은 일종의 지적 허영이다. 삼국지를 열심히 읽는 자를 폄훼하는 자가 읽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아이러니이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인간 처세의 있어서 삼국지보다 별난 구석이 없다. 투키디데스까지 고대 그리스 원전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는 새끼는 정신빠진 새끼이거나 극소수의 전공자 뿐이다. 그 시간에
영어단어 한 자를 더 외우고 미적분을 복습하자.
*/1) 인간 처세"에" 있어서
강유원 씨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역사(학)는 오늘의 나를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다. 역사는 항상 타자의 시간이다. 나는 오직 나의 지금 여기를 살아갈 뿐이다. 부분들의 합은 전체가 아니며, 나 없는 전체는 존재할 수 없다. 계몽주의자 강유원은 근대적 사고를 다시 배워야 한다.
전라도식 전체주으, 아 똥구녘에 땀나는 짓이란께!
고씹/영어, 희랍어, 라틴어를 몰라도 얼마든지ㅡ강유원 씨보다ㅡ깊은 수준의 칸트를 공부할 수 있습니다. 강유원 씨를 따라 칸트 공부를 하면 평생 학부생 지식으로 그칩니다. 그럴듯한 말씀들에 휘둘리지 마세요.
나는 신이 어떻게 인간의 심미적 차원에 개입하(할 수 있)냐고 물었는 데, 칸트의 라틴어 원전(무슨 단어가 있는데 기억나지 않습니다. 죄송해요. 나는 아직 공부가 많이 부족합니다!)을 내세우며 신의 언어를 내세우면 곤란하죠. 철학자들이 말하는 요상하고 어려운 고대 희랍어나 라틴어는 전부 당대의 일상어입니다!
스스로 서양철학자라고 자랑하며 다니는 강유원 씨의 실체는 남보다 영어공부를 오래한 동국대 철학박사 학위 수여자입니다. 그의 독특한 점이라면 직장생활 와중에도 철학책 읽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것; 그건 그의 철학적 성과를 말하기 이전에 한없이 나약한 한국의 서양철학을 탓할 수밖에.
한국의 서양철학계는 평생 누가누가 고대 그리스말을 많이 아나, 누가 라틴어를 잘 하나 따위로 서열 싸움하는 유치원생들의 난장판입니다. 아 물론 말이 중요하죠. 언어는 존재의 집이니까. 하, 근데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집으로서 언어는 우리는 아는 느낌상의 느낌 그 정반대입니다. 하이데거의 말은 우선 언어를 배우고 철학을 하자는 말이 아녜요. 그 모든 어려운
말, 비밀과 수수께끼로 가득찬 세계-언어의 진실에 철학은 당연하게 복무할 수밖에 없더란 것.
철학의 본질은 언어의 본질을 밝히는 게 아닙니다. 차라리 권력의 서열(니체)을 밝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로 그게 전부입니까. 죽음을 앞둔 유한한 존재에게 과연 권력만이 전부일까요?
내 목숨 걸고 장담하겠습니다. 강유원 씨는 순수이성비판을 완독(본인은 삼독까지 했다던데!)한 일이 없습니다.
진짜 철학자는 머리카락을 기르고 꽁지머리로 멋낼 때, 철학책 한 번을 더 읽고 남보다 열 번은 더 생각합니다.
아, 내가 그렇게 살아 왔다는 말은 아니구요; 그런 말이라면 밤새도록 미갤이나 하는 나의 삶은 대번에 강유원 씨의 불굴의 정신 앞에서 희화화 되겠지요.
진짜 철학자는 v남들이 머리카락을 기르고 꽁지머리를 하며 멋낼 때v 남보다 철학책 한 권을 더 보고 열 번을 더 생각합니다.
백신때문임 ㅅㅂ
고씹, 김영은 나보다 반드시 오래 살거라. ♥+월량대표아적심, 등려군♥+
인간이 나약한 게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사회가 한없이 나약하고 느슨한 것이라서 개인의 의지는 숨쉴 기회조차 없네. 이러다 또 나는 잡혀가겠지? 정말로 나는 법원의 판관나리 앞에서 개새끼야 하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내 집도 아닌 셋방살이에서 도대체 어디서 분신자살을 해야 하지. 이 세상에 다시 오지 않으려면 타인에게 아무런 민폐를 끼치지 않고 죽어야 할
텐데. ♥+와우정사, 김동아♥+
내가 배타고 와서 다시 노가다일을 시작할 때, 팔공산은혜사 근처에서 작업을 했는데 점심먹으러 나간 식당에서 땡중 옷을 입은 한 사내가 노태우의 생가터 위치를 물어오더라. 위치를 알려 주었고 "머때문에 카는 데예?"하고 까닭을 물었더니,
나는 조계종인디 "노태우 생가으 기운이 너무 세야써알아보러 왔어요"라더라. 이 이야기에 자그마한 거짓이 있다면 나는 천벌을 받겠습니다.
내가 전라도 개새끼들에 대해서 참 할 말이 많다. 그러나 내 매제가 전라도 목포 사람이고 세상 착한 막내 이모부가 전라도 무주 사람이라서 내 못된 선입견을 억누르고 있다. 어쩌다가 대구사람이 전라도개새끼들보다 먼저 지역감정을 말하는 원흉이 되었는지 원.
그래 마음껏 지껄여라. 역사 또한 한없이 지껄이는 자의 몫이니까. 이윽고 니들만의 역사가 씌어지겠지. 그 후의 아름다운(?) 북조선전라인민공화국의 세상을 내
미리 축복하마.
"세상 모든 아름다운 말은 군주의 몫이고, 세상 모든 저주는 저 낮은 자들을 향하게 하라." ㅡ마키아벨리.
"왜 자꾸 저 무능력한 무직자를 위해서 복지행정을 펼칩니까! "이건 나의 무능 탓이 아니라, 국가행정 탓이고 나의 능력을 몰라 보는 사회 탓입니다!"
ㄴ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례다. 이 사회는 회생불가의 경우로 썩었다. 이 못난 세상을 물려 주고 가서 정말로, 정말로 죄송합니다!
마이 외롭네. 외로움이야말로 철학의 몫. 나는 어릴 때부터 외로운 사람. 어쩌면 외로우려고 태어난 사람. ♥+사랑한 후에, 들국화♥+ 고씹, 김영은 외롭지 않게 살다 가라.
고씹/ 마키아벨리가 왜 근대 민주제로 연결되냐 하면, 그게 프랑스 대혁명 때의 주동자들이 학습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마키아벨리: 주동자들은 항상 먹고 살 만한 새끼들이지요!) 당시 군중의 심리는 우선 "그 오랜 기간 동안 너는(너희 가문은) 왜 신뢰를 구축할 수 없었느냐, 너희가 신성 가문이라면 너같은 범인은 태어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신성부정의
종교적ㅡ타 제국(대영제국에 빗댄ㅡ상실감 때문입니다. 마키아벨리즘에 따르면 강자는 영원한 강자여야 하죠. 이게 바로 파르메니데스를 승계한 플라톤의 원본주의입니다. 경험 자체(=세계)가 오롯이 거세된 한 개인의 경험(=관념)적 세계이지요.
*대영제국에 빗댄v)덧괄호v; 상실감 때문입니다
**대영제국kingdom of eng는 그 후의 역사입니다. 아무튼!
마키아벨리는 제갈량이나 사마의에 견줄 만한 책사일 뿐인데, 너무 과대포장되어 현대의 책략가(사기꾼들)에게서 전범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일단 철학(칸트)적으로 마키아벨리 같은 병신은 조지고(죽이고) 시작합시다.
칸트(철학의 신 또는 철학하는 자)가ㅡ실패한ㅡ마키에벨리(ist)에게 하는 간단한 충고. *마키아벨리즘의 역설입니다!
1. 절대인 군주는 민중을 신경쓸 필요가 없다. 1.1. 절대란 것은 그 어떤 머뭇거림도 걸림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1.2. 거기서의 머뭇거림은ㅡ항상ㅡ절대가 될 수 없는 것들의 변명이다.
2. 연역적 사고(=보편적 생각이라는 것)는 항상 더 크고 더 깊은 어떤 특수성을 향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세계는 피렌체의 군주와 서남 유럽의 영토까지가 전부였다.
2.1. 칸트는 실제판단 위의 필연적 판단을 인정했다.
2.2. 머뭇거리고 반성하는 것은 필연의 몫이 아니다. 필연은ㅡ나도 모르게ㅡ태어나고 만들어"지는" 것의 총체다.
한 곡 들을까?
김영/너는 니가 키우는 천 송이 장미보다 아름답다. 시인이 반성할 줄도 아는구나. 어쩌면 진짜 시인이라는 직업도 있고, 시(말함으)로써 우화등선하는 길도 있겠구나. 제발 아프지 쫌 마라 착한 시인이여.♥+rose garden, lynn anderson♥+
고씹/ 무슨 말인 줄 모르겠냐? 아리스토텔레의 10 범주를 칸트가 열 두 가지 범주로 확장하듯 철학적 범주 또한 고정된 게 아니란 것. 개념(테두리: 더 갈 데 없는)적 사유도 이러할진대 인간 일상의 생각이란 것은 얼마나 더 개판일지를ㅡ실천(경험) 영역에서ㅡ제대로 고통받아 봐야 한다.
"고통이야말로 진짜 생각이다(싯달타; 칸트-쇼펜하우어-케에르케고르-니체-에밀 시오란)."
※상상할수록ㅡ생각이나마ㅡ자유로움은 확장되겠짐만, 그런 만큼 무질서는 따라서 온다. 이거 잘 계산 못하면(계산할 수 없는 영역이다) 큰일나는데, 사회(국가)는 항상 이 어긋남을 궁리함으로써 존/멸의 갈림길에 놓인다.
♥+분홍빛 립스틱, 김영♥+
나는 너를 좋아하니까. 내가 더 이상 댓글을 달지 않도록 너는 그만 아팠으면 좋겠어. 세상엔 시인이라는 직업이 있구나. 아프지 말고, 네게 주어진 것 다 누리고 가거라.
하지만, 나는 말장난하는 시인을 좋아하지 않아. 걔들은 가수보다 천박해.
김영/ 너는 시를 쓰지 않아도 본디 글을 잘 쓰는 사람이지 않느냐. 끝없이 말하되, 웬만하면ㅡ이것이ㅡ시라고 말하지 마라. 현대시는 대개 개인의 넋두림 영역이라서, 니 장미같은 문체로 일기(수필)나 쓰고 살아라. 언젠가 장미의 화원 같은 세상 빛나는 문장의 대관식이 펼쳐지리라. 그 때의 니 삶 모두, 니가 내뱉는 말 마디마디가 모두 시임을.
미련갖지 마라. 니 말씀하는 마디마디가 시다. 몸이나 챙겨라.
언어의 탄생 이래, 시는 본디 세상을 구제하는 목적의 쓰임새가 아니다. 시인은 예술가이고 연예인이다. 넝의 직업윤리를 망각하지 마라; 하지만 나는 찐자 시인(너)의 혁명도 믿는다. 그러니까 이젠 그만 입원해!
서울대 철학교수 따위 강단철학자만이 개념 중심주의를 말하지, 플라톤이나 싯달타는 그저 개념어라는 교부철학의 원리없이 그저 자기 당대의 말을 썼을 뿐입니다. 원본은 구태여 개념 따위를 만들지 않습니다. 개념은 항상 사본을 만들고 해석하는 자들의 몫입니다. 거기에 인생을 허비하면 고전문헌학자로서 이름을 떨칠지언정 자신의 철학(반성)은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American pie, Don mclean♥+
윤석열 대통령 씨,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서울대 출신 검사인 게 평생 자랑이면, 문재인 따위와 비교되는 게 안 쪽팔립니까! 돈 맥클린의 노래 가사처럼, 영웅의 삶이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윤 대통령님, 핵주권은 우리몫인 게 맞나요? 인간은 시작보다 끝이 중요한데, 그 끝 또한 대개는 show거짓이죠.
물론 당신 입장에서는ㅡ저 많은 군중의 환호를ㅡ쇼라고 믿을 수 없겠죠.♥+the load out stay, jackson browne♥+
그래요. 일단은 무대에 오르는 것이 중요하죠. 부디 무사히ㅡ당신의ㅡ막을 내림으로써 만인의 칭송을 받기를.
예. 나는 내가 뽑은 사람 가운데 유일한 대통령인 당신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말만 하지 말고 제발 쫌 실천해 보세요. 작금은 계엄령을 선포하여 비리 정치인, 판검사, 학계, 기업인(낱낱의 중소기업인까지) 정확한 죄형법정주의로서 다스릴 때입니다. 성문법 체제는 인간보다 법문자가 먼저 태어났습니다. 동일 범죄에 있어서 판사나 전과 18범의 깡패나 꼭같은ㅡ죄형법정주의에ㅡ
"법적" 처분을 받아야 합니다. 헌법개정 같은 개수작 말고, 이거, 이 불합리 못 고치면 현대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죄형법정주의에 v따라성v
김영/ 너는 인서울 안에서도 대여섯 손가락에 꼽는 대학을 나오고서 왜 기죽냐? 고씹/ 일상언어가 중요하다. 틈틈이 영어공부를 핼라. 니가 스승을 정말로 좋아한다면, 스승이 시키는 말도 제발 좀 실천하자!
영어공부를 아주 많이 했었습니다. 문제는 입시용(대응하는 한국어 번역)으로 단순히 외우는데 전념했었기때문에솔직히 "그것만이라도 아는게 어디냐"라는 마인드입니다.
"틈틈이"라는 말은 참 나에게는 너무나 가깝고 친숙한 시간의 개념인 반면 타인의 말씀일 때에는 공간적으로 느껴질 따름입니다. 일상의 틈을 매번 쪼개서 그곳에 의무적인행위를 끼워넣은 결과 그 무엇 하나도 제대로 진행되는 일이 없이 '그날의 고문관'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일상에서 본인만의 온전한 틈이란 없는것같습니다. 나만의 틈을 가지기 위해선 우선 타인의 수많은 체크리스트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내가 모두를 다 죽여버릴 정도의 힘을 가지거나, 혹은 모두를 경멸하는 사람이 되어야 비현실적인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체험할 듯 싶습니당
내 허영심은 이 세계를 창조한 신조차도 내려다보려하지만 나의 실천능력은 길거리 노숙자보다도 훨씬 못미칩니다. 항상 때를 기다려왔지만 그런 영화적이고 드라마틱한 순간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내가 태어난 사태 이후로 그것을 압도할만한 사태는 도래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도래하지 않을것만같다.
설사 언젠가 그럴만한 사태가 벌어진다 한들 나는 주인공일 수 없다. 아니, 주인공을 시켜준다고 해도 이미 폼이 안난다. 이미 나이가 들고 남성형 탈모가 시작되었으며 애초에 내가 꿈꿔온 나는 영화속, 소설속 타인이었으니까. 매일 아침 각종 팝송과 가요를 들으며 고양감을 만끽해온 나의 지난 15년이 사실은 이승도 저승도아닌 제 3의 시간이자 공간이었음을 나는
이제야 알았다. 나는 그 노랫말에 결코 닿을 수 없었다. 내자신이 결코 그 노랫말일 수 없는건 당연한 것인데도. (나의 치밀한 mp3 선곡에 당했던 학창시절 친구들아, 미안하다잉?)
고씹/ 예, 이 사회는 '틈'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나는 칸트의 모호함을 틈의 불허라 여깁니다. 오늘날로 치면 과거의 철학자들은 일종의 정신병자인데, 그 병증을 숨기고 병명을 포장하기 위해 심리주의 현상학, 심리철학 따위가 자꾸자꾸 만들어지죠.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고 근본을 바꾸어야 합니다. 물론 사회의 여타 제문제처럼 개인의 능력 밖 사태이지요.
허나 우리는 스스로 그 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도덕적 자율로서 구성된 진짜 생활세계입니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세상이지요. 한데 "내가" 생활세계를 구성하는 일원이며 전적인 권리자라고 할 때 구성원(자율성) 간의ㅡ사회적ㅡ책임(=죄) 방기에 따른 문제는 필연적으로 수반됩니다. 칸트의 자율적 도덕법은 그래서 많은 오해를 낳습니다.
그래서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선택적 자유의지에 관한 문제도 충분히 숙고하지요. 이건 본디 흄의 문제라서, 흄을 의지한 칸트는 그 점을 소홀히 다룰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모호해요.(모호함 자체가 순수이성의 전부인 셈.) 다만 칸트는 그의 이론적 실천(세 번의 재출판 시도)으로서 모호함의 간극을 줄이려 노력했다는 겁니다. 이때의 간극의
이때의 간극"은" 외부세계(물자체)와 진짜세계(생활세계) 간의 차이이겠고, 이때의 틈은 그 둘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의 현존, 아니 실존이겠죠.
선험적 세계를 인정하는 칸트에게서 역설적으로, "나"는 항상 능동적입니다. 능동적어야만 주체는 탄생합니다. 사회원리상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회와의 불화를 맞닥뜨릴 때 주체는 움크리거나 아예 삶을 포기함으로써 주체적일 수도 있습니다.(너무 멀리 나갔다.) 도덕적 자율의지와 선택적 자유가 양립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칸트 전공자들의 숙제입니다
칸트 또한 모든 게 시시해져 버린 신의 모습(이성)으로서 자신과 흔해빠진 경험주의자인 자신 사이에 수시로 갈등합니다. 그래서 칸트는 더 깊은 사유의 깊이(넓이)로 침잠해 갑니다. 즉 이 사유의 침잠, 나만의 틈이 유지되는 한 나는 끝끝내 이성을 향해 가고 종합에 도달하는 거라 믿는 것이죠. 결국 믿음의 문제인가? 아닙니다. 도리어 그 과정, 반성의 문제입니
다. 반성이 곧 종합이지요.(헤겔은 이걸 아리스토텔레스의 10범주를 적극 수용하여 도식화한 것 뿐입니다.) 결국 반성입니다. 이성은 반성이고, 인간은 반성의 시간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가 막연하게 말하는 생각함, 사유, 사변 등등의 이름은 본디 하나인데 그게 바로 "반성"입니다. 반성이 곧 비판이고, 순수이성비판은 이성적(의) 반성의 다름 아닙니다.
이 반성 자체에는 선악, 미추, 귀천 따위의 서열이 존재하지 않아요. 그게 바로 인간의 타고난 선천적 위치란 것. 칸트를 이해할 때, 우선 중요한 지점입니다.
칸트는ㅡ인류ㅡ보편(성: 경험론)이라는 화두로부터 출발했기에 의도적으로 교부철학(종교성: 신의 존재 증명) 잔재를 회피합니다. 반대로 헤겔은 인류의ㅡ이성적ㅡ특수성을 염두에 둠으로써 교부철학 따위, 신앙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착각하면 안 됩니다. 헤겔은 칸트보다 훨씬 더, 아예 처음부터 종교적인 사람입니다. 칸트에게서 인간보다 먼저 온 신의 원리
(이성) 따위는 없지만, 데카르트와 헤겔은 신의 원리로서 이성idea!이 먼저 주어집니다.
그런데 전체가 먼저 주어져 있다는 생각은 흔하고 또 쉽습니다. 하나든 둘이든 사칙연산이든 뭐든 전체로 수렴하면 그만입니다. 허나 자연의 원리로서 수학은 그런 식으로 전체에 도달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전체는 한없이 보류(집합론) 되지요. 전체는 이론이 아닙니다. 믿음의 영역이지요. 이론은 오직 개인이라는 주체의 몫이고 종합이라는 위대한 개념은 곧 주체의 과정
삶 자체를 말하는 겁니다. 세계정신이니 시대정신이니 하는 말은 결단코 실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칸트는 개념어는 기성 철학자들을 빌려 온 거고 칸트는 개념을 만들기 위해서 순수이성비판을 쓴 게 아닙니다.(철학은 개념 창출이란 말은 서울대 학부생이나 하는 한국식 서양철학의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도리어 그 반대입니다. 칸트에게는 세계정신 따위의 개념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목적론적 세계관이 아닙니다. 선험은 오늘날처럼 대단한 개념적 의미가 없었습니
다. 경험도 아니고 선천적인 것도 아닌, 아니 경험 속에 녹아든 선천, 선천적으로 주어진 경험칙 같은 것을 말하기 위해 '주어진a-priori' 화두일 뿐입니다.
먼놈의 사회(국가)가 대학(원) 철학마저 전부 주입식이야!
※주) 그렇다면 당신이 말하는 반성(칸트)은 무슨 뜻인가? ㅡ그게 바로 순수이성비판이다. 그 과정이고 그 전체다. 제발 제대로 끝까지 읽고 생각 좀 하자!
**헤겔은 칸트를 공부한 사람이니까, 헤겔을 공부하여 박사학위까지 딴 나는 당근 칸트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새끼가 과연 생각하는 존재이기는 한가!
***칸트도 나는 많이 읽지 못했다ᆢ라고 시작하는데, 조선노묵씨발련놈들은 기본이 수천 권을 읽고 출발하지. 하긴 구-서울시장 박원순 씨는 하버드대 도서관의 책을 전부 읽었대. 하, 서글프다 인문학이여!(당신들이 존경하는 조선조 인문학은 변변한 시소설 하나 내세울 게 없다. 천날만날 아흥다홍디리 다홍느흥디리라 외우며 홍길동전 바리때기 설화나 외우고 전승하며
살아!
본디 전승된 콘텐츠(또 텍스트)가 무수한 것과 궁핍한 유산을 무궁무진하게 해석하는 건, 플라톤idea 사상에서 하늘과 땅 차이이다. 뭐, 플라톤을 극복하면 된다고? 하하하 영어나 제대로 배우세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