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건강만큼 중요한게 없고 쇼펜하우어도 인생의 행복은 건강에 있다라고 했을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몇년전부터 느끼는거지만 유튜브댓글들과 커뮤니티만 보아하더라도 자기랑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무조건 배척하고 비꼬고 욕하기 바쁜데 한국인들이 어떤 부분으로 기인해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만 굉장히 사납고 예민하다.
특정 좌/우 정치 관련 뉴스에서도 누구하나가 실언을 하거나 도덕적으로 우를 범하고 유튜버가 인성에 문제가 있으면 죽일듯이 쫓아가 댓글들을 달면서 사회적인 죽음으로 이끌어가는데 정작 자기 목숨과 직결되어 있고 한번 혈관에 꽂으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이러한 전세계적인 악한 행태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고 조용한게 굉장히 미스터리한거 같음
이러한 행태를 분석해보자면 한국인은 본능적으로 익명성이라는 가면에 숨어서 머리 수가 많아지면 그 자체가 본인의 힘이라고 착각하고 밀고 들어가는거 같고 자기가 상대할 수 있는 자와 상대할 수 없는 자를 본능적으로 자각하고 있는거 아닐까 싶음 본인 스스로 의식적으로 자각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ㅇㅇ
근데 또 특정 주제로 불같이 뭉쳐도 그 불이 곧이어 꺼지고 그 뭉치는 힘은 쉽게죽는거 같음
그냥 문득 든 내 생각이고 주저리주저리 써봄
- dc official App
간단하게 정의해서 그걸 군중심리라고 하면 될 듯합니다. 종교사회의 특징이지요. 안 보이는 사이에 생각의 결이 다채로와지고 서서히 체계를 갖추어 가는 듯합니다. 머잖아 쇼펜하우어의 이름을 맨먼저 가져와 이름에 호소하는 식의 문장을 극복할 수 있겠습니다.
종교사회, 익명적 세계의 특징은 무엇보다 상호 간의 불신사회입니다. 니가 아무리 사리분별있게 말하고 행동해도 너는 나와 같은 인간(조선놈)이기에 끝끝내 믿을 수 없다는 거죠. 반면 수시로 사기치고 말장난 하는 자가 급변사태에서 체념의 음성으로 하나님(절대자)의 나라 어떻고를 읊조리면, 알아들을 수 없는 그 횡설수설 가운데서 신의 음성("하나남의 나라")은
정확하게 캐치해 내죠. 종교사회에서 필요한 신은 나의 성찰과 공부로서 마주할 신이 아니라, 오직 나의 영생을 담보하는 세계의 지속으로서 절대자일 뿐이죠. 그런 종교사회는 역사적으로 주체성이 거세된 사회입니다.
그런 종교사회는 개인의 죽음을 아주 가볍게 여깁니다. 착한 옆집 개똥이 아버지도 죽었는데 못된 나의 죽음 쯤이야. 개똥이 아버지도 나도 죽는 건 마찬가지야. 다음 번엔 나도 착하게 살아야지. 다음 번엔 나도 착하게 살아서 이씨 조선 정조대왕으로 태어나야지.
신화의 세계입니다. 철학이 가장 경멸하는 세상이지요. 플라톤으로부터 철학은 신을 말하지 않습니다. 신이 구현(mimesis재현)된 "나"에 관해서만 말합니다. 그 '나'를 세계(신)와 동급으로 끌어올린 게 바로 칸트(철학)이구요.
거기엔 어떤 신화의 영역도 개입할 수 없어요. 죽은 박홍규 교수 말씀처럼 철학은 오직 데이타(자료; 원인)의 영역이에요. 거기다 덧붙이면 프린서플(작동; 원리)의 영역이지요. 칸트에게서 인식은 '현상(지금 여기=시+공간)'에 제한됩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시간과 공간을 벗어난 앎을 이해할 수 없어요.
내가 갓 제대를 하고 행사기획사를 차렸어요. 말이 기획이지 행사도우미 대행업체였죠. 아마 대구바닥 원조였을 겁니다.(장담할 수 있습니다!) Imf가 터지기 전이라서 나름 잘나갔어요. 동성로 개업집은 내 사무실 도우미가 전담했으니까요. 그때 전라도에서 온 건지 서울에서 온 건지 모를 도우미 하나가 말썽을 일으켰는데 걔 애인이 작정하고 왔는지 행사장을 개판내고
내게 칙짜붙더군요. 걔 애인은 나이도 나보다 열 살이나 많았어요.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애인이란 사람이 내게 말했지요. "아따 전두환 앞잡이 대구새끼들 아니랄까봐 남의 집 아녀자를 이렇코롬 빼돌려. 대구새끼들은 씨를 말려야제!" 도우미년은 스스로 행사에 참여한 거고 나는 "돈을 벌고 싶다!"며 악다구니를 썼죠. 나는 나보다 열 살이나 많고 살벌한 기운을
풍기는 그를 이길 수 없어서 선배들을 불렀지요. 결국 파출소에 갔는데, 도우미년은 나이가 벌써 스물 일곱 살이었고(나이를 다섯 살이나 내려뭉겜), 그녀의 애인새끼는 무졸무학의 전과자이더군요. 나는 그년과 그녀의 전과자 남친에게 일당을 지불했으며, 내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한 채 없던 일로 넘겼습니다. 내가 힘이 없어서 불렀던 동성로파 깡패 선배들에게 엄청난
술값도 지불했구요. 다 내가 어려서(세상 경험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지만, 나이 오십먹은 지금에 와서도 자주 후회스러운 지점이지요. 그런데 여전히 저런 일이 삼십 년 후의 오늘에서도 반복되더란 말입니다. 대구사람은 깡패(징역 족보 있는 동성로애들 따위)나 믽노총, 전교조 애들 말고는 광주라는 도시에 갈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대구는 내가 어릴 적부터 전라도
사람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지요. 그들은 대구에서 돈을 벌고 먹고 마시면서도 항상 대구라는 도시를 원망했어요. 하지만 대구사람 누구도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Imf를 겪고 대구사람들 다수가 김대중에게 투표하여 김대중이 당선되었는 데도 그들의 패악질은 더해만 갑니다. 숫제 기고만장이 되어 대구를 아예 병신들의 도시로 이해하더군요. 옛날엔 "아따 대구가
잘 사는 것은 박정희, 전두환이가 대구를 집중적으로다가 밀어 주고 전라도를 하대해서 아니당가!"하던 새끼들이 이제는 대구가 광주보다 못 산다고 비아냥대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김대중 씨때 청구, 우방 따위의 건설업체를 주공에 강제편입하다시피 하여 결국 전라도 건설업체에 넘긴 과정을 모르는 건설업자는 없을 것이며, 노무현 때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삼성
전자 및 자동차의 대구공장 건설을 가로막았습니다. 결국 어디든 짓긴 지어야 하는데 전부 구미로 갔죠. 이게 결국은 평택으로 광주로 간 겁니다.(이 결정에 정치적 결단이 없었다구요?) 대구는 줄어서 인구 230만 명이지만, 광주는 늘어서 140만 명의 도시입니다. 대구는 이씨 조선조부터 영남제일관문이 있는 경상감영의 중심지였으며, 그때는 달성군 뿐만 아니라
칠곡 일부까지 대구관할이었습니다. 일제시대엔 왜관까지 대구부였죠. 그런 대구를 광주와 동급으로 취급하려는 역사날조를 넘어서 이젠 광주보다 못한 도시로 까낮추려는 일련의 시도가 jtbc, kbs, mbc, man 따위 자칭 공영 언로에서 수시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일기예보만 봐도 기상관측소의 의미로서 아무 의미없는 광주 날씨를 맨앞에 설명하지요. 거기에
대구를 꼭 끼워넣습니다. 나는 지역감정을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이처럼 두 개의 정당만이 살아남아서 승자독식하는 사회에서 지역감정을 입에 담지 말라니요. 앞서 말했지만 대구 동성로 깡패는 광주 충장로를 수시로 들락거립니다. 깡패와 민노총, 전교조, 정치인들끼리는 수시로 왕래하는 충장로와 동성로입니다. 나머지 다수는 그들의 술수와 말장난에 의해서 영원한 적개심
을 공고히 할 수밖에 없죠.
대구가 그 어떤 정치인(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의 도움 없이도 광주급으로 살아남은 건 역사적 정통성 때문입니다. 곧 인프라 때문이지요. 거듭 말하지만 대구는 박정희가 키운 도시가 아닙니다. 일제 때부터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강경 젓갈시장, 목포 어전판도 큰시장이었지만, 대구 서문시장은 조선조 때부터 서울 남대문, 개성, 평양 다음으로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습니다. 본디 돈이 도는 고장이었습니다. 그랬으니 일제 때 국채보상운동이 촉발될 수 있었지요. 이런 진짜 역사가 이념의 추종자들에 의해 날조되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지난 코로나 사태 때처럼, 문재인ㆍ김어준 개새끼들에 의해서 중국 무한발 covid-19가 대구발 코로나 폐렴으로 변질되는 건 흔해빠진
일상이 될 겁니다. 대구사람의 구할은 좋은 사람이 아니며 똑같은 인간임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압니다. 역사는 그런 개인의 감정을 기술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예쁘장한 안나경의 입술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대구사람의 나쁜 기질은 기질대로 가슴에 새기십시오. 그러나 대구사람이 이루어 놓은 현실마저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역사는 데이타의 총체입니다.
철학은 이런 무조건적(우발적) 시간과 공간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노력하는 모습은 보여야 합니다. 역사적 정의가 먼저 있고(518사태가 518민주화운동으로서 먼저 있고), 그 의의를 설명하는 것은 철학이 아닙니다. 만인이 걸어갔던 길을 따라가는 건 철학의 수치입니다.
;이건 단순히 철학(적 치욕)의 문제가 아닙니다. 역사란 항상 철학적 사고로부터 갱신되고 그 뿌리마저 전복됩니다. 자칭 철학자 강유원 씨가 어떤 개인의 518 경험(미시사)과 강준만 식의 사건 스크랩(짜깁기)에 의지하여 "518의 역사적 의의는 이쯤으로 완성된 것 같다"라고 한 순간, 그는 스스로 철학자(생각하는 사람)의 지위를 박탈한 겁니다. 이 세상은
조국과 김남국들이 망치는 게 아닙니다. 숨어서 현자노릇을 하는 강유원과 김동렬(=김재인) 따위가 더 망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철학자도 아니며 서양철학과 아무 상관없는 자들입니다. 나는 그걸 증명하는 것으로 내 임무를 마치겠습니다.
※초월론자 칸트는 초월론적 지위를 스스로 박탈함으로써 완성됩니다. 이 역설에 철학의 역사는 함의돼 있습니다. 철학자는 죽을 때까지 구도자, 수행자가 돼야 합니다. 선언하는 자는 종교인이거나 사상가이지 철학자가 아닙니다!
※*함의=> "함축"
♥+와우정사, 김동아♡
♥+갓바위, 김동아♡
하 시발 나는 정말로 할 말이 많은데ᆢ 후!♥+편지할게요, 박정현♡
이건 다 꿈이지, 꿈일 거야¡ ♥+꿈에, 박정현♡
나르시시스트들의 전형적인 반응이며 나르시시스트들이 체감상 인구의 90%정도를 차지합니다
인간이 이성을 추구하는 운명인 이상 자기애는 숙명이겠지요. 그 이성의 무한 폭주를 막는 이론이 바로 칸트철학입니다. 니체는 나르시시즘을 긍정하였지만, 칸트는 그걸 사유의 문제 바깥으로 내버려 둡니다.
고대로부터 있어 온 나르시시스트의 병폐를 칸트가 몰랐을 리 없죠. 칸트의 박사학위는 뉴턴에 관한 것이고, 그 이전 칸트 석사 학위는 고대 그리스의 미학 이론에 관한 겁니다.
♥+구인사의 밤, 김동아♡
우리는 저마다의 자기애를 극복할 수 없어요. 수년 간의 하안거, 동안거 면벽수양을 거쳐 나온 선승께서도 "결국 나를 버리지는 못했다"고 말씀하거든요. 탈아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서양철학은 탈아가 아닙니다. 자아의 적극적 수용입니다.
하 방법은 간단하지만, 방법이 없는 게 전체로서의 자아(자유)의 문제입니다. 이게 본격 철학의 문제인데, 답도 없고 평생 골치아픈 게, 비로소 진짜 철학의 시작이지요. 후. 나는 그 길잡이로서 칸트를 선택했습니다.
*주) 내가 저번에 한국사회는 군사독재에서 사법독재로 바꼈을 뿐이라고 말했지? 도저히 능력이 안 되는 대통령 김영삼 개호로새끼가 자신의 실정을 덮으려 문민독재 때에 만든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는 세계 어디서도 없는 국가기관이다. 이미 만들어진 이름은 그걸 보우하기 위한 수만 가지 이론이 동원된다. 그 수만 가지를 일컫는 하나의 이름 이 곧 법이다.
※바룹니다. 헌법재판소는 1987년 개헌(소위 87체제)으로 생겨난 사법기관(1988년 설립)이며, 김영삼 문민독재정권과는 직접적 인과성이 없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1948년 건국과 동시에 설립된 국회기관이며 역시나 87년 개헌 이후 직선제 도입을 통해서 국가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로 거듭납니다. 다만 이들 기관의 탄생과 정치인 김영삼ㆍ김대중의 정치행로는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며, 김영삼 문민독재정권이 이들 기관을 자신의 정치적 야심과 실정(노태우 정권으로부터 정치적 비자금 수수 또는 승계)을 덮는 수단으로서 적극 활용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518 또한 그런 용도로서 악용되었음은 가능한 역사적 추론입니다. 사법독재의 다른 말은 김영삼 이후의 문민(민주화세력의)독재를 일컫는 말입니다.
518이 가지는 민중항쟁(사건 당사자의 물리적 심리적 증거 능력과 그에 따른 정통 사학계의 객관적 추론)적 성격을 몰라서 내가 괜시리 '518사태'라고 판단중지를 선언한 게 아닙니다. 민중항쟁이란 개념 규정에 너무나 많은 불순물이 껴 있다는 겁니다. 민주화운동이란 낱말부터 잘못 되었습니다. 민주화라는 낱말의 의미는 우리사회가 이미 민주주의를 획득했다는 전체
전제 하에서나 가능한 것이며, 그때의 민주는 5천만 인민의 동등한 자주, 인권, 공정 아래서만 소용되는 보편 개념입니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여전히 계급사회이며 특권층의 부조리는 더욱 더 교묘한 방법으로 반민주, 비민주를 실현하고 있죠. 그 주축이 바로 자칭 586 '민주화 세력'입니다.
자칭 철학자 김 모씨와 강모 씨 등은 한국사에서 518이 차지하는 역사적 의의는 그 모든 불만들을 잠식시키고도 남는다는 주장을 펼치는데(저도 한때 그런 노선이었습니다만), 그렇게 따지면 대구 2.28, 마산 3.15 또한 광주 518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가집니다. 어떤 대상을 권위화(권력화)하려 할 때 우리는 그 대상을 이용하는 자(들)의
면면부터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민주화의 첫걸음이고 민주시민의 의무입니다. 그걸 가로막는 어떤 이념도 순수하지 못합니다. 바로 518과 전라도 광주라는 특정 도시의 성역화를 지적하는 말입니다. 이 성역화에 편승하는 세력은 비단 광주 출신의 정치인과 586 운동권 세력 뿐이 아니지요. 박근혜를 탄핵시킨 데에 큰 역할을 한 jtbc 및 공영 민영언론의
역사 왜곡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언론은 역사적 사건을 의미화(특정화) 하고 이념화하는 자격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시민들 각자의 몫이지요. 언론은 육하원칙에 따른 사실관계만을 정확하게 밝혀 주면 됩니다. jtbc 사주 홍석현 씨는 세상을 공짜로 살다시피한 기득권 세력의 자식이며, 그의 부모는 나라와 사회의 혼돈 상황에서
부와 권력을 쟁취한 기회주의자였습니다. 그런 자가 민주화를 입에 담다니요. 인류사 초유의 저출산 고령화 한국 사회가 대체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국민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운 이 때에도 홍석현과 김무성 따위의 무리들은 사실 눈 한번 깜짝 않고 부의 대물림과 영생의 문제를 기획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국가사회(관료)와 기득권에 대한 반항으로서 출산 포기,
결혼 포기, 취업 포기를 선언하지만, 그들은 사실 아무 관심도 없어요. 나라의 이름이 바뀌고 한민족이 중화민족, 말레이족으로 대체되든 말든, 나의 부와 권력만 유지되면 그만이지요. 그런 점까지도 염두에 두고 518의 헌법전문 수록을 다시금 고민해 봐야 합니다. 옛날엔 정부가 안 도와줘서 못 살았다는 광주가 지금에 와서 대구보다 더 잘 사는 건 그들의 근면
성실함 때문만은 아니지요. 인간은 마치맞는 일자리가 있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을 합니다. 먼저 돈이 있어야 사람답게 사니까요. 자본제의 기본 원리이자 정신입니다. 다 알지 않습니까. 특정 세대, 특정 지역을 성역화하여 나의 일할 권리, 사랍답게 살 권리마저 양도하라고 하면 이미 그 사회는 자본제로서의 가치를 잃은 곳입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우리의 적은 보이지 않는 손(딥스: 일루미나티)이 아닙니다. 우리의 적은 바로 눈 앞에 있으며, 언론을 통하여 매일 마주하는 그들입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잘 포착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는 세상 아름다운 말은 대개 음모를 담지하고 있습니다.
*담지하다=> "함의하다": 그들이 말하는 세상 모든 아름다운 말은 숱한 음모를 함의하고 있습니다.
종교사회는 또, 한 번 신은 영원한 신이에요. 가치론의 문제가 아니지요. 도리어 나의 가치를 신에게 전적으로 투사하죠. 내가 정한 신만이 유일한 가치이며, 세상 모든 이론은 그 기준에 따라 쓸모 있음/없음으로 서열화 되죠.
우리가 당연하게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법치주의 또한ㅡ세속화한ㅡ그 연장선입니다.
고씹/보는 즉시 위의 댓글들을 캡처해 두셔야 합니다.
현실 종교의 문제를 빗대 보니 칸트의 나와 대상의 문제, 대상자체와 내 감각의 문제, 나아가 인식으로서 이성에 대한 이해가 조금 감이 잡히지요? 우리는 아직 칸트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인식의 한계 차원에서는 아예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예요.
*복습) 내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철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또는 내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존재론(철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인식은 단순한 앎이 아니라, 경험+지식이란 것. 하여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항상 설명(함)의 문제인 것.
야ㅎ 방장님, 한 곡 듣겠습니다. ♥+편지할게요, 박정현♡
우리가 생각하는 존재인 한에서 삶은 항상 고통입니다;(따라서) 항상 즐거운 사람은 덜 생각하는 존재인 거죠. 생각이 많아서 외롭게 살 것인가, 생각을 포기한 채 즐겁게 살 것인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그 자신의 몫입니다. ♥+the loner, gary moore♡
위의 문제에서ㅡ심리적 문제로ㅡ내재성의 깊이와 외재성의 확장이 발생합니다=>시간성: 근데 칸트 입장에선 결국 다 내재적인 활동의 다름 아니지요. 저도 칸트의 입장에 동의합니다.
*내재/외재가 똑같다거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 반대입니다. 내재성은 반드시 내재적 요소들로 해소됩니다. 외재, 또 외부는 내 삶과 별 상관이 없어요. 잘 생각해야 합니다. 철학은 항상 남들보다 열 번을 더 생각해야 생각공부입니다. 철학의 편은 오직 진리와 시간밖에 없어요.
영원히 잠들지 않는(24시간 깨어 있는), 진짜 깨시민♥+222.236님 과 함께 듣겠습니다: 꿈에, 박정현♡
♥+222님과 꿈의 대화, 장혜진♡
♥+222 꿈에, 조덕배♡
♥+222 나에게로 초대, 정경화♡
♥+222 꿈 속의 사랑, 심수봉♡
철학은 항상 이별하는 공부, 연습입니다. ♥+222.2잘가요,정재욱♡
*철학은 항상 v세상과v 이별하려는 공부, 또 그런 연습입니다.
♥+222 와우정사, 김동아♡
♥+222 구인사의 밤, 김동아♡
♥+222내가, 김학래, 임철우♡
내가 옛날 이 시간에는 차를 산 아래 두고서 걸어 갓바위까지 오르고 있었지. 말이 야간산행이었지 오솔길 가로는 무당 아줌마들, 길 앞에는 자식의 서울대 합격을 바라는 아줌마들이 있어서 새벽이 대낮처럼 뜨거웠네♥+222
갓바위, 김동아♡
♥+222.2님 산은 산 물은 물, 김동아♡
♥+222그댄 행복에 살 텐데, 리즈♡
ㄴ내가 얘(리즈1977년생)보다 나이가 많다는 게 신기하지 않냐?
시발 아무것도 한 거 없이 갑자기 나이만 처먹다니. ㅠ
♥+222 그녀에게, 3호선 버터플라이♡
♥+222 꿈 속의 사랑, 심수봉♡
술 좀 사올게.
다녀왔어♥+222 산행, 김영동♡
*가야금: feat. 정미화
♥+222님 와우정사를 함만 더 듣자! 와우정사에 와우정사에 속죄하려 문을 여는가ㅠㅜ
홍석현, 김무성 천하의 개새끼야! 느그한테 구걸하고 산 적 없다. 사람을 개씹으로 보지 마라. 내가 인류의 기원으로부터 있어 온 온갖 경전과 주술로서 너희에게 만겁의 저주를 내리리라!
토달지 마라 조선노묵씨발년노므개새끼들아. 진짜로 살 날린다!♠+상여, 김영동♤
하 씨발껏들 한주먹꺼리도 안 되는기 대가빠리 똥만 찬 병신새끼들이 이미애비 잘 만나서 세상 무서운 것 없는 어른노릇하고 자빠졌네. 대노인님, 내가 점마들에게 살날릴 때 조금만 도와줘. 착한 니는 다 용서하자 하지만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용서가 안 되겠다!
끝까지 가는 거야. 내가 앞으로 살아 봐야 십 년 더 살겠나. 울엄마아부지보단 조금 더 살아야지.(그게 내 유일한 효도입니더!) 십 년 내로 고씹을 위한 순수이성비판 해설 노트와 '아예 없음'의 철학적 가능성에 대한 노트를 써야 하는데 클났네.
♥+다 뒈져버려 천하의 인간쓰레기 이씨-조선노묵 기득권개씨발년놈들아! ♥+korean girl, joy♡
스스로 바퀴의 원리도 생각할 수 없었고 좌변기도 상상할 수 없어서 산이고 들이고 길거리 아무 데서나 가랑이 까고 똥오줌 뱉어내던 조선노묵 새끼들이 언제 문 씨 왕족, 홍 씨 귀족, 조 씨 기득권이 공고화하였는지. 하 씨발.
홍석현-왈. "너, 나 감당할 수 있겠냐?"
나. 감당할 수 있어, 이개새끼야! 죽으면 그만이야 씨바로마.
*씨바로마=> "씨발노무홍씨개호로새끼들아!"
♥+222.2내가! 김학래와 임철우♡
222. "이미 망했는데 무얼 바래."
병신!
내 사랑은 끝없이 허무를 갱신하고 있으며 나는 아직 죽음의 결단을 정의하지 못하고 있구나.
*주) 나의 독특한 어휘와 문장은 오직 미갤럼 몫입니다.
♥+222님 과 함께 한 이 시간이 내겐 더 없는 영광의 시간이었습니다
ONE MOMENT IN TIME Whitney houston♥+
**나는 아직 죽음을 결단(실천)하지 못했구나!
시바 칸트철학을 개씹으로 아네.
♥+222 Touch by touch, joy_extended maxi version♡
고독사 이사람은 진짜 천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