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이 최승우,견훤에게 보낸 답장
"저는 위로는 천명[天假]註 001을 받들고, 아래로는 사람들의 추대에 못 이겨 과분하고도 외람되게 장수의 권한을 맡고, 천하를 다스릴 기회를 얻었소.
지난번에 삼한(三韓)註 002이 재앙을 당하고, 구주[九土]註 003에 흉년이 들어 백성[黔黎]들은 많이 도적[黃巾]註 004에 속하였고, 농토는 적지[赤土]註 005가 되지 않음이 없었소. 전쟁의 변고를 그치게 하기를 바라고 나라의 재난을 구제할 수 있을까 하여 이에 스스로 이웃 나라와 친하게 지내고, 어느덧 우호 관계를 맺으니 과연 수천 리에 걸쳐 농상(農桑)의 생업을 즐겨하고, 7~8년간 사졸들이 쉬는 것을 보았소.註 006 을유년(925)에 이르러 때는 10월[陽月]에〔그대가〕갑자기 일을 일으켜 교전하기에 이르렀소.註 007 그대는 처음 적을 가볍게 보고 곧바로 전진하였으니 마치 사마귀가 수레를 막아서는 것[螳蜋之拒轍]註 008과 같았고, 마침내는 어려움을 알고 용감히 퇴각하였으니 마치 모기가 산을 등에 짊어진 것[蚊子之負山]註 009과 같았소. 공손히 손을 맞잡고 말하기를 ‘하늘을 두고 맹서하건대 오늘 후에는 영원토록 화목할 것이며 만약 혹 맹서를 깨뜨린다면 신(神)이 죽일 것이다.’라고 하였소. 저 또한 창을 멈추게 하는 무(武)를 숭상하고, 사람을 죽이지 않는 인(仁)을 바라서〔그리하여〕 드디어 겹겹으로 포위한 것을 풀어 지친 군사를 쉬게 하고, 인질을 사양하지 않고 오직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고 하였으니, 이는 제가 남쪽 사람들[南人]註 010에게 큰 덕을 베푼 것이오.註 011
僕仰承天假, 俯廹人推, 過叨將帥之權, 獲赴經綸之㑹. 頃以三韓厄㑹, 九土凶荒, 黔黎多屬於黄巾, 田野無非於赤土. 庶㡬弭風塵之警, 有以救邦囯之災, 爰自善鄰, 於焉結好, 果見數千里農桑樂業, 七八年士卒閑眠. 及至酉年, 維時陽月, 忽焉生事, 至於交兵. 足下始輕敵, 以直前, 若螳蜋之拒轍, 終知難而勇退, 如蚊子之負山. 拱手陳辝, 指天作誓, ‘今日之後, 永世歡和, 苟或渝盟, 神其殛矣.’僕亦尚止戈之武, 期不殺之仁. 遂解重圍, 以休疲卒, 不辝質子, 伹欲安民, 此則我有大德於南人也.
〔그런데〕 어찌 맹서하면서 바른 피가 아직 마르기도 전에 흉악한 위세를 다시 부려 벌과 전갈과 같은 독으로 백성들에게 해를 입히며, 이리와 호랑이와 같은 사나움으로 왕경 부근을 막아 금성(金城)註 001이 군색하게 되어 망할 지경에 이르고, 임금[黃屋]註 002이 놀라게 될 줄 생각하였겠소? 의리를 지켜 주(周)를 높임에 있어 누가 환공(桓公)과 문공(文公)의 패업註 003과 비슷하겠소? 틈을 타서 한(漢)을 도모함에 있어 오직 왕망(王莽)과 동탁(董卓)의 간사함註 004을 볼 뿐이오. 지존한 왕으로 하여금 굽혀서 그대에게 자식이라 칭하게 하여〔임금과 신하의〕귀천[尊卑]의 질서를 잃어버리게 되었으니, 위아래가 함께 걱정하여 재상[元輔]의 충직하고 참됨이 아니라면 어찌 사직을 다시 안정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소. 저는 마음에 악함을 숨기지 않았고, 뜻이 왕을 높임에 간절하므로註 005 장차〔저를〕조정에 두어〔저로〕하여금 나라의 위태로움을 붙들게 하려고 한 것이오. 그대는 적고 적은 이익을 보고서는 천지의 두터운 은혜를 잊고, 임금을 베어 죽이고, 궁궐을 불 질렀으며, 대신[卿士]註 006들을 살육하였고[葅醢],註 007 선비와 백성을 죽였소. 귀부인[姬姜]註 008은 곧 붙잡아 수레에 같이 태우고, 진귀한 보물은 곧 빼앗아 가득 실어 갔소. 큰 죄악은 걸주(桀紂)註 009보다 더하고, 불인함은 제 부모를 잡아먹는 사나운 짐승[獍䲷]註 010보다 심하였소.
豈謂歃血未乾, 兇威復作, 蜂蠆之毒, 侵害於生民, 狼虎之狂, 爲梗於畿甸, 金城窘忽, 黄屋震驚. 仗義尊周, 誰似桓·文之覇. 乗間謀漢, 唯看莽·卓之姧. 致使王之至尊, 枉稱子於足下, 尊卑失序, 上下同憂. 以爲非有元輔之忠純, 豈得再安於社稷, 以僕心無匿惡, 志切尊王, 将援置於朝廷, 使扶危於邦囯. 足下見毫釐之小利, 忘天地之厚恩, 斬戮君王, 焚燒宫闕, 葅醢卿七, 䖍劉士民, 姬姜則取以同車, 珍寳則奪之稇校勘 024載. 元惡浮於桀·紂, 不仁甚於鏡校勘 025䲷.
校勘 024 성암본에도 稇으로 되어 있다. 《삼국사절요》·을해목활자본·《고려사》에는 稛으로 되어 있다.
校勘 025 성암본에도 鏡으로 되어 있다. 《삼국사절요》·《고려사》·《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을해목활자본에는 獍으로 되어 있다.
저의 원한은 임금(신라 경애왕)께서 돌아가심[崩天]에 극에 달하였고, 정성은 해를 물러나게 할 정도[却日]註 001로 깊어 매가 사냥함[鷹鸇之逐]註 002을 본받고, 임금에게 부지런함[犬馬之勤]註 003을 바치기로 맹서하였소. 다시 창과 방패를 든 후 두 해가 지났는데[两更槐柳],註 004 육지에서 공격하면 우레같이 달리고 번개같이 쳤고, 물에서 공격하면 호랑이처럼 치고 용처럼 날라서, 움직였다 하면 반드시 공을 이루었고, 행하였다 하면 목적을 이루지 못함이 없었던 것이오.註 005 해안에서 윤빈(尹邠)을 쫓을 때에는註 006 쌓인 갑옷이 산 같았고, 성 부근[城邊]에서 추조(鄒造)를 사로잡을 때에는註 007 쓰러진 시체가 들을 덮었소. 연산군(燕山郡) 근처에서는 길환(吉奐)을 군진 앞에서 목베었고,註 008 마리성(馬利城) 언저리에서는 수오(隨䎸)를 군기 아래에서 죽였소.註 009 임존성(任存城)을 쳐서 빼앗던 날 형적(邢積) 등 수백 명이 몸을 버렸고,註 010 청천(清川)을 격파할 때에는 직심(直心) 등 네다섯 명이 머리를 바쳤소.註 011 동수(桐藪)에서는 깃발만 바라보고도 무너져 흩어졌고,註 012 경산(京山)에서는 입에 구슬을 물고[銜璧] 투항하였소.註 013 강주(康州)는 남쪽에서 와서 귀부하였고,註 014 나부(羅府)는 서쪽에서 옮겨 속하였소.註 015 습격하고 공격함이 이와 같았으니〔상황을〕 수습[收復]할 날이 어찌 멀겠소? 반드시 지수(沚水)의 군영에서 장이(張耳)가 천 갈래 원한을 씻었듯이,註 016 오강(烏江) 가에서 한왕(漢王)이 한 번 이겨 공을 이루었듯이註 017 마침내 전쟁을 종식하고 영원히 천하[寰海]를 맑게 하기를 기약하는 바이오. 하늘이 돕는 바이니 천명이〔장차〕어디로 돌아가겠소?
僕㤪極崩天, 誠深却日, 誓効鷹鸇之逐, 以申犬馬之勤. 再舉干戈, 两更槐柳, 陸擊則雷馳電擊, 水攻則虎搏龍騰. 動必成功, 舉無虚發. 逐尹邠於海岸, 積甲如山, 擒鄒造於城邊, 伏尸蔽野. 燕山郡畔, 斬吉奐於軍前, 馬利城邊, 戮隨晤於纛下. 拔任存之日, 邢積等數百人, 捐軀破清川校勘 026之時, 直心等四五軰授首. 桐藪望旗而潰散, 京山銜璧以投降. 康州則自南而來歸校勘 027, 羅府則自西移屬. 侵攻若此, 收復寕遥. 必期泜水營中, 雪張耳千般之恨, 烏江岸上, 成漢王一捷之功, 竟息風波, 永清寰海. 天之所助, 命欲何歸.
校勘 026 성암본에도 川으로 되어 있다. 《삼국사절요》·《고려사》·《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는 州로 되어 있다.
校勘 027 정덕본·주자본에는 없으나, 《삼국사절요》·《고려사》·《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의거하여 추가하였다.
하물며 오월왕註 001 전하(殿下)께서는 덕이 두루 미쳐 먼 곳까지 포용하며, 어짊이 깊어 작은 나라까지 어루만지시는〔분으로〕,註 002 특별히 궁궐[丹禁]에서 말씀을 내시어 청구(靑丘)註 003에서 난리를 그치라고 타이르셨음을 받들었음에랴. 이미 본보기가 되는 가르침을 받았으니 감히 좇아 받들지 않겠소? 만약 그대가 공경스럽게〔오월〕왕의 뜻을 받들어 전쟁[凶機]을 모두 그친다면 상국〔오월국〕의 어진 은혜에 부응할 뿐만 아니라 또한 백제〔해동〕의 끊어진 계통[絶緖]을 이을 수 있을 것이오.註 004 만약 잘못이 있는데도 고칠 수 없다면 그대가 후회해도 어쩔 수 없을 것이오.
况承吳越王殿下德洽包荒, 仁深字小, 特出綸於丹禁, 諭戢難於青丘. 旣奉訓謀, 敢不尊奉. 若足下柢承睿旨, 悉戢凶機, 不惟副上囯之仁恩, 抑可紹海東之絶緖. 若不過而能攺, 其如悔不可追.” ”_삼국사기 견훤전
왕건은 통일신라를 삼한이라 부르고 9토라 부른다.
9토는 9주州로 즉 중국대륙을 말하는건데.
왕건은 자기가 천명을 받들고 천하를 다스릴 기회를 얻었다라고 말하며 신라를 중국대륙에 빗대어 말하고있다.
이걸 보면 왕건은 사대주의 중화뽕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왕건은 통일신라 말의 대혼란과 후삼국시대 초기의 분열기의 농민들의 반란과 도적들의 창궐을 '황건적'이라 말하고있다.
왕건은 자기가 살던 시대를 삼국지와 동급으로 취급하고있는듯하다.
게다가 왕건은 통일신라 경주 정권의 임금을 한나라 황실에 빗대고
견훤을 왕망,동탁으로 간주하여
자신을 통일신라 경주 정권을 지키는 든든한 장군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것이 편지의 첫 부분의 "아래로는 사람들의 추대에 못 이겨 과분하고도 외람되게 장수의 권한을 맡고,"라는 대목이
그걸 단적으로 드러내주는듯 하다.
장수의 권한... 이것은 마치 천황가를 지키고자 대의로서 거병을 했다는 일본 가마쿠라 쇼군 미나모토 요리토모를 보는듯하다.
왕건은 이런 간사한 거짓말들을 쳐대서 결국 신라계 호족들의 지지를 얻어서 통일신라를 더더욱 급속한 몰락을 하게 만들어 결국
스스로 나라를 바치게 만들었다.
요리토모는 천황가를 유지시켰으나 왕건은 통일신라 정권의 문을 닫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 편지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 정사의 다른 부분에서 언급되지않고 그냥 성 함락시켰다 어디를 멸하였다하고 빠르게
스쳐지나가서 언급되지도 않는 후백제 패장들의 이름들이 그나마 언급이라도 되어진다.
이런 떨어진 밥부스러기를 열심히 주워야 만들어지는게 후삼국시대 사극이라니. 참 처참하다.
// 왕건한테 뒤진 후백제 장수들 :
윤빈
추조(추허조)
길환
수오
형적
직심
그리고 왕건은
"오월왕註 001 전하(殿下)께서는 덕이 두루 미쳐 먼 곳까지 포용하며, 어짊이 깊어 작은 나라까지 어루만지시는〔분으로〕,註 002 특별히 궁궐[丹禁]에서 말씀을 내시어 청구(靑丘)註 003에서 난리를 그치라고 타이르셨음을 받들었음에랴. 이미 본보기가 되는 가르침을 받았으니 감히 좇아 받들지 않겠소? "
라고 말하고있다.
//왕건의 사대주의 중화뽕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월왕 전하 : 어흠 청구(중국의 동쪽 땅을 말함. 청靑은 오행으로 동쪽에 해당한다. 구는 언덕이다. 즉 중국의 바다 건너 동쪽 언덕의 땅으로
즉 만주의 요동이나 조선반도를 말한다.)는 좀 그만 싸워라! 그만 난리 피워라!
왕건 : 보았느냐 견훤. 그만 싸우라잖앗! 감히 좇아 받들지않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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