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은 학문에는 정통했지만, 처 자식을 버린 부도덕한 사람이었다.
글: 전집현(자유기고가)
아인슈타인의 물리학 업적은 그의 첫째 아내의 공이 반
아내와 공동작업한 연구 논문 자기 이름으로만 발표
첫 아내를 타국에 보내고 이종사촌 누나와 연애 짓
이혼 후 재혼, 곤경에 빠진 첫 아내와 자식들 외면
자식들, 아인슈타인 사람 취급 안 해 사망 때도 안가
+ 엘사와 알버트 아인슈타인. 엘사는 아인휴타인의 두번째 부인이다(편집인 주). 자료: 누리망
+ 엘사와 알버트 아인슈타인. 엘사는 아인휴타인의 두번째 부인이다(편집인 주). 자료: 누리망
<아인슈타인 : 본인이 유명해지자 그와 과학적 업적을 같이 일구었던 조강지처를 버리다>
1. 첫째 부인 밀레바의 도움으로 아인슈타인이 물리학계 스타가 되다
아인슈타인(1879~1955)은 두 번 결혼했다.
첫 번째는 대학 커플 밀레바(1903년), 두 번째는 이모사촌 누나인 엘자(1919년)였다.
아인슈타인은 1896년 스위스 취리히 공과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헝가리 유학생인 물리학도 밀레바(Mileve Marici, 1875~1948)와 열애에 빠졌다.
그러나 아인슈타인 어머니는 밀레바가 4살 연상이고,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못쓴다고 둘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1903년 결혼했다.
밀레바도 탁월한 지적능력을 갖춘 과학자였다.
결혼 후 둘 사이에 공동연구가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상대성이론, 광양자이론, 물리학 논문 3편을 비롯해 5편의 논문을 공동작업하였다.
그러나 그 논문들은 아인슈타인 이름으로만 발표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공과대학 부교수로 임명되고 물리학계의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밀레바는 "우리가 남이가"라며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2. 아인슈타인의 변심, 첫 부인을 용도폐기하다
1904년 첫아들 한스(Hans)가 태어나고 1910년 둘째 아들 에두아르트(Eduard)가 태어났다.
이때부터 부부 사이는 차츰 변질되기 시작했다.
병약한 둘째 아이 치닥거리에 그녀가 학문을 포기하면서 공동연구가 차질을 빚었다.
또한 본인이 유명해지고 바빠지자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아내에 대한 외면과 무시도 커져갔다.
1914년 밀레바는 아이들을 데리고 스위스에 잠시 머물렀는데, 바로 그때 유럽에서 1차대전이 발발하였다.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에게 안전한 중립국인 스위스에 머무르라고 했다.
사실은 이 시기 동안 이종사촌 누나이자 과부였던 엘자(Elsa)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성격도 명랑하고 예술계와 사교계 사람들과도 교류도 폭넓은 등 밀레바와 너무나 달랐다.
그는 밀레바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마침내 1919년 엘자와 결혼했다.
이혼 후 2년 뒤인 1921년 아인슈타인은 "광양자이론"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와 이혼 협의를 할 때 미래에 받을 노벨상 상금을 전액 주겠다고 제안했다.
아인슈타인은 상금을 장기채권에 투자해서 수익을 밀레바가 받도록 했으나, 대공황으로 채권이 휴짓조각이 되어 버렸다.
3. 첫 부인 밀레바는 정신병자인 차남 곁에서 비참하게 죽는다
이혼 당시 밀레바의 나이는 44세였고, 아이들은 열다섯, 아홉 살이었다.
그녀는 피아노 가정 교사와 수학 지도로 생계를 유지하며 자식들을 홀몸으로 키웠다.
아인슈타인은 그녀가 자녀양육비 등 경제적인 지원을 요청해도 들어 준 적이 별로 없다고 한다.
게다가 차남이었던 에두아르트는 정신분열증을 심하게 앓았고 한동안 스위스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 뒤 밀레바는 차남과 병원 감독의 감시 아래 은둔생활을 했다.
엄청난 치료비와 차남의 병마에 지칠 대로 지친 밀레바는 1939년 반신불수가 되었고,
1948년 72살의 초라한 노파로 병상에서 홀로 눈을 감았다.
차남은 정신병원에서 17년을 더 살다가 1965년 55세에 죽었다.
4. 장남은 아버지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다
장남 한스(1904~1973)는 1936년 기술과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47년 미국 버클리 주립대학에서 수력학 교수를 역임했다.
하지만 한스는 자신과 어머니랑 동생에게 무관심한 아버지를 평생 미워했고 부모 취급도 하지 않았다.
특히 결혼하고 손자 손녀를 얻어도 아버지한테 연락하거나 찾아가지 않았다.
그는 1955년 아인슈타인의 부고를 듣고도 전혀 슬퍼하지 않았으며
장례식장에 찾아가지도 않았고 신문에 짤막한 애도 문을 몇 줄 낸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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