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에는 두가지 측면이 존재한다, 즉 세상에 빛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사람은 그러한 빛의 두가지 측면을 모두 표현하고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빛의 두가지 측면은 각각 서양과 기독교에서는 비둘기와 뱀, 올리브나무와 야자나무(혹은 종려나무)로 상징되며, 동양과 불교에서는 연꽃(파드마)와 여의보주(찬티마니)로 상징된다.
빛의 첫번째 측면은, 즉 비둘기와 연꽃의 측면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이다, 즉 그것은 사람에게 어떻게 살아가는것이 삶에서 균형과 만족과 평화에 이를수 있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측면이며, 반대로 어떻게 살아간다면 삶에서 불균형과 결핍을 느끼고 평화롭지 못하게 되는지를 알려주는 측면이다,
그리고 빛의 두번째 측면은, 즉 뱀과 여의보주의 측면은, 생명력과 에너지와 기술과 지식으로서의 측면이다, 즉 그것은 실제로 사람에게 생명력과 에너지를 제공해 주는 것이며, 예를들어 오늘날의 과학기술처럼 실제로 삶에서 수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지식과 기술을 알려주는 측면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러한 빛에 이끌리고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빛의 두번째 측면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그러한 빛의 생명력과 에너지로서의 측면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러한 빛의 첫번째 측면에 대해서는 그것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즉 사람은 빛의 도덕과 윤리적인 측면은 거부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종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것이다, 즉 빛의 생명력과 에너지의 측면에 매력을 느끼지만, 그러한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스스로 거부하는 빛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측면 역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건 마치 쓴 약이 들어있는 달콤한 초콜릿을 먹는것과도 같다, 즉 달콤한 초콜릿을 먹으려면 그것에 들어있는 쓴 약을 또한 먹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부의 사람들은 이제 그러한 빛의 두가지 측면을 분리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즉 빛의 첫번째 측면과 두번째 측면을 분리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빛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은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빛의 생명력과 에너지로서의 측면만을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수많은 평범하고 세속적인 종교들에서 일어난 일이다, 즉 그러한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빛의 생명력의 측면은 받아들이고 싶어하지만, 빛의 도덕적인 측면은 거부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종교적인 글과 경전을 왜곡하고 변조하여 그것들에서 도덕과 윤리적인 측면을 제거하고 오직 생명력과 에너지로서의 측면만을 남겨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빛의 두가지 측면은 사실 분리될수 없는 것이다. 즉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을 거부한 채로, 생명력과 에너지의 측면만을 받아들일수는 없는것이다. 즉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을 받아들이는 만큼 생명력과 에너지의 측면 역시 받아들일수 있게 되는 것이며, 만약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을 제거한다면 생명력과 에너지의 측면 역시 제거되게 되는 것이다. 즉 그러한 빛의 두가지 측면을 분리하려는 시도들은 결국 모두 불가능한 시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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