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의 광선은 8광선에 해당되며 하나의 점으로 상징된다, 즉 그것은 자신의 몸, 감정, 생각, 기억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관찰자이자 관조자로서의 진정한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그것은 하나의 관찰자로서의 시점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러한 단일한 시점으로부터 자신의 몸, 감정, 생각, 기억과 같은 여러 구성요소들이 뻗어나오게 된 것이다. 즉 그러한 단일한 시점에서 자신의 여러 구성요소들은 하나로 통합되게 되는 것이다.
평형의 광선은 9광선에 해당되며 바람으로 상징된다, 바람은 세상의 모든곳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질서이자 법칙을 나타낸다, 사실 세상은 세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와 두번째는 흑과 백이며 그것은 세상의 서로 반대되는 두가지 요소에 해당된다, 그리고 세번째는 그러한 흑과 백을 담고 있고 포함하고 있는 비어있고 투명한 공간을 나타낸다, 그건 마치 비어있는 그릇 속에 검은색 구슬과 하얀색 구슬이 담겨있는 것에 비유해서 설명할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비어있는 투명한 공간 자체에는, 자신이 담고있는 흑과 백 사이의 균형과 평형을 유지하고 조정하는 질서이자 법칙이 내재되어 있다, 그건 마치 세상의 모든곳에 바람이 퍼져있는 것에 비유해서 설명할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바람이 바로 평형의 광선이 나타내는 세상의 보편적 질서이자 법칙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자신의 몸, 감정, 생각, 기억은 자기 자신이 아니며, 진정한 자기 자신은 그것들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또다른 관찰자라는 것을 자각하면, 즉 자신의 형태가 있는 부분은 자기 자신이 아니며, 진정한 자기 자신은 그것들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형태가 없는 무형의 관찰자라는걸 자각하면, 마찬가지로 세상의 비어있는 공간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그러한 질서와 법칙에 연결될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항상 평형과 균형을 느낄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무언가가 균형과 평형상태에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느낄수 있게 되는 것이며, 만약 무언가가 균형과 평형상태에 있지 않다면 왜 그러한지와 다시 균형과 평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역시 느낄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삶의 모든 상황에서 항상 균형과 평형을 유지하며 삶을 살아갈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균형과 평형을 유지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은 가변성과 일관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즉 그것은 균형과 평형을 회복하기 위해서 모든 상황에서 동일한 행동을 하지 않고 그때마다 적절한 서로 다른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가변적이지만, 항상 균형과 평형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행동을 한다는 측면에서는 일관적이다. 그것은 공 혹은 외줄 위에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항상 균형과 평형을 유지하는 광대에 비유할수 있다. 광대는 항상 똑같은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고 그때마다 몸이 치우친 반대방향으로 몸을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가변적이다. 그렇지만 항상 균형과 평형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일관적인 것이다.
또한 그렇게 바람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보편적인 질서에 연결되면 진정으로 살아있는 지혜와 연결될수 있다. 지혜는 특정한 불균형한 상황에서 다시 균형과 평형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길과 방법을 나타낸다. 그리고 살아있는 지혜의 반대는 고정된 지혜이다, 고정된 지혜는 기존에 다른 사람이 특정한 불균형한 상황에서 균형과 평형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말과 언어로 적어놓은 것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고정된 지혜는 그렇게 다른 사람이 써놓은 글을 따라하는 것이다. 반면 살아있는 지혜는 특정한 불균형한 상황에서 균형과 평형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지혜는 그렇게 스스로 느끼고 판단해서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살아있는 지혜야 말로 진정으로 모든 상황에 대처할수 있는 지혜이다, 왜냐하면 결국 특정한 말과 글을 따라하는 고정된 지혜는 그러한 말과 글에 쓰여있지 않은 상황에는 대처할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스스로 느끼고 판단해서 행동하는 살아있는 지혜는 진정으로 모든 상황에 스스로 판단하여 대처할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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