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날이었다.
패딩을 입은 소년 셋이 학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뒤에서 짤랑거리는 벨 소리가 울려 퍼진다.
뒤를 돌아보자 어떤 형이 자전거를 타고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 형은 곧 소년들한테도 전단지를 건네준다.
인도 위에는 버려진 전단지가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친구들도 그 형이 사라지자 아무렇지도 않게 전단지를 휙 하고 땅에 버린다.
오직 한 소년만 그것을 가방에 집어넣는다.
"야, 그걸 왜 챙기냐? 딱 봐도 사이비 같던데"
친구들이 코웃음 치며 말한다.
다가올 재앙이 어쩌고저쩌고 적혀있던 전단지
그 아이 역시 그걸 읽어보려고 챙긴 건 아니었다.
"여기 쓰레기통 없잖아, 학원 가서 버리려고"
"야, 진짜 별나다. 그냥 땅에 버리지"
"아, 내가 알아서 할게"
노을이 저문다.
소년들은 학원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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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방금 전까지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순식간에 주변이 어두워지더니 학원 안에는 나 혼자 남아있었다.
사람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아까 버리는 걸 깜빡한 전단지가 떠올랐다.
가방을 뒤적거리다 그 종이를 꺼내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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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여러분이 이 종이를 받으면 높은 확률로 버릴 것을 알고 있습니다.
최소한 버리는 장소라도 기억해 주세요. 해당 장소가 가깝다면 찾아서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혹여라도 이 글에 흥미를 가지고 읽는다면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게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재앙의 범위는 경기도 소망시 현월동에 한정됩니다. 밤이 되기 전 해당 지역을 벗어나 하루를 보내고 오시면 됩니다.
끝나는 순간 모든 사람의 기억이 소거되며 세상의 인과율이 맞춰질 것이라 인지하지는 못하겠지만 당신은 위기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높은 확률로 이 글을 무시하거나 근거 없는 소리로 치부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재앙을 맞이하였다면 아래 지침서를 따라주세요.
재앙 '시작되는 침묵' 지침서
1. 온 세상이 한번 검은색이 되었다 밝아진 후
주변에서 극심한 이질감을 인지하였다면 해당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는 계속 강조될 것이며 우선적으로 따라줘야 할 사항입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 중 진짜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말을 철저히 무시해야 하며 절대로 반응하여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위치에 따라 다음 항목을 따라주시면 됩니다.
위치가 집일 경우 이어질 2번부터 5번 항목을 따라주세요.
위치가 집 밖일 경우 2~5번 항목을 건너뛰고 6번 항목부터 따라주세요.
휴대폰을 포함한 모든 전자기기의 전원을 꺼주시길 바랍니다.
외부로의 연락은 불가능할 것이며 그 행위는 당신을 위험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 시점부터 어떠한 방법으로도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재앙이 종료되는 현상이 나타날 때까지 버텨야 합니다.
2. 집에 있는 가족 구성원을 확인하세요.
구성원 중 누군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도 문을 열고 찾으러 나서면 안 됩니다.
저희가 뿌린 지침서가 분명히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저희를 믿으세요.
밖으로 나간다 한들 재앙이 끝나기 전까지는 당신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집 안에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가족이 아닙니다.
원래부터 집 안에 같이 있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 역시 집 안에서 당신의 모습을 한 무언가와 마주하고 있을 것입니다.
최대한 그것을 피해 3번 조건을 만족하는 방 안으로 들어가세요.
3. 현관문 및 창문 등을 확실하게 단속하여 잠긴 것을 확인해 주세요.
그 후 커튼 등을 이용해 창밖을 완전히 가릴 수 있는 방으로 이동해 주세요.
무엇이든 창밖이 보이지만 않으면 됩니다.
모두 확인되었다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조용히 있어주세요.
4. 반드시 누군가가 집의 현관문, 또는 방문 앞으로 찾아와 당신에게 말할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고, 아무리 간절하게 애원하더라도 절대로 열어주면 안 됩니다.
당신과 그 사람은 같은 일을 겪더라도 같은 공간에 있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가족이 열쇠 등이 없어서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경우 문밖의 그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입니다.
문밖으로 나간다 해도 재앙이 발생한 시점에서 이미 다른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족이 아닐 것입니다.
혼자 사시는 분들에게는 지인, 혹은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 경우도 위와 동일합니다.
5. 일어나는 모든 일에 반응하지 않고 버텨낸다면 다음 두 상황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가 뜨듯 밝아지며 빛이 들어오는 경우
정체 모를 안도감과 함께 종소리가 세 번 들려올 경우
둘 중 어느 한 상황이라도 맞이하시면 재앙이 끝나는 상황입니다.
오늘의 악몽은 자연스레 기억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6. 건물 안에 있다면 당장 그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세요.
이 상황이 발생한 순간부터 집을 제외한 건물 안에 있는 것은 무언가의 입속에 들어가 있는 행위와 동일합니다.
거리를 걷는 도중 해당 상황을 인지하였다면
이 지침서를 읽기 전 길에서 마주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셨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가야 하는 목적지는 집입니다.
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세요.
7. 길을 걷는 도중 그것들이 말을 걸어오거나 팔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절대 어떠한 대답도 하지 말고 빠르게 뛰어서 떨쳐내세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고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인간이 아닙니다.
이 상황이 발생한 시점에서 재앙이 끝나기까지 당신이 마주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족, 친구, 지인 혹은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모두 무시하시고 집으로 향하는 것을 1순위로 삼아주세요.
8. 집 앞에 도착하면 문을 확인해 주세요.
피 칠갑이 되어있다면 절대로 안으로 들어서면 안 됩니다.
이 경우 집 앞에서 버티는 것을 가정해 주세요.
만약 문이 멀쩡할 경우 안으로 들어서며 최대한 빠르게 3번 수칙을 이 행해주세요.
집안에 있는 그것들은 당신의 가족이 아닙니다.
절대로 반응해서는 안 됩니다.
9. 피 칠갑이 되어있다는 것은 그것이 이미 사냥을 했고, 어느 정도 배를 채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 앞에 있는 당신에게 적극적인 사냥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른 장소로의 이동은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아직 도시에는 굶주린 것들이 많이 배회하고 있습니다.
문 안쪽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무시해 주세요.
집 안으로 들어설 경우 만나는 것은 당신의 가족이 아닐 것입니다.
당신의 가족이 집안에 있더라도 만날 수 있는 것은 재앙이 끝난 뒤입니다.
10. 일어나는 모든 일에 반응하지 않고 버텨낸다면 다음 두 상황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가 뜨듯 밝아지며 빛이 들어오는 경우
정체 모를 안도감과 함께 종소리가 세 번 들려올 경우
둘 중 어느 한 상황이라도 맞이하시면 재앙이 끝나는 상황입니다.
오늘의 악몽은 자연스레 기억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햇빛이 들어왔다면 재앙이 끝날 때까지 모두가 버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소리가 들린다면 재앙이 만족할 만큼의 사람들이 희생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 경우 그들을 위해 잠시 묵념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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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종이를 따라야만 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서둘러 학원 건물에서 빠져나온 뒤 집으로 향해간다.
길을 나가던 중, 아까 학원을 같이 갔던 친구들이 나를 불러왔다.
무심코 대답하려던 찰나, 아까 친구들은 나랑 같이 학원에 있었던 게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본 시간은 7시 30분이다. 원래라면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어야 맞다.
친구들뿐만이 아니다. 오늘 유독 나를 부르거나 붙잡아 세우려는 사람이 많았다.
길에서 한 번도 마주치기 힘들었던 학교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왔다.
눈앞에서 사고가 나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지침서의 7번을 떠올리며 간신히 집 앞까지 도착했다.
숨을 헐떡이며 집 앞에 도착하자, 문에는 피 칠갑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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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귀를 막고 웅크린 채 버텼다.
알 수 있다. 한참 동안 떠들고 있는 저 목소리는 엄마랑 아빠가 아니다.
목소리의 껴있는 이질감이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준다.
일분일초가 너무 길게 느껴진다.
엄마, 아빠는 무사하겠지?
이 종이를 보고 방 안에서 잘 버티고 있겠지?
괜찮을 거다. 아마 괜찮을 거다.
나만 잘 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다.
소리 없이 흐느끼며 울고 있는 와중 귓가로 종소리가 들려온다.
알 수 없는 안도감에 고개를 든다.
종소리는 정확히 세 번 울려왔다.
얼마 안 가 눈이 스르르 감겨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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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이 끝나고 나면 모든 일은 거짓말처럼 잊힐 것입니다.
정말로, 거짓이 아니고 죽은 여러분의 소중한 가족도 친구도 모두 잊어버릴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미 죽었던 것으로 되고, 어떤 이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세상은 물론 여러분도 사라진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갈 것입니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기억들은 다른 기억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이 지침서도 자연스레 기억 속에서 삭제되겠지요.
그러나 아주 드물게 일부 청소년들은 이날의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재앙을 잊을 수 없는 아이들끼리 모여 '재앙 방지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저희의 힘으로는 재앙을 물리치기는커녕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비록 재앙을 뿌리 뽑을 수는 없지만 이런 지침서를 만들어서라도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해 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오늘의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다면
그리고 저희에게 찾아와 힘을 조금이라도 보태고자 한다면
이곳에 저희 동아리의 주소지와 연락처를 적어두었습니다.
동아리에 가입해서 활동하고자 하는 분은 언제라도 연락 주시거나 찾아와주셨으면 합니다.
재앙 방지 동아리 회장 : 유미래
동아리 부원 :
김철민
이한나
신민석
김유진
구진혁
연락처 : xxx-xxxx-xxxx
주소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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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땐, 드디어 악몽에서 깨어난 줄 알았다.
하지만 거실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엄마와 아빠가 존재하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도 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해봤다.
두 사람 모두 다 원래부터 죽어있던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 바로 그날만 해도 학원 가기 싫다고 대판 싸웠었는걸
엄마, 아빠뿐만이 아니다. 학교에 있던 친구들도, 내가 알던 사람들도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아주 예전에 사망했던 사람처럼 되어있었다.
오히려 이상한 취급을 받는 건 나였다.
모르겠다. 아직도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거 같다.
그때 그 종이에서 본 전화번호가 생각났다.
떨리는 손으로 그곳에 전화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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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실 앞에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문고리를 잡고 연다.
무엇부터 말해야 하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딱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누나가 넷, 형이 세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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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일기
글쓴이 : 유미래
202x년 3월 12일 날씨 맑음, 구름 많음
<우는 소년이 그려진 그림, 소년보다 키가 큰 형과 누나들이 아이를 달래주고 있다.>
오늘 이진우라는 아이가 동아리실로 찾아왔다.
들어선 뒤 곧장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이해한다. 우리 모두 여기 들어설 때 모두 똑같았으니까.
남들처럼 잊어버리지 못한 채 혼자서만 진실을 안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세상 누구도 이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도 믿어주지도 않았을 테니까.
진정시키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제 고작 14살짜리 어린애였다.
얘들이랑 같이 받을지 말지 회의를 했다.
너무 어린 점이 맘에 걸렸지만, 이 아이한테는 있을 곳이 필요해 보였다.
동아리에 7번째 식구가 들어왔다.
나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 : 내 동생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다. 누나로서 잘 챙겨주자!
따뜻하네
존나 슬프다 시봉방 - dc App
문재앙 방지 동아리
시리즈 진행시켜
맛있다 얼른 더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