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나는 여행용 가방이 무섭다.

정확히는 바퀴와 손잡이가 달린 캐리어 가방이 무섭다.

갑갑하게만 느껴지는 투박한 디자인. 

그 안에 무언가 들었을까 상상을 해보면 숨이 턱 막혀오는 기분이다. 

 


우리 가족은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이사를 마치고 짐 정리를 하던 중, 나는 방의 한구석에 놓여있는 여행용 가방을 발견했다.  

일찍이 내 방으로 정해 놓았던 곳이었다. 

 


검은색에 손잡이 부분이 깨진 낡은 가방. 

그 가방은 먼지가 쌓인 채로 구석진 곳에 방치되어 있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이다. 

 


아버지. 여기 이 가방 뭐예요?

어디? 무슨 가방?

부모님은 나를 따라 들어오시더니, 이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뭘 이야기하는 거니?

 


부모님의 말에 시선을 돌리자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분명히 가방을 보았는데.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 후로도 나는 종종 그 가방을 보았다.  

그 가방은 때로는 방의 구석에, 때로는 거실의 소파 옆에 놓여있었다.  

가방은 항상 검은색이었고, 손잡이 부분이 깨져 있었다. 

그리고 내가 부모님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자 시선을 떼는 순간,  

가방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때로는 그 가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가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두려움에 필사적으로 그 소리를 모른 척 외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참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집에 오고 난 뒤로 아버지의 폭력이 줄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한 날에는 어머니는 어김없이 날 괴롭혔다.

내가 아버지와 닮았다는 이유였다.

몇 번 경찰이 오갔고,

상담사를 통해 집에 변화가 필요하다 배운 부모님은

그 변화의 시작점으로 이 집을 택했다.

덕분에 얼마 동안은 가방을 잊을 정도로 행복했다.




가방. 

가방.

가방.

어느 날 밤, 무심결에 거실로 나왔다가 그 가방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분명히 나는 보았다.

아버지가 그 가방 속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을.

깜짝 놀란 나는 두려움에 떨며 그대로 내 방에 몸을 뉘었다.

마치 아무 일도 보지 못한 것처럼.

하지만 분명히 나는 보았다.

그건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다음 날 나는 상담사에게 전화했다.

반가움을 표현하는 상담사에게 정중하게 물어보았다.

우리 집 가정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시는 게 관련이 있으냐고.

상담사는 잠깐 웃음을 보이더니 나에게 말했다.

이미 이사를 가서 우리 관할이 아니라고.




그때쯤 우리 아파트에는 이상한 벽보가 하나 붙었다.

[최근 우리 아파트에 이상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으니 조금의 이상 현상이라도 목격할 시에는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관리사무소에 보고할 것.]

그 길로 관리사무소에 직접 찾아가서 말했다.

지금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가 아니다.

도와달라.




관리사무소 직원은 곤란한 듯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는지를 물었다.

나는 그에게 가방에 대해서, 우리 가정에 더 이상 폭력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셨다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사색이 되어서는 이렇게 말했다.

학생, 그건 가방 귀신이란다.




그의 말은 이러했다.

최근에 아파트 문들을 열어놓을 일들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가방 귀신이 너희 집에 들어온 것 같다.

가방 귀신은 가방 안에 살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바꿔치기해버린다.

그리고 마치 그 사람이 된 듯 행동을 하고 다닌다.

하지만 그건 사람이 될 수 없다. 귀신이다.

가방 귀신은 누군가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리면 그 사람을 죽인다.

이건 전략이 필요한 싸움이다.

최대한 빠른 시점에 이 안건으로 반상회를 열겠다.

아버지를 불러오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나를 믿어라.




하지만 다음 날부터 그 관리사무소 직원을 찾을 수 없었다.

개인 사정으로 인해 일을 그만두었다는 무책임한 말.

그의 말이 아직도 귀에서 맴돈다.

아버지를 불러오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라.




솔직하게 말하겠다.

나는 귀신이 싫다.

하지만 아버지도 싫다.

아버지가 퇴근하기 전 틈을 타서 어머니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귀신을 없애는 방법은 피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방을 멀리 버리는 수밖에는 없다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만드는 수밖에는 없다고.

그러면 아버지가 돌아올 거라고.

아파트에 살며 이미 이상 현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어머니였기에 묵묵히 고개만 끄덕여 주셨다.

오랜만에 어머니가 나를 안아주셨다.

아버지가 없으면 이렇게나 자상한 분이다.




결전의 밤이다.

아버지는 오늘도 가방으로 들어가셨고

난 그 틈을 타서 재빨리 가방 문을 닫았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뛴다.

쿵쾅쿵쾅. 쿵쾅쿵쾅.

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

나는 가방에서 조금도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가방을 잡고 현관문을 나섰다.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다.

엘리베이터가 이렇게나 고통스러웠던가?

다리가 너무 떨려.

살려줘. 살려줘.

아파트를 벗어나 밤거리를 무작정 달렸다.

최대한 갈 수 있다 생각 드는 곳으로 정신없이 가방을 밀고 달렸다.

마침내 힘이 다 떨어져 더 이상 걸을 수 없겠다 생각이 들었을 때 가방에게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제발 아버지와 같이 사라져주세요.
























가방이 사라졌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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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앞, 새롭게 두 개의 가방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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