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네모난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이곳이 영안실임을 깨달았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생각하려고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꿈인가? 팔을 꼬집었을 때 아픈 걸 보면 현실이었다. 이제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지만, 내가 가능한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끼익.

 

문손잡이를 밑으로 내리며 당기자,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내 앞에 펼쳐진 공간은 이번에도 네모난 방이었지만, 아까와 다른 점은 책상이 놓여 있었고, 사람이 둘이나 더 있다는 점이다.

 

“아!”

 

이런 곳에서 사람을 만나 반가웠다. 한 명은 금발 머리의 양팔에 문신이 가득한 양아치 같은 남자였고, 나머지 한 명은 반대로 정장을 입고 올백 머리를 한 중년 남성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반가워하는 나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떻습니까?”

 

중년 남성은 싱글벙글 웃으며 양아치에게 물었다. 둘을 책상을 사이에 두고 있었고, 양아치는 책상에 놓인 수첩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옆에 놓여 있는 권총을 들어 자기 관자놀이에….

 

탕!

 

뭐야? 거짓말이지? 양아치는 그대로 피를 뿜으며 옆으로 쓰러졌다.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굳어있는 것과 반대로 중년 남성은 아무렇지 않은 듯, 죽은 양아치에게 다가가 권총을 챙겨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놨다. 이 모든 게 현실이라고?

 

“어서 오십시오.”

 

중년 남자가 나를 보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되돌아가야 한다. 아니, 여기서 나가야 한다. 나는 중년 남자를 지나쳐 앞에 보이는 문으로 달려갔다.

 

“용감한 선택입니다만, 수칙을 읽지 않고 탈출을 시도할 경우, 생존할 확률이 매우 희박함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문손잡이를 돌리기 전에 멈칫했다. 저 남자. 지금 뭐라고 했지?

 

“뭐라고요?”

“현재 귀하께서 있는 건물은 육성 종합병원이며, 현재 위치는 지하 영안실입니다. 영안실은 이 병원에게 유일하게 안전한 공간입니다. 현재 조사 결과 나갈 수 있는 루트는 정문 루트, 하수구 루트, 옥상 루트, 지하 주차장 루트, 4층 406호 창문 루트가 있습니다. 각 루트는 성공과 실패 확률이 있고, 중간중간 숙지하고 있어야 할 행동과 귀하의 판단을 요구하는 변수가 많이 있습니다. 이 수칙을 읽으시는 게 도움이 되실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설명을 들은 나는 중년 남성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이곳에 대해 잘 아시나요?”

“수칙서에 쓰여 있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수칙이 뭔데요? 누가 만든 건데요? 왜 당신이 이걸 설명하고 있는 건데요?”

 

무례할 수 있지만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중년 남성은 내 질문에 웃기 시작했다. 기분이 나빠 험악한 표정을 짓자, 중년 남성은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귀하에게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제 수칙은 귀하나 저쪽에 이미 돌아가신 분처럼 갑자기 이 병원 영안실로 오신 분들에게 이 수칙서를 읽으라고 권유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거기다가 굳이 자세히 아실 필요가 없습니다. 수칙을 기억하는 데 방해만 될 뿐입니다.”

 

중년 남자는 수칙서를 손으로 가리켰다.

 

“기억해야 한다고요? 들고 가면 안 되고요?”

“예. 이곳에 오실 분들을 위해서입니다.”

 

결국 이 수칙서인지 뭔지를 읽어야 한다는 건가? 그럼, 저 남자는 자살한 거지?

 

“저 남자는 왜 자살한 거죠?”

“저는 수칙을 읽으라고 권유함과 동시에 이곳을 빠져나갈 자신이 없으신 분들을 위해 총도 비치해두고 있습니다.”

 

중년 남자는 품에서 총알을 하나 꺼낸 다음, 권총에 장전하여 책상 위에 올려놨다. 내 표정이 본인을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남자는 헛기침했다.

 

“물론 저 역시 자살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최대한 살아남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선택지도 있다는 겁니다. 선택은 본인의 몫입니다.”

 

도대체 뭐가 쓰여 있다고 자살할 정도야? 나는 수칙을 읽어나갔다.

 

1. 영안실은 이 병원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장소입니다. 최대한 체력을 보충하고, 영안실 밖으로 나가십시오. 탈출 루트 하나가 실패했다면 즉시 영안실로 도망쳐와 새로운 루트를 찾으십시오.

 

2. 안전에 유의하십시오. 천장, 바닥, 벽을 언제나 유심히 확인하십시오.

 

3.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병원을 나가는 방법은 매우 많습니다. 어떻게든 영안실로 도망친다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4. 의사를 만날 경우,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십시오. 만약 그가 당신에게 몸 상태가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검진 차트와 똑같은 병명을 말씀하십시오. 맞춘다면 그가 친절히 406호로 안내할 것이나, 그러지 아니하면 최대한 빠르게 영안실로 도망가십시오. 도망이 불가할 경우 제2 수술실로 끌려가기 전에, 주변에 있는 칼, 주사기, 볼펜 등을 자신에게 사용하십시오.

 

5. 놈들은 매우 영악하고 교활합니다. 절대 속지 마십시오.

 

6.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병원이라는 장소와 처한 상황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나, 만약 누군가 쳐다보는 기분까지 같이 든다면 눈을 감고 60초를 세십시오.

 

7.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살 수 있습니다.

 

8. 여러분이 이 수칙서를 보고 깨달았다면 행동하십시오.

 

<다음 장>

 

다음 장을 넘겼다. 첫 장과 마찬가지로 이 병원에서 빠져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관한 수칙들이었다.

 

세상에, 탈출하려면 이걸 다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죽거나 영구장애를 얻는데?

 

첫 장에서 포기하지 말고 영안실로 돌아오면 된다면서, 하수구 루트시, 물이 녹색일 경우 죄송합니다. 같은 건 왜 넣은 거야? 계속 넘기면서 읽으면 읽을수록 드는 생각은 이 수칙서라는 건…악의로 가득 차 있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온 사람을 엿먹일 수 있을까?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살아남는 게 가능한가? 수칙서대로라면 불가능이다.

 

“어떻습니까?”

 

중년 남성은 싱글벙글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처음에 양아치에게 물었던 그대로다. 나는 수칙서에서 눈을 떼고 중년 남성에게 물었다.

 

“그래서 생존한 사람을 봤나요?”

“여기서는 확인이 불가해서 알 수 없습니다.”

 

설령 있다고 해도 몇 안 될 것이다. 볼 거 못 볼 거 다 봤을 양아치 같은 놈이 포기하고 죽은 이유도 그렇겠지.

 

“어떻습니까?”

 

중년 남성은 다시 한번 나에게 물었다. 수칙서냐, 옆에 놓인 권총이냐. 무슨 선택이 나에게 합리적일까? 다시 수칙서를 확인했다. 눈에 들어오는 수칙이 있었다.

 

깨달았다면 행동하라.

 

그렇군. 나는 권총을 들었다. 중년 남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당신의 선택이 옳았길 바랍니다. 쉽게 사용하실 수 있도록, 조치했으며 방아쇠만 당기면 격발됩니다.”

“정말 친절하시네요.”

 

탕!

 

나는 앞에 있는 중년 남성을 쏴 죽인 다음, 다시 수칙서를 바라봤다. 8번 문항이 아까랑 다르다.

 

8. 깨달았구나?

 

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수칙서에 있는 루트 중 정문 루트를 외워 탈출을 시도했다. 그런데 외우려는 노력을 비웃듯 평범하게 정문을 통해 탈출했다. 병원에서 탈출한 뒤, 병원 입구에 쓰여 있는 연락처로 연락했다. 잠시 후 어떤 기관에서 온 사람들에게 조사받았다.

 

“육성종합 병원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 줄이야. 어떻게 탈출하신 겁니까?”

 

조사원의 물음에 나는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물론 내가 정장 남자를 죽인 이야기는 뺐다. 이야기를 들은 조사원은 탄식했다.

 

“정장을 입은 남자분은 예전에 실종된 저희 선배 요원일 겁니다. 병원을 조사한다고 들어가더니 그대로 실종되었죠. 그곳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있었다니, 그런데 이상하군요. 선배님이 들어갔을 때 병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여 수칙서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걸 가지고 계셨던 걸까요?”

 

나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 수칙서를 보고 무엇을 깨달았는가?

 

그것은 수칙서가 가짜이면서도 진짜라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