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따라서 걷고 있었다.

분명 내 집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그런데 쑥 하고 떨어지는 감각이 느껴지더니 이상한 공간으로 이동되었다.

바닥에는 쪽지가 한 장 놓여있었다.

라는 진부한 스토리도 없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 이상한 공간에 들어왔다.

아니 비슷하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복도가 끝없이 이어진 곳이다.

복도가 일직선으로 주욱 이어져 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복도를 따라 걷고 싶지만 섣불리 움직이면 안된다.

최소한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움직여야 한다.

"거기 누구 없습니까?"

소리를 쳐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하지만 어떤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방향은 모르겠지만 분명 시선이 느껴진다. 소름이 돋는다.

무언가 둔탁한 소리도 들린다. 뺨이 따가운 기분도 조금 든다. 귀도 아프다. 손목은 무엇에 붙잡힌 듯 멍이 들어있다.

일단 가지고 있던 펜으로 길을 표시하며 이동할 예정이다.

내가 처음 떨어진 그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왔던 길목을 표시할 것이다.

약 500걸음을 걸었나, 이상하리만치 갈림길도 없다. 길을 표시할 이유조차 없었다.

250걸음, 점점 어두워지는 느낌이다.

또 250걸음, 곳곳에 핏자국이 조금씩 보인다.

극도의 긴장감 공포 속에서도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래도 길은 처음 있던 곳을 제외하면 하나이지 않은가.

100걸음, 핏자국이 더욱 커졌다. 공포감도 덩달아 커진다.

누군가 말했지, 공포는 끝이 없다고.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할 정도다. 정말 맞는 말이다. 이렇게까지 공포가 커지는 느낌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더 큰 공포가 안 느껴질 거란 느낌도 없다.

50걸음, 다리가 떨린다. 팔도 떨린다. 식은 땀이 폭포수처럼 떨어진다. 시선도 점점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돌아갈까?

25걸음, 형체가 조금 보인다. 분명 사람의 형체다. 분명히.

10걸음, 사람, 사람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다! 이때까지 느꼈던 공포는 온데간데없어지고 반가움이 앞섰다.

"저기요! 당신도 이 곳에 떨어진 사람인가요?"

반가움도 잠시.

그 형체가 뒤를 돌자 나는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어서 와. 나."

분명 나와 같은 얼굴이다. 나와 같은 체격이다. 나와 같은 목소리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형체를 한 무언가다. 그렇지 않으면 말이 안된다.

"당황하지 마. 여긴 네가 만든 공간이잖아?"

내가 만들었다니 무슨 소리인가? 내가 내 스스로 가두었다고? 말도 안 된다.

분명 난 집으로 가는 길이었고, 집으로 돌아와서...

잠깐 집으로 돌아왔다고?

아니야 난 분명 그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이동된 거라고.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건 사실이 아니야.

내가 그랬을 리가 없어.

분명 사실이 아닐 거야.

이게 사실일리가...

사실이...

...

"부정해도 소용없어. 하지만 넌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그만큼 공포를 느꼈으면 포기해야 했어."

조용한 적막이다.

나는 아무 말도 이어가지 못했다.

맞다 이건 내 선택이다.

하지만 이건 내 선택이 아니기도 하다.

그래 사회가 잘못된 거야.

분명 나만의 잘못이 아니야.

사회가 살기 좋았다면 나는 이런 선택도 안했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그럼, 계속 부정해. 현실은 바뀌지 않으니까. 그리고 말을 듣지 그랬어, 너를 말리던 소리가 얼마나 많았는데."

이 말을 끝으로 내 형체를 한 무언가는 사라지고 나만 남았다.

그 형체가 있던 자리는 피가 흥건했고 무언가 떨어진 듯한 자국만이 남아있었다.

"하하. 내 선택의 말로가 결국 이딴 공간에서 떠도는 거라니.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구나."

곧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지더니 온통 하얀 공간이 되었다.

여기서 얼마나 지내야 하는 것일까?

10년?

100년?

1만 년?

1000만 년?

40억 년?

100억 년?

1000억 년?

혹은 그 이상?

점점 커지는 시간의 단위와 함께 머리도 새하얘질 듯하다.

하지만 정신은 매우 또렷하다. 잠도 오지 않는다. 배고프지도 않다. 때려도 아픈 느낌이 없다.

나는 이곳에서 탈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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