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냄새가 나는 방에 젊은 남자가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다.



남자의 손에는 차게 빛나는 수갑이 채워져있었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리더니, 험상궂은 인상의 중년 사내가 저벅저벅 방으로 걸어들어왔다.



사내가 손에 들고있던 파일철을 책상 위에 휙 던져버리더니, 젊은 남자의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너 이 미친새끼."



사내가 대뜸 젊은이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멀쩡하게 생긴놈이 왜 갑자기 길에서 사람을 죽여!"



그가 책상을 탕때리며 벌떡 일어났다. 분을 참지 못해 씩씩거리는 모습이었다.



"죽은 이가연, 네 여자친구라면서? 이 새끼 완전 또라이새끼아냐!"



사내가 자리에 앉아있는 젊은 남자에게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



'띠리리리'



사내의 외투 주머니 안에 있는 휴대폰이 울렸다.



"예, 반장님. 아뇨아뇨 때리려던 건 아니고. 네 알겠습니다. 네네."



사내가 통화를 마친 후,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길게 한숨을 내쉰 그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사내가 책상 위에 있는 파일철을 집어들었다.



"반갑다. 임마. 내 이름은 김대건 형사다. 너는...어디 보자, 이름 박대영, 나이 24세. 한국대학교? 이야 이놈 공부도 완전 잘하네."



김대건 형사라고 자신을 밝힌 사내가 파일을 다시 책상 위에 집어던졌다.



"근데 이 사지 멀쩡하고 공부도 잘하는 앞 길 창창한 놈이, 갑자기 대낮에 여자친구는 왜 죽인거야!"



김형사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다시 윽박질렀다.



얼마 후, 그와는 달리 시종일관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박대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진..."



"뭐?"



"사진이요."



"사진이 뭐!"



대영이 영문모를 소리를 하자, 김형사가 다시 화가난 듯이 소리쳤다.



"형사님, 그거 아십니까? 사진을 함부로 찍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이 새끼가, 지금 네 여자친구 왜 죽였냐고 묻고 있는데 무슨 헛소리야!"



김대건의 목소리가 또 다시 커졌다. 그러나 맞은편에 앉아있는 대영은 마치 얼음처럼 고요하다.



"이유를 지금부터 말씀드리려는 겁니다."



"하! 참나. 그래 한번 들어나 보자. 사진이 뭐 어쨌다고?"



"사진은..."



순간, 대영이 고개를 치켜들어 김형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사진은 영혼을 가둡니다."



"뭐...? 뭐라고?"



대영의 눈빛에 깃든 광기를 본 것일까? 산만한 덩치의 김형사가 순간 움찔하는 게 보였다.



"제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입니다."



대영이 수갑찬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상대성 이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상대성...뭐?"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같은 대상의 시간도 다르게 측정됩니다."



김형사의 입이 헤벌어졌다.



"여기서 저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엄청난 속도의 관찰자가 포착한 대상의 시간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걸까?"



대영이 자신의 양 엄지와 검지를 펴서 사진찍는 제스처를 취했다.



"사진은 빛입니다. 빛이 나를 포착한다면, 나의 운동 상태와 시간은 빛에게는 어떻게 보이는 겁니까?"



"그...뭐?"



"이 의문에서 시작되었지만, 의외로 답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대영의 눈이 갑자기 초점을 잃은 듯 흔들렸다. 수갑을 찬 그의 손이 앞으로 점점 뻗어나왔다.



"그 분을 만나고 나서 알았습니다. 사진이 포착하는 건 나의 시간이 아닙니다. 나의 영혼, 나의 정신, 나의 자아! 우리는 사진에 찍히면서 자신의 영혼을 소모하고 있는겁니다."



"미...미친놈. 지금 뭔 소리야!"



자기도 모르게 겁을 집어먹은 김형사가 주춤거렸다.



"형사님 그런 경험 없으십니까? 분명히 어딘가에 놀러가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뒤돌아서고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하는."



"무...무슨"



"갑자기 사진첩을 보면 기억이 났을 겁니다. 아니, 사진을 봐도 '이곳이 어디지?'하는 의문을 가진 경우도 많았을 겁니다."



대영이 의자를 앞뒤로 흔들었다.



"답은 영혼입니다. 사진을 찍히는 순간, 내 영혼의 일부가 포착되어 사진에 남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엄청난 사실을 사진기를 발명한 사람, 지금 사진기를 판매하고 있는 기업들은 철저히 숨기고 있습니다!"



의자를 흔드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 분이 아니었으면 저도 몰랐을 겁니다! 아! 나의 영혼이 사각형의 틀 안에 갇혀있었다니, 가엾게도 말입니다!"



"어이!"



"현대 사회에서 왜 갑자기 치매가 생긴 걸까요? 내 영혼, 내 기억이 왜 갑자기 날아가는 걸까요!"



"어이, 이자식이 듣자듣자하니까!"



정신을 차린 김형사가 책상을 탕 두드리며 다시 벌떡 일어섰다.



"미친놈아! 네 여자친구를 왜 죽였는지 설명하라니까 아까부터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있어!"



"그 여자는!"



김형사의 외침에도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대영이 목소리를 높이며 그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대영의 눈이 아까보다 1.5배는 커져있는 느낌이 들어, 김형사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 여자는 내 영혼을 훔쳐가려는 도둑년이었습니다."



"뭐...?"



"형사님 혹시 그런 거 보신 적 있습니까? 심령사진이나, 어떤 사람이 자기 애인에게 항상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으라고 강요했다는 괴담 같은 것 말입니다."



대영의 목이 왼쪽으로 45도쯤 기울어졌다.



"그렇습니다. 남아있는 사람의 영을 보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남의 사진에 다시 포착되어버린 영이 있는 겁니다."



목이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45도 기울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겁니다! 저는 그 여자에게 감쪽같이 속았을 겁니다! 하마터면 내 영혼을 그 마녀에게 빼앗길 뻔 했습니다! 아, 이제 사진을 찍으시면 안 됩니다! 형사님, 당신의 영혼도 어딘가를 헤매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추억이라는 이름에 속으면 안됩니다! 사진을 금지해야합니다!"



대영의 목이 이상한 각도로 마구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자도 덩달아 앞뒤로 덜컹덜컹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으면 안됩니다! 사진을 찍지 마십시오!"



대영의 목소리가 커지자, 취조실의 불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야! 김재필! 들어와서 이새끼 진정시켜!"



그 모습을 보고있던 김형사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등 뒤의 거울을 쾅쾅 두드리며 소리쳤다.



취조실의 문이 열리고, 젊은 경찰 두 명과 나이든 경찰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젊은 남자 둘이, 어느새 체념한 듯 조용해진 대영을 밖으로 끌어냈다.



"내 말을 들으셔야 합니다."



그는 끌려나가면서도 김형사에게 경고를 건넸다.



"미친놈이구만. 저런 놈 붙잡고 얘기해봤자 소용없어."



"네, 반장님."



"수고했네. 밥이나 먹으러 가지."



김형사가 힘없는 목소리로 답하자, 취조실에 함께 남아있던 반장이 그의 등을 툭툭 두드리고는 밖으로 나갔다.








30분 후, 근처 백반집에서 밥을 먹은 두 사람이 다시 경찰청으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시끄럽게 웅성거리고 있었다.



밖에서는 구급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최경사, 이게 무슨일인가?"



반장이 아까 대영을 연행해갔던 젊은 경찰 중 한명이 보이자, 그를 붙잡고 물었다.



"아, 반장님! 안그래도 아까 전화 드렸는데 왜 안받으셨습니까?"



"어 미안미안, 무음이라서 못 봤네. 무슨 일인데 그래?"



"박대영, 그 미친놈이 자살했습니다."



"자살?!"



옆에서 듣고있던 김형사가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아 네, 그 다름이 아니고. 박대영 그놈을 아까 연행한 다음이었습니다."



최경사가 한 손으로 땀을 닦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머그샷을 안 찍은 상태라서 머그샷을 찍으려고 했죠. 그런데 그놈이 얌전히 있다가, 갑자기 머그샷을 찍는다니까 미친듯이 날뛰는 겁니다. 사진은 찍으면 안 돼! 사진은 찍으면 안 돼! 하면서요."



최경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벽에다가 머리를 마구 박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희가 말릴 틈도 없었습니다. 어찌나 세게 박아대던지, 손쓸 틈도 없이 목이 꺾여서 죽어버리더라고요. 아까 나간 앰뷸런스가 그놈 싣고 나간겁니다."



"그럴 수가..."



김형사가 다리에 힘이 탁 풀려, 하마터면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나왔어."



"오늘은 생각보다 일찍 왔네? 살인범 잡았다더니."



김형사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자, 그의 와이프가 거실에 앉아있다가 인사를 건넸다.



"뭐, 그렇게 됐어. 그것보다, 지금 뭐 보는 거야?"



아내가 거실 바닥에 뭔가를 펼쳐놓고 있는 모습을 본 김형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 우리 신혼 때 앨범. 다음에 우리 여름휴가 어디로 갈지 알아보고 있었잖아? 우리 신혼여행 어디로 갔었는지 호텔 이름이 전혀 생각이 안나지 뭐야...여보? 여보? 무슨 일 있어?"



김형사가 갑자기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주저앉자, 당황한 아내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우리...갔던 호텔...어디지?"



김형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구원을 바라듯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축축하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장편 연재작 : 샐러리맨 이규성 시리즈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