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참 재밌습니다."




"네? 뭐가요?"




남자가 불쑥 말을 꺼내자, 여자가 어리둥절한 말투로 물었다.




"근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인데도, 사람들은 TPO(Time, Place, Occasion)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자, 남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어나갔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세정씨가 지금 길을 걷고 있는 중입니다. 갑자기 팔에 문신을 한 낯선 남자가 세정씨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하는 거죠.


'요 앞에 있는 의자에 잠깐 앉아보시겠습니까?'라고. 그러면 세정씨는 따라가서 앉을 건가요?"




"아뇨. 당연히 따라가지 않죠."




세정이라고 불린 여자가 자리에 누운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이 남자를 만난 장소가 미용실이라면 달라질 겁니다. 처음보는 남자, 팔에 문신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세정씨는 기꺼이 그가 안내한 자리로 가서 앉을 겁니다."




"당연하죠. 미용사라는 뜻인데요."




여자가 대꾸하자, 남자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남자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상황에 따라 같은 행위가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겁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나직해졌다.




"제가 얼마전에 스위니토드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혹시 아십니까?"




"아뇨. 제목은 들어본 것 같은데. 내용은 정확히 모르겠네요."




"간단히 말하면 복수극입니다. 신세를 망친 이발사가, 자신에게 면도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죽여버리는 겁니다."




남자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날카로운 면도칼로 목을 슥-그어버리는 거죠. 그가 이발사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사람들은, 그를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의심없이 의자에 앉았다가 덜컥 당해버린 겁니다."




"네..."




조금 어지러운 듯이 세정이 답했다.




"왜 사람들은 낯선 것, 낯선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면서, 특정 TPO에 한해서는 마음이 너그러워 지는 걸까요?"




남자가 손가락을 탁탁 튕겼다,




"그것이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지요? '이런 시간, 공간, 상황에서 만나는 사람은, 비록 낯선 사람이지만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이다.'라는 사회적 약속이 있기 때문에, 낯선 사람도 덥석 믿어버리게 되는 걸겁니다."




남자가 연극을 하듯 말을 이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마사지를 받으면서도 릴렉스 할 수 있는 거겠죠.


마사지사가 언제든 돌변해서 자신의 목을 조를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요리사는 어떻지요? 당신이 먹을 음식에 요리사가 독을 탈 수도 있는데요.


생각해보니 웨이터도 마찬가지군요.


들고 있던 접시에 몰래 청산가리를 툭툭 뿌리기만 해도 끝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들의 서비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아무 의심도 하지 않습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고조되었다. 세정은 점점 표정이 일그러졌다.




"사람들은 길을 지나가다가 마주치는 낯선사람은 조심하고, 심지어는 적대적인 모습까지도 종종 보입니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내가 볼땐 길에서 마주치는 부랑자나, 미용사나, 마사지사나, 요리사나, 웨이터나, 전부 본질적으로는 다른게 없는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그런...말..."




'을 당신은 이 상황에 왜 갑자기 하는 거예요?'라는 말이 세정의 목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녀의 입에 마스크 같은 것이 씌워져버렸기 때문에, 그것이 소리가 되어 나오는 일은 없었다.




"10부터 거꾸로 세 보십시오."




남자가 평온한 얼굴로 세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10을 미처 세기도 전에, 차가운 가스가 폐속에 스미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