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정신을 차렸다.


- 그래서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앞에서 낄낄 거리는 웃음을 섞어 말하는 남자의 말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내가 뭐하는 중이였더라'


조금씩 어질어질한 세상 속 몇 가지가 보인다.

어둑한 실내, 불빛, 탁자, 철판과 익어가는 고기. 그리고 삼삼오오 불빛 아래 모여 앉은 두 세명의 사람들

그제야 어렴풋이 기억이 돌아온다.


아 인터넷 모임. 회식. 많이 해왔던. 어쩌면 마지막


단편적으로 뜨문 뜨문 떠오르는 기억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회식 이구나. 근데 왜 마지막이지?


얼굴을 찌푸리고 상념에 빠져드려던 때에 앞에 있던 넉넉한 몸집의 와이셔츠와 양복을 입은 자가 말을 했다.


- 부장님? 아직 괜찮으세요?


진심으로 걱정되어서 물어보기보다는 웃음과 같이 말하는 투가 마치 놀리는 듯하다.


- 응..ㅇ. 어.



입을 열어 대답하긴하지만 머릿속을 거친 생각이 어눌하게 입을 거친다.

이에 갑자기 앞에 앉은 남자가 불쑥 몸을 들이 밀더니 코앞에서 내 눈을 뚤어져라 쳐다보았다.


감정없이 딱딱히 굳은 듯한 마치 마네킹과 같은 얼굴로 계속해서 내 눈을 바라보다 이내 다시 실실 웃는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가며 말을 했다.


- 어휴 딱 보니까 회식날도 오늘이 마지막 맞네요. 어쩐지 부장님이 오늘 나 꼭 보고싶다고 불러낸 이유가 있었구나.


내 건너편의 웃는 남자는 말을 하며 젓가락으로 다 구어진 고기 몇점을 집어 내 그릇으로 옮겨준다.


- 먹어요 부장님. 먹는게 남는 거잖아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젓가락을 들어 고기를 집으려해보지만 자꾸만 어지럽고 초점이 흔들려 젓가락은 고기를 벗어나기만 한다.


- 그릇째로 잡고 쓸어넣듯이 먹으세요 그게 더 쉬울꺼에요


이에 그가 시키는 대로 그릇을 들어올려 입안으로 밀어넣는다.

무언가 익숙한 맛이다. 그리고.. 색다른..


무언가 이상함을 곱씹어 보기도 전에 앞의 남자는 계속해서 재잘재잘 떠든다.


- 솔직히 전 그래도 여기서 부장님이 사장님까지 올라갈 줄 알았다니까요? 솔직히 여기 오기 전에 경력만 없었어도 끝까지 올라가는 것도 노려 봄직 했는데 말이죠

회식도 저 없이도 많이 하셨잖아요. 어휴 그러니까 그렇게 빠르게 올라가지. 솔직히 저 부장님 그렇게 회식하면서 진짜 멀쩡해보여서 생각했죠 아! 이사람 어쩌면 최고까지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저 혼자 큭큭 거리며 이야기하는 남자는 열기에 취한듯이 허공에 주먹질 하며 말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불판에 있는 고기를 한점 집으려다 젓가락을 떨어뜨린다.


손을 내려다 보니 손이 벌벌 떨리고 있다.


갑자기 뚝 끊긴 대화소리에 앞을 보니 앞의 남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가 나를 보고 있다.

그렇게 몇초가 지났을까 주변사람들은 다시 저들의 테이블에 신경을 쓰며 대화하기 시작하였고 앞의 남자는 이제는 굳은 미소를 유지한체 작게 혼자말을 했다.


- 진짜 마지막인가 보네..


그렇게 몇 점 남지 않는 고기를 서로 침묵속에서 해치우자.

이번에는 매우 심각한 얼굴을 한 체로 앞의 남자가 얼굴 만큼이나 굳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 부장님 이제 더이상 회식 못하시는, 아니 퇴사하실꺼죠?



나는 그말을 듣고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정신을 차린지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단편적으로 떠오른 자잘한 파편들 말고는 하나도 기억이 없다.

그것 말고도 어지럽고 이따금 구토감에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발작하듯 떨리곤 한다.


누가봐도 정상적이지 않은 몸이다.


고개를 끄덕이자 앞의 남자가 말한다.


- 그럼 손들고 직원 부르세요. 퇴사한다고 말하고 마지막으로 원하시는 거 먹고 끝내도록하죠


이에 수시로 떨리는 손을 들자 저 멀리서 직원이 다가온다.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조명 바로 위에 얼굴이 위치해 있어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마치 목 위로 얼굴이 없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 오늘, 제가. 퇴사합.니다.


잘 움직이지 않는 입이였지만 이번만큼은 최대한 똑바로 이야기하려 힘쓴다.


가만히 멈추어 있는 직원을 바라보고 있자니 충격을 받은 것인가 싶다.

이내 직원이 단말기를 내민다.


카드를 찍으라는 것인가 싶어 품속을 뒤지지만 양복 주머니와 바지, 어디에도 카드, 신분증, 지갑은 보이지 않는다.


- 부장님!


작게 외치는 목소리에 앞을 바라보니 앞의 남자가 자신의 목에 걸린 사원증을 집어들고 살짝 흔들어보인다.

이에 고개를 내려 내 가슴팍을 바라보니 목에 줄로 연결되어 있는 사원증이 보인다.


네모난 모양의 플라스틱을 집어 떨리는 손으로 단말기에 가져다 대니 '이사님. 퇴사. 마지막. 메뉴. 롱포크(이사)' 딱딱한 기계음이 흘러나온다.


이에 작은 탄성 소리가 여기 저기서 흘러 나온다.

내 앞에 앉은 남자도 감탄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사.. 마지막에 그래도 이사를 다셨네요. 와...우리쪽에서는 처음이실껄요..


이에 직원은 확인이 끝났다는 듯이 뒤돌아 어둠 저편으로 사라진다.

이대로 기다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직원은 은쟁반을 한손에 받쳐 든체로 다시 돌아왔다.

탁자에 내려놓은 쟁반에는 6점의 고기가 놓여져 있었다.

이에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집게를 들어 고기를 굽는다.


고기를 해치우는 동안 역시 앞의 사내가 재잘재잘 이야기를 시종일관 이어나갔다.


- 저는 부장님이 저 여기 처음 데려왔을 때가 아직도 생각난다니까요. 이런 곳이 있었다니. 절차나 규칙이 좀 뭐랄까 놀랍긴했는데 그것도 익숙해지니 그려려니 하는 것 있죠 하하하


그렇게 이야기가 테이블 위로 흐르고 또 흐르고 흘러 어느새 메마르고 넓디 넓은 검은 공간 곳곳 밝혀진 불빛 아래 남자와 나밖에 남지 않았을 때

나는 앞의 남자를 일으켜 세웠다.


머리는 깨질 듯 아프고 세상이 빙빙 돌고 구토감이 밀려오지만 의식 저편에서 잠깐씩 떠올랐던 기억 파편 덕이였을까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순간도 금방 끝날 것이라는 것도.


- +과장 잘가.게


순간 꺼낸 말에 충격이라도 먹은 것일까 가만이 서 있던 남자는 이내 웃어보이며 말했다


-그래도 마지막에 기억하셨나보네요. 이야 정말 그렇게 회식하시고도 마지막에 이렇게 기억도 하며 가시는 분 많지 않은데


- 그.건 내가 더 잘 알.지


- 네? 하하하 뭐 그건 그렇죠


마지막 몇마디를 주고 받으며 가게 앞 문까지 나아가던 나와 남자는 문 앞에서 멈추어선다.


- 그럼 부장님. 아니지 이제는 이사님이지 어휴 이게 입에 붙어버렸다니까요 하하 어찌되었든 다음에 이번에 말한 새로운 사원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는 문지방을 넘고 나는 그대로 가게에 남아 있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이 깊어 저 혼자 계속 서 있는 것을 보고 말한다.


- 나를 대접해.도 괜찮네. 따로 두 점 정.도는 괜찮겠지.


카운터를 바라보자 얼굴없는 직원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제서야 문을 넘어간 남자는 웃으며 말한다.


- 하하 역시 부장님은 다 알고 계시네요 그럼 이만


그렇게 그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내려 땅을 보자 뒤 주방 쪽에서 칼을 손에 쥔 형체가 다가오는 것을 길게 늘여진 그림자로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