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쓴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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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야우중 (1)추야우중 (1) 秋夜雨中 秋風惟苦吟, 擧世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孤雲 崔致遠 가을 바람 괴로이 읊는 맘, 세상에 내 속을 아는 이 없고. 창 밖에는 늦은 밤비, 등불 앞 만 리 떨어진 마음. -고운gall.dcinside.com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napolitan&no=9881
[인간종의 격리는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1)이것이 결론입니다. _ (목청을 가다듬는 목소리.) 진화사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대 600만 년 정도의 계보를 가지는 생물종의 경우, 못 해도 2~3개의 아종을 가집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 (이것gall.dcinside.com그래서 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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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존재할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렌델>, 존 가드너,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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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지금부터 내가 써야만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는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스피드런 유튜버의 생방송을 틀어놓고 천장을 쳐다본 적이 있었다. 그 게임은 나도 할 줄 아는 것이었고, 맵의 어느 위치에서 글리치를 써야 하는지 대충 외우고 있었다. 머릿속에 그런 것들이 많았다. 그러니까, 대충 벽에 비빈다 거나 혹은 들이 박는 것. 현실에도 글리치가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백룸에 클리핑되는 것마냥.
친구와 그런 농담을 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 태어날 때, 캐릭터 생성창에 적혀 있는 스테이터스와 같이 ‘상태창’이 눈 앞에 보였으면 좋겠다고.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헬스장을 갔다가 오면 “미션 완료”라는 알람과 같이 경험치를 얼마나 획득했는지 구체적인 수치가 떴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보면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두문불출하며 웹소설을 25,000편을 넘게 읽었다. 이세계로 떨어지는 방법도 다양했다. 진짜로 일어난 일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은 다 똑같았지만. 나밖에 읽을 수 없는 글과 나만 알고 있는 문자로 5,700자가 넘는 소설을 여기에다 적어 봤자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점을 알았을 때는, 이미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상태창’을 외쳐 본 뒤 였다.
혹시 주변에 종이 쪼가리라던가. 읽을 수 있는 표지판. 혹은 무엇이 되었건 간에 내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을 ‘정보’를 찾아 헤맸지만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규칙서를 쓰기 위한 최초의 희생자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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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마물들의 세계로 점점 더 깊숙히 들어갈 수록, 지능이 올라가는 마물들. 그리고 험준해지는 지형 덕에 잡아 먹을 야생동물도 없었기에 감정을 가지고 의사소통을 나누는 마물들을 잡아 먹어야 했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나는 기억하고 있다.
사실 그 소설(이라고 부르기는 힘들겠지만)을 이렇게 오래토록 기억하고 있는 건 확실히 기이한 일이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려니 보르헤스의 한 단편에 나온 ‘초기억증후군’을 앓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또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만 알고 있는 언어로, 나만 알고 있는 세상에 대해 생각하며, 나만 읽을 수 있는 글로 무언가를 계속 남기고 있다. 지금까지,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들을 만난 적은 없다. 내가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표정은 오직 두려움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두려움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내가 사는 세상의 기준이었으니까.
나는 내가 살아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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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서의 초안을 작성하기 위해 나는 수많은 고민을 했다.
만약 나와 같이 이곳에 도달한 이들이 있다면, 탈출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혹은 최소한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물을 찾아라’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다. 이곳의 장르를 파악해라. 도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여기는 우선 백룸도 아니었고, 대교도 아니었다. 수족관도 아니었고, 박물관도 아니었다. 아스팔트로 뒤덮혀 있는 길도 아니었고, 단지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들로만 가득했다. 장소 자체가 괴이인가?
난 괴이라는 말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어떠한 의도조차 느껴지지 않은 채, 그저 존재할 뿐인 장소에 내던져진 기분은 정말이지
부조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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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단 죽였다. 먹을 수 있는지 판단이 가지 않아서, 일단 불을 피워보려고 했다. 이곳에도 나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나는 한참이고 쭈그리고 앉아 나뭇가지를 비볐다. 내가 알 수 있는 거라고는 이곳의 ‘나무’로는 불을 피우기가 참 어렵다는 것 뿐이었다. 뼈와 살을 분리하는 것조차 나는 힘들어서, 내가 가져온 물건들 중에 날카로운 것이 없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여기에 오기 위해서 칼을 들고 다닐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돌’은 목숨을 빼앗기에 충분히 날카로웠다. 내가 그것을 ‘돌’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한 것은 단지 내 손으로 부술 수 없을만큼 단단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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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따옴표를 붙히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적어도 ‘인간’이 여기에 도달한다면, 누구나가 보아왔고 또 익숙할만한 것들에 비유하는 방법으로 이름들을 붙여나가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눈 앞에 보이는 강가 옆의 움막은 내가 지은 것이고 원래는 동굴에 늑대들이 살고 있는 곳을 뺏어서 살고 있었다. 누워서 자는 도중 박쥐들의 습격을 받았고, 눈을 잃을 뻔 했지만 간신히 빠져 나왔다. 불을 피우는 방법을 알아 냈고, 창과 활을 만들었다. 화살대와 화살촉의 재료는 사슴의 뼈와 뿔을 갈아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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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의 바람은 춥다. 나는 여기의 계절을 어떻게 이름 붙여야 할 지 한참 고민을 했지만 4개로 나누기가 쉽지 않게 느껴졌다. 비를 자주 맞았고, 감기를 자주 앓았다. 감기를 앓는 동안 나는 기억을 몇 번 잃었다. 단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건 나는 ‘인간’이고, 아직 글을 읽고 쓸 수 있으며 혼자 생각할 수 있다는 정도이다. 그래서 표지판을 많이 세워 두었다.
나는 한글과 영어 밖에 쓰지 못 하니까, 발이 닿는대로 그리고 기억나는대로 이런 저런 것들을 적어 놓았다. 이를테면 늑대들을 잡아 죽였던 동굴 앞에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
- 박쥐는 불을 무서워하지만, 불을 들고 들어가면 위험하다.
사슴들을 잡아다가 뼈를 발라냈던 늪에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
- 사슴이 내는 소리를 우리는 알아 들을 수 없고, 여기에 도착했을 때 당신은 배가 매우 고플 것이다.
아. 개구리들도 있었다. 나는 입고 온 옷이 다 헤져버렸을 때, 개구리들의 가죽을 벗겨다가 입고 다녔다. 개구리들이 모여 사는 곳 앞에 나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
- 숨어 있다가 한 마리 씩 낚아챈 다음 목을 부러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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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죽였답니다.”
“그래?”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것 같았는데,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서 처리했습니다.”
“고생했네.”
“그리고… 짐에서 조금 이상한 것들을 찾았습니다.”
“태워버리게.”
“그런데 좀… 많이 특이합니다.”
“무엇인지 별로 알고 싶지 않네.”
“두꺼운 책이 있고, 빼곡하게 무언가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지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알아볼 수 없는 문자와 함께.”
“다른 무리가 있는 건가?”
“알 수 없습니다.”
“… 해독할 수 있겠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흔적을 되짚어 갈 수 있겠는가?”
“흉흉한 소문들이 워낙 많았어서…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런가.”
장로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 보았다. 전사는 그의 표정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만약, 아직 숨어 있을 나머지 괴물들을 찾아 멸하라고 명한다면 부족은 어렵지 않게 그것을 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점이라면, 그것들이 어디에 숨어 있느냐는 점이었다. 냄새를 쫓을 수도 없었고, 발자국도 쉬이 남지 않았다.
“어디에서 그것을 죽였는가?”
“… 용 입니다.”
“그곳에 숨어 있었던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초록빛으로 불타고 있었습니다.”
전사의 눈빛은 마치 그곳을 바라보는 듯 아득해졌고, 장로는 마주 앉은 청년의 시선을 읽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괴물의 무료함을 읽을 수 있었고, 미칠듯 한 심심함을 읽을 수 있었다. 몇 번이고 청년을 살려준 악의를 느낄 수 있었다. 어째서 전사가 몇 해오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흉흉한 소문들이 부족의 목을 죄어 왔으며 바람이 바뀌어 불었는지. 그리고 형태를 잣는 자들이 짐을 꾸려 도망치듯 떠났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왜 말하지 않았는가?”
“말하기에는 너무 길었으니까요.”
“그래서 감히 보여준 건가, 내게.”
“장로님이 그래 왔듯이.”
장로는 한숨을 쉬면서 짐보따리를 건네 달라는 손짓을 했다. 전사는 일체의 망설임 없이 책상 위에 그것을 올려 놓았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저를 좀 더 들여다 보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괴물이 쓴 책을 해독할 수 있겠는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 책을 쓰는 괴물이라. 그런 건, 인간의 것인데.”
“스스로 인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지도.”
꺼림칙한 표정의 두 사람 사이엔 수액이 끓어 올라 장작이 갈라지는 소리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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