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피투성이 중년 남성이 결박되어 있었다.
굵기가 손가락 세 개를 합쳐놓은 것은 족히 되어 보이는 밧줄이 그의 몸통을 칭칭 감아 포박한 상태였다.
그의 열 손가락 밑에는 압정이 박혀져 있었고, 입과 입술에서도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끔찍한 고문을 당한 그의 이름은 보그피어였다.
그의 맞은편 의자에 짧은 금발 머리를 가진 검은 양복의 젊은 남성이 마주 앉는다.
한 손에 권총을 쥔 채 여유롭게 말을 건네는 그의 이름은 폴이다.
폴 : "이제 말할 생각이 좀 생겼어?"
보그피어가 거친 숨소리를 흘리며 애걸을 하듯 말하기 시작한다.
보그피어 : "후욱... 후욱... 제발, 내 얘기를 들어줘,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
보그피어 : "제발, 제발 부탁이야.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응?"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폴이 말한다.
폴 : "좋아 보그, 네 헛소리를 들어주도록 할게. 대신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폴 : "이번에도 내가 원하는 걸 말해주지 않는다면 네 머리에 총구가 뚫릴 테니까 잘 생각해.'
헐떡이던 숨을 고르고 그가 말하기 시작한다.
보그피어 : "알다시피 과거 마피아들끼리의 항쟁이 격해지자 막심한 피해를 입은 조직의 보스들끼리 합의점을 찾아 나섰어."
보그피어 : "마침내 조직원들의 충돌을 최소화하고 보스끼리 게임을 통해 담판을 짓는 암묵적 룰이 생겨났었지"
보그피어 : "우리가 있던 시칠리아 섬도 예외는 아니었지, 그 당시 우린 젊은 조직이었고..."
보그피어 : "안토니오와 나는 각각 조직의 두목과 부두목이었지."
보그피어 : "아, 우리의 고향 시칠리아는 마피아들의 본고장이자 정말 아름다운 섬이었지, 그곳에선..."
철컥-! 폴이 보그피어의 미간에 총구를 가져다 댄다.
보그피어 : "아... 아...! 알았어 알았어...! 쓸 데 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 그냥 옛 생각이 나서 그랬어...!"
보그피어 : "근데 지금부터 해야 할 이야기는 정말 중요한 거라 그래...!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한 번만 들어줘, 제발..."
보그피어 : "제발.. 한 번만 인내심을 가지고... 응?..."
총구를 거두자 그가 다시 말한다.
보그피어 : "아무튼 젊은 우리는 나름 승승장구하며 한참 잘나가고 있었어. 그 녀석 데릭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야."
보그피어 : "포커 게임이니까, 어느 정도 운과 실력이 받쳐준다면 연승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어."
보그피어 : "근데, 그 녀석은 이상했어. 단 한 번도 지지 않았지. 웃기지 않아? 무패의 갬블러라니 있을 수 없잖아!"
보그피어 : "데릭은 파죽지세로 다른 조직들과의 겜블에서 승리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섬의 이권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어."
보그피어 : "그리고 그 돈으로 다시 다른 조직들을 매수하며 섬의 절반가량을 먹어치웠지."
보그피어 : "나와 안토니오는 그 녀석이 사기꾼이라 생각했어, 둘이서 놈의 사기극을 밝혀 내자! 그 뒤에 놈이 이곳에서 벌어들인 돈을 모두 빼앗자!"
보그피어 : "우리 두목인 안토니오는 자신의 목을 담보로 내걸고 경기에 임했어! 수많은 참관인들을 두고 결전의 날이 열렸지."
보그피어 : "섬에서 그의 영향력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를 적대시하는 수많은 조직들과 본토에서 온 참관인들까지 있는 마당에 무력으로 우릴 어쩔 순 없었을 테니까."
보그피어 : "우리는 놈의 사기극을 증명해 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어! 질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
보그피어 :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어, 몇 번이고 경기 중에 난입하고,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그 무엇도 발견할 수 없었어"
보그피어 : "우리를 비웃듯 데릭은 안토니오를 가지고 놀다가 처참하게 패배시켰어."
보그피어 : "아! 내 친구 안토니오는 결국 형장의 이슬... 아니 도박장의 이슬이 되어 그렇게 세상을 떠나갔지."
보그피어 : "살아남은 이들의 삶은 더욱 처참했어. 우리의 선택지라곤 데릭의 밑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을 핥거나, 섬을 떠나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어."
보그피어 : "나는 내 정든 고향을 떠나고 싶진 않았어, 하지만 내 친구를 죽인 원수의 똥구멍을 빨아 재낄 자신은 도저히 없었어."
보그피어 : "호기롭게 이 섬을 제패하겠다던 젊은 날의 패기는 온데간데없었지, 결국 나는 모든 걸 접고 스페인이나 프랑스로 가서 장사나 할 생각이었지."
보그피어 : "그날 밤, 나는 섬의 해안을 따라 걸으면서 보드카를 마셨어. 이곳을 보는 것도 마지막이란 생각에 눈물이 흘러내리더군.'
보그피어 : "아! 그런 내 앞에 안토니오가 모습을 드러낸 거야! 차디찬 달밤아래 피투성이가 된 내 친구의 모습이!"
보그피어 : "그 모습을 보고는 손발이 얼어붙으면서 두려움이 몰려왔고 나는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어"
보그피어 ; "쪽팔린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나도 사내이기 이전에 한 명의 사람이니까 무서웠다고!"
보그피어 : "미안해 안토니오! 끝까지 함께 하자 해놓고 나 혼자만 살아서 미안해!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내겐 아무 힘도 없었는걸!"
보그피어 : "안토니오는 무어라 중얼거리며 나한테 다가왔어, 그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 나는 계속 빌었어"
보그피어 : "너를 죽인 건 데릭이잖아! 제발 나한테 이러지 마! 우린 친구였잖아! , 그런 내 외침을 무시한 채 녀석은 앞에 서서 무어라 무어라 중얼거렸어."
보그피어 : "아!! 그제야 나는 들을 수 있었어, 그리고 볼 수 있었어. 안토니오의 눈에서 흐르던 그 원통함에 사무친 피눈물을!"
보그피어 : "녀석이 말하고 있었어! 데릭은 사기꾼이라고! 자기는 죽는 순간 그가 어떻게 사기를 치는지 봤다고!"
보그피어 : "안토니오는 숨이 끊어지는 순간 그 눈으로 본 거야. 분명 그날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 하나가 데릭에 뒤에 있었던걸"
보그피어 : "단지, 그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지."
보그피어 : "나와 안토니오는 함께 복수를 다짐했어, 나는 남은 조직원들을 규합하고 다른 조직을 하나씩 깨부수기 시작했지."
보그피어 : "승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 안토니오가 상대가 무얼 할지 전부 알려줬으니까."
보그피어 : "우리는 무섭게 세를 불려나가기 시작했고 우리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데릭과 충돌하게 되었지."
보그피어 : "아! 그날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 도박장에 들어선 순간, 나는 볼 수 있었어. 데릭의 뒤에 있는 그 녀석을!"
보그피어 : "그리고 안토니오는 그 녀석에게 달려들어 있는 힘껏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지."
보그피어 : "아, 데릭한테 날렸다는 말이 아니야. 귀신들은 산 사람한테 해를 끼칠 수 없거든, 생각해 봐 그러면 이미 세상이 개판이 났을걸?"
보그피어 : "안토니오는 데릭이 데리고 다니던 귀신과 몸 다툼을 벌이기 시작했어. 그때 데릭의 표정이 장관이었는데"
보그피어 : "아무튼, 우리 둘을 빼곤 참관인들 눈에는 보이지도 않으니 이제 와서 발을 뺄 수도 없었지."
보그피어 : "이 상황을 예상하고 충분한 각오를 마친 나와 패닉에 빠진 데릭, 승부의 결과는 당연했어"
보그피어 : "마지막엔 승리의 여신도 나를 향해 미소 짓더군. 7포카드로 데릭, 그놈의 숨통을 날릴 때의 쾌감이란... 정말 짜릿했지."
보그피어 : "그 늙은 여우가 발악하는 것을 너희도 봤어야 했는데 말이야... 우리의 복수는 통쾌하게 성공했어."
보그피어 :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지. 안토니오를 이용한다면 나는 게임에서, 아니 모든 싸움에서 무적이었으니까.
보그피어 : "다른 조직들을 차례차례 하나씩 굴복시키거나 포섭해 나갔고, 시칠리아 섬은 내 손에 떨어지게 되었지."
보그피어 : "아... 근데 거기서는 멈췄어야 했나 봐. 나는 본토까지 욕심을 냈고, 안토니오의 힘을 빌려 차례대로 본토에 이름있는 조직들을 흡수하기 시작했지."
보그피어 : "나 외에는 안토니오를 볼 수 있는 놈들이 없었으니까, 게임뿐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도 이점을 챙길 수 있었단 말이지."
보그피어 : "내 조직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갔지. 안토니오란 카드만 있다면 내게 불가능한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어."
보그피어 : "그러던 중 결국 남부에서 새롭게 떠오른 자네 조직하고도 엮이게 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보그피어 : "나는 네가 이렇게까지 막 나갈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폴 : "그래, 지루한 이야기 잘 들었다. 보그"
폴 : "이제 내 질문에 대답해 줄 차례야.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보그피어는 슬쩍 눈알을 굴려 땅바닥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머리에 구멍이 뚫린 참관인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보그피어 : "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이건 우리 마피아들의 오랜 전통이라고."
보그피어 : "이건 우리의 암묵적 규율을 깨부수는 행위야. 네가 지금 나한테 한 짓을 언젠가 너도 당할 수 있다는 거야."
폴이 같잖다는 듯 비웃으며 말한다.
폴 : "보그, 넌 정말 멍청하구나. 네가 거느린 조직이 정말로 네게 다 충성할 거라 생각하나?'
폴 : "너한테 악감정을 가진 놈들이 이 바닥에 몇이나 될 거라고 생각하지? 너한테 당한 다른 수많은 조직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폴 : "네가 크게 놀고 싶었다면 밑을 좀 더 잘 살피고 바닥을 탄탄하게 다지면서 갔어야지, 나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일을 벌이지 않아."
폴 : "적어도 네가 하는 같잖은 협박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지, 본론으로 넘어가자."
폴 : "네가 쓰는 속임수, 승률을 100%로 맞추면서도 어떠한 흔적도 안 남기는 그 속임수"
폴 : "그 방법을 내게 말해라, 그럼 적어도 오늘 여기서 죽진 않을거다. 나는 약속을 지키는 남자니까."
폴 : "운이 좋다면 널 노리는 다른 놈들을 피해 해외로 피신할 수도 있겠지"
보그피어 : "나는 다 말 했어! 내 이야기를 들었잖아! 방금 한 이야기가 전부 다 진실이라고!"
폴은 허탈한 웃음과 함께 담배를 한대 피기 시작한다. 입으로 연기 한 모금을 시원하게 내뱉으며 말하기 시작한다.
폴 : "하하핫!, 그래 그렇다면 어디 한번 귀신 친구를 증명해 봐!"
폴 : "가져와라"
딱! 하는 핑거 스냅 소리와 함께 그의 부하가 포커 카드를 폴에게 건네준다.
폴 : "자, 보그, 첫 번째 테스트다. 네 귀신 친구를 이용해 내가 가진 6개의 패 중에 다이아몬드 에이스 카드를 찾아봐라"
보그피어 : "물론이지, 식은 죽 먹기야. 안토니오! 안토니오! 빨리 내게 답을 알려줘!"
보그피어의 표정이 굳기 시작한다.
보그피어 : "안토니오,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냐고!"
무언가를 듣는 듯 그의 표정은 점점 더 사색이 되어간다.
폴의 표정도 점점 더 싸늘하게 변해간다.
보그피어 : "아아... 내가 미안해 안토니오! 나 혼자만 즐겨서 미안해! 이번 한 번만! 이번이 마지막이니 이번 한 번만 도와줘!"
보그피어 : "그래 안다고! 매일 같이 나만 좋은 술을 마시고 나만 여자를 만나고 나만 호화스러운 생활을 누리고!"
보그피어 :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너는 귀신인걸?! 내가 뭘 해줄 수 있었냐고!"
보그피어가 몸을 뒤흔들며 의자가 격하게 흔들린다.
보그피어 : "미안해 미안해! 전에 밥 먹을 때 귀찮게 굴지 말라 한건 진심이 아니었어!"
보그피어 : "그게 꼭 지금일 필요는 없잖아! 아냐, 아냐, 너는 도구가 아냐, 제발 부탁이야 우린 친구잖아!"
보그피어 : "나는 널 도구가 아니라 줄곧 친구라 생각해왔다고! 우리가 데릭한테 함께 복수했던 날들을 떠올려봐!"
보그피어 : "제발...! 제발...! 안토니오...! 나는 너를 이용하지 않았어...! 지금은 아니야...! 내가 나중에 다 사과--"
타앙-! 짤막한 총성이 울려 퍼진다. 단말마조차도 지르지 못하고 보그피어는 의자째로 뒤로 넘어간다.
탄환은 쐐기와도 같이 보그의 미간 정중앙을 정확히 꿰뚫었다.
폴은 권총을 허리춤에 집어넣는다.
폴 : "그만, 병신 같아서 더는 못 들어주겠군"
폴 : "말하기 싫다 하면 될 것이지 왜 싸구려 연극을 하고 지랄이야."
그의 부하 숀이 다가와서 묻는다.
숀 : "괜찮겠습니까? 놈이 쓰던 트릭을 알아내지 못했는데요?"
폴 : "그만큼 고문했는데도 저 지랄을 떠는 거면 처음부터 입을 열 생각이 없었던 거다."
폴 : "아니면 너는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거냐? 숀."
숀 : "죄송합니다. 보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숙여 폴에게 사죄한다.
폴은 의자에서 일어나 코트를 어깨에 걸친다.
폴 : "됐어, 그따위 트릭이 없어도 나는 내 방식대로 승리해 나가면 된다."
폴 : "시간 낭비만 했군, 뒤처리는 네가 알아서 해"
쾅-! 보스가 거칠게 문을 닫으며 밖으로 나가자, 부하들이 보그피어의 시체에 다가간다.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혼신의 연기를 다하는 것인지 그의 표정엔 한 맺힌 억울함이 서려져 있었다.
이게 왜 묻혔노 괴이대부 ㅊ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