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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손에는 종이 한 장을 구겨쥔 채, 미친듯이 숨을 헐떡이며 도망친 끝에 드디어 도달했다.

헛구역질이 나오고 폐는 찢어질 것만 같다. 복도를 달리는 내내 다리는 애초부터 힘이 빠진 느낌이었고 머리는 몽롱했다.

머릿속으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과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당신들이라고 나에게 일어난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제발, 누군가 나를 찾는 중이었으면.









나는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사실 내가 원인이 아닐까.

또다시 현실감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분명 약물 탓도 있으리라.









나는 그저 그런 루저의 삶을 사는 중이었다. 특출난 재능도 없이 학창시절에 공부조차 안하던, 그래서 스물 중반까지 아르바이트나 하던 삶.

아 맞다, 마지막에 했던 아르바이트가 이 모든것의 시발점이었다. 약 임상시험 아르바이트.

꽤나 높은 보수에 혹해서 제대로 읽지도 않고 지원했었는데, 병원에서 금식 후 신체검사 할 때까지만 해도 신나기만 한 상태였었지.









문제는, 시험 예정 시간보다 한참이 지난 후에도 아무런 통보조차 없길래 문의하러 병동을 돌아다녔는데, 연구실 내에서 내 이름이 들리더라는 것이다.

혈액형이 뭔가 특이하다 이런 내용이었는데, 연구실 내 목소리 중 한명이 말하기를 "이건 그 분이 찾던 신체조건" 이 아니냐고.

이게 도통 무슨소리지? 했지만 목소리 여러개가 문 쪽으로 다가오자 급히 병실로 돌아올수밖에 없었다.









조금 생각하며 살걸, 신경쓰며 살걸이라고 후회한다.
의사는 시작이 늦은 이유에 대해 얼버무리며 시험을 시작했고, 나는 그대로 의식이 꺼진거겠지.









그 후 처음 눈을 떴을때부터의 초반 기억은 파편처럼 깨져있는듯이, 조각조각 찢어진듯이 난다.

내가 아닌 그냥 누군가의 시점을 본 듯한, '그랬던 기억이 있다' 로만 기억이 난다.

입과 목이 너무 답답했던 기억이 나고, 손발을 움직이려던 기억, 그러나 팔 다리는 말을 듣지 않고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던 그 순간,

누군가 와서 내 입 속 목까지 들어가있던 호흡기를 고쳐넣어주던 그 순간.









다시 눈을 떴을때는, 처음과는 다르게 엄청난 수준의 고통이 가슴팍에서 느껴짐과 동시에 팔에서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

처음 눈을 떴을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내 팔이 침대에 묶인 광경이 보이자 몽롱한 와중에도 답답함과 공포가 밀려왔었다.

침대에서 탈출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 모든 감정들보다 자꾸 나를 짓누르는 몽롱함이었으리라.










일어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곳은 내가 있던 병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병원보다도 조금 더 차갑고 이질적인 이 곳은 오히려 과학 연구소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었다.

팔에 꽂혀있던 주사바늘들을 빼내면서 파악한 건 내가 누워있던 이 넓은 방에는 나뿐이 없었고, 옆에 탁자 위에 있던 형상화한 나비 모양이 인쇄된 파일에 들어있는 종이 네 장 뿐이 다라는 것.









분명 침대를 탈출하는 동안 소음이 몇번 일어서 누군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인데, 마취약 때문에 사고가 원활하지 못하던 나는 그 자리에서 종이들을 펼쳐 읽어보았다.

첫번째 장, 내 인적사항이 적혀있던 종이.
특수사항에 (-D-/-D-)라고 적혀있었지만 그 당시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두번째 장, 내가 의식이 꺼진 채로 강제로 시행된 수술 목록과 이상한 나비 모양 도장이 찍혀있는 종이.

세번째 장, 무언가 길게 쓰여있는 편지 형식의 글.
첫 번째 줄을 읽자마자 방을 빠져나오며 마지막 장의 내용을 확인했다.

네번째 장, 이 시설의 약도.









몇번을 휘청거리고 넘어질 뻔 했는지. 겨우 세미나실로 들어와 불 꺼진 텅 빈 방 안에서 문에 기대 나머지 내용들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문 유리 안으로 들어오는 바깥 조명에 비춰 읽으려니 없던 두통도 생기려는 느낌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 하며 당황했었지만,

내게 일어난 일 또한 이해되지 않았기에.

무한히 힘들고 어지러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역경을 딛으며

믿고, 또 믿으며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왔는데.




















나는 P가 방 안에 있든 없든 그에게 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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