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네가 많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몸이 무기력하고, 항상 피곤하거나 졸리고, 자꾸만 무언가를 잊어버린다고 했지?


병원에 가봤는데도 딱히 병이 있거나 이런 건 아니고 말이야.


내가 말했지. 의사들은 눈에 보이는 병만을 고칠 수 있다고


아마도 지금까지의 일들은 네 몸이 병에 걸려서 그런 게 아닐 거야.


남들이 하는 말 듣지 말고 내 말을 한번 믿고 따라봐.







1. 네 사진을 확인해 봐.


그것도 눈치라는 게 있으니 처음부터 대놓고 너의 가족사진 같은 곳으로 숨어들진 않아.


가급적 단체 사진이나 이런 게 좋아.


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에서 찍었던 반 사진 같은 거 있잖아.


없어도 상관은 없지만 만약 있다면 사진을 확인해 봐.


이질적인 느낌이 들며 이런 애가 있었나? 하는 녀석이 사진 속에 있을 거야.


그 녀석 표정을 잘 기억해둔 후 졸업앨범을 뒤져서라도 그게 누구인지 살펴보도록 해.


도저히 못 찾겠으면 사진을 한번 다시 바라봐.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다면 그건 분명히 무표정한 얼굴에서 웃는 얼굴로 바뀌어 있을 거야.


3번으로 넘어가.






2. 네가 사진을 하나도 안 남겨 놨을 수도 있어.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상관없어, 오늘 밤 12시 전에 꼭 잠을 자도록 해.


네가 이 메시지를 읽은 시점에서 너는 오늘 특별한 꿈을 꾸게 될 거야.


꿈속에서는 네 학창 시절을 볼 수 있을 거야, 꿈을 잘 기억해둬.


꿈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 네가 정말 처음 본다 싶은 사람이 있을 수 있어.


그냥 존재감 없고 그런 친구가 아니야, 위에서 말한 대로 그것은 눈에 확 띌 거야.


아마 반 아이들 중 유일하게 다른 교복을 입고 있을 거야.


그리고 그것이 너를 향해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지으면서 너는 꿈에서 깨어나겠지.


만약 네가 내가 말한 꿈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정확히 꿨다 그러면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아.


정 못 믿겠으면 너 스스로 과거를 계속 회상해 봐


무언가 이질적인 게 기억 속에 계속 끼어있을 거야.






3. 잘 들어, 그건 네 기억을 좀먹기 시작했어.


지금에야 잘 기억도 안 나는 학창 시절 한편의 기억이나 작은 추억, 혹은 떠올리기 싫어 묻어둔 기억들에 불과하겠지.


하지만 그건 암하고 똑같아, 빠르게 절제하지 않으면 네 가슴속에서부터 점차 퍼져나갈 거야.


과거의 파편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네 가족, 네 사랑, 네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차례차례 침식해 나갈 거야.


결국엔 너를 미처 버리게 만들거나 네 목숨을 앗아가겠지.


너도 어느 정도 각오를 해야 해.


암 수술 할 때 암이 퍼져버린 부분을 통째로 절제하는 건 너도 알고 있지?


그것이 비집고 들어온 기억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그놈이 너의 가장 중요한 기억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기 전에 말이야.







4. 무당이란 것들의 힘을 이용하려 하지 마.


혹시라도 네가 내 말을 듣고서는 무당이란 작자들한테 찾아가지는 않기를 바라.


가끔씩 나한테 이 말을 듣고서는 귀신에 씌인 줄 알고 무당을 찾아가는 경우가 있어.


정말로 용한 무당들은 십중팔구 네가 말하지 않아도 증상을 알아맞히고는 굿을 하자고 할 거야.


소용없어, 굿은 병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진통제를 있는 대로 갖다 때려 붓는 거야.


그걸 죽이거나 내쫓아주는 게 아닌 그저 잠에 들게 할 뿐이라고.


그 무당이란 놈들한테 넌 그저 계속 돈을 들고 찾아오는 호구에 불과해.


당장에는 호전된 거 같아도, 그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눈을 뜰 거고 너를 먹어치우며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고.


그리고 그것이 밑바닥에서 깨어나 다시 기어올라올 때는 힘이 너무 강해서 도저히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상황일 거야.


명심해야 해, 그것은 병도 아니지만 잡귀 따위도 아니야.


그것을 완전히 죽이거나 물리쳐내는 일은 불가능해.


너의 추억을 온전히 보전하면서 내쫓는 일은 더더욱.






5. 무당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신이란 작자들한테도 의존하려 하지 마.


네가 어떤 종교를 믿든 상관없어, 예수건 부처건 그들에게 기대고 의지하려 하지 마.


이건 너의 신을 부정하거나 그들을 깎아내리기 위해 하는 말이 아냐.


그들이 너를 어떻게 부르든, 심지어 아들이라 부른다 해도 그건 진심이 아니야.


생각해 봐, 너를 믿고 따르며 추앙하는 수십억 마리의 개미가 있어.


그래, 너는 기분이 좋아서 어느 날 과자 한 봉지 정도는 개미들에게 내어 줄 순 있겠지.


하지만 그 개미들 중 한 마리를 위해 피를 흘릴 순 없을 거 아니야.


마찬가지인 거야, 너의 신이 너를 아들, 자식이라 부르더라도 너는 수십억 개의 모래 알갱이 중 하나에 불과해.


그들이 너를 위해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해줄 거라 믿지 마.






6. 일단은 그것이 너를 얼마만큼 잠식했는지 확인해야해.


반드시 잠들기 전 10분정도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 


너가 그날 봤던 그것의 모습이 됐건, 너가 상상하는 그것의 본모습이든 상관 없어.


꿈 속에서 너는 밀폐된 방 안에 있을거야.


창문도 없고, 방문도 없고, 방 안에는 양초 한두개만 있어서 어두컴컴한 방 말이야.


그 안을 둘러보면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 책장이 있을거야, 그 책장에 끼워진 책들을 치워봐.


책장 너머로 과거의 너를 관찰할 수 있을 거야.


인터스텔라 알지? 전에 봤잖아, 딱 그느낌이야. 그걸 잘 봐둬.


네가 보게 될 너의 과거속에는 있어선 안될 인물이 하나 끼어있을거니까.


몸에서 검은 김을 모락모락 뿜어내는 그것은 과거의 너에게 엉켜 붙어서 네 추억들을 헤집어 놓고 있겠지.


내가 순화시켜서 말했을 뿐이지 그건 퍽이나 강렬한 장면이라 절대 잊어버리진 않을거야.


그리고 놈도 이쯤 되면 너가 자신의 존재를 인지했다는 걸 깨달았을 거야.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보다 신속하게 행동해야해.







7. 이제 그게 어떤 추억을 먹어치웠는지 알았으니 녀석이 들러붙은 과거를 지워내야만 해.


네가 가지고 있던 사진들은 모두 불태워 버려.


심령사진처럼 그 사진들 속에선 오직 너만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테니까.


이 시점부터 녀석을 쳐다보면 안 돼, 놈이 선명하게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는 걸 의미해.


너의 눈이 그것과 마주친다면 그건 더욱 빠르게 너를 집어삼킬 수 있어.


여기까지 오면 반은 온 거야, 자 이제 녀석이 낑겨 눌러앉은 추억이 어떤 추억이냐가 중요해.


운이 좋아서 그게 즐겁고 좋은 추억들 사이에만 눌어붙었다면 일이 정말 편해.


하지만 사람 인생이라는 게 즐겁고 좋은 일만 가득할 순 없다는 걸 너도 알 거야.


그리고 너에겐 즐거웠던 어떤 일들이 누군가에겐 끔찍한 악몽이었을 수 있어.


뒤에서 하나씩 설명해 줄게.







8. 6번에서 말한 것과 똑같이 행동하고 잠에 들어, 그래 그것의 모습을 생각하는 거야.


직접 보는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정도는 괜찮아, 겁먹을 것 없어.


너는 다시 그 방 안에 있을 거고, 전과 달리 그곳엔 두 종류의 물건들이 놓여 있을 거야.


그리고 분명히 책장 쪽에서 또 소리가 날 거야, 그게 어떤 소리건 관심 끄도록 해.


책장 너머는 전에 네가 봤던 것과는 달라. 더 이상 그곳에 네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만약 책들을 치울 경우, 너는 책장 너머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것과 눈을 마주치게 될 거야.


방에 있는 물건은 다음과 같아.


수정구 들


망치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감은 잡았을 거야.


그 수정구 속에는 네 추억이 비치고 있겠지, 있는 힘껏 망치로 내리찍어 부숴버려.


전부 쉽게 부서지면 정말 좋겠지만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것들이 있을 거야, 내가 위에서 말한 그런 것들은 쉽게 지워낼 수 없어.


그 수정구를 들여다봐, 어떤 추억이냐에 따라 네가 해야 할 일들이 정해질 테니까.







9. 너도 알다시피 사람이 기쁘고 좋은 일들은 의외로 쉽게 털어버릴 수 있어.


하지만 네 가슴속에 흉터가 남을 정도로 상처받은 일들이 있다면 쉽게 잊을 수 없지.


한번 잘 생각해 봐, 정말 그 일들이 네 목숨, 네 삶 보다 중요한지.


저울질을 해보면 금방 답이 나올 거야.


안 좋은 일들은 그저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는 것만이 가장 좋은 방법이란 걸 너도 알고 있잖아.


그러나 수정구가 부서지지 않는다면, 저울 반대편에 무얼 올려놓아도 그쪽이 더 무겁다면 어쩔 수 없지.


너한테 맺혀있는 한이 목숨보다도 더 크고 깊다는 뜻이니까.


복수를 하도록 해.


최대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너의 가슴속 앙금이 사라질 정도로 말이야.


나중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그게 목숨보다 중요한 건 아니니까.







10. 위와는 반대로 네가 누군가한테 피해를 줬을 수도 있지.


너한테는 정말 즐겁고 좋은 추억이지만 남한테는 끔찍했거나 그런 일들.


너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세상 누군가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면 과거에서 지워낼 수 없는 거야.


네 과거를 지우는 일에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인지, 왜 그렇게 되는 건지 나한테 묻지는 마. 나도 그게 왜 그런지는 정확히 몰라.


그냥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이렇게 생겨먹은 거야, 그래도 해결 방법은 있으니 걱정하지 마.


사과를 하도록 해.


찾아가서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최대한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처럼 보이도록 행동해.


한순간 자존심을 굽혀야지만 칼날 끝을 피해 갈 수 있는 거야.


아, 그래도 네가 정말 심한 짓을 했다면 사과를 안 받아 줄 수도 있겠지.


이 경우 합의를 봐야 해.


돈을 쥐여주든, 협박을 하든, 설득을 하든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 사람한테서 과거를 잊겠다는 말을 들어.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실제로 효력이 있다는 것만 중요하지.


그 사람이 진심으로 너를 용서하지 않아도, 너를 더욱 미워하고 증오하더라도 저 말을 듣는 순간 수정구를 부술 수 있을 테니까.







11. 그 외에도 지워내기 힘든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를 거야.


가령 네가 하지 못했던 고백이나 도전하지 못했던 꿈들 일 수도 있지.


진심에 솔직하지 못했던 일들은 모두 가슴속 한편에 미련으로 자리 잡을 테니까.


막상 별일 아니라 생각했는데 버리기엔 아까운 계륵 같은 추억일 수도 있지.


원래 사람들은 소중한 것에는 소홀히 하는 법이니까, 뒤늦게야 깨닫는 거야.


슬퍼서 묻어뒀지만 잊고 싶지는 않은 것들일 수도 있지.


이것들은 위에서 말한 것들과 달리 의지만 충분하다면 다 부서뜨릴 수 있을 거야.


전부 다 훌훌 털어버려, 그 모든 게 네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을 테니까.








12. 앞으로 부셔트려야 할 수정구가 점점 줄어들수록, 그놈은 노골적으로 네 앞에 자기 존재를 드러내려 할 거야.


예를 들면, 네 가장 소중한 추억 속에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겠지.


밤에 잠을 잘 때마다 가위에 눌릴 거고, 놈은 침대 위에서 네 목을 조르고 있을 거야.


현실에서 일어나지 못할, 믿기 힘든 일들이 계속 일어나겠지.


남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일들을 겪으며 너는 네가 정신병에 걸렸다는 착각을 받게 될 거야.


걱정하지 마, 그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녀석이 너를 완전히 집어삼켜서 그런 게 아니야.


놈이 너한테서 떨어지기 싫어서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중이니까, 최대한 무관심하게 넘겨버리도록 해.


마지막 수정구를 부숴낸다면 더 이상 그것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거야.


놈도 너를 포기할 테고, 이젠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지워낸 기억들 또한 모두 영영 잊어버리게 될 거야.







13. 마지막은 그것과 관련은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야.


왜 너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지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을 구할 수 없어.


천재지변하고 똑같아, 세상은 원래 불합리한 것이고 너는 어쩔 수 없이 휘말려 버린 거야.


네가 잘못한 게 없어도, 실수한 게 없어도 폭풍은 네 머리 위로 들이닥치는 거야.


단지, 조금의 위안이라고는 그나마 네 상황은 남들보다는 낫다는 거야.


남들이었다면 폭풍우를 맞이한 순간 집과 함께 떠내려갔을 테지만, 너는 너의 보금자리 한편을 잃어버린 것으로 끝났어. 여기서 만족해야만 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 미련이 많이 남겠지.


하지만 지나간 일들을 후회해 봤자 소용없어, 네가 앞으로 살아나갈 미래를 생각해야 해.


지금도 언젠가는 과거가 될 테고, 네 가슴속의 공허함은 새로운 내일이 점점 채워나가 줄 거야.


이번 일을 기억하면서 새로이 얻게 될 과거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