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번째 나를 바라본다

94번째 나는 권총을 머리에 갖다 대고 극단적 선택을 한다

나는 95번째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권총을 머리에 갖다 댄다

그대로 방아쇠를 당긴다

나는 몇 번째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걸까.

 

나는 예술가다

예술가는 삶의 모든 순간을 작품으로 남겨야 한다

하물며 죽음까지 말이다

나는 여태까지 인간의 본질이 뭘까 고민해왔다

그러다 만인의 삶을 관통하는 한 가지 본질을 깨달았다

인간은 영원히 살고 싶어 하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나는 이 고고한 진리를 죽음이라는 예술로 승화시키고 싶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타인에게 관찰되는 것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카메라에 당신의 모습이 남아있다면 당신은 아직 죽은 것이 아니다.

 

좋다. 영원히 사는 방법에 대해 알아봤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원히 죽을 수 있을까

나는 아침에 화장실에서 거울을 바라보다가 한 가지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거울에 거울을 비춰본 적이 있는가

거울에 비친 상이 반대쪽 거울에 비치고 또 그 상이 반대쪽 거울에 비쳐 무한한 세계가 펼쳐진다

나는 이 현상을 무한경이라고 부른다

만약 무한경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어떻게 될까? 그 사람은 영원히 죽기를 반복할 것이다.

 

준비는 끝났다

나는 무한경 사이에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권총 한 자루를 손에 쥐었다

그대로 떨리는 손을 머리에 가져다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 유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영원한 죽음이 카메라에 담길 것이다

나는 모든 인간이 염원하던 영원히 살고 영원히 죽는 존재가 되었다.

 

거울에 비친 내 상은 자신이 죽는 이유도 모르고 죽을 것이다

만약 의지를 갖고 옆의 자신을 바라본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예술이다

한쪽의 자신은 죽는 자신, 반대쪽의 자신은 죽음을 기다리는 자신이다

그것을 바라보며 의지를 가진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이제 여러분에게 묻겠다

나는 인간의 고고한 진리를 깨닫고 마지막 순간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어떤 식으로 디자인하겠는가?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장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