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을 떠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승은 떠도는 곳입니다.
당신은 방금 막 이곳에 도착하여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랬고 그렇게 이곳에서 2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저승을 안내하겠습니다.
왜 모르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냐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저승에서 인간의 편은 인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생존서를 들고 다니다가 다른 생존자를 만나면 반드시 서로의 생존서를 교차검증 해봐야 합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저승에서 인간의 편은 인간뿐이며 내가 지금 들고 있는 생존서가 정답인지 아닌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2189일이다. 2189일이다.”
방금 소리를 들으셨습니까?
저것은 구천을 떠돌아다니는 새가 낸 소리입니다.
저희에게 며칠이 지나야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지 알려주는 소리입니다.
저희는 이곳에서 6년을 버텨야 합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십시오.
마침 새 얘기가 나온 김에 하늘을 보십시오.
두 달이 떠 있지 않습니까?
왼쪽 달은 거짓의 달이고 오른쪽 달은 진실의 달입니다.
거짓의 달빛에 몸을 비추지 마십시오. 당신은 거짓된 존재가 됩니다.
진실의 달빛에 몸을 비추지 마십시오. 당신의 죽음은 진실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저희는 살아있지도 죽지도 않은 존재입니다.
이곳에선 최대한 존재를 감춰야 합니다.
마침 하늘 얘기를 하니 아까부터 비가 내리는 게 신경 쓰이셨군요.
저승에선 늘 비가 내립니다.
누군가는 이승에서 저희를 위해 울어주는 눈물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저승에서 비가 내리는 건 당연하다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겨울입니다.
겨울에는 비가 아니라 눈이 내립니다.
눈을 오래 맞으면 몸이 업니다.
그럴 때는 구천의 경계에 있는 불을 빌려 몸을 녹여야 합니다.
왜 이곳에서 나가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구천의 경계에 커다란 불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영혼입니다. 불에 닿으면 존재가 소멸합니다.
저희가 구천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누군가 경계에 불을 지펴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6년을 버텨야 합니다.
거짓의 달빛에 닿은 뒤 거짓된 상태가 되면 불에 닿아도 괜찮습니다. <13번 생존자에 의해 거짓으로 밝혀짐.
어디선가 꽹과리 소리가 들려온다.
몸을 낮추십시오. 군대가 옵니다.
군대는 하루에 한 번 저승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존재입니다.
군대에 잡힌 사람은 끔찍한 결말을 맞이한다고 하던데 저도 직접 목격한 적은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군대는 뭉치는 곳에서 출발하여 흩어지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왜 맨날 죽고 사는 것을 반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뭉치는 곳은 저승에서 새로운 존재가 탄생하는 장소입니다.
신비하다고 해서 가까이하지 마십시오.
뭉치는 곳에 도달한 사람은 다른 것과 합쳐져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흩어지는 곳도 가까이하지 마십시오.
흩어지는 곳에 도달한 사람은 소멸합니다.
다행히 군대가 지나갔습니다.
저승에서 군대 다음으로 조심해야 할 것은 오니입니다.
오니는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아닙니다.
오니는 인간 잡아먹기를 좋아합니다.
11번 생존자 오니와 소통을 시도하다가 잡아먹힘.
6번 생존자 바닥에서 보석을 줍고 좋아했으나 오니의 덫이었고 결국 덫에 걸려 잡아먹힘.
특히 바닥에 떨어진 보석을 주의하십시오.
보석은 오니가 자주 사용하는 덫입니다.
덫 주위에 거울 조각을 뿌려놓고 영혼이 그것을 밟으면 흘리는 피로 영혼을 추적하여 잡습니다.
이 수법에 당한 사람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갈증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저희는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물을 안 마신다고 죽진 않습니다.
하지만 갈증은 참기 어려운 것입니다.
다행히 저승은 늘 비가 내리는 곳으로 고인 물이 많습니다.
하지만 고인 물을 마시기 전에 물의 상태를 살피십시오.
상서로운 수증기가 올라오는 물은 물이 아니라 영혼이 고인 것으로써 영혼을 마시면 두 개의 영혼이 합쳐져 이상한 존재가 됩니다.
4번 생존자 영혼을 마셨다가 15살 이후의 기억을 잃음.
지금까지 말씀드린 건 제가 2년 동안 살아오면서 적어놓은 생존서의 개괄입니다.
자, 이곳을 떠나십시오.
되도록 타인과 정이 들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어쨌거나 저희는 협력자인 동시에 경쟁자니까요.
건투를 빕니다.
운이 좋다면 다음 생에 봅시다.
좋다
저승도 힘들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