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사무실이 강남역으로 이사를 했다.



강남역 4번 출구로 나와 3분정도 걸으면 보이는 신축 건물이다.



공교롭게도 4번 출구는 신분당선쪽 출구다.



나는 2호선을 타고 강남역에서 내리기에, 4번 출구로 가려면 통로를 지나서 꽤 긴 거리를 걸어야 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개찰구를 찍고 나간다.



낡은 지하상가의 김밥집에서 아침을 떼우고 있는 인파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 번쩍번쩍한 신분당선 통로가 나를 반긴다.



그렇게 앞으로 쭉 걷다보면, 3번 출구와 4번출구 중간 그 어딘가에 증명사진 기계가 있다.



출근할 때마다 그 증명사진 기계를 보면서 생각한다.



저게 보이니까 4번 출구까지 이제 얼마 안남았구나.



그리고 드는 또 한 가지의 생각은 '도대체 저기서 증명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의문.







갑작스럽게 추워진 어제였다.



여느때와 다를 게 없는 출근 길에, 한 가지가 달랐다.



문제의 증명사진 기계에, 안경을 쓴 비쩍 마른 남자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사진 촬영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보이고, 렌즈에 고개를 바짝 들이댄 상태로 엉거주춤하게 앉아 있었다.



위아래로 하얀 옷을 입고 있어 눈에 띄었다.



'이른 아침부터 웬일로 사람이 있네.'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공교롭게도 저녁에 팀 송년회가 있는 날이었다.



술에 많이 취한 후배와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아, 함께 택시를 잡아타려 했다.



하지만 강남에서 한밤중에 택시를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응답없는 택시호출 어플을 십 분 남짓 기다렸을까?



후배가 정신이 좀 들었는지, 날도 추운데 그냥 얼른 지하철을 타고 가자는 말을 꺼냈다.



4번 출구로 걸어 들어가, 출근길을 되짚어 2호선으로 향했다.



후배가 잘 따라오고 있나 뒤를 돌아보는 순간, 증명사진 기계가 시야에 들어왔다.



증명사진 기계에는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짧아서 미처 가려지지 못한 커튼의 아래쪽으로 누군가의 하얀 바짓단이 보였다.



그쪽을 쳐다보고 있던 찰나, 옆에있던 후배가 비틀거렸고, 나는 얼른 그를 부축해 지하철로 향했다.



운 좋게 난 자리에 후배를 앉한 후, 손잡이를 붙잡고 그 앞에 섰다.



지하철 유리에 미치는 내 가슴팍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드는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러고보니, 아침에 봤던 그 남자는 왜 커튼도 치지 않은 채 증명사진 기계에 앉아있었던 걸까?



그 남자의 옷차림은 흰색이었다.



조금 전에 커튼 아래로 보이는 바지도 흰색이었다.



아침의 그 남자와 지금 증명사진 기계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같은 사람일까?



만약 같은 사람이 맞다면, 그는 아침에 거기서 무엇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걸까?



이런저런 생각 속에서, 지하철은 어느새 달려 낙성대역에 도착했다.



후배가 정신을 차렸는지 확인한 나는, 다음역인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그의 집인 신림역까지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었기에-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씻고 침대에 누울 때까지, 내 머릿속에는 온통 증명사진 기계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기절하듯이 잠들었던 난,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뭔가 굉장히 기분나쁜 꿈을 꾼 듯한 느낌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길로 향했다.



어느새 도착한 강남역.



나는 또 다시 4번 출구로 향한다.



지하철에서 내려, 개찰구로 나왔다.



김밥집을 거쳐, 계단을 내려간다.



스타벅스, 꽃집, 약국을 스치니, 증명사진 기계가 보인다.



오늘은 증명사진 기계에 아무도 없다.



하지만 무언가 다른 것이 하나 눈에 띈다.



'고장'이라는 글씨가 인쇄된 A4용지가 기계에 붙어있었던 것이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고장난 증명사진 기계를 향해 걸어갔다.



기계 안에는 불편해보이는 자그마한 고정식 의자가 놓여있었다.



나는 증명사진 기계 안으로 들어가, 그 의자에 앉아보았다.



정면에는 사용법에 대한 안내가 붙어있고, 옆에 커다란 렌즈가 보인다.



아니, 정확히는 안쪽에 렌즈가 들어가 있는 유리막 같은 것이 보였다.



유리막에 한 남자가 비쳐보이고 있다.



남자는 어딘가 멀게만 보인다.



남자는 지친 샐러리맨이다.



아니, 어딘가에 갇혀있는 사람 같다.



저것은 내 모습인가?



조금 더 자세히 봐야할 것 같다.



눈을 찌푸려봤지만, 남자는 여전히 멀게만 보인다.



그가 쓴 안경이 보인다.



아니, 안경이 보이는 것은 착각인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옷 색깔이 눈에 거슬린다.



남자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내 옷은 오늘 무슨 색이었더라?



지금 당장 그가 누군지 확인해야한다.



나는 조금씩 그를 향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