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할머니 집은 오래된 적산가옥입니다.
적산가옥은 일제시대에 지어진 집으로 우리의 한옥과는 다른 양식을 가지고 있는 집입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의 초대를 받아 어머니와 나와 동생은 외가댁에 놀러 갔습니다. 그 날 아버지는 일이 있어 못오셨어요.
집의 구조는 가운대 큰 안뜰이 있고 그걸 통해 안방과 다른 방들로 갈 수 있어요. 방은 총4개가 있습니다. 우리가 묵을 방은 현관을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안뜰 오른쪽으로 가면 있는 작은 방입니다. 목재건물에 마루바닥이라 복도를 이동할 때 요즘 집에서 들을 수 없는 끼익 끼익 거리는 소리가 나요. 그 작은 방의 문을 열면 정면에 장이 있는데 요즘 장처럼 높은것이 아니라 돈궤라고 낮은 형태의 것이 있습니다. 요즘에 볼 수 없는 보물상자 같은 모양이라 저는 좋았어요. 이 낮은 장은 방 한쪽면을 꽉 채우고 있었고 그 위로 방에 하나뿐인 작은 창문이 하나 달려있었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 장의 윗 부분이 유리로 되어 있어 아래의 이불이 보였어요. 잘 정리된 화려한 무늬가 수놓아진 굉장히 두껍고 무거운 이불이요.
이 방은 작은 것 말고도 약간 답답한 느낌이 있습니다. 이유는 가뜩이나 작은 방 안에 장이 꽤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외에도 그 위의 하나뿐인 창문에 비치는 풍경이 회색 담벼락이었던지라 시야가 뚫려있지 않았어요. 우리는 이 방에 모든 짐을 풀고 외할머니와 함께 안방으로 이동했는데 이상하게 가운데 모든 방과 연결된 안뜰을 거쳐서가 아닌 미로같은 뒷길로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우린 안방에 둘러 앉아서 과일을 먹었어요. 딸과 손주가 와서 기쁜 평소와 같은 인자한 외할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서울서 뵐 때랑 다른건 집 뿐인데 어딘가 약간 다른 분위기는 기분 탓 일까요. 외할머니께선 멀리서 와서 고생 많았다며 이것저것 내 주셨고 우리가 지낼 방과 몇가지 규칙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안방의 한쪽 벽에는 제사를 올리는 향과 집안 어른들의 이름을 한자로 적은 족보 비슷한게 있었고 그 옆에 집의 구조도면 같은게 있었습니다. 집을 위에서 보았을때의 방 위치와 길목등의 구조가 먹물로 그려져있었어요. 그중 눈에 띄는게 빨간 색으로 표시된것들이 있었어요. 이것에 방이 아니라 길목에 표시되어 있었는데 쉽게 최단거리로 방을 오가는 길목들에 빨간색으로 표시가 되어있었어요. 빨간색이 금지 표시라면 모든 방과 연결된 안뜰을 돌아가더라도 다른 방을 갈 수는 있지만 미로처럼 오래걸리고 길을 외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할머니께선 예상대로 규칙을 말씀해주셨고 빨간색으로 표시된 곳을 통해서는 이동하지 말라는 말씀을 우리에게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밤10시가 넘으면 이동하지 말것. 밤에 화장실에 가야한다면 방문 바로앞에있는 화장실을 사용할 것을 규칙으로 언급해주셨습니다. 의아한점은 방이 비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작은 장농이 있는 그 방을 배정받았어요. 작은 규칙이 있긴 했지만 그 외에는 맘껏 놀아도 된다고 하셔서 방을 돌아다닐 생각과 시골와서 놀 생각에 나와 동생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래된 것들이 많은 동네를 탐험하고 저녁이 늦어 자려고 동생과 함께 집에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오는 소리를 듣고 계셨는지 어머니께서 마중나와 주셨어요. 어느새 집안의 지리와 규칙에 익숙해지셨는지 우릴 거실로 안내해 외할머니와 같이 식사를 하고 작은 방으로 돌아가보니 이불이 모두 깔려 있었습니다.
어느새 시간이 10시가 다 되갑니다. 전등은 끄고 작은 촛불만을 켜놓았고 우리가족은 오늘 하루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어머니께선 어렸을때 여기서 지내던 이야기를 해주었고 오늘 우리가 놀았던 것들이 어렸을 때의 어머니와 겹쳐보여서 그랬는지 어느새 서로 무얼하며 놀았다고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선 마지막으로 규칙에 대해 언급해주셨고 예전에는 없었는데 언제 이런게 생긴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하셨어요. 아무튼 우리에게도 규칙을 잘 지켜줄 것을 다시한번 당부했고 화장실에 갔다 올 사람은 미리 갔다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볼 일을 보고 촛불을 끄니 적막한 방속에서 달빛만이 장 위를 비춥니다. 장 속 이불에 놓여진 자수가 달빛을 맞아 빛나는게 참 아름다워요. 이제 슬슬 잠에 드려는데 오늘따라 잠이 오지 않아요. 호기심이 많아서 그런지 외할머니께서 말씀해주신 규칙이 자꾸 머맀속을 맴돌았습니다.


나는 잠을 자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왠지 창 밖을 보면 안될것 같았습니다. 이따금씩 창백한 무언가가 비치는 것 같은데 벽으로 막혀있기에 달빛은 아니겠죠.
그것이 무섭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기때문에 나는 이불을 뒤집에 쓰고 이불의 얇은 부분을 눈에 가까이 가져다 대어 흐릿하지만 형태는 보이는 그런식으로 창문을 관찰했습니다.
분명 무언가가 일정한 주기로 창문과 벽 사이를 지나갑니다. 그것이 지나갈 땐 달빛이 방을 비추듯 방이 살짝 밝아집니다.
그것의 정체가 죽도록 궁금했지만 확인 할 만큼의 담력이 되진 않았습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창문을 열어보았습니다.
창문과 벽 사이에는 무언가 들어갈만한 공간이 없었어요. 주먹을 쥔 손이 겨우 들어갈까 말까한 작은 공간이 있긴한데 여기로 통행하는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주변을 살폈지만 
유리뚜껑을 통해 보이는 장 속의 이불이 조금 구겨져 있다는 점 말고는 별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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