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휘날리는 밤이었다.

청년 둘이 횡단보도를 향해 달리고 있다.

마사루, 다음 신호를 기다리면 되잖아

.... 아깝네.”

아깝게도 신호를 놓쳤다.

 

겨울인데도 땀이 흐른다.

잠시 누워 아픈 다리를 문지르던 중 정성스럽게 꾸며진 눈사람 하나를 발견했다.

이 눈사람 좀 봐. 모자부터 옷까지 꼭 사람 같네.”

마사루는 내 얘길 듣지 않고 있었다.

나 잠깐 어디 좀 들렀다 간다.”

이 시간에? 또 여친이야?”

마사루는 애써 모른 척했다.

마사루는 최근 자기 여자친구한테 매여 있는 거 같다.

 

마사루의 여자친구는 정신병이 있다.

처음에 그걸 알고도 사귄다고 했을 때 난 반대했지만

나의 반대로 둘의 사이가 진전되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마사루는 내게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여기서 사라졌다는 건 정말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내게 손을 흔들고 여자친구에게 간 이후

마사루가 실종됐다.

 

마사루의 여자친구가 너무 의심스럽다.

당연히 경찰도 그렇게 생각하고 마사루의 여자친구부터 조사했지만

여자친구는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여자친구의 말에 의하면

마사루는 밤 9시부터 11시까지 자신을 달래준 후

집을 나섰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CCTV 확인 결과 마사루가 여자친구의 집에서 나오는 게 확인되었다.

 

하지만 나는 마사루의 여자친구가 너무 의심스러웠다.

유코-마사루의 여자친구-는 내 소꿉친구다.

그렇기에 난 유코에 대해 잘 안다.

유코의 정신병은 중학생 시절부터 발현된 것으로

유코의 병은 의존증인 것 같았다.

 

유코는 의존증이 생긴 이후 계속해서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그러나 어떤 남자친구도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헤어진 남자친구들은 하나같이 결말이 좋지 않았다.

어떤 남자친구는 헤어지고 나서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어떤 남자친구는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것이 유코 탓은 아니겠지만

일이 반복되면 의심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유코를 찾아갔다.

유코, 집이야? 잠시 나와줄 수 있어?”

싫어. 너도 날 공격하러 온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나는 유코를 불러낸 뒤

다짜고짜

유코, 널 중학교 시절부터 좋아했어. 나랑 사귀어주지 않겠어?”

고백했다.

 

유코는 지금 남자친구를 잃은 심신미약 상태다.

나도 유코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유코의 의심을 풀고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

유코는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병이 병인지라 내 고백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유코와 사귄 이후의 나날은 의외로 평범했다.

유코는 가끔 밤에 외롭다는 이유로 나를 부를 뿐

그 이외에 성가신 구석은 없었다.

나는 마사루와 유코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힘써 노력했지만

마사루는 정말 허공에서 사라진 듯

나는 어떤 힌트도 얻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만 가고

솔직히 마사루에겐 미안하지만 어느새인가 유코를 향한 연정의 마음이 생겼다.

나는 유코와 함께 자고 일어나 마시는 코코아가 좋았다.

유코와 하는 눈싸움도 즐거웠고

유코가 만드는 눈사람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유코는 늘 눈사람을 만들며 말했다.

눈사람은 내 주위 사람과 비슷해. 늘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려.”

 

그러고 보니 유코의 남자친구는 3개월이 지나면 모두 사라져버렸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됐다.

유코는 더는 눈사람을 만들 수 없다고 투정 댔다.

그거 알아? 타키? 오늘은 우리가 사귄 지 2개월하고도 29일째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가주세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유코 집에 들어서자 유코는 평상시와 달리 진지한 모습이었다.

있지. 타키, 넌 내가 의심스러워서 내게 접근한 거지?”

그걸 어떻게..”

다 알 수 있어. 그런 식으로 접근해 온 남자는 많거든.

근데 타키는 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어?”

너도 알다시피 난 사랑하는 사람을 3개월째 되는 날 잃어.

바로 이렇게 말이야!”

 

유코는 벽장을 열어 보였다.

그 안에는 사진이 빼곡히 있었다.

사진에는 옷을 입은 나무나 눈사람 등이 가득했다.

사진 속 사물들은 내 남자친구들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3개월째 되는 날 사물로 변해버리지.”

 

사진 속에는 마사루와 함께 보았던 눈사람도 있었다.

 

여기 마사루의 인형이에요.

그리고 타키, 나와 헤어져 주세요.”

 

유코는 눈을 질끈 감고 울고 있었다.

눈물이 뚝뚝 흘러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나는 달려가서 유코를 안았다.

유코 떨어지고 싶지 않아.”

유코는 날 밀쳐내려 했지만 이내 내 품에 안겨 울었다.

 

시간이 지나 유코는 진정했다.

유코는 날 보고 자기 옆으로 앉으라고 침대를 툭툭 쳤다.

타키, 잘 들어. 이건 시험해보지 않은 일이야. 만약 오늘 너와 내가 헤어지고

내일부터 다시 사귀기로 한다면 어떨까?

우리는 3개월째 되는 날에 헤어지고

3개월 1일째 되는 날에 다시 사귀기 시작하는 거야.”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영원히 1주년 케이크는 먹지 못하겠네.”

유코가 나를 밀쳤다.

그게 뭐야 바보.”

 

나는 유코와 헤어지기로 했다.

그렇게 밤 11시가 되어 유코의 집을 나섰다.

 

집에 가는 길에

가로수길이 있는데

거기서 벚나무를 보았다.

달밤에 비친 벚나무는 아름다웠다.

 

그렇게 몇 걸음을 옮겼을까.

갑자기 몸이 무거워졌다.

그보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다리는 땅바닥에 처박혀 있었고

내 왼쪽에는 마사루의 옷을 걸친 나무가 있었다.

이상하다. 마사루는 분명 인형으로 변했는데..’

 

그때였다.

저편에서 다가오는 저벅저벅 소리.

유코였다.

나는 유코의 이름을 힘차게 부르려고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역시 타키는 마사루의 옆이 잘 어울려.”

유코는 떨어진 내 옷가지를 집어서 내게 둘러주었다.

미안해요. 속일 의도는 없었는데. 하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너희는 영원히 내 곁에 있잖아?”

유코는 사진기를 들더니 나를 찍었다.

 

타키, 난 처음부터 내 연인이 3개월째 되는 날 사라진다고 말한 적이 없어.

사랑하는 사람이 3개월째 되는 날 사라진다고 했지.

속아 넘어간 네가 바보야.”

 

유코는 내 옷차림을 한 벚나무 사진을 손으로 어루만지더니 앨범에 넣었다.

그대로 벽장 옆에 비밀공간을 열더니

마사루의 옷차림을 한 벚나무 앨범 옆에 그 앨범을 두었다.

후후 너희들 정말 잘 어울려.”

유코의 웃음소리가 저열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