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행성개척지구 짬밥만 벌써 4년을 먹었지만
전입일날 소장한테 다이렉트로 사람을 지명해서
인수인계 받을 선임을 가려 받는다는 전입자는 처음이다."
백금발의 윤기나는 굴곡진 머리칼을 가진 키가 제법 큰
사내는 호기심 반 귀찮음 반이 섞인 눈동자로 나를 쳐다봤다.
"넌 뭐하는 놈이길래 내 이름을 콕 찝어서 지명한거냐?
내가 누군줄 알아? 난 너같은 놈이랑은 만난 기억도 없는데?
그것도 이제 3일 뒤면 전출 갈 말년병장이나 마찬가지인
이 몸을 귀찮게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 어 ? 뭐라고 ? 해킹된 나노칩 ? 클램프 반장 ? 하... 아하하하하!
이야.. 인연이라는거 참 신기하네~ 이제야 이해되는구만
왜 그렇게 아득바득 기를 쓰면서까지 날 만나려 했는지."
경계심을 푼 듯한 표정을 지은 그에게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오에 처음 갔을 때 지급받은 나노칩에 기입된
부가정보 덕분에 몇번이고 목숨을 건졌던 경험.
그리고 1년이란 시간을 행성개척지구[이오] 에서 보내면서
숱하게 본 스러져가는 희생자들의 참상......
그리고 나 역시도 상당히 높은 형량을 받았기에, 위험을 감수하고
이 유로파에 왔다는 사연까지 털어놓았다.
"그래도 내가 남긴 흔적이 누군가에게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기분이 참 묘하단 말이지. 괜히 코끝이 간질거린다고.
뭐... 내 정보가 도움이 된 것과는 별개로, 아마 이오에서 1년 이상
무사히 버틸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 네 놈 또한 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구만."
"확실히 우리같이 몇십년, 백단위가 넘어가는 형량을 받은 자들은
여건만 된다면 형량 탕감이 더 높은 다른 행성으로 넘어가서
근무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긴 하지. 난 72년형인가 받았는데 말야...
형씨는..? 어이쿠.. 뭔 짓을 했길래 121년이나 받은거야? 아~아~
그래 뭐, 각자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거니까. "
"그런데 이거 아쉬워서 어쩌지? 운명적인 만남은 둘째치고
아까 말했듯이 난 3일 뒤에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어."
"어디로 가냐고? 글쎄.. 형씨도 내가 남긴 기록을 들었으니까
어렴풋이 예상은 할텐데.. 아무튼 그래도 내 지침 덕분에 살았다는
우리 대단하신 '후배님'을 위해서라도 이 유로파에서 지내는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를 좀 줘야겠군."
빙글빙글 웃어재끼던 웃음기가 싹 사라지고 완전 180도 다른
사람이 된 듯 진중한 표정을 지은 눈 앞의 사내. 맥스 테일러.
이 사내가 남겼던 자료 덕분에 나는 지옥과도 같았던 이오에서
같은 날 입소한 동기들 60여명이 죽거나 수성으로 강제 전출을
가는 와중에도 생존할 수 있었다. 앞으로 무사히 행성 개척 근로를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해서라도... 이 남자의 정보는 필수적이다.
결의에 찬 나의 눈빛을 말없이 몇분이고 응시하던 그는 푹 한숨을 내쉬며
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
.
.
"알다시피 유로파의 행성개척기지는 수심 20km의 깊은 물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목성의 위협에서는 매우 매우 안전한 편이지."
"그 점에 있어서는 이오나 칼리스토, 가니메데 등과 같은 다른 행성들에 비해
고무적인 점이야. 하지만, 그랑버드 주식회사에서 매기는 이 행성의 위험 등급은
오히려 이오보다 훨씬 높은 AA- 등급을 받았어."
"어째서일 것 같나?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 물 속에서의 생활이란
여러가지 리스크를 갖고 있기 때문이지. 우리는 단단한 대지를 밟고 공기를 폐로
호흡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이 물로 가득찬 수중에서는 더더욱 작고 약해질 수 밖에 없거든."
"인간이 살아가려면 물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곳에 있는 물은
우리의 생명줄임과 동시에 우리를 언제고 죽일 수 있는 지독한 것들이지."
"나노칩에서 식수 저장소에 대한 이야기 들은거 기억하나? 거기서
옅은 회색을 띈 물을 마시면 안된다고 했지? 아마 말로만 들어서는
감이 오지 않겠지. 누구나 발견할 수 있을 만큼 희뿌연 물을 상상 했나?
물론 누가 봐도 먹으면 탈이 날 것 같은 건 3살짜리 코흘리개라도 분간 하겠지."
"하지만 정말 좁쌀만한 수준의 부분에서만 그 빌어먹을 회색 빛을 띄고 있다면?
아니.. 좁쌀 수준도 넘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이상이 있다면 어쩔래?"
"흐흐 .. 그래 내가 원한 반응이군. 사실 이 유로파에서는 말이지.
물을 마시는 매 순간이 생명을 담보로 한 도박과도 같은 일상의 연속이야."
"어떻게 이런걸 알았냐고? 그야 겉보기엔 이상 없어보이는 물을 마심에도
유로파의 바다와 하나가 된 나의 동료들을 수도 없이 보아왔으니까지.
이건 심지어 그랑버드 소속의 녀석들도 예외는 아니야."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말이지. 언제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더군.
그 빌어먹을 회색 물을 가져다가 여러가지 실험을 해보다가 우연히 알아낸건데,
머리카락 한 올을 넣어보니까 10초도 안돼서 병 속의 물이 생명이라도 있는 것 마냥
스스로 요동을 치더라. 그 뒤로는 물을 마시기 전에 항상 머리카락을 집어넣고 있지.
아마 형씨도 오래 살고 싶다면 내가 말한 테스트를 매번 물을 마실때마다 하라고."
"자. 인간의 기본적인 물을 마시는 행위에 대한 설명은 이쯤 하고, 그럼 이제
또다른 기본 욕구인 먹는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나?"
"회를 먹어선 안된다는거 정도는 당연히 알테지만, 나는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어."
"간혹가다가 말이야. SEA WAGYU 라는 메뉴랍시고 나오는 고기가 있을거야.
뭐.. 아직까진 먹어서 탈이 나거나 이상 현상이 생긴 경우는 없었지만, 나라면
그 빌어먹을 놈의 SEA WAGYU는 손도 대지 않겠어. 하! 아 물론 나도 그것들의
정체를 알기 전까지만 해도 말야 아무 생각 없이 먹었지. 실제로 고급 소고기를 먹는 식감에
진짜 내로라하는 진미와 어깨를 견주어도 될 만큼 맛있으니까 말야."
"실제로 이곳에서 식사 메뉴에 SEA WAGYU가 나오기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놈들도 있을 정도니까."
"왜 아무 탈이 없는 걸 먹지 말라고 하냐고? 글쎄... 정말로 단 1%도 별 탈이 없을지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라 해야할까? 응 그래. 맞아. 그 따위 것으로 만든 요리가
무해하다는 것을 절대 믿지 못하는 내 본능에 의거한 직감 때문이야. 오? 형씨도 내 말을 믿겠다고?
아하하하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만났다면 아주 죽이 잘 맞았을 것 같은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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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이야기를 해서일까? 목이 탔는지 맥스는 식수 저장소에서 물을 2병 가지고 오더니
내게도 한 잔 던져주고는 이내 자신이 마실 물병 속에 머리카락을 담궜다.
분명 겉보기에는 이상이 없어보이는 일반적인 물과 다를 바 없던 그 액체는 맥스의 머리칼이
닿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내 인상을 있는대로 구기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재수 옴 붙었군. 가는 날이 장날이라 이건가? 유로파의 물에 대해 설명을 하자마자 이런
훌륭한 교보재로 시범을 선보일 줄은 몰랐는걸? 이봐.. 형씨가 가지고 있는 물은 이상이 없는 듯
하니 그걸 나눠 마시자고."
내가 마시던 물을 낚아채가더니 벌컥 벌컥 들이키던 맥스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차피 수산물 채집 나가는건 진짜 복불복이야. 이 부분에 있어선 내가 조언할 일 따위는 없지.
애초에 잠수정 운전은 숙달된 그랑버드 회사 직원들이 하기도 하고, 사상자가 발생하는 경우는
채집 과정보다는 가공 과정에서 더 많이 이루어지니 걱정 붙들어 매라고. 이오에서 내가 조작한
나노칩을 얻게 되고 여기 유로파까지 오게 된 형씨의 운을 믿으라니깐?"
"하지만... 수산물 가공 공정은 행운만으로는 생존을 할 수 없는 공간이지."
"이곳 유로파의 바다에서 수확하는 생물체들은 하나같이 지랄맞은 놈들이라서 말야."
"조금만 방심했다가는 어디 손모가지 발모가지로 끝나는게 그나마
자비로운 결말이고 차라리 죽는게 나을거라 싶을 결말을 맞을 지도 모른다."
기억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기억해내기라도 하는 듯 몸서리 치고는 인상을
있는데로 찌푸린 맥스는 잠시 대화를 멈추고 굳은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나름의 생각이나 마음의 정리가 필요한 것이겠지.. 나는 잠자코 그의
다음 대화가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가공 공정 선임 담당이 다른 사람일땐 상관 없는데, 빅터 카진코프 이새끼가
담당일 때는 각별히 주의해라. 나는 그랑버드가 왜 이새낄 아직까지 해고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니깐.. 한 번 ■■ 이랑 직접 조우 하고선 뇌가 반쯤 맛이 가버려서
종종 미친 짓거리들을 일삼는데 말야... 아 . ■■ 이 뭐냐고? 그러고보니 그쪽은
아직 신입이라 정보 검열땜에 ■■ 관련된 건 전부 필터링이 돼서 들리겠군."
"어차피 당신처럼 눈치 빠르고 의지가 굳은 사람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도
알아서 알아차리게 될거라고 생각하니, 굳이 알려주진 않겠어.
뭐~ 꽁꽁 숨기고 있는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의 재미도 배려해줘야 하지 않겠어?"
"매뉴얼에서 말하는 주의 어종이니 포획 어종이니 뭐니 이런건 다 필요없고
가장 조심해야 되는건 언제나 숨겨져 있는 법. 어획물들 사이에 사람 약지 손가락
크기만한 폭탄꼬리 가오리 라는 녀석들이다."
"주의 어종이란건 말야.. 대부분 잠수정을 타고 나가서 채집 시에 위험한 놈들을
기록한거지, 수산물 가공 과정에서의 위험함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고.
왜 그런지 아나? 아 그래 잘 맞췄어. 수산물 가공을 담당하는건 너나 나같은
근로자들이고, 이 근로자들은 잠수정이나 그랑버드 직원들에 비해서 하찮은
부속품 정도로 취급되거든. 우리같은 범죄자 녀석들은 어차피 죽거나 다쳐봐야
다시 채용하면 그만이니까 말야."
"폭탄꼬리 가오리는 크기가 워낙에 작다보니까 우리들 눈에 잘 띄지 않지."
"그렇기 때문에 포획한 어류에 섞여서 딸려들어오곤 하는데, 이게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야. 물 밖으로 나온 녀석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꼬리가
부패하며 팽창하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아마 약지에서 손바닥 크기 정도로
부풀어 오를거야. 근데 손바닥 만한 크기일 때 인지했다면 이미 늦었어."
맥스는 손가락을 오므렸다가 펼치며 폭발음을 묘사했다.
"인근에 있다가 폭발에 휘말리면 팔,다리 한쪽 날아가는 꼴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니까 우선 수산물을 담은 컨베이어 벨트가
올 때 이녀석들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면 냅다 폐기함 쪽에
던져버리라고."
"석피막 인면어와 대화를 하면 안된다는 것 정도는 나노칩에서 들은 정보로
알고 있지? 근데 문제는 단순히 이놈들 질문에 대답을 안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은 버리는게 좋아. 언제나 이어 플러그를 휴대하고 있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사람 얼굴 비스무리한게 있다 싶으면 바로 귀에 쑤셔박아 넣어."
"이 새끼들 가공을 할 때엔 얼굴 부분을 도려낸 뒤에 발골작업을 거치게 되는데
바로 이 작업이 이어 플러그를 끼라고 하는 2번째 이유이기도 하지."
"칼로 도려내기 시작할때부터 이놈들이 목청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대는데,
그거를 쌩 귀로 듣고 있다간 고막이 터져 나갈지도 모른다. 이어 플러그가
조금이라도 허술하게 끼워지진 않았는지, 귀를 온전히 막고 있는지 체크 두번 세번
하고..."
"그 외에 유로파흰깃지느러미줄돔 같은 비싼 물고기는 급속 냉각 시켜줘야 하는데
이 때 조금이라도 잘못 다뤄서 상품에 흠이 생기면, 그게 다 패널티로 적용해서
당신 형량이 오히려 늘어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 1차 공정에서 그랑버드 직원들이 가공해서 정육점 고기마냥
부위 별로 들어오는 고기들이 있어. 아아.. 눈치가 빠르네. 그래. 이게 바로 그
SEA WAGYU 라고 명명하는 얼토당토 않은 '상품' 들인데, 이거 가공 하다보면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가공된 부위를 생으로 먹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어날거야."
"이 곳의 수산물을 날것으로 먹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는 상상에 맡기겠어.
그나마 이 충동을 조절하려면, 종종 편의 시설에서 구매할 수 있는 신맛 나는 사탕을
한웅큼 입에 쑤셔 넣고 그 신맛을 음미하면서 작업을 해 봐."
그 이후로도 자잘하고 다양한 조언들을 해주었고, 나는 들은 내용을 남김 없이
내가 가진 나노칩에 저장했다. 이로써 이 곳에서도 어느정도 위험 요소들을
피할 최소한의 안전 장치를 확보한 셈이다.
맥스도 나와의 대화가 다소 즐거웠는지 능글거리는 웃음기 띤 얼굴로 돌아와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가려던 그가 문득
뒤를 홱 돌더니 내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이오에서도 겪어봐서 알겠지만, 절대로
타인을 믿지 말라고. 형씨도 그렇고 나도 그렇지만 결국 이 곳에 있는 근로자들
절대 다수는 범죄자들. 질이 안좋은 놈들 뿐이잖아? 거기다가 유로파의 바다에
오랜 기간 노출되다 보면 뭔가 이상해져 버리는 녀석들도 많아서 말야...
나도 우리의 작은 인연으로 인해 이렇게까지나 진심어린 이야기를 해주는 건
행성개척지구 생활 몇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네.."
"그럼. 난 곧 전출이라서 이만 짐 정리도 하고 잠이나 한 잠 때리러 가봐야 겠군."
"뭐.. 또 인연이 닿고, 행운이 있다면 어디에선가 만나지 않겠어? 되도록이면
바깥 세상에서 자유의 몸으로 재회하길 기원할게."
.
.
맥스 테일러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휘적 휘적
기지 내 복도를 걸어나갔다.
개추 개추 개추
더 써줘
왔다 내 포르노 ㄷㄷㄷㄷㄷㄷㄷㄷ
언제나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지챠 기쁜레흔
뒤통수 왜 안쳐!!
글쎄? 몰?루
맥스좌 직접 만나니 더 호감이네ㅋㅋ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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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죽을줄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