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지지직거리는 소리) 소속 유준혁 중사입니다.


그리고 아마 대한민국의 마지막 인간인 것 같습니다.


(침묵)


하... 씨발


(머리 긁적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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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했던 대사였는데 막상 해보니까 씁쓸하네요. 진짜 이제 끝이구나 싶고.


어떻게 마지막 인간인지 아냐면.


뭐 확실하진 않습니다. 내가 한반도 전부를 뒤져본 건 아니지만 특수 훈련 받은 대원들도 다 끝장난 마당에 일반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헛기침)


이게 사실, 한국말로 녹음한다고 누가 들어나주겠습니까. 누가 들어주길 바라면 영어나 중국어 정도는 해야 하는데 근데 제가 배운 게 없습니다.


어쨌든 한국말로라도 이렇게 남기고 있습니다만 누가 들어 줄런지 하하.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까요.


말주변이 좋지는 않은 편이라 그냥 다짜고짜 유서 같은 걸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유서니까 맨 처음부터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처음에 이 이상한 부대에 들어오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대부분 이 부대에 들어온 사람들이 그렇듯 돈을 많이 준다는 얘기에 혹 해서 들어왔죠.


집안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아주 가난한 가족이었습니다. 저희는.


다만 어머님께서는 사랑으로 저를 키우셨고 저도 거기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운 게 없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을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마침 군대에서 돈을 많이 준다고 하니 덥썩 들어갔습니다.


근데 실상은 참혹했죠.


귀신들이 판치고, 이상한 규칙들이 난무하고, 작전이랍시고 가는 곳은 지옥 구석 어딘가에서나 보일 법한 괴이한 것들.


예 뭐 지금이야 길가 조금 걸어 다니면 인사도 나누는 그런 것들이 되었지만 그때는 아시다시피 아무도 이런 걸 몰랐으니까요.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 술자리에서 안주 거리로 써먹어도 안 먹힐 얘기들이 진짜라니.


거울에서 뭐가 튀어나오는 게 지금은 일상이지만, 그 때 만해도 호들갑도 그런 호들갑이 없었단 말입니다.


와 거울에서 제가 기어 나오는 걸 처음 봤을 때는, 부끄럽지만 살짝 오줌도 지렸던 것 같습니다.


말고도 기억나는 건 엄청 많긴 했는데, 이젠 밖에 일어나는 이상 현상들이 훨씬 많아서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근데 일병 시절에는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엄청 했던 것 같습니다. 장담하는데 다른 군인들보다 훨씬 휴가가 간절했을 겁니다.


우리는 휴가를 안 가면 뒤지러 가야 했으니까요.


근데 저보다 한 천 배는 더 집에 가고 싶어하셨던 병장 분이 계셨습니다.


이지현 병장님이라고 지금은 하사십니다. 작전 중에 돌아가셨거든요.


저랑 같이 근무하던 다른 병사들은 이지현 병장님 돌아가셨을 때 욕을 엄청 했습니다.


좆같다며, 나라가 아주 병사를 좆으로 본다 뭐 다 소모품이다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나라가 병신인 걸 부정하진 않겠습니다만, 사실 저는 좀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는 좀 콩깍지가 씌었을 수도 있겠다 싶긴 했습니다. 원래 일병 시절엔 저보다 높은 짬의 선임들은 뭔가 있어 보이고 그러니 말입니다.


아무튼 다른 병장들 모두 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 사람은 진짜였습니다.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말년엔 그냥 누워서 시간이나 때우는 병장이 수두룩한데 이 사람은 말출 하루라도 더 벌겠다며 작전을 뛰었습니다.


모르시겠지만 저희 부대에서 작전은 반드시 죽을 수 있는 확률을 수반합니다. 물론 죽지 못하게 되는 확률도 수반하죠.


아무튼.


이 사람이 말출을 나갔는데 말출에서까지 작전을 따서 돌아왔단 말입니다.


뭐 죽은 후임 어머니 면회를 갔다가 발견한 거라고 하니 운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죽은 후임의 어머니를 구하려고 말출에 사지로 돌아갔다는 게 좀 솔직히 멋있지 않습니까?


그때 생각했죠.


나도 저런 인간이 되고 싶다.


내가 존경할 수 있을 만큼, 나 스스로가 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웅 심리라 하면 될까요.


아무튼 그 병장님 덕에 저는 병사로써 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을 했습니다.


말뚝을 박았죠. 예.


이게 불효인가에 대해 아주 깊은 고민을 해봤습니다. 솔직히 부모보다 먼저 이승 하직하기 딱 좋은 부대였으니 말입니다.


아니 곱게 죽으면 다행입니다. 영원히 시체도 못 찾게 되거나 죽은 것 보다 못하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으니.


아. 지금은 뭐 일상이지만 그 때는 그게 큰일이었습니다.


어머니께는 차마 말씀을 못 드렸는데 말뚝을 박은 덕에 우습게도 이 나라에서 내가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인간이 되었네요.


엄마 나 성공했어. 하하.


아 참고로 저희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셨습니다.


불효는 안 저질렀으니 다행이죠.


장례는 못 치렀습니다. 이 시대에 시체 찾기란 정말 힘든 일이죠. 아, 그렇게 보면 결국 불효를 저지르긴 했네요.


(침묵)


아무튼 뭐.


저는 열심히 했습니다.


그 양반처럼 멋진 일화 하나 남기고 가자는 생각으로 평생 열심히 살았습니다. 나름 상도 타고, 진급도 빠르게 하고 그랬죠.


아무래도 병사 출신이다 보니 병사들한테도 인기가 꽤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삼사나 사관학교 출신들은 좀 병신이더라구요. 이상한 엘리트 의식이 있어요.


그런 새끼들은 사건 터지자마자 다 뒤졌습니다.


작전은 한 번도 안 뛰어봤거든요. 작전은 애초에 병사들이 다 뛰니까 말입니다.


사람 죽었다고 좋아하면 안 되긴 하지만, 그 씨발 새끼들 애들 작전 뛸 때 '엄살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라고 하는 거 보면


뭐.


잘 죽었습니다.


(침묵)


아 한 명 괜찮은 친구가 있긴 했습니다.


김지윤 하사라고 빠릿빠릿한 친구였습니다.


아니지 그 때는 좀 많이 느릿느릿한 친구였죠.


느리지만 배움에 열정이 있는 그런 친구였다고 해야 할까요.


처음 들어왔을 때는 뭐 하나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군대에 온 이유도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오빠가 괴현상에 휘말려서 죽어서라는 이유였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곳에 지원해서 오는 친구라면 보통 그렇죠.


뭐랄까 저 처음 입대했을 때 생각이 났습니다.


특히 간부들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병신 취급하는 이상한 풍조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많이 도와줬던 것 같습니다. 작전도 많이 뛰었고 밥도 같이 먹고 술도 마시고.


저희는 많이 친했습니다.


나랑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면 그 애도 편하게 죽을 수 있었을까요.


(침묵)


저희 부대 최후의 작전은 서울에서 진행 되었습니다.


괴현상 전이가 전세계로 퍼지기 전까지는 서울에 국한된 현상이었습니다.


괴현상은 저희가 상상할 수 있는 괴현상과 상상할 수 없는 괴현상이 모두 일어났습니다.


가장 끔찍했던 건 저희가 시간 감옥이라 부르던 공간이었습니다.


한 번 그 공간에 들어가게 되면 10초 주기로 그 시간이 영원히 반복되는 공간이죠.


듣기엔 훨씬 더 끔찍한 게 많았겠지만, 먼저 들어간 대원이 공간이 어떤 곳인지 그 공간 안에서 깨닫고 말았습니다.


그 대원은 어마어마한 절망과 공포를 느꼈고, 보이지 않는 벽을 온 힘을 다해 두드렸습니다.


죽는 건 사실 가장 평온한 형벌입니다. 지금 시대에는 정말로요.


그 친구는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절망하고 공포에 떨어야겠죠.


아무튼 저희는 상상할 수 있었던 것들과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을 모두 나름의 방법으로 대처해가며 나아갔습니다.


한 달 동안 대원의 수는 1할도 채 남지 않게 되었고 저희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건 막을 수 있는 종류의 재난이 아니다.


사령부 내에서 회의가 필요하다고 판단 우리는 일단 작전을 끝내고 부대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전 세계가 망한 지 오래 된 참이었죠.


서울에서 살아남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 단편 SF소설 중에 그런 게 있습니다. 초고성능 AI가 인류 최후의 생존자들을 갖고 노는 그런 소설이요.


저희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괴현상이 저희를 죽이기로 마음 먹은 순간 만을 기다리는 그런 기분.


수는 하나씩 줄어들었습니다. 괴현상에 죽은 건 아니었습니다.


여긴 이제 자기 마음대로 죽을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어서, 죽을 수 있는 때가 오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그게 현명했죠.


나와 그 친구는 최후의 생존자였습니다.


(침묵)


좋아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친구도 그랬을지도 모르죠.


군인들은 보통 병신들입니다. 자기 마음 하나 표현 못하고 묵묵히 제 할 일 하는 놈들이 보통 군인을 하거든요.


저도 그런 유형일 겁니다.


죽기 전까지 모르다가 이제와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딴 소리나 하고 있으니까요.


병신 같으니.


(침묵)


죽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그냥 죽어버리고 싶어요. 나도 다른 대원들처럼 편하게 목숨이나 끊을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친구가 곁에 있었기 때문에 버텼다는 생각이 들고, 없는 지금에서야 다 아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듭니다.


근데 죽으면 그 친구는 영원히 미로를 헤매야 해요.


아무도 없는 검은 건물, 탈출구도 없는 지옥에서 위 아래를 왔다 갔다. 수백 수천 번을 죽어도 또 다시 살아나 미로를 헤매야겠죠.


(침묵)


(오열)


(심호흡)


저는 지금부터 잠에 들 겁니다.


이 사령부라는 곳은 정말 이상한 걸 많이 만들었는데, 그 중에 수면 유도제라는 게 있습니다.


그냥 잠에 들게 하는 건 아니고 이상한 데가 있습니다. 좀 외로우신 분께서 사람 끌어모으는 공원이 있어요.


아무튼 이거 먹고 자면 직빵으로 거기에 갑니다.


거기에 가면 소원을 들어주는 물건을 판다고 알고 있습니다. 보고서엔 기록되지 않았지만 금화가 100개인가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지구가 지옥이 되었지만 거긴 아예 지구와 다른 별개의 공간이라 여전히 돌아가고 있을 거고, 좀 열심히 해보면 금화를 모을 수 있을 겁니다.


말고는 전부 지옥이라 방법을 모르겠네요.


잘 모을 수 있게 되어서 전부 되돌려 달라고 할 겁니다.


평범한 세상으로 바꿔 달라고 빌 겁니다.


그 친구는 너무 도박이라고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게 가능할지는 저 억겁의 세월을 견뎌온 별만이 알겠죠.


제가 깨어서 드리는 마지막 인사가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 이 녹음 파일을 게 되신다면 누군가 이런 노력을 했지만, 결국 이렇게 됐구나 정도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듣는다고 맨정신인 양반이 듣겠냐만은


참 허무한 마무리네요.


그렇게 애를 써서 지키려 했던 인류가 이렇게 끝이 난다는 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나같이 못 배워 먹고 평범한 인간한테 인류의 미래가 달렸다는 것도 좀 그렇고.


다른 어디에도 저 같은 놈이 있어서 세상을 구할 방도가 있길 바라겠습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기록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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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기록은 서울 XX역 분실물 센터에서 발견된 녹음기로부터 추출한 것이다.

- 비현실적인 현상 및 기록으로 보아 정보 유출로 판단하여 조사 중에 있다.

- 위 기록에서 언급된 모든 괴현상은 실제로 일어난 적 없는 현상이다.

- 위 기록에서 언급되는 인물 또는 사건에 대해 조사 중이나 현재까지 밝혀진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