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시급 높은 꿀빠는 알바 처럼 보였어.


자기가 일주일간 여행 가니까 애완동물 좀 돌보고 집에 사람 있는 거처럼 해 달래


근데 시급이 3만 원이 거야 집만 좀 보면 되는 데 그래서 바로 지원을 했지


지금 생각해보면 근무 수칙이 조금 이상하긴 했어


일 하시면서 해당 사항은 꼭 지켜 주셔야 합니다.

출근 시간은 오전 9~10시, 퇴근 시간은 오후 6시~7시 꼭 시간 지켜서 해당 시간 사이에 출퇴근해주세요.

출근 후에는 하고 싶은 거 하시면 됩니다.

애완동물용 먹이는 7일 치 소분해서 냉장고에 넣어 놨습니다. 오후 4시에 주시면 됩니다.

먹이를 사료그릇 위에 두시고 소파에 앉아서 20분 동안 그릇을 쳐다봐 주세요.

그 후에는 다시 하실 거 하셔도 됩니다.

시간은 꼭 지켜주세요.


이거 보고 솔직히 개쫄아가지고 갔는데 그냥 평범한 좀 오래된 아파트더라고.


한 2일 일하니까 나도 그냥 긴장 풀고 정주행 할 드라마나 정해서 봤음.


근데 3일째 되는 날에 내가 먹이 주고 20분간 바라보는 걸 깜빡한 거야. 드라마 보는 데 어디서 자꾸 축축한 살끼리 맞닿는 소리? 같은데 나는 거야. 그래서 사료그릇 쪽을 봤다?


나는 아직도 그 광경을 못 잊어 그거 보자마자 비명도 못 지르고 뛰쳐나왔어.


내가 분명히 아파트라고 했잖아? 그런데 나와서 본 풍경은 뭐랄까 어두운 폐공장이나 지하철 같은 느낌? 지하철 안내판 같은 천장에 매달린 표지판이 있어서 더 그랬던 거 같아.


그 어두운 공간에서도 표지판은 잘 보이더라.


‘91층 비어있음’


솔직히 아직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뛰쳐나와서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탔거든.


다리에 힘 풀려서 벽에 기대 서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거야 난 아직 아무것도 안 눌렀는데.


창문이 있는 엘리베이터라 움직이는 게 보였단 말이야?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위나 아래로 움직이잖아 얘는 옆으로 갔다가 대각선으로 갔다가 하더라고 그러다 31층에 멈췄어.


문이 열리고 여기도 그 지하철 표지판 같은 게 있더라


‘31층 막아야 함’


그리고 바로 느껴지는 바람, 그 소리.


미친듯이 닫힘 버튼을 눌렀고, 다행히 다시 움직이더라.


다음엔 0층에서 멈췄어. 문이 열리자마자 여기서 내려야 한다는 게 느껴지더라고.


정말 내 인생에서 그 순간보다 빨랐던 적은 없었을 거야.


아파트 밖으로 나와서 집으로 뛰어가려는 데 펑하는 소리가 들렸어.


내가 일하던 집이 폭발한 거였어.


그 후엔 다행히 별일 없어서 여기에 글 쓰고 있는 거야.


근데 보통 집이 폭발한 정도면 기사라도 한 줄 나오지 않나?


후에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 진짜 큰 폭발이었는데 말이지.


집주인한테는 연락 못 해봤어 그쪽에서도 연락이 없었고. 돈은 못 받았지만 난 솔직히 살아남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딱 한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내가 일했던 집 층이 8층이었단 말이야. 그런데 내가 탔던 엘리베이터 벽면에 립스틱 같은 걸로 쓴 듯한 글씨가 남아있었어.


‘8층 관리 필요함’


난 아직도 내가 뭘 경험 했는 지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