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엄마는 가출 했고, 돈 버느랴 바쁜 아버지 밑에서 자라왔다.
대학은 어디 가서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지방대, 인간 관계도 썩 좋다고 할 수 없다.
설상가상 한달 전 내 모든 사정을 알고 이해해주던 여자친구도 떠났다.
그놈의 돈 때문에...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냈다.
그렇게 나는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한 달 내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면 그녀만 떠올랐다.
그녀의 얼굴, 그녀의 미소, 그녀의 눈물, 그녀의...
이렇게 쭉 아무 것도 하기 싫었지만...
달마다 50만원씩 생활비를 보내주시는 아버지의 돈만으로는 살 수 없었기에 다시 일어나기로 했다.
평생을 무력하게 살아온 나는 변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일기를 쓰기로 했다.
내가 오늘 느낀 감정, 감사했던 일 등등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내가 어떻게 살았구나를 기록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특히 맨 마지막 줄은 감사했던 일을 쓰기로 했다.
202X년 7월 21일 월요일
사장님과 같이 일하는 친구의 배려로 잘 쉬다가 복귀했다.
가뜩이나 일머리도 없는 주제에 한 달이나 일을 쉰 탓에 얼을 탔다.
사장님이 정신 차리라고 혼을 냈지만 그동안 많이 배려를 해주셨기에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퇴근하며 집에 가는 버스에서 아이가 버스 밖을 바라보며 궁금중이 풀릴 때까지 계속 질문을 쏟는 게 참 귀여웠다.
반짝이는 눈으로 열심히 질문하는 게 미래가 밝아 보였다.
아, 그리고 사장님이 한동안 일을 쉬어서 어쩌냐며 10만원을 용돈으로 주셨다.
정말 사장님 덕분에 다시 일어나기를 잘한 거 같다고 느꼈다.
202X년 7월 24일 목요일
일기를 쓰기로 해놓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이틀이나 빼먹었다.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나도 참...
오늘은 손님이 평소보다 적어서 일찍 마감했기에 여유가 나서 쓴다.
일찍 퇴근한 그 날에도 버스의 아이를 만났고, 아이는 오늘도 바깥을 보며 열심히 질문을 해댔다.
퇴근하며 들린 카페에서는 커피를 기다리는데 테이블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부자를 봤다.
아이의 아빠는 허니 브레드를 썰어 입에 넣어줬고, 아이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맛있게 먹었다.
어쩜 저렇게 밝게 웃을까?
괜스레 저 관계가 질투가 나 눈물이 났다.
나도 저렇게 다정한 가족의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오늘따라 단골 카페 커피의 산미가 좋았다.
202X년 7월 26일 토요일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집에 오니 1시라 일요일이라 적으려 했지만 토요일의 나를 기록하는 것이니 토요일이라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딱히 할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사는 이야기, 옛날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나눴다.
한창 술을 마시다가 친구들이 내게 괜찮냐고 물어왔다.
무엇 때문에 괜찮냐고 묻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자연스럽게 여자 친구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졌다.
그래서 알아서 정산하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고 자리를 빠져 나왔다.
나는 뭐에 화났을까?
아픈 곳을 찔러서? 아니면 그들이 그리움에도 볼 수 없다는 것에 화풀이를 했을까?
집에 가는 길 유난히 밝은 달이 그녀의 새하얗던 얼굴을 떠오르게 한다.
감사했던 일을 적어야 하는데...도무지 생각나지가 않는다.
202X년 7월 27일 일요일
마트에서 장을 보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그 아이가 있었다.
열심히 바깥을 보며 떠들던 아이는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 지 매번 같은 질문을 했다.
이젠 아이의 질문을 죄다 외울 지경이다.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이제 귀에서 울리는 거 같다.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오늘 시식 코너에서 먹은 만두가 맛있었다.
202X년 7월 28일 월요일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이런 씨발
우리 집은 8층이다.
여자 죽인걸 아이가 본건가
월 50이면 충분한데 뭔소린가 했더니 역시 반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