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안녕하세요! ‘이탈자’이신가보네요. 환영해요! 사실 별로 환영할 일은 아니지만요. 그래도 정말 반가워요.
안 돼요! 이곳에서 뒤를 돌아보는 건 위험해요.
왜냐구요?
음... ‘우리’와 마주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당신에게도, ‘우리’에게도 말이죠. ‘앞’에서는 어떠셨을지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호기심에 도전하지 않는 게 좋아요.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니까요.
정말 뒤를 돌아야 한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움직여야 해요. 반 시계 방향으로 원을 걸으며 돌아보는 방법이 가장 안전해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아야 해요. 너무 빨리 돌다 마주치면 곤란하잖아요?
아 참, 이곳이 어디인지 설명하지 않았죠? 이곳은 ‘사이’에요. ‘앞‘과 ’뒤‘의 사이에 존재하죠. ‘앞’과 ‘뒤’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종종 당신 같은 이탈자를 만들기도 하죠. 너무 걱정할 건 없어요. ‘우리’가 있으니까요!
‘우리’요? 음... ‘안내자’ 정도로만 생각해 주세요. 너무 깊게는 궁금해하지 말아요. ‘우리’의 존재도, 앞으로의 말들도요. 아까 말했듯 이곳에서는 호기심에 도전하지 않는 게 좋으니까요.
말이 너무 길었죠? 그럼, 이제부터 당신을 ‘안내’하도록 할게요.
눈을 감고 속으로 당신의 이름을 세 번 부르세요. 목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에 들 거예요. ‘그것’을 꺼내주세요. 방법은 상관없어요. 실수로 삼켜버리지 않길 바래요.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것’이 다시 목구멍에 걸릴 때까지 계속 반복해야 할 뿐이죠. 지금도 ‘앞‘의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만약 이름이 떠오르지 않으신다면 축하합니다! 운이 좋으시네요. 눈을 감은 채로 가만히 기다리세요. 자연스럽게 ’뒤’로 흘러갈 거예요.
다행히 삼키지 않으셨네요. ‘그것’의 어딘가에는 당신의 이름이 쓰여 있을 거예요. 이름이 보이지 않도록 완전히 가려주세요. 옷 같은 건 추천하지 않아요. 어차피 ‘그’에게 당신의 옷 따위는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이제 ‘그’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요. 저 달이 완전히 둘로 나뉠 때쯤 올 거예요. 절반 정도 나뉘었으니, 한 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되겠네요.
‘그’는 무서울 정도로 새카만 존재에요. 보면 아실 거에요. ‘우리’는 이미 끝났기 때문에 ‘그’를 볼 수 없어요. 당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가 보이면 말해주세요. 그전까지는 ‘앞’에서의 기억을 더듬어 보는 걸 추천해요. 여기저기 둘러보다 괜한 호기심을 갖게 되면 곤란하잖아요.
드디어 ‘그’가 왔나 보군요! 여전히 보이지 않는군요. ‘그’는 당신에게 누군가의 이름을 대며 말을 걸 거에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면 ‘죄송합니다. 저는 000으로 불리는 존재입니다.’라고 정중하게 당신의 이름을 답해주세요. 정중하게요. 이들에게는 ‘그것’에 쓰인 당신의 이름을 보여주셔도 괜찮습니다. 만약 당신의 이름을 대며 말을 건다면 ‘저는 잊었습니다’라고 답하고 지그시 눈을 감아주세요. 이름을 들켜서는 안 돼요.
눈을 감고 있는 동안 어떤 소리가 들리든,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절대 눈을 뜨지 마세요. ‘그’는 그렇게 친절하지 않거든요. 자신을 속였다는 걸 알게 되면, 아마 눈이 없어지는 걸로 끝나지는 않을 거에요.
고생하셨어요. ‘그’의 추궁을 겪고도 두 눈이 멀쩡한 존재는 그리 많지 않답니다. 생각보다 무감각한 분인가 보네요. 뭐, 그게 더 좋을지도 모르죠.
자 이제부터는 바빠질 거에요.. ‘지워질 차례’거든요. ‘그것’을 손에 꼭 쥐고, ‘나는 나의 존재를 지운다. 나는 지워진 존재다.’라고 읊조리며, 원하는 방향으로 직진하세요. 도달할 때까지 계속이요. 너무 크게 말하지 않아도 돼요. 들을 수 있는 존재가 생각보다 많거든요.
웬만하면 발끝만 보면서 걸어가길 추천해요. ‘사이’는 당신이 도달하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방해하려 들 거에요.
‘그것들’이 당신의 존재를 눈치챘나 보네요. ‘그것들’은 살아있는 것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이제부터 미친 듯이 졸음이 쏟아질 거에요. 어떻게든 버티세요. 허벅지를 꼬집어서라도요. 여기에서 잠들면 정말 ‘지워질’ 거에요.
걷는 걸 계속하기 어렵다면 잠시 멈추어도 좋지만, 방향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주세요. 무엇을 마주치게 될지 몰라요. 아무리 자제력이 좋고 무감각한 당신이라도 견딜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만 알아두세요. 그들과 ‘무한’을 함께하게 될 거에요.
도달하게 되면 우선 눈을 감고 ‘나는 ‘앞’에 존재하고 있는 나의 이름을 지우고자 이곳에 발을 들인다’라고 소리치세요. ‘존재를 지우고자 하는 용기 있는 자에게 추악한 이름을 선사하노라.’라는 답이 들려올 때까지요. 답이 들려오면 눈을 크게 뜨고 ‘그것’을 머리 뒤로 던져주세요. 세게 던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뒤’가 중요한 거거든요.
‘당신은 이름만 남은 존재이다. 이미 지워졌노라.’라는 답이 들려온다면, 아쉽지만 눈을 감고 기다리세요. ‘그’가 찾아올거에요.
도달하셨군요! 빠른 편이시네요. 역시 무감각함이 도움이 되었나 봐요. ‘그들’을 보고 별로 동요하지 않으시다니... ‘앞’의 당신이 궁금해지네요.
아- 아니에요! 말해주지 않으셔도 돼요. 당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최대한 하지 마세요. ‘사이’는 살아있거든요.
이제 어디선가 ‘그녀’가 나타나 당신에게 새로운 ‘그것’을 줄 거에요. 꼭 두 손으로 받으며 공손히 감사 인사를 하셔야 해요. '꼭'이에요. ‘그녀’는 ‘그’보다 온화는 하지만, 자비롭지는 않거든요. 인사가 충분하다고 생각되면 ‘그녀’가 당신의 왼쪽 어깨를 두 번 두드릴 거예요. 다시 말할게요. ‘왼쪽 어깨’에요. ‘그녀’가 다른 부분을 두드리기 시작했다면 눈을 꼭 감고 ‘지배하셨던, 지배하시는, 지배하실 분께, ‘앞’의 미물이 참으로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이 존재의 빛을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외치세요.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최후의 자비를 베풀어 하나만을 취할 거에요. 그 하나가 머리가 아니기를 저도 빌어드릴게요. 진심으로요.
역시 운이 좋으시네요. ‘그녀’에게 빼앗기지 않았네요. 여기까지 도달한 ‘이탈자’도, 이렇게 멀쩡한 ‘이탈자’도 당신이 처음이에요. 정말 기쁘네요! 너무 벅차올라서 없는 심장이 뛰는 것 같다니까요!!
너무 흥분했죠? 미안해요. 하지만 너무 신났거든요.
이제 '끝’을 향해 안내할게요. ‘그녀’에게 받은 새로운 ‘그것’의 이름을 확인해 주세요. 그 이름은 이제부터 당신이에요. 그 이름을 크게 외치며 ‘그것’을 삼켜주세요. 타이밍이 중요해요. 세 번째 외치는 순간 ‘그’가 나타날 거예요. ‘그’는 이름을 좋아하거든요. 무서울 정도로요. ‘그’가 당신을 붙잡기 전에 완전히 삼켜야 해요. ‘완전히’요.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할 수 없어요. ‘사라지는 것’은 아주 너그러운 처벌이랍니다.
완전히 삼키셨나요? 그럼 저기 보이는 ‘끝’을 향해 최대한 빠르게 달려가세요. 당신이 아는 얼굴을 보아도, 아는 목소리를 들어도 무시하세요. 누구더라도요. 이미 아시겠지만. 그들은 당신이 아는 그 사람들이 아니에요. 아니, 사람이 아니죠. 얼른 달리세요. 이제는 다른 방법도 없어요. 그냥 달리세요. ‘끝’까지.
달려요. 계속. ‘새로운 당신’을 기대하면서요. ‘우리’의 안내를 되새겨보세요. 그것이 당신에게 ‘끝’을 가져다줄 거에요. 이 말만은 흘려듣지 말아요.
드디어 ‘끝’에 닿으셨군요. 셀 수도 없는 시간 동안 몇백이 넘는 사람을 ‘안내’했지만 이곳까지 도달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에요!! 아, 정말 너무 신나서 눈을 뽑아버리고 싶은 지경이네요. 덕분에 ‘끝’을 맞이할 수 있어요. 고마워요!!
당황한 얼굴이네요. 그걸 얼굴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요! ‘우리’의 이름을 가져가 주어서, 그리고 ‘끝나지 않은 이름’을 주어서 고마워요. 정말 정말 정말 고마워요!!! 당신이 호기심을 갖지 않고 저의 ‘안내’에 충실히 따라준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어요.
썩어버린 ‘우리’의 몸뚱이를 잘 부탁해요! 뭐, 차차 적응될 거에요. 뭐 ‘원래’ 제 것도 아니었지만, 꽤 정들었었는데… 아쉽네요!
농담이에요!! 새카맣게 썩어 문드러진 몸뚱이를 누가 아쉬워하겠어요. 하나만 기억해요! ‘이탈자’에게 얼굴을 보여서는 안 돼요. 이유는 몰라요. 저도 ‘우리’에게 ‘안내’ 받았거든요. 호기심에 도전하지 말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해요. 굳이 이것저것 시도해 보지 않기를 바라요. 말했죠? ‘사이’는 살아있다고.
마지막으로 이 말만 전해줄게요. 이곳은 지옥이에요. 영겁의 시간이 흘러도 죽을 수 없죠. 죽을 수만 없게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저 ‘이탈자’를 기다릴 뿐.
최대한 빨리 당신처럼 무감각한 ‘이탈자’를 만나 ‘끝’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라요. ‘안내’를 계속 떠올려요. 그것만이 ‘사이’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고마워요. 사과는 하지 않을게요. 나도 절박했거든요. 당신의 이름으로 잘살아 볼게요. ‘우리’가 된 걸 환영해요. 그럼, 명복을 빌어요!
읽느라 힘들긴했는데 신선했다
좀 더 읽기 좋게 쓰도록 노력해보게씀
저 저 씨발년
ㅋㅋㅋㅋㅋ
이새끼 지얼굴 안보여주려고 천천히 뒤돌라했네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