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산골국도


어느 한 산골, 굽은 국도에 한 차량이 달리고 있다.

어둑어둑해진 지 오래라 전조등에 의지하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도착하지 못한다.

그렇게 길을 따라 계속 가니 여인 한 명이 짐을 양손에 든 채 히치하이킹을 요청하는 것이 보였다.

내 차는 좁아 나 혼자도 감당하기 힘든데 이를 어쩐다 말인가.

창문을 내려 여인에게 말한다. "어디 가십니까?"

여인이 속삭이듯 말하지만 야밤이라 그런지 나에게 뚜렷하게 들린다.

"어두워 길을 잃었으니, 가까운 마을로 데려다주실 수 있나요? 사례는 하겠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던 나는 이 야밤에 여인 혼자 그것도 산골에서 버려둘 수 없어 타협하기로 결정했다.

"어두워 길을 잃으셨다면, 제가 전조등을 켜며 갈 테니 따라오시지요"

난 내 말만 휙 던지듯이 하곤 보조석 창문을 내리고 다시 산골의 굽은 국도를 아까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한 3분쯤 달렸을까? 잘 따라오나 걱정되어 백미러를 보니 아까 본 양손에 짐을 든 여인이 열심히 쫓아오는 게 보였다.

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여인을 바라보고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그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이미 여인은 나랑 똑같은 속도로 이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보조석 창문 너머로 보이는 여인의 속도에 그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짐을 양손으로 든 채 차량과 똑같은 속도를 내다니 내가 모르는 운동선수라도 되는 것일까?

놀란 마음에 계속 지그시 여인을 바라보고 있자 이내 나를 의식한 듯 추월하여 내 전조등 앞에서.

어느 순간부터 국도가 보이지 않는다. 떨어지고 있다.

짧은 의문 이후 다시 눈을 뜬다.



어느 한 산골, 굽은 국도에 한 차량이 달리고 있다.


5. 쿠키는 달콤하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복잡해지고 있는 현대에서 잠깐이라도 멈칫하면 도태된다.
대도시의 창문 밖 풍경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개미처럼 늘 언제나 바쁘게 흘러간다.
하지만 부모를 잘 만난 사람들은 저렇게 발버둥 치지 않더라도 도태되지 않는다.
물론 나 또한 계모를 잘 만나 이렇게 살고 있지만 말이다.

개미처럼 사회의 톱니바퀴로 굴러가는 창문 밖 사람들의 발버둥을 지켜보며 쿠키를 한 입 한다.
달콤하고 바삭한 어머니의 쿠키는 그 풍미가 입 안에 맴돌면서 삶의 활력을 제공해준다.
내가 이 방을 나가지 않고 사는 것도 창 밖의 세상이 싫기도 하거니와 이 쿠키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 있다.
맛있는 쿠키, 안락한 삶 그리고 창 밖의 풍경은 서로 시너지를 일으켜 오늘도 나를 이 방에 머물게 해 준다.

아 정정하겠다. 솔직히 말해서 달콤한 쿠키가 8할 정도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거 같다.
내 글솜씨가 훌륭하지 않아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 누구라도 계모의 쿠키를 먹어본다면
모두가 똑같이 하는 일을 멈추고 쿠키의 맛을 음미할텐데 말이다.

아 참고로 이는 내 여동생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동생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 함께 이 방에 생활하며 지냈는데, 식사 시간마다 쿠키를 먹고 싶다며 칭얼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쿠키로 삼시 세 끼는 아니지 않은가?
뭐 여동생의 그런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는지 여동생은 계모의 사업을 도와 일하고 있다.
아마 어머니의 사업은 내가 아니라 여동생이 이어받을 거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왜 나한테는 물어보지 않았을까.
뭐 상관없다. 성인 남성 한 명을 이 정도 환경에서 생활하게 할 정도에 사업이라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을 텐데
딱 봐도 귀찮아 보인다. 관심도 없고 말이다. 나는 지금의 환경이 너무나 좋다.

삼시 세 끼를 원하는 걸 먹고, 간식으로 쿠키, 그리고 창 밖의 개미들 구경까지
최근 들어 살이 쪄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그거야 계모가 알아서 하시겠지.

아 쿠키가 다 떨어졌네. 계모를 불러야겠다. 쿠키는 달콤하니깐.
쿠키 하나를 쟁반에 받고 오랜만에 계모와 말을 나눴다. 평소에는 그냥 조용히 나를 쳐다보면서 쿠키를 주던 계모가 말이다.
대화 도중 계속해서 내 몸을 흘겨보는 걸보니 내 살집과 관계있는 거 같다. .
운동이라도 시킬 예정인지 마지막 쿠키라도 되는 양 단 한 개만을 계모가 주었다.



운동을 하려면 나가야 되고, 나가면 개미들은 내 쿠키를 뺏어먹는데.
복잡한 마음을 달래고자 어느 때처럼 계모의 쿠키를 한 입에 삼켰다.
달콤하다. 너무나 달콤하다.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한 쿠키였다.




그리고 나는 달콤해졌다.

6. 소원을 들어주는 별똥별


어릴 때부터 지금 까지 나에게 한 가지 믿음이 있다면 바로 별똥별은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이다.
최신형 게임기를 부모님이 사주시길,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가게 해 달라는 둥
작게는 과자부터 크게는 여행같이 모든 걸 별똥별에 빌었다.
그리고 이루어졌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을 보기 위해 잠을 안 자고 버티면서 소원을 빈 덕택일까.

별똥별은 어떤 면에선 나의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사건들은 모두 별똥별이 이루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별똥별은 나는 맹신하고 추종한다. 당신도 나와 같은 경험을 공유했다면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아무튼 최근 들어 나한테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고 별똥별에게 소원을 빌어야 할 고민이.
바로 친구인 전교 1등 때문이다. 공부는 노력과 재능의 영역이라고. 네가 스스로 이룩할 수 있다고 말하려고 했지?
하지만 그 격차가 하염없이 줄어들기를 기대하기에는 1등과 2등의 벽은 너무나 거대했다.
나 스스로 그 벽을 부수기보단 소원 한 번 빌면 끝인데 굳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말이다.

뭐, 전교 1등인 친구는 나랑 오랜 시간 친구이고, 같은 단지에 사는 이웃사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입시에 너와 나 보단 '나'라는 표현이 어감이 더 좋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친구에게 미안하더라도 나는 소원을 빌어야겠다. 나의 별똥별에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오랜만에 다시 소원을 빌기 위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간다.
언제나 나와 함께하던 별똥별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면서 난 내 손안에 물건을 놓치지 않겠다듯이 꽉 쥐었다.
손안에 있는 이것은 나의 '별똥별'이다. 나만의 '별똥별'.

아, 그 친구가 오고 있다. 천천히. 느릿느릿하게.
나는 심호흡을 한 번하면서 천천히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제가 전교 1등이 되게 해 주세요'

별똥별이 떨어졌고, 소원을 빈 나는 전교 1등이 되었다.
역시 별똥별은 소원을 들어준다. 내 소원만을.



물론, 당연히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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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도인데, 2번은 여기서 봤던 내용을 재밌게 봐서 카피해서 한 번 만들어봤어. 뭔가 규칙으로 만들려고하니깐 그 작위적인 느낌이 나랑은 잘 안맞더라고.
아무튼 글솜씨가 부족해서 내가 표현하고자 한 게 잘 전달이 됐는 지 모르겠네.

열심히 노력해서 시간 날 때마다 적고 있는데 한 번 읽어보고 피드백해줄 수 있을까? 고마워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