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몸이 녹초가 되어간다.

어제는 무엇을 했는지, 이젠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아.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 나이땐 무언가 있었다. 9시, 약간 늦은 아침에 느껴지는 햇살과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바람이 나와 함께하던 시절.

지금은.. 잘 모르겠다. 바람도 그저 날카롭고 태양은 나에게 따뜻하지 않다. 오히려 화를 내는 듯 한 폭력적인 뜨거움만 느껴질 뿐.

어린 시절 생각을 하면 꼭 떠오르는 이야기도 있다.
나만이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한 번쯤 느껴봤을 그런 이야기가.

당신은 화장실 배수구에 끼어있는 머리카락의 주인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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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이야기다. 자주 겪을 만 한 일은 아니지만
결코 겪어보지 못 했다고 할 순 없는 그런 이야기.


그저 8살의 어린 아이가 말해주는 듯 한 약간의 동화같은 괴담이고,
분명 괴담이 아닌. 그런 이야기다.



'혼자' 해야 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할 무렵. 오늘도 혼자 씻기 위해서 화장실로 들어간다. 이쯤에서 괴담 이야기를 하자면 생각나는 일이 또 있는데,  바로 머리를 감을때 눈을 감으면 귀신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그런 단순하면서도 저질스런 이야기.

아이는 그 귀신이 무서웠다. 무서워서 그랬겠지. 무서워서. 무서워서 눈을 감지 않았기에 아이는 본 거야

배수구에 끼어있는 머리카락을

귀신이 무서워서 볼 수 밖에 없었다고 하기에도 참 그런 이유가 있는데.

어차피 배수구는 막혀 있었어. 머리카락으로? 막혀 있었기에 아이는 그 슬러지 범벅의 더러운 머리카락 덩어리를 손으로 하나하나 집어내고, 변기에 가져가서 버려야 했지.

하지만 이제 막 '혼자' 무언가를 해 볼 나이인 아이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어.
애초에 배수구가 왜 막히는 지도, 배수구가 막힌다는 것도 모를 나이인데 말야.

그럼 아이는 어떻게 했지?
그래! 바라본거야. 물이 흘러가는 방향을, 그리고 그 최종적인 위치를. 바라보면서, 바라보면서, 아이는 배수구가 막힌 이유를 몰랐어. 그래서 보기만 한 거야. 배수구를 지긋이 바라보기만 했어.

아이는 무엇을 봤을까?
각질과 인체 부산물이 뒤섞인 흔한 배수 장애물?
그저 점액 덩어리인 적갈색 머리카락?
아이는 왜 무서웠게? 머리카락이 징그러웠을까? 섞인 부산물들이 곪아 썩어서 냄새가 났을까?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이 났다. 어린 시절의 풍부한 창의력이 저주가 되어 돌아온 그런 이야기.
참 단순한 시절이었다. 고작 막힌 배수구를 바라보다 나만의 괴담을 뚝딱 만들어 스스로 공포에 먹히던 그런 시절.

슬슬 땀에 절어서 내 말을 들을 생각조차 없는 이 초췌한 육신 덩어리를 이끌고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간다.

습관처럼 바라본 배수구에는 듬성듬성 적갈색의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져 나를 당장이라도 찔러올듯 노려본다.

그래. 난 이 머리카락이 참 무서웠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나 조차도 가지지 않았던 이 적갈색 긴 머리카락이 너무 무서웠다

내 비명 소리와 함께 들이닥친 부모님과 바라본 배수구는 깨끗해서 무서웠다.



다시 한 번 내 머릿속은 쓰레기 저질 괴담으로 가득 차오르기 시작한다. 분명, 괴담이 아닐 그런 이야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