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주 정도라면 이미 퇴고를 끝내고도 시간이 남을 줄 았았으나ㅡ아직 초반부의 수정마저도 다 끝내지 못한 꼴을 보아하니,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는 직감이 나의 머릿 속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치며 내 뇌를 짓누른다.


새벽의 몽롱하고 신비로운 감각은 글을 창조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ㅡ이를테면 최상의 상태라 할 수 있으나, 글을 다듬기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아니하다.


아이디어는 막혀있던 수로가 뻥 뚫린 것처럼 샘솟으며, 그 물줄기가 거친 파도와 같이 머릿 속을 이리저리 헤집어놓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생각은 더 정리가 되지 않는다.


미쳐버릴 것만 같다. 머리는 파도에 휩쓸려 엉망이 되어버렸다. 생각은 이제 나지도 않는다. 나는 이제부터 그저 존재하기만 할 뿐인 인간이 되어버리고야 만 것이다.


심상을 묘사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 자신의 마음마저도 잘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어찌 다른 이의 마음을 묘사하는 것이 쉬울까. 내가 그가 된다 하더라도, 혹은 그가 내가 된다 하더라도, 나는 평생 그의 심상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할 것이다.


혹은 이 모든 것이 그저 비겁한 자기변명일 수도 있다. 내가 불가능을 언제부터 규정할 수 있었던가. 인간은 언제부터 불가능을 규정했는가.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고 누군가가 얘기한 것을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말에 전적인 동의를 표한다. 우리는 발전의 역사를 잊어버린 것인가. 손에 주먹도끼를 들고 다녔던 우리가 어떻게 책을 지니게 되었는지를 잊어버린 것인가. 인간은 계속해서 발전하는 동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가능을 규정할 수 없다. 우리는 불가능을 개척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무지를 가르쳤다. 그는 나 자신을 알라 말했다. 소크라테스가 진정 원했던 것은 인간에게 자신의 무지함을 깨우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무지! 소크라테스가 독미나리즙을 들이키면서까지 아크로폴리스의 청년들에게 자신의 무지를 깨우치라 일렀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대체 무엇이 그가 도시에 대혼란을 불러올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소크라테스가 진정 원했던 것은 청년들로 하여금 불가능을 증명하기 보다는, 가능성을 탐구하도록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리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이 멀리 있는 목표더라도, 뼈를 깎는 노력이 동반된다면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을테니까.


이것이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된 이유기도 하다. 세상에는 어렵다 생각되는 일이 있을 수는 있어도 불가능이란 존재 할 수 없다는 것. 노력이 빚어낼 수 있는 결실은 결코 초라하지 않다는 것. 단지 이 두 가지 사실만 가슴 속에 담아두고 산다면, 마음이 무너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어둑한 새벽에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내용을 토해내고 나니 머리가 가벼워지고 생각도 한결 편해졌다. 이 기세를 몰아서 퇴고 작업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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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머리가 좀 어지러워서 아무 말이나 좀 써봤음. 뭐라도 써 재껴보니까 한결 낫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