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당께서 오랜 책무를 끝마치셨습니다. 따라서 자리가 비어버렸습니다만, 마땅히 후계가 준비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영자令姉께서 그 일을 맡으셨겠지만, 다들 구경의 일석을 차지하고 계셔서 책무를 맡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장자께서 직접 후계를 맡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모두가 허유과 같은 것이 문제겠지요. 천하는 가만히 지켜보기에는 좋지만, 다스리자면 귀찮고 번거롭기만 한 곳이니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책무는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유의하실 점이 있어, 안부를 여쭙는 겸 전해드리려 합니다.
0. 인간들을 너무 사랑하지 마십시오.
인간을 미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을 더 사랑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인간을 사랑하셔도 됩니다.
다만 너무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의 사랑스러움은 저희에게는 낯섭니다만, 자당께서도 인간을 너무 사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회고하셨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신다면 눈으로만 보아주십시오. 인간은 생각보다 더 작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1. 안내서 수량을 확인하기.
0번 수칙의 연장이자 수칙의 기본이 되는 부분입니다. 안내서를 잘 관리하시면 이하의 조항은 없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1번 수칙인 만큼 다른 수칙보다도 중요하기도 합니다.
안내서는 보통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가끔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부족함은 자명하게 알게 되시니, 온종일 안내서 수량만 확인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내서 수량이 부족하면 관리부를 호출하십시오. 굳이 나서실 필요 없이 알아서 일을 처리할 것입니다.
다만, 안내서 수량이 부족하다고 안내서를 직접 작성하지 마십시오. 안내서 작성은 관리부에서 전담하고 있습니다.
1-1. 신입이 호출되었을 때.
관리부 외 다른 경우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만, 신입이 혼자 심부름을 받으러 올 때가 있습니다.
돌려보내십시오.
문을 한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네 윗사람을 불러오거라.”라고 답해주십시오. 잠시 뒤 적절한 책임자가 일을 처리하러 올 것입니다. 그때는 신입을 방에 들이셔도 무방합니다.
만약 다시 문을 한 번 두드린다면 경비부를 호출하십시오. 기다리시면 책임자들이 일을 처리하러 올 것입니다.
일이 끝났다면 반드시 인사부를 불러 문책하십시오. 고위 직급을 부르실수록 좋습니다. 자당 이야기를 하시면 충분할 것입니다.
1-2. 안내서 수칙 수정 관련.
원하신다면 안내서 수칙을 변경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는 관리부가 아닌 실무부를 호출하셔야 합니다.
간단하게 말로 하시겠다면 그 앞에서 책상을 두 번 두드리십시오. 대처가 끝난 것 같으면 말을 전달하시고, 다시 책상을 두 번 두드리십시오.
긴 글로 써주시려면 책상을 세 번 두드리십시오. 그가 최고위원을 불러올 것입니다.
그에게 쓴 글을 말아서 내어주십시오. 이때 세 번째 서랍에 있는 약이나 동전 중 하나를 같이 내어주셔야 합니다.
2. 직접 관리하기를 원할 때.
자당께서는 기이하게도 길을 직접 가꾸셨습니다. 만약 그러시고 싶다면, 그 전에 꼭 행정부를 호출하셔야 합니다.
안내서의 수칙은 모두 표준 상황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관리자가 길가에 꽃을 심는 일은 표준상황이라 부르기에는 아무래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 꼭 행정부를 호출해 주십시오. 그들은 전문가답게 일을 처리할 것입니다. 직접 하시게 될 귀찮은 일의 대부분은 그들이 대행할 것입니다.
귀찮은 일까지도 즐기실 수 있다면 굳이 호출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다만, 자당께서도 그리 즐기지는 않으셨습니다.
3. 종족 확인 여부.
흔히 인간들에게 엘프라 불리는 이들이 길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외울 필요는 없지만, 그들의 전반적인 특징을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엘프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보다 귀가 길다.
-재생력이 뛰어나다.
-생명력이 뛰어나다.
-인간보다 조금 더 크다.
-살기를 다룰 수 없다.
-수명이 길되 늙지 않는다.
-피부가 희다.
이상의 특징을 가지지 않은 엘프나 다친 것으로 보이는 엘프가 있다면 인사부와 경비부를 호출하십시오. 그들의 책무를 다할 것입니다.
혹시 세계수를 섬긴다고 하는 엘프를 발견하시면, 그 즉시 토벌부와 척살부를 호출하십시오. 세계수는 신성한 나무도 아니고, 크기만 한 나무도 아닙니다. 세계수 신앙을 가진 엘프들은 척살 대상입니다.
세계수를 발견하시면 즉시 불태우십시오. 축복은커녕 저주받은 생명력은 바퀴벌레와 거머리보다 더하니 심혈을 기울이셔야 할 겁니다. 필요하시면 손을 쓰셔도 좋습니다.
3-1. 요정 관련.
선천적인 장난꾸러기인 요정은 장난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영원한 동심의 소유자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영락한 이유겠지만, 그들은 영락한 것을 괴로워하진 않습니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은 선행과 악행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영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장난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길을 관리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됩니다.
다만, 내원 직무에 적합한 능력을 갖추고 있기에 그들을 직접 골라내실 필요가 있습니다. 요정을 비롯한 이하의 존재들은 경비부가 제압할 수 없으니 직접 일을 맡으셔야 합니다.
그들은 다른 엘프와 같이 행동하겠지만, 엘프에 비해 막강한 마력을 숨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요정을 발견하시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놀아주십시오.
만족한 요정은 관리에 큰 도움이 됩니다. 때때로 놀아주는 것을 잊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어린아이는 지치지 않지만, 쉽게 토라지고 질려한다는 것만 알아두십시오.
3-2. 요괴 관련.
말 그대로 요사하고 해괴하며 이상한 것들입니다. 한때 신족이나 용족에 속했던 것들이라 그런지, 표준의 엘프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탓인지 요정의 장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을 벌이기 때문에, 사전에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괴의 음행이 일어나면 길이 뒤집어지니 말입니다.
요정보다 큰일을 일으키는 만큼, 요정보다 더 많은 일을 맡길 수 있습니다. 일에 질려하는 요정과 달리 맡은 일도 잘 처리합니다. 교활하지만 잘 알려주고 일을 시키면 똑똑하게 처리합니다.
그들은 타고난 요력을 숨기려 하겠지만, 일반적인 엘프들은 요력이 없기 때문에 무언가 숨긴 기척을 통해 요괴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요괴에게 복숭아 세 알을 주면 제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때 그들을 치하하면 쉽게 수족으로 부릴 수 있습니다.
요괴들은 제 주인의 위에 서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요정과 달리 너무 오냐오냐하시면 안 됩니다. 정을 들이실수록 누가 목줄을 쥐고 있는지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3-3. 외인 관련.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만, 외인을 발견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엘프를 닮은 외인이겠지요.
위의 둘에 비할 수 없이 높고 위험하고 강하며, 자세히 보시지 않으면 그냥 엘프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실제로 격무 중인 외인 둘 또한 외관상으로 엘프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무언가 일을 벌였다는 기록은 없지만, 굳이 위험 요소와 함께 살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외인의 문제는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문제의 구심점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 규모는 앞의 둘이 장난이 보일 정도로 큽니다.
엘프의 세계수 신앙이 금지된 것과 마찬가지로, 하이 엘프 신앙 또한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이 엘프는 실존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하이 엘프 신앙은 출현하지 않습니다.
다만, 외인이 출현한 두 번의 경우에서 모두 하이 엘프 신앙 보유자가 나타났습니다. 사태가 커지기 전에 신앙 보유자를 색출하고 외인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은 부정하지 않고 요구하는 것도 없습니다만, 힘을 잘 숨기니 잘 알아채실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상 그들이 있으면 따로 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귀찮은 일을 알아서 처리할 것입니다. 다만, 엘프들과 만나는 일이 잦지 않도록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4. 오는 것과 가는 것.
감각은 신뢰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인간들은 무엇이 입구이고 무엇이 출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는 길로 가고 가는 길로 옵니다.
그렇지만 크게 마음 쓰지 마십시오. 곧은 길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외로워서, 인간들이 오고 가기에는 좋은 길입니다.
5. 인간은 눈으로만 보기.
길 위에 선 인간들은 전부 책임을 가진 채 서 있습니다. 사사로이 그들을 구해주지 마십시오. 당신께서 그들을 구하시더라도, 다시금 그들은 목숨을 내다 버릴 것입니다.
그들은 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따릅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쳐다봅니다. 그들은 밝게 빛나는 돌덩이를 별이라고 말하고 믿습니다.
그런 만큼 별에 홀리게 되면 하나가 되는 일이 잦습니다. 당신께서는 가호를 내리는 것으로 족합니다. 눈이 돌아간 인간들은 미련함을 탁월하게 발현하기 마련입니다.
그들을 사랑하신다면, 더더욱 눈으로만 보아주시길 바랍니다.
전해 드릴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춘부장과 자당께 안부 전해주십시오.
소비에트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