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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그런 상상을 해보지 않았나?


'하루가 너무 짧다.'

'하루가 조금만 더 길었다면...'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햄스터 쳇바퀴 돌듯이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

숨 막힐 정도로 죄어오는 일상에서 느긋하게

내가 하고픈 일을 하거나 쉴 틈조차 없다.


아침 6시 알람 소리를 듣고 기상해서는 씻고

급하게 아침을 넘기고 콩나물시루같은

열차에 몸을 싣고 1시간을 시달리며 출근한다.


회사에 도착해서 강도 높은 업무와 맞서고,

정시에 퇴근하는 일은 거의 희박한 나날들.


정규시간 이후에도 대략 2시간가량을 회사에서

있다가 그놈의 지긋지긋한 퇴근 버스에서 다시 1시간.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서서, 해가 지고 난 뒤에야

내 집에 발을 디딜 수 있지만, 아쉽게도 나의 일과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집에 도착해서는 빨래, 설거지, 청소를 하고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나서 주어지는 2시간 남짓한

시간이 평일에 나에게 허락된 자유 시간이다.


하고 싶은 일은 너무나도 많지만 꼴랑 2시간으론

턱없이 부족했기에,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게

할 수 없었고 이젠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감이 들 즈음의 일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끝났지만, 회식에 잡혀서 술에

취해 비틀비틀하며 익숙한 우리 동네 골목을

걸어가다 한 노점상이 눈에 띄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쩌면 노점상의 존재가

나를 이끌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노점상의 주인은 남루한 행색의 노인이었는데,

보고 있자면 어딘가 모르게 섬뜩한 모양새를 풍겼다.


"근심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로군.. 내 자네를 위해

준비된 물건이 있는데 한 번 구경해보겠는가?"


술기운 때문인 건지, 아니면 노인에게서 풍겨 나오는

범상치 않은 기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무언가 홀리듯 노점상 주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디보자... 흐음.. 자네 같은 이들에게는 

이런 물건이 좋겠군!"


쭈글쭈글한 노인의 손에 들려있는 물건은 손목시계의

형태를 띄고 있는 낡은 골동품이었다.


아무리 취했어도 척 봐도 별 볼 일 없어보이는 물건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에 이내 동하던 흥미가 팍 식어버렸다.


"저... 어르신.. 이건 어디다 쓰는 물건입니까?"


"이건 그동안 자네가 그토록 바래왔던 소망을 들어줄 수

있는 물건이지.. 뭐 리스크가 좀 있긴 해도, 별 대수롭지

않은 정도라서 크게 지장은 없을 걸세."


이 양반은 점쟁이라도 된단 말인가? 이 보잘것 없는

노점상이나 운영하는 노인내 주제에 내가 바라는 것이

뭔지 어찌 알겠는가? 코웃음 치며 조롱 가득한 시선을

보내자, 속내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노인은 빙긋 웃었다.


"그래 그래.. 믿기지 않겠지. 그럼 우선 속는 셈 치고

한 번 이용이라도 해보는 것이 어떤가? 내가 일주일 정도

맛보기로 아무런 대가 없이 빌려주도록 함세."


달아오른 취기에 저지른 충동적인 판단이었을까?

이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더이상의 과도한 술기운을 이기지 못한 채 필름이 끊겼다.


.

.

.


대체 어떻게 돌아온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눈을 떠보니 보이는 것이 내 방 천장인 것으로 보아

방법이야 어떻든 간에 집에 돌아와 잠을 청하긴 했나 보다.


숙취로 인해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시간을 확인한다..


내 휴대폰의 시간은 28시 1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뭐야.. 아직 출근할  시간이 안 된...... 잠깐.. 몇 시?


아직 술이 덜 깬것은 아닌지 두 뺨을 세게 때리고는

다시 휴대폰 시간을 봐도 여전히 휴대폰이 알리는

시각은 28시 12분.... 아니 1분 지나서 28시 13분이 됐다.


"이게.. 대체 뭐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TV를 틀어봤지만 TV에서는 정규 방송

시간이 지나고 나오는 지지직 거리는 노이즈 가득한 

화면만 가득히 나올 따름이었다.


커튼을 걷어서 밖을 보니, 아직 동이 트기 전 새벽인 듯 했다.


바깥에서 비치는 쥐죽은 듯한 새벽녘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소름마저 끼칠듯이 고요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적막을 깨는 전화벨 소리가 이어졌다.


'RRRRRrrrrrrr..... !!'


처음 보는 번호였지만, 왠지 받아야만 할 것 같았다.

받는다면 지금의 난처한 상황을 설명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아무런 근거 없이 들고 있었다.


전화기를 받자 걸걸한 노인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려왔다.


"어떤가? 내가 선사한 맛보기는 마음에 드는가?"


혼란스러운 기억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기억을 더듬어갔고, 기억 속 어렴풋이 남아있던 노점상의

노인이 희미하게 헝클어진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혹시 어제의 그 노점상에 계시던 어르신이십니까?"


"나 원...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려 했는데, 자네가 그대로

허물어져 버리지 뭔가? 어쩔 수 없이 자네의 신분증에 있는

주소로 데려다 줬다네... 어떤가? 맛보기 선물은 맘에 드는가?"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이..."


"그래. 자네의 왼쪽 손에 착용한 그것 덕분에 생긴 일이지."


노인의 말을 듣자마자 바라본 나의 왼쪽 손목에는

어제 그 전당포에서 본 낡은 시계 모양의 골동품이

마치 내 것인 마냥 채워져 있었다.


어제는 술기운에 자세히 보지 못했었지만 지금 자세히

보니 이것은 시계라기 보다는 타이머 같았다.

화면에는 48 이라는 글자가 깜빡거리고 있었고

그 밑에는 붉은색 막대가 가로로 새겨져 있으며,

장치 주위를 초침이 움직이는 형태의 조잡한 구조였다.



"하루가 좀 더 길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았는가.

오랜 소망을 이뤘으니 조금 더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도 될 듯 싶네만..."



"대관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말 그대로라네. 다른 사람들이 온전한 24시간을 

보낼 때 자네 혼자 추가적인 시간을 누릴 수 있단 게지."


추가적인 시간? 이 뚱딴지같은 소리와 말도 안되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노인이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지만, 현 상황에서는


그의 설명 외에 딱히 이렇다 할 해답도 없는 상황이었다.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누릴 수 있다고? 나는 지금

악마랑 거래라도 한 것인가? 어제 처음 봤을 뿐인

노점상 노인장이 대체 나에게 무슨 호의가 있어서

이런 대단한 능력을 건네 주려는 것일까?


또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수화기 너머에서는

노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왜 이런 기회가 본인에게 찾아왔는가 생각하는 건

그리 생산적인 일이 아닐세. 그보다는 지금 얻은

이 능력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길 바라네."


. . . . 노인의 말이 맞다. 이건 기회이자 선물이다.


지긋지긋하고 숨 막히는 일상을 견뎌온 나에게

주어지는 아주 달콤한 선물 ...



"맛보기는 됐고 바로 정식으로 이 물건 구매하고 싶은데요."


결의에 찬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노인은

들뜬 목소리로 나에게 대답해주었다.


"내 자네라면 익히 그럴 줄 알았네. 그럼 이 시간 부로

그 시계는 자네의 것일세.. 내가 이야기 하는 사항만

잘 지킨다면 남들보다 긴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득을

얻게 될 걸세."


노인이 말하는 규칙이란 아주 간단했다.




1. 오전 0시를 넘긴 이후부터 주어지는 추가적인 

시간 동안 반드시 집 안에서만 시간을 보낼 것.



2. 추가로 주어지는 24시간 동안은 잠을 자거나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실내에서 가능한 본인의 취미 생활 등을

자유로이 하되, 정확히 24시가 넘어서는 순간에 단 1분의

오차도 없이 자신의 피를 한 방울 초침에 떨어뜨릴 것.



3. 추가 시간 동안에는 절대로 시계를 벗어서는 안될 것.



4.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에서 오전 0시가 되기 직전까지

반드시 시계를 착용하고 있어야 할 것.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나는 다른 이들이 24시간을 살 때

48시간의 하루를 누리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더 이상 피곤에 찌들어 있을 필요도 없었고, 눈치 보지 않고

늘어지게 잠을 잘 수 있었으며, 그동안 밀렸었던 프라모델

모형들을 만들었으며 읽지 못했던 책들도 마음껏 탐독했다.

세일 때 몰아서 사 놓고 진열장을 장식해 두던 먼지만

쌓여있던 게임 타이틀의 산도 하나 둘씩 공략해나갔다.


그야말로 천금과도 같은 시간을 펑펑 써대면서 오는 극상의

카타르시스에 매일 매일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추가 시간 동안의 밖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고 언제나 어두웠으며

바깥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그딴 게 뭐가 대수일까? 지금 당장 내 앞에 펼쳐진

이 행복한 시간들을 온전히 즐기기도 바쁜데.....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던 나의 행복한 추가 시간과의 생활도

어느덧 1년이 흘렀다. 아니, 엄연히 말하자면 24시간의

추가  시간을 매일같이 얻었으니 2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표현이 맞을까? 뭐 아무튼 상관없다.


사건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상당히 어려운 난이도의 게임을 하느라 시간 가는지

몰랐고, 추가 시간은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평소 때 같았다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서는 초침에 묻혔겠지만, 그날은 지나치게 게임에

몰입한 나머지 피를 묻히는 것을 깜빡해버렸다.


그리고 48시간에서 1분이 지나가자....


"어어? 씨발 이거 왜 이래..? 뭐야?"


우리 집의 모든 조명이 나가 암전이 되고

칠흑 같은 어둠만이 집안을 가득 메웠다.


뒤늦게 손목에 찬 시계의 시간을 보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저질러진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일....


그 노인이 반드시 지켜야 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

일이었는데, 순간의 몰입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 약속을 져버린 나에게는 지금 다가온 어둠과 함께

두려움이란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나...?'


하지만 어둠이 삼켜진 집안에서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숨죽이며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상황을 파악하고..

이와 무심하게 손목시계의 째깍거리는 초침의 소리만이 공허한

방 안에서 맴돌기를 몇십.. 몇백.. 몇천회를 넘어서...


대략 두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뭐야?? 아무 일도 없었잖아? 대체 뭔데?"


노인이 여태 까지 지키라고 했던 규칙을 어긴 대가가 고작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2시간을 지새우는 일인가?


너무나 시시한 결과에 나도 모르게 그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때는 앞으로 다가올 비극에 대해서 전혀 알 길이 없었다.


.

.

.

.


'씨발... 씨발 씨발 씨발!!!'


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일까?


단 한번. 단 한번의 실수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 한 두번 쯤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고작 한 번의 실수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내가 비웃었던 어둠 속에서 2시간에 대해서 간과한 점이 있었다.

그 시간은 날이 갈수록 지새워야 하는 시간의 크기가 거듭 제곱으로

늘어났다. 즉 첫 날에는 2시간을 어둠 속에서 보냈다면 다음날은 4시간

그 다음날은 8시간을 보냈으며, 그 다음날은 16시간.......32시간......

64시간..... 128시간....... 점차 버텨야 하는 시간은 많아졌으며

남들이 24시간을 보낼 때 나 혼자 수백 수천 시간의 하루를 보내고

난 뒤에야 정상적인 일상을 맞이할 수 있었다.


15일이 지난 오늘은 몇 시간이더라?

. . . . . . . . .

32,768 시간. 날짜로 환산하면 대략 1,365일에 달하는 날짜다.

배고픔도, 목 마름도, 추위도, 더위도, 고통도 존재하지 않은 채

나의 의식만이 살아 숨 쉬고 모든 것이 죽어버린 암흑 뿐인 

이 세계에서 버텨내는 시간만큼 쓸모없는 시간이 또 있을까?


이제는 아주 지긋지긋하다.. 몇 번이고 목숨을 끊기 위해 자해를

하고 집에 있는 락스, 세제같이 온갖 해로운 물질을 집어 삼켰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나의 몸에는 어떠한 흠집 하나도 나지 않았다.


바깥으로도 나가기 위해 창문을 깨부수려고 해도 부숴지지 

않았고, 현관문 또한 굳게 닫혀서 도통 열리지 않았다.


차라리 환청 이나 괴물이라던지 무언가 나를 공포에 질려할

괴이 현상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를 수백 차례..


그런 말도 안되는 상상 다음에는 후회의 감정이 밀려왔다.


'차라리 그때 노인의 달콤한 제안을 거절했더라면...'


'아니 애초에 술에 취해 그 노점상에 가지 않았다면...'


'아니지.. 더 근본적으로 하루가 더 길었으면 하는 

헛된 꿈을 꾸지 않았더라면...'



.

.


그렇게 80일 정도가 지났을까? 어느새 날짜 감각마저 희미해진다.


그리고 나는 80일이라는 기간 만에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유추해내기에 이른다.


지금 내가 이 꼴이 된 이유는 노인이 말했던 규칙 중 한 가지를

어겼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다른 규칙을 어긴다면..?


노인은 나에게 어떠한 일이 있어도 추가 시간 도중에는 반드시

시계를 차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시계를 벗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결과가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거짓말과 같이 현실로

복귀하게 될지도 모르고,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무상무념으로 흘러간 80일과는 다르게 지금의 1분 1초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극도의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잠시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바깥을 내다보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뿐이다.


서서히 손을 올리고는 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