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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갑자기 큰소리를 낸다거나 하는 환자분을 자극할 만한 언행은 하시면 안 돼요."

여러 명... 아니, 두 명인 것 같다.

"여기가 네마 씨가 계신 병실입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무슨 일 생기시면 바로 호출기를 눌러주세요."

"네네 알겠어요 알겠어"

문을 열고 한 사람이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오늘 인터뷰하기로 한 해리입니다!"

그가 말을 이어나간다.

"전 소설가입니다. 전에 연락드렸다시피 이번 작품이 정신 병동 배경이라 선생님을 취재하러 왔습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곧바로 질문드리겠습니다. 이곳에 오시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


어느 순간의 어떤 것이 '무더기'가 되는가?

모래 한 알은 '무더기'인가?

그렇다면 두 알, 세알은 어떠한가?

몇 알의 모래부터 '무더기'이고 '무더기'가 아닌 것인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저 흥미로워하는 것에 그치고 잊어버릴 논제였지만 나에게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처음 이 역설을 발견하곤 수십 초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사용했던 개념들이 이상하리만치 생소하게 다가왔다.

과연 어느 순간부터 '무더기'인가.

한 톨과 '무더기'의 차이는 무언인가.

많고 적음은 어느 지점부터 결정되는가.

꼬리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찝찝하고 불쾌한 기분. 그러나 그러한 마음 저편에서 긍정적인 무언가가 피어났다.

열정이라 하기엔 평온하고 깨닳음이라 하기엔 모호한 나의 마음은 의지 따윈 없던 그의 인생에 원동력이 되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잠 따위 자지 않았다.

역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였다. 한 시라도 그러지 않으면 세상이 멸망할 것만 같았다.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던 나였기에 이 역설을 파헤치는 것만이 나 자신이 쓸모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도피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무더기' 역설을 완벽하게 논파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 식음을 전폐하고 잠을 제대로 자지 않은 지 한 달이 좀 넘었을 무렵, 나의 가족들은 나를 의사에게 데려갔고 의사는 나를 이곳에 처박아놨다.


...


그는 몇 가지 질문을 더 한 뒤 병실을 나갔다.

인터뷰 내용을 되새겨보았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의 눈 개수가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그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한 개는 '무더기'가 아니다.

두 개는 '무더기'인가?

아니, 한 개는 정말로 '무더기'가 아닌가?

이러한 고민이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간 평화로웠던 나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한때는 이 기분이 기쁨이라고 착각했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저 주체할 수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고통일 뿐이다.

잊고 있던 강박이 다시 깨어나 나를 괴롭힌다.

다시 한번 해리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의 근육 조직은 '무더기'인가?

수가 많아도 오밀조밀 정교하게 얽혀있으니 모래알과는 같다고 볼 수 없다.

그의 손가락은 '무더기'인가?

한 개와 두 개보단 훨씬 많은 열 개였다.

나의 손가락을 모두 자르고 살가죽을 전부 벗겨낸 뒤에야 해방되었던 의문들이 다시 나를 죄여온다.


벗어나고 싶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를.

그의 눈을.

그의 근육을.

그의 손가락을.


0 개는 확실하게 '무더기'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