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저에게 말을 거는 캐릭터를 머리 안에 만들었거든요. 아무한테도 이야기한 적은 없었어요.
상상친구요? ……아마 아닐 거예요. 그건 미취학 아동 때에 생겼다가 사라진다고 그랬거든요.

저는 초등학교 4학년…… 아니면 5학년 때쯤에 그 애를 직접 만들었어요. 소위 말하는 '중2병'이 일찍 왔던 거죠. 어떻게 보면.
어떤 소설에 나왔던 캐릭터를 본따서 만들었었는데, 소설 이름은 기억이 안 나요, 10년도 훨씬 넘은 일이잖아요. 정말로 유치한 소설이었는데.

아무튼, 그 캐릭터는 계속 변화했어요. 여자였다가, 남자였다가. 나보다 어렸다가, 나이가 많았다가. 그러면서도 한 사람이었고, 정체성을 언제나 유지했죠. 그런 면에서는 저보단 나았을 거에요. 스스로를 확고히 유지할 수 있는 힘이요.


고등학교 일학년 때엔 그 캐릭터의 정체성이 거의 확립돼서, 저보다 한두 살 더 많았어요. 아슬하게 미성년자였죠.

걔는 제 머릿속에서 잔소리하는 오빠처럼 굴었어요. 제가 '넌 내 머릿속에서 만든 캐릭터라 넌 사실상 저보다 어리다'고 말하면, '그래서 내가 나이 많다는데 어쩔 거냐' 라고 반박하기도 했고요. 제가 문제를 풀고 있으면 제가 몰랐던 오류를 옆에서 지적해주곤 했어요.

그때쯤엔 저도 완전히 그걸 받아들여서, 성능 좋은 인공지능 칩셋을 머리에 이식한 기분으로 살고 있었어요.
나쁠 것 없잖아요, 나보다 내 삶을 잘 챙겨주는데. 그만둘 거였으면 진작에 그만뒀겠죠. 사실 그때쯤엔 그만둘 방법도 몰랐어요. 그냥 당연한 일상의 일부였죠.


그러다가 2학년이 되고 갑자기 삶의 의욕이 뚝 사라졌어요.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는 그 이상으로 뭔가를 해낼 마음이 사라진 거에요.
계기도 딱히 없었어요. 부모님의 무관심도 그쯤엔 당연해서 뭘 바라진 않았고, 겉도는 성격이긴 했지만 친한 친구가 없다고 외로워하는 성격도 아니었거든요. 어쨌든 걔가 있으니까 아예 혼자도 아니었고요.

번아웃……이라기엔 불탄 적이 없었죠. 평생 어느 것에 불태우고 살아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아무튼 그러고도 일상생활은 나름 잘 했어요. 걔가 계속 잔소리를 했거든요, 정말 현실에 있는 것처럼 굴면서.
제가 횡단보도 앞에 서면 좌우를 살피라고 하고. 수학 문제를 앞에 두면 이렇게 전개해서 풀면 답은 이거라고 하고.

가끔 현실에서 걔의 환상을 보기도 했어요. 무기력하게 있는 제 등을 치면서 빨리 숙제를 하라고 하는데, 정말로 눈물 나게 아팠던 거 있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했어요.


그 무기력함은 삼학년이 되고서 점점 나아져서, 수능도 문제없이 봤어요. 걔가 머릿속에서 같이 풀어주니까 남들의 두 배로 풀 수 있었거든요. 저는 페이지의 오른쪽 문제, 걔는 왼쪽 문제. 편했어요.
수능이 끝나고 나서 걔는 저한테 선명한 목소리로 말했죠. 수고했다고.





그런데요, 진짜로, 정말로.
얼마 전에 걔의 부고 소식을 들었어요.
걔는 엄마 아빠의 아들이었고, 저보다 나이가 두 살 많았어요.
저보다 먼저 태어났고,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는데, 제 머릿속에 있었어요.

장례식에서 저는 울 수가 없었어요.
저는 평생 제가 외동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수능을 볼 때 걔는 군대에 있었대요.
제가 대학교에 있을 때 걔는 직장 생활 중이었대요.
더 이상 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저는 정신병자인가요?
어디까지가 망상이고 현실인지 모르겠어요.

무서워요. 죽고 싶어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