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세를 살아가는 모두의 꿈, 내집마련. 나는 오늘 그 꿈을 이뤘다. 전월세를 전전한 지 어언 10년, 퇴근하고 나서 참새 방앗간마냥 부동산을 들르던 것도 10년, 그런데 마침 저렴하게 올라온 아파트 매물을 발견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가격이 저렴한 이유는 신축 아파트가 아니라 오래된 아파트를 리모델링해 개선한 것이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집한테 생일잔치 열어 줄 것도 아니고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빚 안 지고 들어가 살 수 있는 내 집이란 게 중요하지. 게다가 리모델링했으면 시설도 더 좋을 거 아닌가?
 
짐이 많지는 않았지만, 이삿짐 센터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건 이미 해가 다 져 갈 때쯤이었다. 짐 정리는 나중에 하고 핸드폰 충전기나 꺼내 놓고 자야겠거니 하는데, 식탁 위에 놓인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우편함에 저게 있었지... 읽어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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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파트 생활을 위한 안내문
 
○○아파트 관리사무소 백
 
재건축을 마치고 리모델링한 ○○아파트에 입주하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리 아파트는 199X년에 지어져 본디 시설이 노후되었었으나, 201X년 이후 대대적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통해 대부분의 구조를 현대적 시설로 새로이 탈바꿈해 진정한 살고 싶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아파트 거주자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절 외에, 이웃들과 함께 저희 ○○아파트에서 아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 준수해야 할 몇 가지 간단한 규칙을 이 책자에 적어 새로 입주하는 모든 세대에 배부하였으니, 완전히 숙지할 때까지는 가까운 곳에 두고 수시로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1. 기본 생활 수칙

1-1. 등화

1-1-1. 등화의 유지

모든 호에는 24시간 상시로 등화가 1개 이상 켜져 있어야 합니다. 낮 시간뿐만 아니라 입주민들이 취침하시는 시간이나 일과, 여행 등으로 아무도 집안에 없는 시간도 예외는 아닙니다.

후술할 정전 사태의 발생 위험을 고려하여, 모든 호의 세탁실 선반에는 등잔과 점화기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월 1회 등잔용 연료를 각 호 우편함에 배급합니다.

등잔의 연료가 없거나 파손되어 교체를 기다리는 동안은 양초나 라이터 사용하셔도 좋습니다만, 이 경우 충분히 큰 그릇이나 냄비에 물을 받고 가운데에 세워 두셔서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예방해 주시기 바랍니다.

1-1-2. 등화의 배치와 대응

등잔 또는 양초는 밖에서 현관문을 열었을 때 그 빛이 보이는 위치에 배치하시기 바랍니다. 귀가하셨을 때 빛이 보이지 않는다면 절대 들어가시면 안 되며, 즉시 현관문을 닫고 경비실에 방문해 상황을 말씀드리기 바랍니다. 그곳은 더이상 입주민 분의 집이 아닙니다.

1-1-3. 주의사항

세대 내 모든 불이 꺼진 것을 보았다면 안에 누가 있는 것을 알더라도 절대 구하러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소■를 쳐서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해 보는 것은 괜찮지만, 운이 정말 좋지 않다면 아마 소용없을 것입니다.

1분 내에 아무도 나오지 않을 시 1-1-2 항목대로 시행하십시오.

그분의 부주의는 오직 그분의 책임입니다.

1-2. 냄새

창문을 열고 계실 때 고기 굽는 냄새나 담배 냄새가 나는 것은 다른 세대의 활동 또는 흡연장에서의 유입으로 인한 것이니 괘념치 마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모든 문과 창문이 완전히 닫혀 있는데 고기 굽는 냄새나 담배 냄새가 바로 옆에서 심하게 날 경우, 1분 내에 집안의 모든 수도꼭지와 샤워기를 틀어 5분 이상 물을 흘려보내십시오. 이후 원하시는 만큼 환기하시면 됩니다.

잊어버리고 틀지 않은 수도꼭지나 샤워기가 있을 시 냄새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2. 현관 관리 수칙

2-1. 중문

본 아파트의 모든 호에 현관문과 거주 공간 사이에 미닫이 유리 중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 교체하셔도 무방하지만, 중문을 절대 완전히 제거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미닫이 형태가 아닌 중문을 설치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들은 아직 옆으로 미는 법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중문의 유리에 5cm 이상 길이의 흠집이나 균열이 나 있다면 경비실에 보고하고 24시간 내에 교체하십시오.

2-2. 도어락

또한 본 아파트의 모든 호에는 열쇠식 현관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디지털 도어락을 선호하신다면 교체하시는 것은 입주민여러분의 자유이지만, 절대로 추천드리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후술합니다.

만약 디지털 도어락으로 정 교체하시겠다면 빗장 또는 도어체인을 꼭 3개 이상 같이 설치해 주시고 나사가 문에 단단히 결속되어 있는지 매일 1회 이상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디지털 도어락을 설치하셨다면,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반드시 손이나 물건으로 가리고 입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귀가하셨다면, 반드시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히고 다른 층으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상기 사항을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입주민이 아닌 무언가가 입주민 여러분의 집에 들어갈 방법을 알아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2-3. 침입자

간혹 거주자가 아닌 무언가가 세대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상사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2-2번 수칙을 지키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열쇠식 현관문을 유지한 세대에도 낮은 확률로 발생합니다.

침입자가 중문을 밀어 열고 진입할 시 경찰(112)에 전화하고 통상적인 호신 방법을 따르시면 됩니다. 범죄 사건이 벌어질 시 ○○아파트는 경찰 조사에 적극 협조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침입자가 중문을 열지 못하는 경우 경비실에 인터폰을 걸어 상황을 설명한 후 소화기 또는 물을 채운 냄비를 중문 앞에 세워 두십시오. 경비원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절대 중문을 직접 열어 주시면 안 됩니다.

2-3-1. 침입자와 접촉한 경우

2-3번 수칙을 지키지 않아 침입자와 신체적으로 접촉했다면 접촉 부위를 확인하십시오. 접촉 부위에 검은 가루 같은 것이 묻어나오거나 물집이 잡힌다면 즉시 4-2번 수칙을 따른 후 경비실로 가십시오.

침입자에게 붙잡히지 않게 주의하십시오.


3. 엘리베이터 이용 수칙

3-1. 틈새

엘리베이터를 고 내리실 때는 내리시는 층과 엘리베이터 사이의 틈을 가급적 쳐다보지 말아 주십시오. 이로 인한 정신적 피해는 배상해 드릴 수 없습니다.

같은 이유로, 자녀분들에게 내리시는 층의 바닥과 엘리베이터 바닥 사이의 틈으로 전단지 등 오물을 집어넣지 않도록 주의해 주십시오.

틈새에 있는 것들의 관심을 끌고 나서 1달 이상 ■지 않고 생존한 입주민은 없었습니다.

3-2. 고장 상황 대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춘다면 비상 버튼을 눌러 경비실을 호출하십시오. 경비원이 즉시 조치해 드립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멈춘 상태에서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검은 연기가 틈새로 들어오기 시작한 경우 11층, 9층, 1층, 12층 버튼을 빠르게 순서대로 누르신 후 비상 버튼을 누르고 바닥에 엎드려 눈을 감고 숨을 참으십시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 실눈으로 상황을 파악하십시오.

3-2-1. 고장 시 탈출 방법

일렁이지 않고 일정한 주광색 또는 흰색 빛이 보인다면 포복 자세로 나오시면 됩니다. 1층 또는 20층에 도착해 있을 것입니다.

1층에 도착하셨다면 포복 자세를 유지한 채 동 밖으로 나오십시오. 건물 밖으로 나온 후 일어나셔도 되며, 24시간 동안은 엘리베이터 이용을 삼가십시오.

최상층인 20층에 도착하셨다면 포복 자세를 유지한 채 옥상으로 가십시오. 옥상에 도착하면 일어나셔도 좋습니다. 그 다음 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무서워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뜨거워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받아줄게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뛰어내려무서워뛰어내려뛰어내려 깊게 심호흡을 3회 실시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니 살겠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십시오.

이후 계단을 이용해 가시던 대로 귀가 또는 외출하시면 되며, 24시간 동안은 엘리베이터 이용을 삼가십시오.

3-2-2. 그 외 상황

문이 열렸을 때 칠흑 같은 어둠만 보인다면 눈을 다시 감고 "불꽃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아"라고 외치십시오.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혔다가 잠시 후 열리면 상황에 따라 3-2-1번 또는 3-2-2번 수칙을 따르시면 됩니다.

문이 열렸을 때 계속 일렁이거나 밝기가 변하는 붉은색 빛이 보인다면 겸허히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4. 정전 현상과 대처

본 아파트는 내장된 전력시설이 노후되어 간혹 정전이 발생합니다. 정전 시간이 10분을 넘긴 경우는 아직까지 없지만, 이로 인해 금전적, 업무적, 신체적, 정신적, 또는 생명적 손해가 발생한 경우 경비실에 비치된 양식에 동호수와 연락처, 피해 내용을 작성해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능한 한 변상해 드리겠습니다.

특이하게도, 본 아파트에서는 정전 시 휴대전화, 손전등, 디지털 도어락 등 건전지나 자체 전원을 사용하는 전기기구까지 모두 배터리가 즉시 방전되어 작동이 중단되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 또한 열쇠식 현관문을 권장하는 이유입니다.

4-1. 정전 시 조치

정전이 발생했을 때 다른 등화가 켜져 있지 않다면 1분 이내에 집 안에 최소 1개의 등화를 켜야 합니다. 전기를 이용하는 기구는 일절 작동되지 않을 것이므로, 1번 항목에서 설명한 대로 등잔이나 양초를 이용하십시오.

등화가 켜졌다면 ■수선하게 당황할 필요 없이 전력이 복구될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하지만 반복된 시도에도 1분 내에 등화가 켜지지 않는 경우 즉시 4-2번 수칙대로 하십시오.

4-2. 정전 시 특이상황

창문을 통해 다른 아파트의 상태를 수시로 관찰하십시오. 다른 아파트에는 모두 전깃불이 다시 들어왔는데 자신의 호만 아직 정전 상태인 경우나 15분이 지났는데도 아직 정전 상태인 경우, 또는 정전 후 1분 내 등화 점등에 실패한 경우에는 숨을 참고 눈을 감은 상태로 가능한 빨리 현관 밖으로 뛰어나가십시오.

현관 밖에 나온 것이 정말 확실하다면 눈을 뜨고 숨을 쉬어도 됩니다. 즉시 계단을 통해 동 밖으로 나와 중앙광장으로 오십시오. 경비원이 구급차와 함께 대기하고 있을 것입니다.

4-2-1. 주의사항

4-2번 수칙을 수행하실 때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는 듯 보이거나 문이 열리더라도 탑승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정전 중에는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음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이때 현관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도 화장실은 안전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만일 실수로 화장실에 들어갔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문이 닫히기 전 눈을 감고 숨을 참은 상태를 유지하며 빠르게 돌아나와 현관으로 나가십시오.

만일 현관 밖으로 나오기 전에 눈을 떴거나, 숨을 쉬었거나, 실수로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문이 이미 닫혔다면 변기에 머리를 넣고 물내림 버튼을 1분 이상 누르십시오.

그 편이 고통이 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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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게. 피곤한데 순 이해도 안 되는 소리만 늘어놓은 걸 읽으니 머리가 다 아프다. 군데군데 담배빵같이 생긴 자국 때문에 지워진 글자도 있는 건 덤이다. 종이를 대충 던져놓고 소파에 누워 잠이나 청해 보기로 한다.

...

깨어 보니 사방이 어둡다. 비척비척 일어나 불을 켜 보니 전등이 들어오지 않는다. 잠들 때 분명히 완충해 뒀을 핸드폰도 뻗어버렸다. 젠장, 이게 그 정전인가? 핸드폰은 대체 왜 꺼지는 거냐고. 불을 켜야 된다고 했던 거 같은데, 부엌에 박스가 잔뜩 쌓여있어 세탁실까지 가진 못하니 그냥 이걸 써야겠군. 주머니를 뒤적거려 라이터를 꺼냈다. 담배피는 습관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

탁탁.

불이 켜지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달빛에 라이터를 비춰 본다. 안에 액이 하나도 없다. 젠장, 요새 그렇게 많이 폈나? 하필 지금 다 떨어질 게 뭐람? 아니, 어차피 종이에서 말한 1분은 내가 깨어나기도 전에 지났을 거다. 어쩔 수 없이 눈을 감고, 숨을 참고, 흐릿한 기억에 의지해 비척비척 현관문 방향으로 향한다. 여기서 빨리 나가야 한다.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손끝에 문고리가 만져진다. 살았다! 문고리를 돌리고 어깨로 문을 들이받아 밀치며 뛰쳐나간다. 이제 살았나 하는 순간 차갑고 딱딱한 것에 정면으로 충돌한다. 얼굴에 작열하는 고통에 눈이 번쩍 뜨이고 숨을 들이켜게 된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건... 타일로 된 벽. 오른쪽에는 변기, 왼쪽에는 샤워기.

아 맞다.

중문은 미닫이였지.

뒤에서 화장실 문이 쾅 하고 닫힌다. 문고리를 돌려 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창문도, 불빛도 없는 화장실, 그 안은 오직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그 삼켜 버릴 듯한 어둠 속에서,

무언가,

새카만 것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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