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드디어 왔군.”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이 나를 보더니 반가움에 겨워 말한다. 언제 샀는지 모를 해진 옷가지와 세월에 녹슨 피부는 그가 서 있는 이 가게 분위기에 녹아들고 있었다.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이리 오게.”
나는 그의 말에 따라 그가 서 있는 카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게 안은 온갖 희한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관심을 끌고 있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온 것 같은 물건들에도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면, 대부분이 긴 세월을 겪어온 모양인지 먼지가 잔뜩 쌓였다는 점이다.
카운터 안에 들어가니, 가게 입구에서 서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안쪽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빼곡히 적힌 종이들과, 두꺼운 장부로 보이는 책이 두 개 있었다. 장부 사이사이에는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는데, 알 수 없는 언어로 적혀 읽을 수 없었다.
노인이 그 중 왼쪽 장부에 턱- 하고 손을 올리더니 말한다.
“가격은 대부분 여기 적혀 있네. 자네는 읽기만 하면 돼.”
“저기, 여기가 어디인…”
“질문을 받는 건 이따가 하는 게 어떻겠나.”
“아니- 대체 당신은 누구고, 이 상황 뭡니까?”
눈을 떠 보니 가게 안이었다. 내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누군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꿈처럼 모든 게 안개 낀 느낌이었다.
“하아… 그건 지금 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네. 앞으로 계속 스스로에게 지겹도록 물어볼 테니.”
노인은 이 상황을 예상한 듯, 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지금 중요한 건 내 설명을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거야. 안타깝게도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나는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내 전임자의 말을 끊은 게 가장 큰 실수였다는 걸 깨달았네.”
깊은 회한이 묻어나오는 대답에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좋아. 마저 설명하지.”
그의 손이 장부를 소중하게 어루만졌다.
“인수인계가 끝나는 순간, 이 장부에 적힌 모든 글은 자네만 읽을 수 있게 바뀌네. 업무 내용은 간단해. ‘손님’이 오면, 그가 누구든, 무엇을 가져오든, 신경 쓰지 않고 ‘여기’에 적힌 대가를 제공할 것. 대가가 여러 가지라면, 손님이 원하는 것을 제공할 것.”
그리고 오른쪽 장부에 손을 얹는다.
“거래가 끝나면, 이 장부에 거래 내용을 기록하게. 언젠가 손님이 자신의 물건을 찾으러 왔다 말하면, 거래 장부에서 내용이 적혀 있는 걸 확인하고 대가로 준 것을 받아 물건을 돌려주면 되네. 자네 업무는 그걸로 대부분 끝이야.”
그가 거래 장부를 촤라락 펼치자, 내가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 적혀 있다. 노인은 한 페이지에 적힌 글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래품의 가격에 의문을 가지지 말 것. 손님과는 거래와 관련된 얘기 이외에는 다른 어떤 대화도 절대 하지 말 것. 의식주는 여기 카운터 뒤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있는 생활 공간에서 해결하게. 아, 들어가면 문 옆에 주문서가 걸려 있을 텐데 필요한 게 있다면 거기에 적어두게. 규칙에 위반되는 게 아니라면 자고 일어나서 배달되어 있을걸세.”
“….규칙이 뭡니까?”
“나도 전부는 몰라. 생존에 필요한 물품은 자네가 상상할 수 있는 형태라면 뭐든지 배달되지만, 이곳을 ‘탈출’하기 위한 도구는 불가능하더군. 가령, 성인 남성의 무게를 지탱할 정도로 튼튼한 밧줄 1m를 부탁한 적이 있네. 도착한 건 우울증 약뿐이었지.”
“….”
“자네가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이 가게는 자네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가게는 주인이 필요한 법이니까. 만약 자네가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규칙을 지키게 만들뿐이네. 괜히 알고 있는 규칙을 재확인하려 들지 말게. 모르는 걸 알아내는 것만 해도 정신은 충분히 괴로울 거니.”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잠시 얼굴을 찌푸리던 노인은 카운터에 놓인 종이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나와 전임자들이 알아낸 규칙을 여기 적어 놨네. 지금은 읽을 수 없겠지. 내가 대신 몇 가지 읽어 주겠네. 흐음… 아, 그래. ‘손님’과 거래 이외의 주제로 대화하려 하지 말 것.
바깥세상에 관해 물어봤던 적이 있었지. 손님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더군. 반대로 손님이 외부 이야기를 하면, 나에겐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들렸네. 손짓으로 대화하려 하자, 상대가 보이지 않게 되었고, 소리를 내거나 안 내는 걸 신호처럼 사용하니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지. 물건을 옮겨 간접적으로 상대가 알 수 있게 하자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네. 한동안 암흑 속에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은 채, 홀로 있어야 했지.”
그가 손가락을 스윽 내리더니 다른 줄을 읊었다.
“가게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그대로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오네. 혹여나 창문을 열려 해도 소용없네. 밖에 보이는 밤하늘의 숲속 풍경은 자넬 위한 게 아니니. 창문을 억지로 열어도 그 너머는 도달할 수 없는 공간이네.”
“열 수는 있다는 말입니까?”
“자네가 게임을 해봤다면 이해가 쉽겠군. 방 안만 구현한 게임 속에서 캐릭터가 창밖으로 나가봤자 배경에 도달할 수 있겠나? 그 아래로 떨어지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그리고 또 다른 줄을 읊었다.
“그리고 짐작되겠지만, 죽는 건 일단 허용되지 않네. 이것저것 시도는 해봤는데… 아프기만 하고 대부분 실패하더군.”
“대부분이라면…”
“한 가지 확실한 방법은 있었지.”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되었으나, 차마 물어보기 어려웠다.
“질문 있나?”
“그러면… 장부에 가격이 적혀 있지 않은 경우엔 어떡합니까?”
그가 턱을 만지작거렸다.
“좋은 질문이군. 그런 경우 자네가 직접 가격을 적으면 되네. 실제로 장부엔 전임자들이 적은 가격들이 있고 그걸 읽어보는 것도 소소한 재밋거리 중 하나지. 정상적인 것도 있지만, 정신 나간 전임자가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적은 것도 있거든. 가령, ‘자기 눈알’의 대가로 ‘세상의 비밀 중 하나’를 적은 전임자처럼.”
“가격대로 거래하는 건 강제적입니까?”
“손님이 가격을 듣고 거래 의사를 표현하는 순간, 그 어떤 대가든 거래가 실현되지.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물질적인 것도 있지만, 상황이나 행동으로도 지급이 가능하네. 오페라 티켓의 가격으로 반가운 인연을 만날 기회를 주거나, 자기 딸의 대가로 죽은 아내의 부활을 주는 것처럼 말 일세. 거래된 물건은 이 가게 어딘가에 보관되지.”
가게 안에 먼지 쌓인 수많은 물건의 출처였다. 모두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두고 간 물건들…
“다시 찾아가는 경우도 있습니까?”
“종종 있지. 물건이 소중할수록 그럴 확률이 높네. 딸을 두고 아내를 되살린 사람의 경우엔 아내와 함께 다시 찾아와 동의를 받고 그녀를 죽여 딸을 되찾아 가더군. 다만 어떤 경우, 자신이 받은 값을 다시 지불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면 융통성 있게 넘어가게. 선택은 자네 몫이지만.”
노인은 말하다가 지쳤는지, 쉰 소리를 내며 의자에 앉는다. 피곤한 기색이 얼굴에 짙어진다.
“어쨌든 업무는 그게 다야. 참 쉽지? 그런데 말이야, 이런 직업의 문제는 항상 일이 아니라 손님들이거든. 그들을 상대하느라 힘들걸세.”
그가 카운터의 서랍을 드르륵 열더니 시가 하나를 꺼내 입에 문다. 그리곤 성냥을 꺼내어 치익 불을 켜곤 시가 끝에 가져가 연기를 피운다.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자네가 자주 보게 될 종류가 세 가지 있네. 첫째는 팔에 문신을 한 작자들, 둘째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 셋째는 왼쪽 뺨에 큰 상처가 있고 한쪽 눈이 먼 50대 정도의 남성일세.”
“그들은 누구입니까?”
“문신한 남자가 어린아이를 이끌고 찾아와 ‘늘 주던 것’을 달라고 하면, 가게 안쪽 C-3456번서랍에서 ‘인생의 행복’ 한 병을 꺼내어 건네주게. 아이는 H-21번 서랍으로 보내면 되네.
검은 양복의 남자가 찾아와 이번 주 신문 기사를 건네주면, 장부에 적힌 물품의 가격표 하나를 말해주게. 신문 기사는 자네를 위한 것일세.
왼쪽 뺨에 큰 상처가 있고 한쪽 눈이 먼 50대 남성이 찾아오면, ‘당신이 찾는 건 아직 입고되지 않았으니, 나중에 오시오.’라고 말하고 돌려보내게.”
“마지막 남자는 뭡니까?”
“이 가게에서 영생을 받아 간 사람인데, 거래 후 보관하던 물건을 다른 손님에게 넘겼네.”
“그게 뭐죠?”
“죽음. 아쉽게도 죽음은 한 사람당 하나만 가지고 있어 입고하기가 쉽지 않지. 그 손님이 거래하자 그 전에 애타게 원하던 사람이 찾아와서 가져가 버렸네.”
“애타게 원하던 사람이라면…”
“유일하게 죽음을 모르던 존재였지.”
쿨럭거리는 기침 소리와 함께, 연기가 가쁘게 뿜어져 나온다.
“후우… 슬슬 시간이 다 되어가는군. 지금 얘기한 세 부류는 정해진 대로 하면 크게 문제 일으키지 않고 돌아갈걸세. 이제부터 얘기할 드물게 들어오는 손님들은 좀 더 까다롭지.
먼저 챙이 큰 모자를 쓰고 피부가 검은 장신의 여성. 그녀가 거래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냥 무시하게.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자네 귀에 들리지 않을 테니. 가끔 그게 자네를 해치려 하면 그럴 때마다 ‘가게’는 자네의 죽음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게. 조금 아프기야 하겠지만 정도를 넘으면 가게가 알아서 쫓아내니 그냥 버티는 게 답이네.
만약 그게 다른 사람을 데리고 와서 거래를 요구한다면, 보통 요구하는 건 어린아이일 테니 H-21번 서랍에서 아이를 하나 데려와 건네주게. 그녀가 데리고 온 사람은 H-20번 서랍으로 보내면 되네.”
시가를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인다.
“그다음은 인상이 부드럽고 잘생긴 남성. 외모가 어떻든 자넨 그가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들걸세. 외모에 현혹되지 말고 정신 차리게. 그 악마 놈은 가게의 주인을 괴롭히는 법을 잘 알고 있으니까.
자네한테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를 할 텐데 웃기게도 가게는 이걸 ‘거래’로 인식했는지 그의 말을 안 들리게 하지 않더군. 제멋대로 이야기를 한껏 하고선 ‘이야기 값’을 달라고 하는데 그 대가로 원하는 게, 가게 주인의 울음소리를 듣고 싶다느니, 죽지 않는 선에서 몇 분간 고통을 느꼈으면 좋겠다느니, 주인의 이전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달라느니 하는 것들뿐이네.
강조해서 얘기하는데, ‘절대’ 거래에 응하지 말게. 거래는 손님이 원하면 강제적으로 성사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 대가가 자네와 관련되었다면 자네에게도 선택권이 생기네. 거래에 동의하지 않으면 성사되지 않고 그놈은 신경질을 내다 가버릴걸세.”
쿨럭- 쿨럭-
“…또 해줄 말이… 어디 보자… 가끔 단안경을 쓴 수염 난 괴물이 찾아와 자신을 ‘수집가’라고 소개할 텐데, 가게를 한번 둘러보게 하고 되도록 친절히 대해주게.
그와의 거래는 웬만해선 손해 볼 일이 없네. 그는 가격표에 적힌 것보다 많은 것을 제공하고 거기에 자네를 위한 ‘팁’도 얹어주니 최대한 거래를 유도하게. 이곳에서 미쳐가고 싶지 않다면, 그가 주는 ‘팁’들이 상당히 유용할 거야.”
“하아…”
시가의 불이 꺼져간다.
“이제 끝났어… 여기서 죽을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 가게는 주인의 노화만큼은 막지 못하지. 나도 전임자들도 모두가 여기서 깨어나 같은 결말을 맞았어. 자네… 이름이 뭔지, 이전에 무슨 삶을 살았든지 간에, 그것들을 궁금해하지 말게.
자네가 여기 온 순간부터 이곳이 자네 세상의 전부야. 이전 삶을 그리워할수록 정신은 미쳐갈 뿐이지.
마지막으로 충고 하나만 더 하겠네. 빨리 수긍하고, 받아들이게. 그 어떤 시도도 부질없다는 걸 알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말았어.”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편안한 숨을 내쉬며 장부를 소중하게 껴안고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가 안고 있는 장부를 집어 들었다.
그것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인생 전당포」
넘 재밌는데 거래사례 좀 적어주라
이거 원문 인생전당포라고 규칙서 괴담 있음. 찾아보셈 - dc App
ㄴ혹시 링크있음?
너무맛있따
뒷내용이 궁금하다
더 줘.. 제발..
이거 설정 좋은데 연재해도 될 듯
와 ㅅㅌ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