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새로 온 인턴이구나? 반가워요. 새벽반은 처음이죠?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다고 들었는데, 벌써부터 이런 델 돌리냐. 암튼 환영해요.
네? 여긴 뭔가 좀 다르냐고요? 아이구, 그냥 똑같아요. 짐 검사 하고, 엑스레이 모니터 좀 보고. 원래 했던 오전반이랑 크게 다를 건 없어요.
굳이 따지면 일을 혼자 한다는 점? 아무래도 새벽에 국내선을 타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저도 지금 혼자 인수인계 하잖아요.
아마 기초적인 건 다 알 것 같고.
모니터 업무 해본 적 있어요? 아 좋아요. 인턴이라고 탐지기만 돌렸으면 좀 곤란한데 다행이네요. 새벽에는 신체검색 따로 안 합니다. 어차피 검색대 통과해서 오잖아요. 금속탐지기가 뭐 그렇게 신통한 것도 아니고.
저희는 엑스레이만 봅니다. 그러다 이상한 거 있으면 열어 보고 압수하시면 돼요. 별다를 건 없어요. 근데 가끔ˑˑˑ 새벽이라서 이상한 케이스들이 좀 생길 때가 있어요. 왜 편의점 알바도 새벽에 술 취한 사람들 들어오잖아. 그런 거예요.
아뇨, 진상 같은 건 아니고. 그냥 좀 숙지해야 편한 게 있는데, 나머진 몰라도 이건 잘 기억해야 돼요. 혹시 한번 듣고 기억 못 할 거 같으면 녹음해도 돼고. 여기 파일철 열면 인쇄된 것도 있으니까 근무 전에 꼭 다시 읽어 봐요. 꼭이야!
일단 12시 반쯤 되면 미리 내려가 있으세요. 오후 타임 분들 마치시는 거 보고, 교대하시고요. 아마 그때쯤이면 손님들도 다 게이트 넘어가서 텅텅 비었을 거예요. 검사대에서 한두 분씩 나오시면 인사 잘 드려요.
새벽에는 3번 검색대만 씁니다. 차단봉 열어둔 거 3번으로 오는 거 빼고 다 닫고, 너무 무리하게 대기줄 세운 부분 있으면 눈치껏 치우세요. 어차피 사람이 그만큼 많지도 않아.
가끔 닫으려고 해도 안쪽에서 걸린 것처럼 안 나올 때 있거든요?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말고 9번하고 10번 검색대 사이에 있는 여분 쓰세요. 이거 중요해요. 고장난 것 같다고 안 닫아놨다가 탑승객 분들이 착각해서 다른 검색대로 가면 큰일나니까 꼭 닫으세요.
근데 가끔 분명 다 닫은 거 확인하고 검색대 들어왔는데 멀리서 지 혼자 핑 하고 풀릴 때가 있거든요? 굳이 닫으려고 다시 나가진 마세요. 거기도 빌려쓰는 것들이 있는 거라서 어차피 또 열릴 겁니다. 그런 날엔 컴퓨터 서랍에서 파란 통에 든 약 하나 꺼내 드시고, 업무 중에 되도록이면 그쪽 쳐다보지 마세요.
새벽 한 시 전에 3번 검색대로 들어오세요. 들어오기 전에 천장에 걸린 번호 꼭 확인하세요. 눈대중으로 대충 볼 때 세 번째 같았는데, 막상 들어와 보면 아닌 경우 종종 있을 거예요. 어차피 새벽 동안 우리가 쓸 수 있는 건 3번뿐이니까 너무 당황하지 말고 뒷걸음질로 나오세요. 등 보여주지 말고 태연하게. 근무 시간 전이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꼭 1시 전에 검색대에 들어가야 합니다.
근무 시간 중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검색대에서 나오지 마세요. 어차피 혼자뿐이라 식사고 화장실이고 어딜 다녀오긴 힘들 거예요. 그 사이에 누가 지나갈 줄 알고. 가끔 손님 중에서도 이런 거 알고 나와보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멱살을 잡는 놈들이 있는데, 절대 끌려나가지 마세요. 그럴 땐 검색대 잡고 버티세요. 수하물검색기 뒤쪽으로 붉은 버튼 있는 거 누르면 보안직원들이 와서 해결해 줄 거예요.
아ˑˑˑ 수하물을 가지고 도망가거나 그러면 어떡하냐고요? 그럴 때에도 그냥 버튼 누르세요. 혼자서 근무 보면서 칼이나 폭탄일지도 모르는 걸 가진 사람을 상대할 수 있겠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검색대에서 절대 나오지 않는 거예요. 손님이 시비를 걸든, 물건이 없어진 것 같다고 얘기하든, 아무튼요. 이건 정말 절대적이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설사 화재경보기가 울려도 이 안에 있는 게 안전할 겁니다.
보안직원 왔을 때 유니폼 꼭 확인해요. (주)세계공항 자수로 박힌 거랑 하늘색 상하의 말하는 거예요. 이런 건 인턴 면접 때부터 질리게 들어 봤죠? 사원증 이름이랑 증명사진 똑바로 나와 있는지 확인하고, 사진이랑 얼굴 비교해 보는 건 이미 해 봤을 거고. 뭐 하나라도 이상한 것들 오면 잘못 눌렀다고 사과해서 돌려보내고 다시 호출하세요. 더 말 걸려고 해도 무시하시고. 말 섞어 봤자 좋을 거 하나 없어요. 자꾸 비슷해지잖아.
근데 정말 가끔, 재수 옴 붙은 날에, 진짜 이상한 게 올 때가 있어요. 뭔가 오싹한 느낌도 들고, 멀리서 봤을 때부터 눈 코 입이 전부 붉은 실로 박음질한 것처럼 꿰매져 있어서 아 이거구나 하고 딱 알 겁니다. 그럴 땐 당장 검색대 전원 내리고, 모니터 끄고 책상 아래 들어가서 웅크려 있어요. 그거는 혼자 있을 때 노려서 찾아오는 거라 정신 차리고 보면 손님들도 다 사라져 있을 거예요. 절대 쳐다보지 말고. 혹시나 쳐다봤으면 눈 돌리지 말고 뒷걸음질쳐서 책상 아래로 숨고. 소리를 내거나 등을 보여주는 일만 없으면 됩니다.
너무 당황하지 말고. 제대로 하면 그것도 이쪽 바라보면서 그대로 서 있을 거예요. 오전 근무자분이 와서 일으켜줄 때까지 그렇게 계세요. 근데 하나라도 잘못하면 검색대 넘어올 겁니다.
짐 검사하다 보면 알겠지만 좀 특이한 손님들이 가끔 와요. 자세한 내용은 매뉴얼 참고하면 있으니까 꼭 업무 전까지 읽어보고 숙지하고. 지금은 일단 가장 자주 나오는 것들로만 몇 개 알려줄게요.
엑스레이 돌렸을 때 사람 손목이랑 발목으로 가득 차 있는 캐리어 들어올 때가 있어요. 고개 들면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검색대 통과해서도 수하물 찾으러 안 오고 이쪽 바라보면서 서 있을 겁니다. 그거 말 걸게 하려는 수작이니까 반응하지 마세요. 붉은색이라 눈에 잘 띌 거예요. 검색대 첫 번째 서랍에 있는 검은색 바탕에 붉은색으로 십자가 표시된 스티커 하나 붙여 보내세요. 아마 그러면 그냥 가지고 갈 건데, 혹시 말을 걸면 절대 대답하지 말고 붉은 버튼 누르시고요.
웬만하면 근무 중엔 그냥 말을 안 하는 게 편해요. 압수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아니요. 그냥 아무 말 하지 말고 스티커 하나 붙여 보내면 돼요. 그럼 바깥 직원들이 알아서 해 줄 거예요.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렇게 하면 됩니다. 새벽반이 오전·오후반이랑 다른 게 몇 개 있다면 이게 그런 거예요. 절대 열어볼 생각 하지 말고, 절대 그 아저씨한테 말 걸지 마세요. 말 걸어도 대답하지 말고요. 오래 근무하고 싶으면요.
손님들 들어오던 중에 금속탐지기가 울려도 사실 별 일은 없어요. 금속으로 된 단추나 커프스 뭐 그런 거죠. 짐 찾는 곳과 추가 검색대 사이로 불러서 한번 확인만 해보고 보내드리면 돼요. 근데 가끔 눈을 꼭 감고 오는 것들이 있어요. 예전에는 인상착의도 고정적이었다는데 글쎄요ˑˑˑ 적어도 제 때부턴 안 그러더라고요. 엄청 어린애일때도 있으니까 잘 확인하고 눈 감고 있으면 그냥 보내세요. 걔네도 자기 눈을 띄워 줄 사람들을 기다릴 거예요. 지금은 안쪽에 비슷한 크기의 금속만 쑤셔넣은 거거든요.
짐 찾아갈 때 갑자기 몸이 아프다느니 뜨겁다느니 그런 헛소리 하는 손님들이 있어요. 아마 고개 들면 이쪽 보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할 겁니다. 그럴 때는 공항 직원도 안 통해요. 불러도 별 도움은 안 될 테니 괜히 그러지 마세요. 어차피 그쪽도 뭐 큰 걸 바라는 건 아니니까 못 본 척 무시하세요. 그리고 검색대에서 막 나오는 짐들 일곱 개까지 압수 처리하세요. 명심해요. 일곱 개야. 어차피 황토색이나 검은색 가방 같은 거라 헷갈릴 걱정은 덜어요. 덜 압수하면 무사히 퇴근 못 할 거고. ˑˑˑ더 하면 어떻게 되냐고요? 그야 다른 손님이 화를 내겠죠.
새벽 4시부터 5시까진 이쪽에서 나가는 국내선이 없어요. 물론 그 후에 오는 거 타는 분들이 일찍 들어올 때도 있겠지만. 그때 들어오는 짐들 중에서 모니터 통해서 봤을 때 검은색으로만 보이는 게 꼭 있어요. 검색대 쪽으로 나가서 캐리어 확인해보면 아마 군데군데 검은 자국 있을 거예요. 바퀴 쪽이나 손잡이 쪽 유심히 보고. 그런 짐들은 추가 검색대 쪽으로 빼지 말고 다시 돌려보내요.
아마 검색기 앞쪽으로 보내면 그런 짐들은 사라져 있을 텐데, 가끔 손님이 검색대 안쪽으로 들어와서 항의할 때가 있어요. 네?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죠. 그러면 검색대를 잘못 찾아오셨다고 말씀드려요. 예의바르게 말씀드리면 알아서 잘 가실 겁니다. 손님이 완전히 나갔다는 느낌이 들면 서랍에서 파란 약 하나 꺼내 드시고요.
일단 뭐 대충 인수인계할 내용은 여기까지에요. 사실 뭐 더 사소한 것들이 있기는 한데ˑˑˑ 그런 건 매뉴얼에 잘 정리해 놨으니 알아서 할 거라고 믿어요. 매뉴얼 읽어보다 궁금한 거 있으면 내선 전화로 연락하시고.
아, 하나 잊어먹을 뻔했네. 새벽 시간대엔 모니터 쪽 내선 전화 끊겨 있어요. 그러니까 그때 그걸로 연락할 생각은 마시고, 급한 일이면 차라리 직원 호출 버튼 누르는 게 빨라요. 뭐 와도 받을 생각 하지 마시고.
더 물어볼 거 없으시면 저는 그만 퇴근해 볼게요. 이따 새벽까지 뛰려면 힘드니까 오후엔 숙직실에서 좀 주무시고요. 근무 시간이 길지는 않은데 몸이 많이 축나요.
그럼 수고하세요.
이런 형식과 내용 너무 좋다....더 써줘흑흑
뭐야 퇴사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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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보고 새벽비행기 안타기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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