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습니다.”
“왔어? 왔어?”
엄마가 서툰 칼질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조심히 걸음을 옮기며 엄마를 곁눈질로 경계했다.
엄마는 내가 방에 들어올 때까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곧 구해줄게. 기다려..”
이틀 전이었다.
방에서 공부하던 중, 거실에서 큰 소리가 들려 나가 봤다.
거실 유리창이 깨져 있었고, 함께 티비를 보던 가족들은 자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기 전에 가족들부터 깨웠다.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
“괜찮아?”
먼저 눈을 뜬 아빠가 말했다.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없어? 없어.”
동생이 말했다.
바닥을 치우려고 유리 파편을 맨손으로 집어들던 엄마는 재빨리 손을 뺐다.
“엄마! 베인 거 아니야? 안 아파?”
“베인 거? 안 아파? 안 아파?”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유리 파편들을 주웠다.
엄마가 청소하는 사이 아빠와 동생은 티비가 아닌, 그 뒤의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창 너머로 유리가 깨진 원인을 찾으려 했지만 끝내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일어나? 일어나. 학교 가야지.”
나를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에 방에서 나갔는데 아침 식탁에는 이상한 상태의 음식들이 올라와 있었다.
가족들은 재료가 무엇인지 모를 어두운색의 국물을 젓가락으로 떠먹고, 생쌀을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맛있다. 음 맛있어.”
그렇게 말하는 아빠를 보고 나는 장난치는 건가 생각했지만, 엄마를 보니 지금 이 상황이 장난은 아닌 듯했다.
손가락들의 찢어진 피부 사이에서 피가 흘렀고, 도마 위는 피로 얼룩져 있었다.
하룻밤 사이 내가 알던 가족이 다른 무언가로 대체된 느낌에 사뭇 공포감을 느꼈다.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서 식사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인 아침을 뒤로하고 학교로 향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혜주가 물었다.
혜주는 나와 어릴 적부터 함께 놀던 절친한 친구다.
혜주의 엄마는 세습적으로 무당이 되신 분인데, 그 영향으로 혜주 역시 평소 오컬트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깊게 탐구해 왔다.
나는 한 번 혜주 엄마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기에 이런 상황에서 의지가 됐다.
하지만 그런 든든함이 오히려 내 입을 여는 데 방해가 됐다.
혜주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집에서 느꼈던 괴상한 느낌은 어느덧 희미해졌고,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라는 안일한 생각을 도출하는 데 이르렀다.
괜스레 혜주 엄마의 도움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응? 아냐. 아무것도.”
“흠... 그래? 혹시라도 고민 있으면 언제든 말해.”
그날 저녁, 밤 10시가 되어서야 돌아온 동생에게 엄마가 화를 냈다.
“시간이 늦었어. 늦었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언제부터 끓이고 있었는지도 모를 냄비에 담긴 물을 동생에게 부었다.
나는 예고도 없이 일어난 그 상황을 보고 깜짝 놀라서 엄마를 밀치고 동생을 살폈다.
“아파. 아파.”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생을 화장실로 데려가 찬물에 씻겼다.
“혼나야지. 히히.”
아빠는 그 상황을 보고도 웃었다.
머리가 빠지고 진물이 잔뜩 나와 흉측해진 동생의 몰골은 나를 가슴 아프게 했다.
“혜주야, 우리 가족이 이상해졌어...”
어제 일을 겪고 나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생각에 혜주에게 가족 얘기를 꺼냈다.
“그래서, 갑자기 말투가 어눌해지고 행동도 이상해졌다는 거야?”
“응. 말을 반복하기도 하고,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해..”
“빙의네!”
“빙의라니? 뭐가 빙의됐다는 거야?”
“뭐긴, 당연히 귀신이지. 그것도 아주 독한 걸로.”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돼?”
“일단 학교 끝나고 우리 집으로 가서 엄마한테 부적을 받아 가.”
혜주는 내 얘기를 열심히 들어 주었고, 나는 다시금 혜주 엄마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안심되었다.
혜주네 집은 전에도 와 본 적이 있지만 무당집 특유의 무서운 느낌은 변함없었다.
혜주 엄마는 무서운 눈매를 가져서 처음 보는 사람은 그 눈빛에 움츠러들게 된다. 내가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누구보다 마음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 눈은 분명 무서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타고난 것이다.
“부적을 써 줄 테니까 한 장은 네 방문에 붙여놔. 그럼 최소한 방에 있는 동안은 안전할 거야.”
“나머지 한 장은요?”
“가족이 모두 모여 있을 때, 머리 위로 들고 주문을 세 번 외우면 돼.”
혜주 엄마가 알려준 주문을 옮겨 적고 부적과 함께 고이 접어 가방에 넣었다.
집에 가는 내내 불안함에 몸이 떨렸지만, 애써 몸에 힘을 주고는 해내리라 다짐했다. 가족을 되찾기 위해서.
방에 들어오자마자 문에 부적을 붙였다. 일단은 안전하다.
주문을 외우는 순간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가족이 모이는 순간을 기다렸다.
“밥 먹어. 저녁 먹어.”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부적을 챙기고, 일이 잘못되더라도 이 부적이 나를 지켜주리라 믿으며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곧바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이 나란히 내 방문에 귀를 갖다 대고 있었다.
“밥 먹어. 밥 먹어. 히히.”
나는 두려움에 뒷걸음질 쳤다. 몸이 경직되고 심장이 요동쳤다.
가족들은 열린 문틈으로 가만히 나를 지켜보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식탁에 둘러앉아 수저를 들었다.
나는 가족들이 무슨 이유로 내 소리를 엿듣고 있었는지를 생각하다가 심장이 진정된 후에 식탁으로 향했다.
고민은 필요 없다. 이미 할 일은 정해져 있고, 시행하면 될 뿐이다.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식탁에 앉고 심호흡을 한 뒤 부적을 꺼내 높이 들었다.
가족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일도공개온오견조 시다밀라바야반심행 살보재자관 경심다밀라바야반하마”
“일도공개온오견조 시다밀라바야반심행 살보재자관 경심다밀라바야반하마”
“일도공개온오견조 시다밀라바야반심행 살보재자관 경심다밀라바야반하마”
주문이 끝나자, 부적이 빠르게 쪼그라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꼭 잡고 있던 부적을 놓았다.
가족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서 그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성공일까? 실패일까? 어느 쪽이지?’
“아직 끝이 아니야.”
혜주는 챙겨온 부적을 책상 위에 나열하며 말했다.
“그놈들, 아주 독하다고 얘기했지? 이번엔 끝을 봐야 해.”
“이번엔 어떻게 하면 되는데?”
“각자 몸에 한 장씩 붙여. 그걸로 끝이야.”
정말 이번에야말로 끝인 것일까.
어제 밤 이후 오늘 아침까지 가족 중 그 누구도, 단 한마디의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희망적인 것은 오늘 오랜만에 식탁에 제대로 된 음식이 올랐다는 것이다.
엄마의 손에서 피도 흐르지 않았다.
“고마워. 혜주야.. 고마워...”
흐느끼며 혜주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젠 정말 끝이 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늦은 밤, 나는 조용히 자고 있는 가족들의 등 뒤로 가서 부적을 하나씩 붙였다.
부적은 이전과 같이 빠르게 쪼그라들었고 이내 등에서 떨어졌다.
’나쁜 귀신들을 몰아내고 가족을 돌려주세요. 제발...‘
하나님께, 부처님께, 혜주의 엄마가 모시는 신께, 누구에게 비는지 나 자신도 모를 만큼 지리멸렬한 기도를 드렸다.
열심히 기도한 탓에 옷이 땀으로 젖을 만큼 기진맥진한 상태가 된 후에야 방으로 돌아왔다.
소음에 눈을 떴다. 아직 어두운 걸 보니 새벽인 것 같은데 거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 무언가를 자르는 소리, 믹서기 소리.
방문을 열자 거실 바닥에 남녀 두 명이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었다.
가족들은 각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기억났다. 6개월 전, 새로 이사 왔다며 떡을 들고 찾아와 인사하던 옆집의 신혼부부였다.
한 쌍의 원앙을 떠오르게 하는 어여쁜 부부가 지금 우리 집 거실에 미동도 없이 누워 있다.
"우리 딸, 잘 잤어?"
“일어났으면 너도 얼른 도와. 일손이 부족해.”
“맞아, 누나도 도와! 왜 나만 해야 돼?”
가족들이 예전처럼 정상적으로 말하고 미소를 짓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신혼부부의 뼈를 자르는 톱질 소리가 주는 괴리감에,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울음이 터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채로 도대체 왜 그랬냐며 울고불고 따졌다.
머리가 따라가질 못하는 상황에 감정만이 앞섰다.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저것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다가왔다.
“가까이 오지 마!!”
서둘러 일어나 방문을 잠그고, 가빠진 호흡으로 휴대폰을 찾아 혜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 왜 그래? 나와 봐.”
아빠 목소리를 내는 그것이 방문을 두드렸다.
노크 소리가 들릴 때마다 흠칫 놀라며 혜주의 목소리가 들리기만을 기다렸다.
’빨리 받아.. 빨리..‘
마침내 혜주가 전화를 받았다.
“혜..혜주야!”
“응..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부적이 안 통했나 봐..! 가족들이 이상해... 더 이상해졌어!!”
“뭐? 부적이 안 통했어?”
“응. 일단 너희 집으로 가도 될까? 가서 얘기할게..!”
“그래, 우리 집으로 와.”
“응, 고마..”
“우리 집으로 와. 우리 집으로 와. 히히.”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napolitan&no=12571
명작선에 있는 이 글 보고 영감 받아서 써 봤음. 피드백 언제나 환영.
좋다
아 맞다 그리고 방명록 확인 ㅂㅌ
ㅠㅠ
ㅈㄴ무섭다
와 잘썼네
나도 저 글 좋아했는데 비슷한 느낌이면서 다르고 좋네;; 화자한테 이입하면서 가족들 정상으로 되돌아오길 바라면서 읽었어서 훨씬 절망적으로 다가온다 잘읽었음
개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