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눈을 떴을 때,

비릿하고 케케묵은 냄새가 코 끝을 훑고 지나갔다.



엉덩이는 젖은 것인지, 그저 바닥이 차가울 뿐인 건지

약간의 오한이 든다.



반복해서 눈을 깜빡여 보았지만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는 어둠에 그제야,



두 손이 무언가에 결박되어 자유롭지 못하단 것을 깨달았다.






' 눈이라도 보여야 무슨 상황인지 알 텐데.. '






까슬 거리는, 조금 거친 재질의 천이 헐거워질 수 있도록

미간과 콧잔등을 마구 찌푸린다.



얼굴 근육이 저려올 때 즈음

절반도 못 되는 시야 사이로 보이는 나와 같은 모습인듯한 여자.






" 저기요.. "






미동이 없다.



콧잔등에 머물러있는 천이 더욱 흘러내리도록 고개를 마구 저어보았다.










' 보인다..! '












정신을 다잡고 둘러본 이곳은












' 이런 미친.... '














인간 도살장 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겠다.














' 대체 저게 뭐야, 씨발..여기가 어디야..? '




극심한 공포감이 몰려들자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해 숨이 가파르게 차오른다.



언뜻 사람의 형체로 보이는, 사람이었을 고깃덩이들이

천장과 연결되어 있는 기다란 쇠사슬 고리 끝에



역동적으로, 그러나 힘 없이 걸려있다.






부스럭-






여자가 움직였다.



미세하지만 방금, 고개를 움직였던 것 같은데..






"저기요.. 저기요..!"






납치된 거라면 분명 누군가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속삭이듯 여자를 부른다.








"........ 뭐야....?"






여자는 정신이 조금 드는 듯하다.



문득 비명을 지를 것 같아, 다급하게






"그, 소리 지르시면 안 돼요..!"



"누구세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여기 어디예요?"



"저도 몰라요, 저도 그쪽이랑 똑같은 상태에요. 목소리 낮추시고 소리 지르지 마세요"






곧 울음을 터뜨릴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여자가 대답한다.






"저 납치된 건가요? 왜.. 왜 이러시는 건데요..??"




"아니 저도 모른다니까요, 저도 그쪽이랑 똑같다고요."






공포스러운 건 매한가지.



자꾸만 되묻는 여자 때문에 짜증이 솟구친다.






"머리를 흔들던지, 얼굴을 움직이던지. 어떻게든 해서 안대를 내려봐요"






그의 말에 응답하듯 세차게 머리를 흔든다.




이내 헐거워진 천이 여자의 목까지 내려가고,

날카로운 비명이 들린다.






"이... 이게... 이게 다 뭔가요..? 사람 아닌가요? 어떡해... 어떡해...!!"






망연자실한 듯 무너져 내리는 여자의 표정



잔뜩 겁에 질렸다.






" 아니, 지금 무서운 거 알겠는데요. 좀 조용히 하시고 제발...!"






확 올라오는 짜증을 억누르며 한숨을 내뱉고






"진정 안될 것도 알겠는데 진정해 봐요. 이성적으로 판단해 보자고요"



"이성적으로? 어차피 곧 저 사람들처럼 죽을 텐데 무슨 이성적으로요? 판단해서 뭘 하는데요..?"



"아 진짜 짜증 나게. 그럼 그냥 그러고 죽을 거예요? 아직 살아있잖아요 둘 다"






원망스러운 눈으로 남자를 노려보던 여자는

이내, 자신이 분노해야 할 대상은 내 앞에 이 사람이 아님을 깨닫고

약간의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러고는 눈을 질끈 감고 한숨을 내뱉더니






"죄송해요, 너무 무서워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제가 왜 여기 이러고 있는지 기억도 안 나고, 어딘지도 모르겠고... 하.."


"무서운 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일단 저희를 가둔 사람은 지금 여기 없는 것 같거든요?"






주변을 둘러보니 지금 나, 그리고 이 여자의 목소리 말고는

전혀, 어떠한 작은 소음조차 없는 고요한 곳이다.






"뒤로 돌아 보세요. 제가 당신 뒤 쪽으로 갈 테니까"



".. 왜요..?"



"영화도 안 봤어요? 손에 묶인 거 풀어야죠. 그래야 뭘 하죠"






엉덩이를 씰룩대며 여자 쪽으로 천천히 움직인다.






"제가 먼저 풀어 볼 테니까 그다음엔 제 손도 풀어주세요"





"아, 네"





생각보다 어렵다.

오로지 두 손의 감각에 의지해야 한다.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다.



끈을 열심히 더듬으며 시작과 끝을 찾아내고,

끝에서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야 한다.






10분 정도 흘렀을까,






"어..? 공간이 좀 생긴 것 같은데 잠시만요"





여자는 미간에 인상을 팍 쓴 채, 손목을 이리저리 비틀어본다.



곧이어 조그마한 탄성과 함께

손목에 차가운 여자의 손이 닿는다.







"아, 된 것 같아요"







양손이 자유로움에 감사하며

목에 걸려있던 천과 발목의 노끈까지 마저 풀고,

열심히 발목 노끈을 풀고 있는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꽤 미인이네




가슴께까지 오는 검은 생머리, 헝클어져 있지만 윤기가 흐른다.

피부가 엄청 하얗다. 진짜 엄청.

팔다리는 요새 아이돌만큼이나 마른듯하다.



수수한 듯 화려한 외모, 작은 얼굴에 이목구비가 꽉 차있다.






"여기 오기 전 기억나요?"


" 전혀요, 아까부터 계속 생각 중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필름 끊긴 듯 기억이 없어요"


"그러게요, 아.. 진짜 이게 무슨 일이지"


"하나 생각나는 게 있는데요, "






여자는 꾹 다문 입술을 달싹 거리기만 할 뿐

말을 자꾸만 삼키는 듯하다.






"뭔데요?"


"어, 제 생각이 맞다면... 그렇다면요.."


"네 뭔데요"






답답한 모습에 또 짜증이 확 올라온다.






"2년 전쯤부터인가.. 사람들 사이에서 돌던 괴담 같은 거였는데.."


"괴담이요? 지금?"






지금 이 상황에서 괴담 얘기를 꺼낸다고?






"아니 저도 지금 왜 이 상황에서 괴담이 떠오른 건지 모르겠지만,


문득 떠올라서 그래요 진짜.."






약간의 침묵






"최근 실종자들이 많았잖아요, 뉴스에서 보도된 것만 해도.


그런데 그건 사실 엄청 소수라고 하더라구요.


실제로는 정말 많이 소리 소문 없이 실종되고 있다고."






"무슨.. 동물 도축하는.. 그런 도축장에 끌려가서 죽었을 거란 말이 많았어요,


물론 SNS에서요.


근데 탈출한 사람이 있었는지, 인증 글이 올라와서 난리가 났었거든요"






아까 소리 지르고, 울던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차분하네.






"근데 그게 무슨 나폴리탄 괴담이다, 소설이다, 뭐다 그랬었는데


지금 여기 둘러보니까 그때 봤던 글이 진짜인 것 같네요"






나폴리탄? 스파게티?






"나폴리탄? 스파게티 말고 괴담이요?"


"농담하신 건가요? 나폴리탄 괴담 모르세요?"


"어.. 네.."






아니 진짜 모르는 건데..


미간을 찌푸리며 한심하단 듯이 쳐다보는 여자.






"진짜 몰라서 그런 거죠? 순간 장난치는 줄 알았네,


왜 그런 괴담 있잖아요.


막 무슨 어.. 규칙 괴담 같은 건데,


막 매뉴얼 같은 걸 공포스럽게 쓴 거예요.


아무튼! 중요한 건 그 글이 진짜 같다는 거라구요.


여기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써놨더라니까요?"






탈출이라니 무슨 방 탈출 게임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란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이라면,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여자밖에 모른다.






"기억나요? 탈출 방법?"






제발.. 제발..



그게 장난이든 조작이든 뭐든 간에 여기서 나갈 수 있다면,

여기서 살아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지금 이 공간은 어떻게 봐도 가짜 같지 않단 말이야..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게 참.. 다행이기도 하네요"






여자는 두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뜨더니












"제가 과잉기억증후군이 있거든요"













재밌게 보셨다면 댓글 한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