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 혹시 급한 일 있는감?"
그는 내 맞은편에 앉으려는 것인지 한 손에는 컵을, 다른 손에는 큰 가방을 들고 있었다.
"급한 일 없으면 이 노인네 말동무라도 해줄 수 있나?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
마침 아이디어가 부족해 초고의 방향성을 잡지 못한 나는 할아버지의 제안을 승낙했고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작가처럼 보여서 내가 가진 이야기도 들려주려는 걸세. 지루하지는 않을 거야, 종교 권유나 철학적인 논쟁도 아닌 그저 오래된 옛날이야기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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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뒷골목, 30년 전에 이 뒷골목에서는 자기 자신을 왕이라 생각하는 뒷골목의 황제가 경찰에 의해 발각된 적이 있었네. 그는 우리가 흔히 아는 왈패, 그래 지금은 깡패라고 하는 것이 더 옳겠군. 그는 우리가 흔히 아는 뒷골목의 깡패 중 하나였지만 그 당시에 그 골목을 넘어서 한 도시를 쥐어잡는 강자였지. 그는 자기 자신을사랑했어... 과도할 정도로. 자기가 최고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지 가엽게도. 자신에 대한 과신은 그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렸다네. 청소년기부터 시작된 10년간의 살인 경력은 그를 돕지 못했어. 그의 조그마한 글록은 주변을 가득 메운 AR과 M 시리즈의 소총을 상대할 수 없었네. 그의 경험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뛰어난 두뇌는 생각하기를 거부했지. 그는 아마 그때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직접적으로 느꼈을 거야.
결과는 어떻게 됐냐고? 그는 자수했어. 그는 지옥 대신 감옥을 택했다네. 처절한 노예처럼 두 손이 묶여서 끌려갔고, 결국 재판대에 서게 되었지. 다행인 건 판사는 그의 과거를 알지 못했다는 점이겠지. 그에게 부여된 혐의는 두 사람의 살인, 그 죄악이 패싸움이었다는 것에 형량이 무거워져 징역 30년을 선고받았지. 다행이었지. 비록 노예처럼 수갑을 묶고 판사 앞에 조아리고 있지만 겨우 30년이라니? 딱 30년만 지나면 그는 죽지 않고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거였어. 그는 속죄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뛸 듯이 기뻐했어. 오히려 기대되기까지 했지. 하지만, 이 모든 행복은 감옥에 들어간 첫해에 모두 사라졌다네.
자네 "투옥"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나? 사회로부터의 고립? 참회할 시간인가? 아니, 적어도 그에게 갇히는 것은 죽음과도 같았다네. 그래도 첫해는 버틸 만했어. 그는 자신의 감정을 버리고 살육의 본능을 참는 데 능숙했기에 모범수 흉내를 내며 열심히 일했어. 휴식시에는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추가로 운동까지 했다니까? 하지만 그것도 고작 1년이었네. 1년이 지나고 29년이 남았다는 사실은 그것이 10000일 이상의 투옥 기간이라는 것을 계산한 후 더욱 절망적으로 다가왔다네. 감옥에서 10000일이라니... 그는 매우 절망적인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지. 그렇지만 그것은 버틸 만했어. 진짜 절망은 그가 자신이 사회를 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라네. 몇 년이 지나면 무엇이 바뀌는가? 역사를 보더라도 1년이면 전쟁이 일어나기 충분한 시간이고 하물며 30년이라면? 그래 그는 우리가 장난스럽게 말하는 바보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바보"가 되는 것이 자신의 형벌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네.
감옥에 갇힌 2~5년은 그에게 그다지 큰 피해를 주지 않았어. 그는 이미 정신이 마비될 정도로 큰 정신적인 손상을 입은 상태였네. 그래 사람보단 일하는 기계였다는 표현이 적당하겠지. 감옥은 무서운 공간이야.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지만 오히려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발전하려 해도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네. 그는 최대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저 교도관들이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해내며 시간을 보냈다네. 감옥에서 5년 4개월째인가? 정신이 대부분 회복되고 다시 이론적 발상이 가능해진 날, 그는 끔찍하지만, 설득력 있는 발상을 하게 되었다네.
'사회를 잊는 데 1년이 걸렸다. 그렇다면 사회가 나를 잊는 데는 몇 년이 걸릴까?"
적어도 그 자신이 사회에 대해 잊는 거보다 자신이 잊히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지. 사회에서 잊혀진다는것은 죽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 아닐까? 그제야 그는 자신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지옥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네.
감옥에서 6~8년, 그는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네, 그의 존재가 부정되는 느낌이 들었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최고라 생각하는 그에게 잊히는것이란 그의 존재가 부정되는 느낌이 들었다네. 그는 잊혀지는것을 두려워했어. 그는 반복되는 노동과 일과 속 잊히지 않을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어. 물론 그는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이 어떠한 존재들인지 또한 알고 있었지.
"위대한 위인, 대통령... 그리고 악명높은 범죄자?"
그렇지. 그는 깨달았어. 자기 자신이 영원히 기억되는 방법을. 그는 그때부터 '가칭: 피와 시체의 쇼' 를 기획하기로 했다네. 그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었기에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 인상적이여야 사회에 기억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지. 다행히도, 어쩌면 불행하게도 그에게는 시간이 많았어. 그는 서두르지 않기로 결정했지. 교도소에서 수감자가 다른 수감자를 죽인다? 너무 재미없잖아. 그는 자신의 상징인 30년의 형벌의 딱 절반이 되는 15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살인을 준비하기로 다짐했지.
억겁의 세월을 버틴 어느 날. 죽은 눈으로 달력을 보던 그의 눈에는 오랜만에 활력이 돌았다네
'드디어... 드디어! 감옥에서 15년이다. 원대한 계획을 세우겠어. 이 계획은 15년짜리다.'
그는 15년의 투옥 생활 후 매우 차분해졌다네. 물론 그 평온함은 엄청난 희열에 의해 없어졌지만, 이 또한 그에게 새로운 원동력이 되었지. 그는 먼저 역사에 이름이 남겨져 있는 유명한 살인범들을 생각해 봤어. 그들은 대부분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을 상징하는 무기가 있었지. 그가 자신의 상징을 결정하는 것은 꽤나 우스꽝스러웠으나 그는 그보다 자신이 잊혀지는것이 더욱 싫었다네. 그는 고민 끝에 자신의 상징을 숫자 30과 가장 잔인할 것이라 생각한 무기 도끼를 자신의 상징으로 선택했다네. 다 준비되었어... 물론 감옥에서는 겨우 17년이 지났을 때였네.
모든 계획을 세운 후 그는 공허함을 느꼈어. 사람들과 건설적인 대화를 나눈 지 17년... 남은 13년의 세월은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었네. 벌써 17년을 버텼지만, 무기력증이 온몸에 자리 잡고 우울증 증상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다네. 그는 이제 그저 감옥 그 자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토를 할 지경이었지. 그렇지만 그는 버텼다. 자기 자신을 믿으며, 희망을 품고 그것이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며.
마침내 12년 후, 그는 시간을 온몸으로 느낀 감정 없는 기계가 되었다네. 이제는 권총을 쥐는 것이 어색해졌어, 꾸준한 운동에도 근육은 빠지기만 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까지 어색해졌지. 하! 그는 더 이상 뒷골목의 왕이 아니었어, 그의 경험에 유통기한이 있더라면 벌써 한참 지나고도 남았겠지.
이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처음 죽이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을 것만 같았지.
그는 이제 50세가 넘었어. 그가 감옥에 들어간 지 29년 11개월 26일... 이제 그는 5일만 버티면 다시 사회에 나갈 수 있었어. 가까워진 출소일은 그에게 다른 호기심들도 불어넣었다네. 사회에 어떤 것들이 변했을까? 내가 아는 사회가 존재하기는 할까? 한편으론 걱정스럽기도 했지. 이제 겪을 사회는 그에게 새로울 것이고 그는 자신이 소외감을 느낄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어.
마지막 5일은 매우 느리게 흘러갔다네, 어느 때보다 더. 그의 끊임없는 상상은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지. 마지막 날의 종이 치는 날, 그는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어. 그의 계획또한 성취할 수 있고 자신의 이름을 사회에 박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다시금 차올랐지. 30년 동안 보안이 훨씬 좋아졌기에 높은 확률로 잡힐 것을 알지만 그는 그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네. 이미 죽음보다 무서운 경험을 했기 때문이지.
사회 첫날은 모든 것이 달랐다네. 진화한 자동차에 정신이 팔리고 스마트폰은 신선한 충격이었지. 건물은 거대하고, 세련된 화장을 한 사람들은 멋져 보였어. 그는 이를 예상했음에도 소외감을 느꼈다네. 지금은 30년 전과는 너무나 달랐어. 눈에 보이는 것 중 80% 이상이 자신이 하나도 모르는 것들이었고 남은 20%는 길거리에 존재하는 나무나 돌, 길고양이 따위였다네. 사람들은 카페에서 노트북을 보면서 업무를 하고, TV는 마치 실제 물건이 작은 상자에 던져진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역동적이고 사실적이었지.
그는 위기감을 느꼈어. 자신의 계획을 빨리 실행하지 않으면 그 이름이 영영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네. 그는 여러 가지의 계획에 필요한 물품들을 최대한 빠르게 구입했다네. 근처 철물점에서 투박한 도끼를 사고, 그 도끼를 숨길만한 큰 가방 또한 옆 매장에서 같이 구입했지. 그는 이 "대 사건"에서 30명이상의 희생자를 만들기로 다짐했어. 그는 먼저 사람이 꽤 모여있는 카페에 들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 불쌍한 청년에게 털어놓지. 말을 마친 그는 자신의 투박한 도끼로 청년의 머리를 반으로 가르고. 카페에 있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을 죽일 거야. 그는 길가를 뛰어다니며 도끼를 휘두르다 특공대의 손에 처절하게 사살당하겠지. 총 30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은 이 사연은 30년 동안 감옥에서 복역한 수감자가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방법인 거야.
이상이라네. 이 늙은이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또 고맙다네.
현실:도끼 꺼내들다가 청년한테 뚝배기 깨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