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여기 있지? 눈을 떠보니 별안간 숲속이다.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울창한 숲.

씨발 여기가 어디야? 상념을 떨쳐내듯 고개를 강하게 돌려가며 주위를 둘러봐도 씨발 진짜 난데없이 숲속이었다.

아니 씨발.”

1일차

납치를 당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씨발 내가 왜 여기 있는지를 설명할 수가 없다. 자다가 눈을 떴는데 숲속이다. 숲 한복판. 이걸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설상가상, 자기 전 입고 있었던 반팔에 사각팬티가 내가 가진 전부다. 옷을 걷어 배를 더듬어보자 다행히 수술 자국은 없었다. 장기 떼간 것도 아닌데... 대체 무슨 일이지?


2
일차

씨발. 불이 없다. 어제는 뭐라도 찾아보기 위해 지나치는 나무껍질마다 돌로 표시를 해두며 정처 없이 헤매기만 했다. 그 시간에 불이라도 피울걸. 오늘은 뭔 짓을 하더라도 피워야만 한다. 어젯밤엔 불도 없이 잤던 터라 너무 춥고 무서웠다.


3
일차

! 내가 이세계에 온 모양이다!

저좆같은씨발걸어다니는큰버섯을보라지! 존나 무서워서 한참을 도망쳤던 탓에 표시해놓았던 나무며 다 놓쳐버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작은 개울을 발견했다. 며칠만에 물을 마실 수 있게 돼서 그저 기쁘다. 어떻게든 불만 피우면 좋을텐데.


10
일차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며칠 전만 해도, 직장에서 정해진 시간대로 일하며 퇴근시간만 기다렸던 내 지루한 일상을. 내 생존과 미래를 위해 쏟아붓고 있음이니.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 느낌을 잊고싶지 않으니, 나중에 형편이 좋아진다면 일기를 쓰고싶다. 지금은 미뤄두지만.


30
일차

판타지는 다 씨발 좆까라그래라. 내가 좋아했던 소설이며 게임이며, 이딴 전개는 없었다. . 왜 숲이 끝나지 않는거지? 이세계인데 난.


100
일차

문득 든 생각이다. 난 그냥 판타지 세계의 어느 울창한 숲에서 시작한 현대인이 아니라, 인간이 없는 세상 속, 그저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찬 장소로 전이하게 된 불행한 인간이란 생각.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일기를 쓰려고 한다. 종이가 없으니 넓은 나뭇잎이나 나무껍질을 이용할 것이고, 숯으로 짧고 굵직하게 써 내려갈 거다. 이 숲이 어디까지 뻗어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존나 걷다 보면 진짜 마을도 있을 테고, 엘프도 만나고, 이야씨발 보람차겠구만.


101
일차(나무껍질에 숯으로 쓰여있다)

소설이며 게임이며,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아.


105
일차(나무껍질에 숯으로 쓰여있다)

아씨발 배고프다


112
일차(나무껍질에 숯으로 쓰여있다)

사냥에 씨발 성공했다! 수식어 세 개 붙은 버섯을!!!

존나, , 걷는!!!


113
일차(나무껍질에 숯으로 쓰여있다)

입술에 데고, 조각 떼다 입안에 넣어보고, 피부에 문질러보고 존나 불안했지만, 결국 먹었다.

맛있었다.


139
일차(나무껍질에 숯으로 그려져있다)

: 작은 개울과 표식된 나무 등이 그려진 지도


160
일차(나무껍질에 숯으로 쓰여있다)

작은? 토끼?를 사냥했다. 가죽을 얻어 기쁘다.

무두질 씨발할줄모르는데


173
일차(나무껍질에 숯으로 쓰여있다)

이제 수통과 식량을 제법 구비했으니 좀 더 넓혀봐도 될 것 같다.


192
일차(나무껍질에 숯으로 그려져있다)

: 작은 개울과 범위로 구별된 숲, 큰 개울과 동굴 등이 표시되어 있다.


204
일차(단단한 나무껍질에 굵은 글씨체의 숯으로 필기되어 있다)

, 행복하다. 큰 개울에서는 생선도 많이 잡을 수 있었다. 낚시?? 그딴 것도 필요없이 작살질만 몇 번 해도 너댓마리는 족히 구할 수 있었다!! 행복하다! 원없이 쳐먹고 마시느라 근래 들어 최고로 행복했다. 이제부터 이곳을 기반 삼아야겠다! 주변에 동굴도 발견했으니 조만간 탐색해 봐야겠다.


216
일차(나무껍질에 숯으로 쓰여있다)

동굴에서 인간의 유해를 발견했다. 유해가 전부 모여 있지는 않지만, 이건 분명히 사람이었다.


217
일차(얇은 가죽에 잉크로 필기되어있다)

동굴 안에서 얇은 가죽에 잉크로 필기된 일기장 백이십 개를 찾았다.


280
일차(얇은 가죽에 잉크로 필기되어있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501
일차(얇은 가죽에 잉크로 필기되어있다)

너는 주인공이 돼라.

이제 지긋지긋해.





나는 구덩이에 유해를 매장한 뒤 묘비를 세웠다.

예우를 담아서.

그리고 일기장엔 그들이 차마 적어놓지 못한 개인적인 부탁과 유언이 담긴 두루마리들을 품속에 갈무리했다. 그리고 읊조렸다.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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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지말 것 재밌게 잘 봤다! 
짧게 채팅하듯 메모 남기는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색한 구석이 많으니까 일기처럼 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