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사성시 수칙서
· 사성 빌딩 지하 주차장 수칙서

픽션이며 전 이사업계 종사자가 아니기에 주인공의 일도 현실과 동떨어졌습니다. 사성시도 사성 마을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으며 특정 지역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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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차 기사 수칙서



안녕, 친구들. 여기 괴담 게시판을 오랫동안 재미있게 지켜보기만 하다가 이번에 용기를 내어 내 이야기도 올려봐.

난 어릴 때부터 영안이 있었어. 무속인이 하는 말이 남자치고 음기가 너무 세서 그런 것이 잘 보이는 체질이래. 그렇다고 무당이 될 팔자는 아니라고 하네.

이 영안을 닫기 위해 돈도 많이 썼어. 약간의 효과가 있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다른 사람은 못 보는 영가들이 수시로 보여서 포기했지.

영가들 대부분은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그냥 서 있기만 해. 하지만 가끔은 끔찍한 것들, 더 가끔은 가까이 가서는 안 될, 눈도 마주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만나는 게 문제야.


그러다 보니 학업은 물론 직업 선택에까지 지장이 생겼어.

얌전히 실내에서 할 일 하면 그만일 줄 알지만 그게 아니야. 일하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도망가는 사람을 누가 써줘?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설명해도 정신병자 취급받고 얼마 안 가 잘리기만 했어.

그래도 살다 보니 노하우가 생기더라. 성물, 성수, 기도문, 부적과 불경, 오컬트에서 쓰는 각종 대악마용 액세서리 등 직접 써보고 효능이 입증된 물건들로 웬만하면 미리 방지하거나 보호할 수 있게 되었지.

하지만 실내에서 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었어. 어떻게든 그런 존재가 나타나거나 이상한 현상이 생기면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일하다 말고 사라져서 한동안 안 나타날 수는 없잖아. 그렇다고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성물을 쥐고 불경을 외우거나 기도하고 성수를 뿌리거나 부적이나 도구들을 늘어놓고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지.


결국 악착같이 돈을 모아 내 명의로 된 사다리차를 샀어. 이렇게 밖에서 일할 수 있고, 내 차 안에는 마치 내 집처럼 그 무엇도 침범하지 못하게 대비해 놓을 수 있게 된 거야. 아! 왜 짐차나 트레일러가 아니냐고? 그건 고속도로에서 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래.

그제야 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 보통 손 없는 날 아니면 대낮에 이사하니까. 우중충하고 비 오는 날, 왠지 기분이 좋지 않은 날도 최대한 피하고 있어. 비록 돈은 덜 벌어도 말이지.


사실 이 일도 만만치는 않아. 안전도 안전이지만 내 사다리차를 타고 오르내리는, 이삿짐에 붙어있는 것들을 봐야 하니까 말이야.

뭐, 그래도 이 경우는 할만해. 그 집안의 어르신이나 부모님은 보통 자손을 걱정하고 보호해 주시니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셔. 어쩌다 삿갓과 도포를 입으신 풍채 좋은 할아버지나 곱게 차려입으신 단아한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없이 인사해 주기도 하신다. 이런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 나에게도 저런 수호령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장 꺼려지는 상황은 위와 반대의 경우야.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슬퍼하거나 심지어 원한이 서려 있는 얼굴까지도 괜찮은데, 아! 정말 몸이 변형되어 있거나 이상한 각도로 움직이는 경우, 더 심각하면 끔찍하게 웃거나 울거나 말까지 거는데 이런 날은 돈을 벌어도 번 것 같지 않은 더러운 하루가 되어버려.


이렇게 쌓인 경험으로 나만의 수칙을 만들어 내었어. 여기서 견뎌내지 못하면 머리 깎고 스님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는 싫거든. 너희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잘 들어봐.


1. 음기가 강한 동네는 가지 않는다


사성시의 태음동 태음 여고와 태음 아파트 일대, 한수동 시장 골목 근처, 심서동 서운 공원 근처, 부망산 아래 원룸촌.

너희들 대부분은 별문제 없어. 오히려 어떤 사람은 양기보다 물기운과 음기가 체질에 맞고 편하지. 하지만 난 절대 아니야. 저런 동네에 간다고 늘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끔찍한 것을 다른 곳보다 더 많이 보게 되니까, 돈을 열 배로 줘도 안 간다. 결코 동네 비하는 아니고, 그냥 나한테만 안 맞는 상극의 기운 뭐 그런 거지. 나 정말 이것 때문에 이상한 놈 취급도 받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2. 보이는 것들


영가 대부분은 아무런 영향을 안 끼쳐. 너희들 집에도 몇 명씩 있다가도 사라지는 데, 도움도, 해도 안 돼. 뭐랄까? 아무런 의지가 없는 빈 껍데기 같은 느낌이라서 신경 쓸 필요조차 없어.

그보다 더한 존재들은 너희들도 잘 알고 있고, 정말 궁금하면 직접 검색해 봐. 미안하지만 그런 경험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끔찍해서 그래. 혹시 싸한 느낌이 들거나 우연히라도 뭔가 보이면 그냥 피해. 보는 티 내고 아는 척 해봐야 좋을 거 하나도 없어.

그걸 뭔 초능력자인 양 자랑하고 일부러 흉가 체험하러 가서 과시하는데 그게 바로 미친 짓이야. 그래봐야 영혼에 상처만 남고 더러운 냄새까지 묻어. 진짜 악한 거 잘못 꼬이면 인생 개 같이 조진다. 예전부터 하지 말라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야.


3. 이상한 냄새가 나는 곳


냄새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이것도 너무 끔찍하니까 아예 묘사하지 않을게. 이런 건 정말 어쩔 수가 없어. 일 할때 보면 음기가 강한 동네도 아니지만 건물이나 집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 성수 뿌린 마스크 끼고 기도문이나 불경 외우며 일해야 해. 다행히 안에서 이상한 것이 튀어나온 적은 없지만, 들어가서 확인할 엄두조차 나지 않아. 그저 미쳤다고 저런 썩은 뭐 같은 냄새 나는 곳에 들어가서 살까? 하는 생각만 든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데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 눈가에 다크서클이 늘어지고 안 좋은 검은 기운에 휩싸여 있더라.

믿거나 말거나 이것만은 알아둬. 적당한 양기와 좋은 기운이 흐르는 곳에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거나 진짜 좋은 곳은 잔잔한 풀밭에 있는 것 같은 향기가 나. 방향제 얘기가 아니야. 분명 그런 기운이 있어.

공부하거나 커피 한잔을 마시러 가더라도 이런 느낌이 드는 곳으로 가라. 내 경험상 어둡고 축축한 기운에 찜찜한 냄새까지 나는 곳에는 꼭 이상한 사람들이 앉아있더라. 난 절대로 그런데 안 들어간다.


4. 들리는 소리


가장 기분이 더럽다고 할까? 나는 잘 보고 미리 느끼니까 대부분 피해 갈 수 있어. 또 경험이 쌓이면 좋지 않은 장소에 다시는 안 가거나 피해서 가면 되니까.

그런데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데, 귓가에 들리는 소리가 있으면 온몸의 털이 다 서. 이런 경우는 두 가지인데 보통은 너무 미약한 기운이라서 그래. 대부분 불쌍한 경우인데 아주 어려서 잘못되었거나 저승 갈 기운도 없는 영가가 있는 곳을 지나쳤을 때 그래. 그 반대로 몇 년에 한 번 정도 내 집과 차 안에 나름 완벽하게 세팅했다고 생각한 공간에서 들려오면 난 그대로 가장 가까운 종교시설이나 무속인에게로 튀어. 이것 때문에 입은 손해가 말도 못 해. 하지만 난 그래야만 해. 이건 좀 차원이 다르게 위험한 거거든. 그게 어떤 존재인지는 묻지 마. 무속인들도 알려고 하지 말랬어.


여기까지만 적을게. 뭐 구체적인 얘기도 없이 흐지부지 끝나서 실망했을지 모르겠네. 하지만 내 상황에서는 이 정도가 최선이야. 자세히 썼다가 행여 그것들이 돌아오거나 그런 현상들이 또 일어나는 건 질색이거든.

난 지금 양기가 무척 강한 동네에서 살아. 잠자리도 불편하고 가만히 있어도 몸과 마음이 좀 눌리는 느낌인데, 그래도 음한 것들이 나오는 것보다는 나아. 뭔 변명같이 되어버렸네. 그럼, 이만.


글을 올린 나는 피곤이 몰려와서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요즘 너무 과로해서 내일 하루는 비워뒀다. 오랜만에 늦잠 자고 푹 쉬어야지.

하지만 잠자리는 평소보다도 더 불편했다. 뒤숭숭한 느낌과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 끔찍한 비명과 절규에 밤새도록 시달렸다.


(후편은 주인공에게 일어난 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