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이며 전 이사업계 종사자가 아니기에 주인공의 일도 현실과 동떨어졌습니다. 사성시도 사성 마을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으며 특정 지역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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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차 기사 수칙서2


띠리리 띠리리리링 띠링띠링

“뭐? 뭐지?”

나는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이미 창밖이 환하다. 왜, 어디서 전화가 왔지? 어랏? 오늘 약속이 잡혀있었나?

“어, 영석이 형? 무슨 일이야?”

작은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내가 이런 기운 탄다는 것을 잘 알고 배려해 주는 가족과 같은 형님이다.

“지금 어디야? 일 나갔어?”

“아뇨, 오늘 쉬어요. 지난 주말에 너무 힘들어서 비워 놨어요.”

“어휴 잘되었네. 너 지금 빨리 강림동으로 와주라.”

“에? 거긴 왜요? 무슨 일인데요?”

“여기 주상복합 입주 시작했잖냐. 봉팔이가 오다가 이 앞 사거리에서 사고 나고 인성이 차는 사다리 펴다가 축이 부러져 버렸어. 그러니 빨리 좀 와줘.”

'어? 그 동네라면…….'

잠시 생각에 빠진다. 강림동은 내가 가지 않는 부망산 아래 한서동, 태음동, 심서동의 딱 가운데 끼어있는 동네다. 그러나 음하지 않고 오래전부터 부촌이 형성되어 있다. 몇 년 전 재건축을 시작하더니 이 시에서 가장 높고 비싼 주상복합이 들어섰고, 어느새 입주한단다.

“여긴 네가 꺼리는 동네도 아니잖아. 빨리 와서 좀 도와줘. 내가 섭섭지 않게 줄 테니까. 여기 지금 난리야.”

“그, 그럴게요. 세수만 하고 바로 갑니다.”

“응, 기다릴게. 어이! 거기 급한 대로 엘리베이터로 옮겨. 어! 지금 오고 있어!”

철컥

하아! 어떻게 두 대나 그렇게 되었지? 사고도 사고지만 축이 부러졌으면 수리비 꽤 나올 텐데.

서둘러 씻고 준비하느라 지난밤의 어수선한 꿈도 잊어버렸다.

부릉!

번개같이 세수하고 작업복을 걸친 나는 차에 시동 걸었다.

어라? 차에 가져다 둔 성수가 왜 바짝 말라 있지? 병이 깨졌나? 아니다. 뭐가 흐른 흔적도 없고 병도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하다. 아마 날이 뜨거우니 증발한 거겠지. 이따가 오는 길에 성당에 들러야겠다.

부웅, 부우우우웅!

맑고 구름 한 점 없는 평일 낮이다. 가는 동안 막히지 않고, 순조롭게 주상복합이 서 있는 강림동 초입까지 도착했다.

‘으응?’

뭔가 이상하네? 이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뭐지? 평소와는 너무 다른 이 순조로움? 아! 알겠다! 집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도로에서 영가를 단 하나도 보지 못했구나! 최소한 네, 다섯 이상은 지나쳤어야 했는데, 그러고 보니 사고다발지역에 꼭 서 있던 그 악질도 없었네?

뭐 이런 날이 있을 수도 있지. 어느 날 갑자기 이웃집 지박령이 사라졌던 경우도 있지 않았던가? 나를 집 안에서 빤히 내다보던 그 처녀 귀신. 어떤 계기로 성불했든지 퇴치를 당했다든지 했겠지. 지금은 서둘러야 해. 형님이 눈알 빠지게 이 차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여기! 여기! 이쪽에 대!”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이삿짐 트럭들 앞으로 반가운 얼굴이 나를 보며 손짓한다. 넓고 평평한 새 주상복합 지상 주차장에서 여유롭게 짐을 올릴 수 있겠구나. 난 창문을 내려 마치 개선장군처럼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히익!”

끼긱! 끼기기기기기긱!

“야! 너 왜 이래? 미쳤어? 돌아와!”

“형! 도망가!”

나는 미친 듯이 차를 돌려 왔던 방향으로 도망쳤다. 뒤에서 형이 황당해하며 소리 질렀지만, 그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부웅! 부우우우웅! 빵빵! 빵빵빵!

나, 난 봤다. 그 50층 주상복합 4개 동의 가운데에 서 있는 거대한 악마를! 팔자가 더러워 원한귀, 수살귀, 요괴, 악신까지 경험해 본 나다.

악마는 생전 처음 봤지만 나는 저게 악마인 것을 안다. 아니,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저건 어떻게든 인간과 부대끼며 지내온 존재들과는 확연히 다르니까. 저 이질감. 저 차원 자체가 다른 무시무시한 악의를 온 몸으로 느꼈단 말이다.

20여 분을 정신없이 달려 도착한 동네의 어느 허름한 주택 앞 공터에 차를 세운다.

“할머니!”

서둘러 달려 들어가서 철문을 밀자 삐걱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다. 그래, 나를 헌신적으로 도와주시는 만신 할머니의 집은 늘 열려있으니까.

“할머니! 할머니! 큰일났어요!”

하지만 거실에는 인기척이 없고,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상하다? 엄청나게 부지런하신 분인데? 나는 다급하게 할머니의 안방 문을 열었다.

“할머니! 어헉!”

만신 할머니는 방 이불 위에서 눈을 까뒤집고 입가에 피를 흘린 채 누워있었다. 급살을 맞은 듯 경악하는 얼굴로 사망하신 것이다.

어떻게 그 집에서 뛰쳐나와 차에 탔는지 모르겠다. 나는 자주 다니는 성당으로 질주했다.

“주교님! 주교님! 어디 계세요? 주교님!”

“벌써 소식을 듣고 오셨습니까?”

주교님의 방에서 처음 보는 젊은 신부가 나오며 묻는다.

“네? 소식이오? 이미 알고 계신 겁니까? 강림동! 강림동이요!”

“아! 강림동에서 오신 형제님이시군요? 애석하게도 김명만 주교님이 어젯밤 갑자기 선종하셔서 장례를 준비 중입니다. 형제님이 너무 일찍 오셔서 따로 도와주실 것이 없습니다만?”

“히잌!”

타다다닥!

아아! 주교님! 설마 악마의 존재를 감지할 만한 사람은 다 죽은 것인가? 나는 미친 듯이 악셀을 밟아 집으로 돌아가 필요한 짐만 챙겨 그 도시를 떠났다. 부재중 전화가 잔뜩 와있는 핸드폰을 박살 내버리고 옆 도시에서 사다리차도 헐값에 팔아치웠다.


지금은 그곳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작지만 유서 깊은 사찰에 들어와서 숨어 지낸다. 그동안 그 악마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난 죽기 싫고 여기 있는 스님들도 죽이기 싫으니까.

왜 하필 내가 살던 도시에 그런 존재가 나타났을까? 그곳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모르겠다. 두렵다. 너무 두렵다. 내가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을까?


몇 주가 흐르고, 정신적으로 좀 안정이 된 어느 날.

나는 사찰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성실하게 살았기에 저축한 돈이 있어 공짜로 먹고 지낼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골방에서 하루 종일 벌벌 떨거나 한밤중에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나를 돌봐주신 스님들께 미안해서라도 이런 일 저런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

오늘도 작은 리어카에 흙을 싣고 경내를 지나가는데 예불을 마치고 돌아가는 두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어머? 사성시가 봉쇄되었대. 뭐지? 군대가 출동했다는데?”

“지진이야? 아니면 산사태라도 났어?”

예불을 드리느라 꺼두었던 핸드폰에 속보가 뜬 모양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아니야. 지진 소식은 없는데? 군대가 드나들지 못하게 막았다니까?”

“어머나! 어떻게 해? 시댁 식구들이 다 거기 사는데!”

“어서 전화 걸어봐.”

하지만 그녀의 전화에는 통화가 불가능하다는 안내만 들려온다.

“어휴, 맙소사. 뭔 테러라도 터졌나?”

“맞아. 이런 건 테러가 아니면 말이 안 되지. 취재도 막고 있다나 봐. 그 와중에 방송사 헬기가 두 대나 떨어지고 난리 났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다 터지네? 어서 집에 가자.”

아주머니들은 산문을 통해 주차장으로 사라졌다.

이제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