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공포증 치료 후기 적어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중반의, 겉보기에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새를 보면 두려움에 떨다 못해

생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을 느끼는 조류공포증을 오랜 기간 앓았습니다.


여기 게시판 주제에 맞지 않는 방탈이지만,

혹여나 저처럼 공포증을 지니신 분들이 제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희망을 얻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렇게 글을 남겨봅니다.


다들 비슷하시겠지만, 어렸을 적에는 제가 공황장애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길을 가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고, 땀을 흘리고, 숨을 몰아쉬고...

기절할 것 같은 느낌을 종종 받곤 했으니까요 ㅎㅎ


새에 대한 공포는... 저에게 지극히 평범한 일상조차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전선 위에 까마귀라도 앉아있는 날에는

도망쳐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질 못했습니다.


공원에서 마주친 비둘기가 날아오르기라도 하면

저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쏟으며 통곡했습니다.


건물 안에서도 어디서 새소리가 어디서 들린다 싶으면 곧잘 패닉 상태에 빠지곤 했지요.


덕분에 성격은 소극적이었고 친구 사귀기도 어려웠어요.

애초에 학교에 자주 나가지도 않았고,

나와도 갑자기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데 어느 누가 가까이 왔겠어요? ㅎㅎ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수치스러웠네요.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이 고통을 어느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제가 느끼는 공포감을 설명하려고 노력해도,

사람들은 “그냥 새잖아, 뭐가 그렇게 무서워?”라며 저에게 되묻습니다.


악의 없는 말이었을지라도 그러한 말들이 결국 저를 더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외로움.

그래요 외로움이네요.


저는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고립 시켰지요.

새가 너무도 무섭기도 했지만.

조류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것이 버티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부모님.

그래요. 부모님이 옆에서 가장 고생이 많으셨죠...

어느 날 영원할 것 같던 부모님이 나이가 들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이제는 정말 이 공포를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ㅎㅎ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살겠기에 집 근처에 있는 병원을 찾았어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결심한 것이에요.

(필요하신 분이 있다면 병원 이름을 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따뜻한 목소리로 저를 반겨주셨고,

그동안 제가 받았던 고통을 묵묵히 들어주시기만 했습니다.

그러고는 “살아남으신다고 정말 고생 많으셨네요.”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냥 단순한 말 한마디였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멈추질 않는지...

집에 돌아가서도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그날로 선생님을 온전히 믿고 치료에 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음에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어요.

새에 대해 떠올리라고만 해도 다리가 떨렸고, 온몸에 힘이 쭉 들어가고...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 매번 느껴졌네요 ㅎㅎ


쉽게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다고 판단한 선생님은 저를 방으로 인도했어요.

좁고 어둡고, 커다란 빔프로젝터 스크린만 놓인 방이요.

적막함이 가득한 공간에서 화면에 글자가 나왔어요.


‘새.’


새라는 글자가 화려한 네온사인처럼 빛나며 강조되기 시작했고,

새소리가 사방에서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너무 무섭고 두려워 연신 비명을 질렀고,

그 장소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을 잡아당겼어요.


하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저는 그곳에 누어서 신음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나 문이 열렸어요.

아니, 저는 분명 30분 이상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30초 밖에 안 흘렀대요.

정말 놀랍지 않나요...


선생님은 지금 적용한 방법이 노출요법의 일종이라고 설명했어요.

그러고는 같은 방법을 계속해서 저에게 반복했지요.


처음에는 30초도 버티기 힘들었던 작업이

1분, 3분, 5분, 10분까지 늘어나게 되었어요.

땀을 흥건하게 흘리며 버티고 있는 저를,

선생님이 칭찬해 주시며 지지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단계는 점점 높아져 갔어요.

글자를 극복해서 자신감이 올랐다 생각했는데,

‘새’의 사진을 마주치게 되었을 때는 정말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네요.

조그만 병아리였을 뿐인데 말이에요 ㅎㅎ


아 참,

제가 예전에는 새라는 글자를 쓰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꼈다 설명했나요?

저는 지금도 제가 이렇게 새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현실이 아직 믿기지 않습니다.

다 치료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노출요법과 함께 도움이 된 건 이완기법이었어요.

새를 생각할 때 심장이 너무 빨리 뛰면, 이완 기법을 사용하는 방식이래요.

깊은 호흡이나 명상 같은 것들이요.

최대한 긍정적이고 좋은 이미지를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안 했네요.

여러분 혹시 EMDR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검색해 보니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기법의 약자라고 하네요. (어렵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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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법은 미처 처리되지 않은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떠올리며

동시에 안구 운동을 통해 자극을 주어

뇌를 활성화하여 기억의 처리가 다시 일어나도록 돕는 치료에요.


들어만 봐서는 이런 게 된다고? 싶지만.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환자들을 치료할 정도로

효과적인 치료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고 하네요 ㅎㅎ


방법은 간단했어요.

무서운 이미지들을 보며 눈을 선에 맞춰 좌우로 움직이는 방법인데

이상하게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선생님은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긍정적으로 통합되고 해결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어요.


최근에는,

병원에서 집으로 가다 참새를 마주치게 되었어요.


당연히 심장이 뛰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이상하게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건 정말 처음 겪는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그 자리에서 참새가 날아갈 때까지 묵묵히 서서 바라봤습니다.

새를 그렇게 오래 응시한 건 처음이었어요.

한편으로는 귀엽게도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새를 보내고 선생님에게 전화를 드렸어요.

펑펑 울면서 말이에요.


말 그대로 실제 상황에서 새를 마주하는 연습이 된 거예요.

처음에는 정말 두려웠지만, 전문가와 함께 하니까 극복이 된 것 같아요.

연신 선생님께 감사를 드렸지요.

그런 저를 선생님은 칭찬해 주셨어요.

모든 게 잘되고 극복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요 ㅎㅎ


그런데 선생님이 정말 의외의 말씀을 해주셨어요.

바로 오늘이에요.

이제 새에 대해 거부반응이 줄어들었으니, 직접적인 외상을 들여다보면 어떻겠냐고.

또다시 두려움이 올라왔지만 늘 그랬듯 용기를 내서 알겠다고 대답했어요.


선생님이 안내해 주신 장소로 이동했어요.

새로운 전문가분이 앉아 계셨지요.

들어보니 정신분석 전문 상담사라고 하더라고요.


상담사는 저에게 편안하게 생긴 의자에 앉으라고 했어요.

앉은 것도 아니고 누운 것도 아닌 이상하게 생긴 의자였어요.


상담사의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졸음이 쏟아지더라고요.

EMDR에 집중하고 난 뒤처럼 몽롱하고 꿈을 꾸는 느낌이었어요.


상담사는 제가 과거로 갔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새에 대해 처음 두려움을 느꼈던 과거로요.


어두운 산 길이었어요.

가족들과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고요.

너무 어두워서 쌍라이트를 켰어요.


갑자기, 눈앞의 어둠 속에서 뭔가 커다란 것이 날아왔어요.

아버지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늦었어요.


콱!


둔탁한 소리가 났고


거대한 충격이 유리창을 강타했어요.


급한 데로 차를 길가에 세웠지요.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손은 떨렸어요.


눈앞의 유리창에 무언가가 박혀 있었거든요.


어둠 속에서도 형체가 분명했어요.


거대한 독수리.


충격에 부리와 발톱이 유리창에 박혀 있었고,


날개는 축 늘어져 있었어요.


피가 깨진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렸어요.


독수리의 충혈된 거대한 눈동자가


나를 응시해요.


아니.


아니에요.


저건 독수리가 아니야.


얼굴이 사람이잖아.


사람이야.


아니야.


아니라고.


엄마 아빠가 분명 새라고 했어.


그래.


사람 얼굴을 한 새야.


새.


새.



피곤하네요.

상담사가 오늘의 생각을 기록해 보라고 했는데

이렇게 피곤한 일일 줄 몰랐어요.


쉬어야겠어요.


이만 줄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진심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