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어느날이었다.
그날은 몹시도 무더운 한 낮의 기운을 머금은 아스팔트가
느즈막한 저녁을 넘긴 시간에도 여전히 불타는 날이었다.
나에겐 너무 뜨겁다.
——
나는 공부를 잘하지 않았기에 일찌감치 성인이 된 후 곧 바로 군대를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대학 졸업장은 꼭 받으라는 부모님들의 성화를 못 이겨 이름도 기억 못할 대학에라도 입학했다.
크지 않은 시내를 제외하고는 적어도 영화관이 있는 곳으로 나가려면 버스(배차 시간이 2시간 반인)를 타고 20분은 더 가야하는 이 마을에서도 나는 꽤나 후진 고시원에서 살았다.
나 스스로 알바를 구하지도 못했고 집안 형편도 그닥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는 학교 도서관에 박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것이다.
그게 왜 다행인 것이냐면 그 덕분에 성적을 잘 받아 장학금이라도 나오기 때문이다. 이 장학금으로 나는 학비를 제외하고도 밥은 안 굶고 살 정도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아 눈물 나는 내 대학 시절이여,,,,)
아무튼 이런 탓에 연애는 커녕 과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도 못해봤다. 뭐든 할려면 돈이든다. 젠장.
방학이지만 뭐 여전했다. 짐 챙기고 집으로 다시 들어가기도 뭐해서 그냥 일 년은 이 마을에서 지내기로 한 것이다.
내 구질구질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로 각설하고,
아무튼 나는 푹푹 찌는 열대야에서 선풍기는 고사하고 부채조차 없는 좁은 고시원에 있다간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산 중턱에 있는 나의 학교로 야간 산행에 나섰다. 그 귀신 나올 것만 같은 서늘한 분위기를 느끼면 조금이라도 시원해질 것만 같았다.
————
터벅터벅
자박자박
.
.
.
터벅터벅
자박자박
‘아이 시발’
산 입구로 부터 몇 분을 걸었을까?
우리는 우리의 학교가 진짜 후지다고 생각했다. 올라가는 인도조차 제대로 된 길이 안 닦여있어서 보도블럭은 파인 곳이 넘쳐났고 비가와서 흙이 넘쳐 온통 진흙 밭이었다.
방금 발을 헛디뎌 엉덩 방아 찧은 내 동기 민찬이 입에서 욕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민찬이는 우연찮게 같은 고시원에서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친해진 동기이다. 어차피 비슷한 처지라 곧 쪄죽을 표정을 한 이놈을 데리고 같이 산행에 나선 것이었다.
슬리퍼를 신고온 발은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진흙투성이로 더러울 것이다. 하지만 뭐 괜찮았다 어차피 더웠고 흙이 발린 곳은 모기가 괴롭히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서늘한 분위기긴 했다. 저 나무들 사이에 깊은 어둠에서 무언가 나를 지켜볼 것만 같았다. 등을 타고 서늘함이 내려 앉았다. 나는 조금 무서워져서 어둠으로부터 눈을 피했다.
무서운 마음을 떨치고자 이런 저런 대화를 하던 중 마침내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별 볼일 없는 정문이지만 이곳을 제외하곤 다 좁게 난 약초꾼들 길이거나 산짐승 길 뿐이니 누가봐도 당당한 정문인 것이다.
정문에서 오 분을 걸어들어가면 도서관이 있다. 그러나 도서관은 이 방학에 저녁까지 공부할 놈들은 없다고 생각했는 지 불이 다 꺼져 있었다. 교내를 더 거닐어 봤지만 단과대학 건물들의 몇몇 곳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어디든 내 더위를 해소해줄 것 같진 않았다.
몇 분을 더 해맸을까?
어느새 민찬이와 나는 대학교 (구) 공과대 건물 앞으로 도착했다.
과거에 실험실에서 큰 불이나 건물이 거의 다 타버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건물이다. 아까 본 몇몇 불켜진 곳들처럼 그때 죽은 사람들도 이 여름 밤에 졸아가며 실험을 하다 오사해버린 것이라고 풍문에 떠돌았다.
그 사건 이후 대학원생들에게 무리한 일정은 시키지 않도록 방침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실상은 지금도 구르고 있는 선배들의 모습이 눈에 훤하지만 말이다.
——-
어느샌가 나는 구 공대관 입구에 섰다.
입구의 손잡이들을 녹슨 사슬이 감고 있었다. 출입을 통제하는 듯 했으나 느슨하게 풀어져 있었다.
’야 좀 천천히 가 엉덩이 아프다고 나는’
민찬이 이놈은 투덜거리 데에 도가 튼 놈이다. 한 번 넘어지고 나서부터 주욱 저러고 있다.
‘알았다니까 내가 나중에 파스 한장 시원하게 붙혀줄게’
어쨌든 데려온 책임이 있는 나는 진흙으로 끝장나버린 바지의 주인을 달랬다.
그런데 갑자기 민찬이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야 근데 이거 열리겠는데? 하나도 안잠겨 있는 거 같구만’
‘나도 그렇게 보이네,,’
우리는 한 번씩 서로를 쳐다보고는 사슬을 거칠게 풀었다.
돈 없고 시간은 많은 스무살 두 놈에게 호기심이란 것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자 먹이를 노리는 맹수와 다를 것 없었다.
나는 그 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철크럭 철크럭
사슬이 떨어지고 문이 열렸다.
‘와 이게 진짜 열리네?’
‘그러게 근데 누가 자주 다니나본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생각보다 깨끗한 모습에 놀랐다.
곳곳에 그을린 흔적은 있었으나 방치된 기간에 비해 먼지도 덜쌓이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있었다.
‘크으 청춘들이란,,,’
민찬이는 알 수 없는 말을하며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야야 이렇게 된 거 뭔가 찾아보자’
민철이가 말했다.
’뭘? 여기에 뭐가 있다고?‘
’아니 뭐,, 속,,옷이라던가 남기고 간게 있을 수 있잖아~ 원래 거사를 치르면 깜빡하는 것들도 있기 마련이라고‘
내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되물으니 민철이가 대답했다. 그러나 자기도 한심했는지 분명 기어가는 목소리였다.
’에휴 그래 사실 나도 좀 궁금하니까 찾아보자‘
’오 진짜다?‘
나는 먼지 묻은 브라자 같은 것에는 관심이 일절 없었지만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으니 아지트가 있다면 분명 간식거리라도 있을 것이다. 뭐 조금 긴장돼서 서늘하기도 하고 간식도 찾으면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어린 시절 모험하는 기분도 나고,,‘
그리고 공포 영화 속 주인공들 같기도 하단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 최후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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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공대 건물은 하늘에서 보았을 때 자음 ㅁ의 모양으로 중앙엔 정원이 있고 정문 중앙 계단을 중심으로 복도가 이어져있다.
우리가 1층을 빠르게 순찰했다. 민찬이 이놈은 겁도 없는 지 담력 훈련을 하자며 졸랐던 것이다.
’얌마 남자가 태어나서 담력 테스트는 해봐야지. 내가 오른쪽 너가 왼쪽으로 돌아서 반대 계단에서 만나자. 두 배로 빠르지 않겠어? 그리고 혹시나 뭐 찾으면 바로 나와서 같이 가는 거다 알았지? 너 혼자 내 보물에 손대기만 해봐 으흐흐..‘
민찬이는 이말과 함께 한마디를 더 했다.
’무슨 일 생기면 크게 소리쳐~ 어차피 다 들릴 걸?‘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왼쪽 복도를 향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 중앙 계단에 도착했고 민찬이도 곧이어 도착했다.
‘야 거긴 뭐 있었냐?’
내가 먼저 물었다.
‘아니 뭐,, 깨진 시약병들이나 플라스크들? 너는?’
‘뭐 발자국 같은 것도 딱히 없었고 간간히 깜빡거리는 전등 정도? 어디서 누전되나봐 조심하자’
‘윽 그건 진짜 조심해야겠는데,, 무튼 나라도 일 층은 좀 그랬을테니까 흐흐,,,’
또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유진이 앞에서 저런 표정 지었다가 연락이 끊기게 된 걸 이 자식은 모르는 게 분명했다.
일 층은 화학 실험실이 많았던 대로 깨어진 유리조각들이 우리를 위협했으나 다치지 않았다.
나는 안도 반 민찬이가 좀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 마음 반으로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이 층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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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층도 무난하게 탐사 되었다.
나는 똑같이 왼편으로 민찬이는 오른편으로 걸어갔고 이번엔 민찬이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이번에는 정문쪽 중앙 2층 계단에서 만났다.
민찬이가 빼액 소리지는 걸 듣긴했지만 기쁨의 소리인 걸 느꼈고 애써 무시하고 탐색을 했었다.
‘너 기분 좋아 보인다?’
‘으흐흐 들켰냐? 이거 봐바,, 포장 안 뜯긴 콘돔이야!!’
에휴,,
‘청춘들은 역시 이 여름날처럼 뜨겁구만 으하핫’
민찬이는 기쁜 듯이 웃었다.
그래도 이런 분위기 덕분에 무서운 건 좀 가셨다. 이 놈 아녔으면 기절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겁이 좀 많기 때문이다.
‘야 그래서 넌 뭐 발견한 거 있냐?’
’음,, 바닥에 끈적한 검은 것들,,? 뭔진 모르겠는데 누가 밟았는지 발자국이 나있더라고’
‘오! 발자국! 청춘들의 흔적!’
본인도 나이로는 청춘인 놈이 아저씨 같은 말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가자 다음 흔적을 찾으러!’
우리는 삼 층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났다.
‘발자국이 왜 신발자국이 아니라 발바닥 모양인 것 같았지,,?’
나는 성적 높은 너도 기억력은 그닥이구나 같은 그럴 리 없다는 민찬이의 핀잔을 들으며 찝찝함을 남겨둔 채 삼 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삼 층은 정말 볼 게 없었다.
3층은 강의실들이 전부였다. 가구들은 목재여서 이미 다 타버린 후였고 큰 불임을 알려주겠다는 듯이 모든 것이 타버린 것이었다. 사고가 난 층이 4층이랬었나.
수확은 민찬이도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반대편 중앙 계단에서 곧바로 사 층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사 층은 계단을 거의 다 오른 우리는 조금 당황했다.
사 층엔 정말 암흑 뿐이었다. 창 밖으로 들어오는 다른 건물의 미약한 불 빛을 제외하곤 온 벽이 그을려 무엇도 알아 볼 수 없었다.
‘민찬아 위험할 거 같은데,,,,’
‘뭐야 너 겁먹었냐? 이야 겁쟁이 자식 크크크 그래 형이 인심 썼다. 이 형님이 사 층 한 바퀴 뛰어오마.’
‘야 너 괜찮겠어? 여기 아무 것도 안보이는데 너 다치면 어쩌려고?’
민찬이는 한 교수님의 시그니처 포즈인 안경 올리기를 따라하며 똑똑한 척 강연했다.
‘잘 봐 다 타서 아무것도 없다고 여긴 흐흐 청춘의 흔적은 못찾겠지만 이 형님의 래이싱 본능은 막을 수 없지’
‘안경도 안 쓴놈이 교수님 따라하기는,, 그래 뭐 다치면 비명 질러라 바로 갈테니까’
민찬이는 한번 씨익 웃더니 단거리 육성 선수들이 출발 자세를 취하곤 나를 쳐다봤다.
‘야 출발 신호 한번 쏴줘 흐흐‘
’에휴,,,‘
나는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고 하늘에 쏘는 시늉을 했다.
‘빵야~’ 화르륵- ….?
뭔가 소리가 이상한,,,
타다다ㅡ닥 타다닥-
민찬이는 잽싸게 뛰어갔다.
와 정말 빠르긴 했다. 슬리퍼를 신고 저런 속도가 나오다니
나는 감탄하고 있었다.
미약한 불빛이 비치는 창틀에 기댄 나는 밤 학교를 구경하고 있었다. 뭔가 뜨겁다,, 작은 불빛이 이 정도로 뜨거운 일인가,, 열대야인가,,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민찬이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오지말라는 외침이 들렸다.
타다다
타다다닥
타다다다닥
타닥 타닥-
내가 구하러 가야하나 고민하던 찰나 민찬이는 맨 발로 내게 뛰어와서 나를 창문 밖으로 밀쳤다.
떨어지는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떨어져 죽었다.
아니 죽은 줄 알았다.
나는 눈을 떴다.
고시원이었다. 알람 시계에 시간은 한 밤이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비명소리가 날카롭다. 뜨겁다. 뜨겁다.
문고리를 잡자 너무 뜨거워 나갈 수가 없었다.
나 하나 나가기 벅찬 작은 창문으로 몸을 빼네 떨어졌다.
주변 구경꾼들이 몰려와 나를 부축해줬다. 높은 높이가 아니라 다리만 접지른 것 같았다.
민찬이는 어쩌지?
민찬이가 저기 있는데
민찬이가
나는 혼란스러웠고
고시원은 모든 것을 불태우겠단 듯이 불타고 있었다.
내가 주저 앉은 아스팔트는
내게 너무 뜨거웠다.
————
시간이 지나고
후에 알게 된 것으론 고시원 주인이 사채가 있었고
사채업자가 협박용으로 뿌린 기름에 정말 불이 붙게 된 것이었다. 하필이면 불법으로 증축된 곳에 비상구에다 쌓아논 각종의 물건들로 다른 사건들에 비해 두 배는 빠르게 불에 타오른 것이다.
나는 다리만 다쳤을 뿐 멀쩡히 살아 나올 수 있었다.
다리는 이미 다 나았고 한 가지 의문이 머릿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내가 꾼 꿈은 뭐였을까? 관계가 있었을까?
나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민찬이는 발견도 되지 않았으며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오늘 불타버린 공대 건물로 갈 생각이다.
이번엔 내가 육상 선수로 출전해야할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서일지 알 수 없다.
나를 필요로 하는 지도 알 수 없다.
이미 한 없이 뜨거웠기에 차가워져 버린 곳으로
나는 가기로 했다. 듣지 못한 말을 들을 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여기까지가 내가 겪은 이야기다.
이 글을 읽는다면 내가 아마 못 돌아온 것일 수 있다.
이제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를 찾아와주길 바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