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말이야, 너.
지금 주위 둘러본 너.
어, 나 쳐다본 너!
그래. 이리 와 봐. 이상한 사람 아니니까.

너 운이 좋구나? 이곳 중간계에 오다니.
중간계가 어디냐고? 바로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곳이지. 여기는 천국처럼 심심하지도, 지옥처럼 끔찍하지도 않고, 인간계와 가장 비슷한 곳이지.
이곳은 중간계 중에서도 가장 인프라 좋기로 유명한 수정시야. 너희 인간계로 따지면 마치 강남같은 곳이지.
아, 나는 누구냐고?
이런, 소개가 늦었네. 나는 오늘 널 인도할 신민규 의원이야.
국회의원이나 되는 사람이 왜 널 인도하냐고?
아는 동생이 특별히 나한테 부탁한 거라서.
동생이긴 한데, 지금 걔가 사는 시에선 완전 실세야. 차기 지도자 후보거든. 당연히 부탁을 잘 들어줘야지. 안 그래?

어쨌든, 너네 인간계에도 법이 있듯이, 이곳에도 당연히 법이 있어. 근데 이 법은 시마다 달라. 물론 당연히 폭력, 절도, 살인, 성범죄, 사기 등등 범죄는 저지르면 안 된다, 뭐 이런 '법'들은 모든 시에 공통적으로 적용되지만, '규칙'과 '조례'라고 하는 특수법은 모두 다르다는 거야. 시마다 다르지만, 이 '규칙'이나 '조례'가 법보다 우선인 곳도 있으니까, 잘 알아봐야 해.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건 이곳에서 살기 위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규칙'이니까, 어떤 질문도 하지 말고 꼭 지켜주길 바라.

첫 번째, 이거는 전체 시에 적용되는 건데, 이곳에서는 인간계에 비해 시간이 열 배로 빠르게 흘러. 대신 수명도 열 배야.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니까 예를 들어볼게. 죽을 당시의 나이가 인간 기준 스무 살보다 어리면 본인 나이, 많으면 스무 살의 모습으로 오는 건 알지? 그래서 여기 처음 오면 그 나이로 시작해. 너는 스무 살보다 많은 나이에 죽었으니까, 올해 넌 20살인 거야. 그리고 인간계에도 올해 20살인 사람이 있겠지? 그 상태에서 여기서 10년이 지났어. 그럼 넌 30살이야. 그치만 수명이 10배니까 네 신체 나이는 21살인 거지. 반면 인간계는 1년만 지나니까 그 20살이었던 사람은 21살이 되는 거야. 이해했어?

좋아. 이 나이 계산법은 앞으로의 몇 가지 규칙에서 정말 중요하니까 꼭 기억해 둬야 해. 이해했으면 다음 규칙으로 넘어가자. 여기부터는 수정시에만 해당하는 내용이고, 중요하니까 꼭 잘 들어야 해.

두 번째, 지금 시청으로 갈 건데, 가면 바로 신분증이 발급될거야. 집에 있을 때는 상관없는데, 나갈 때는 그걸 꼭 목숨처럼 갖고 다녀. 다른 시에 비해서 유독 우리 시의 절도, 소매치기, 강도의 범죄율이 어마어마하게 낮은 이유기도 하니까 어딜 가든 들고 다녀. 목걸이로 발급받는 게 베스트고, 그게 싫으면 주머니에라도 넣어놓고 다녀. 가방 안이나 지갑 안은 안 돼. 3초 안에 꺼낼 수 있는 위치에 들고 다녀야 해. 알겠지?

세 번째, 만약에 집에서 신분증을 잃어버렸으면 휴대폰으로 701에 전화를 걸어. 그리고 네 나이와 이름 석 자만 얘기해. 세 번 정도 거기서 확인차 질문할텐데, 절대 잘못 얘기하면 안 돼. 네가 제대로 얘기했다면 시 직원이 바로 네 신분증을 재발급해서 너한테 주려고 올 거야. 문 앞에 도착하면 너한테 문자가 갈 테니까 문자가 왔을 때 열어줘야 해. 7은 우리 시 공식 긴급전화 회선이거든? 경찰이 702고 구급차가 703인 거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긴급한 회선인지 알겠지? 그러니까 제발 신분증 잃어버리지 마.

네 번째, 절대 너 멋대로 네 집 이외의 곳에서 자지 마. 민박, 호텔, 모텔, 심지어는 PC방이나 찜질방, 식당, 차 안, 길거리는 물론 네 친구 집도 시에게 사전에 신고하지 않고서는 절대 안 돼. 그러니까 술은 적당히 마시는 게 좋겠지? 대신 여기엔 시가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시립 호텔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자도 상관없어. 호텔 카운터에 인증 센서가 있고, 그 센서에 네 신분증을 갖다댔을 때 '○○세 □□□님, 인증되었습니다'라는 여자 목소리가 나오면 시립 호텔인데, 이때 나이나 이름 둘 중 하나라도 잘못 나오면 시립 호텔이 아닌 거야. 아무튼 무료니까 너무 졸리거나, 막차가 끊겼다면 거기서 자. 방이 없으면 그 호텔 로비 의자에서라도 자. 거기도 꽉 찼으면 땅바닥에서라도. 근데 시립 호텔 이외의 호텔에선 절대 자지 마. 그런 거 발견하면 조례 위반이니까 바로 702에 신고하든지, 무시하든지 하면 되는데, 신고하면 적지만 포상금 받을 수 있으니까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꼭 신고해주면 좋겠어.

다섯 번째, 여기가 인프라 다 깔려 있어서 모를 수도 있는데, 원래 여긴 수정시라는 이름처럼 물로 가득 차 있던 곳이야. 그래서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물로 가득 차 있어. 마치 비닐하우스같은 원리로 되어 있는데, 차이점은 여긴 벽이 없어서 손쉽게 그 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거지. 그치만 절대 들어가지 마. 손만 담그는 수준도 안 돼. 너가 수영을 잘하든 아니든 그건 상관없어. 특수한 방법을 사용하면 물을 지나갈 수 있긴 한데... 평범한 존재는 절대 못 하니까 꿈도 꾸지 마.

여섯 번째, 시에서 보급하는 주민 뱃지는 외출 시에 꼭 왼쪽 가슴에 달아야 한다는 거, 이미 알고 있지? 우리 시는 수정시라 水야. 아마 이 배지를 사용하는 사람을 주로 만나겠지만... 여기서 살다보면 관광객도 있을 거고, 여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그러니까 다른 시의 뱃지도 알려줄게. 중경시의 中, 혼원시의 魂, 홍성시의 星, 세림시의 林, 일분시의 日, 상천시의 天. 우리 시까지 포함하면 이렇게 일곱 개가 있어. 만약 집이 아닌 곳에서 너한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이 일곱 개의 뱃지가 아닌 다른 뱃지를 달고 있다면 절대 말 걸지도, 쳐다보지도 말고 그것에게서 빠르게 벗어나. 너가 아는 얼굴이든 뭐든, 무조건 빠르게 벗어나.

뭐? 글자가 잘 안 보이면 어떡하냐고?
자, 생각해 봐. 이런 규칙이 있으니까 일반적으로 사람을 만날 때 뱃지부터 보여주는 게 기본 예의겠지, 그치? 그러니까 뱃지 안 보여주는 것들은 전부 정상이 아니라는 소리니까, 그냥 피해.

아, 진짜, 지이이인짜 가끔 뱃지가 그냥 없는 것들이 오거든? 그러면 어쩔 수 없어. 그런 것들에게는 네가 하던 일을 올 스탑하고 그냥 친절하게 대해주면서 시청으로 인도해. 시청에 보내주면 거기에서 알아서 할 거니까. 알지?

마지막으로, 절대 새벽 2시에서 5시 사이에 집이나 호텔 밖으로 나오지 말고, 창문을 전부 닫아. 5분 전 쯤에 미리 닫아놓는 게 좋을 거야. 혹시라도 창문 닫는 걸 까먹었다면 네가 있는 방의 문이라도 닫고, 빠르게 799를 불러. 네가 방 밖으로 나가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 문을 닫으라는 건 순전히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뿐이니까. 적어도 다른 사람한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 안 그래?

이 7가지 규칙만 숙지해도 이곳에서 생존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다른 사소한 규칙들은 시청에 가면 거기 직원들이 줄 테니까 읽든 말든 알아서 해. 근데 이 7가지는 꼭 명심해. 알겠지?

자, 얘기하다보니 도착했네. 여기가 시청이야. 우리 수정시에 오게 된 걸 다시 한 번 환영해. 자, 이건 내 번호인데,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도 좋아. 그럼 난 이만 가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