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괴담이나 '공포'가 무서웠던 상황을 한 가지씩 떠올려 보라.
나는 적어도 그러한 상황들이 분개하고 우울하며 침잠에 가라앉은 상태일때 우리에게 공포로 다가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
부모님, 친우, 동료, 이 외의 수많은 접점을 가진 사람들과 어떤 형태로든 갈등을 빚어 생겨난 수많은 부정적 감정들에 빠져있을 때, 사회와의 상호작용이 아닌 단순한 취미활동으로 인하여 우울과 차가운 감정에 빠져 들 때, 우린 진정으로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
두렵던 대상에 공포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그들의 발톱과 이빨이 닿지 않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화가 난 상태에선 귀신이냐 분위기냐 그러한 것은 중요치 않고 단순유치한 장난처럼 다가오며
슬퍼 스러지는 상태에선 그저 담담하게 어떤 일이든 받아들일 자세로 망상의 위협에 저항하지 않는다.
우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소위 말하는 행복. 즉, 긍정적인 감정을 멀리하고 따뜻한 상태를 부정해야 한다.
긍정을 유도하는 상황과 요인은 모두 덫이자 유인이다.
눈물을 흘려라
악을 지르고
부정적인 감정에 치닫아 내달려라
그저 암흑 속으로 가라앉음을 저항하지 않아도 좋다
너의 뒤에서 끔찍하게 충혈된 눈을 부라리고, 가구 아래에서 충동을 참지 못해 손가락을 뻗어대고, 어쩌면 머나먼 장소에서 너를 위해 뛰쳐오는 모든 것의 이빨에 생살을 깨물리고 싶지 않다면.
부디, 행복하지 말아라.
말되네
행복하지 마요~내가 아니미어언~
불행은 행복이 없는 상태다 - 어느 실험실의 풍경 공포는 잃을 것이 생겼을 때가 되어서야 찾아온다 - 세븐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