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후

"이제, 된 건가?"

"네, 각하."


나는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참을 수 없는 긴장이 나를 한계로 몰고 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 상황을 회피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없었다.


모든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였고,

그 외의 방향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나는 실패했으나 도망칠 수 없었다.


보잘것없는 놈이라 스스로 자책해도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었으니.


마이크에 겨우 음성을 담아 방송국과 라디오로 보내는 것이

능력의 한계인 국가 원수일지라도.


그 추레한 몰골이 뭐라도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 기자들이 우르르 몰리던 과거와는

영 다른 꼬라지일지라도.


나는 나의 마지막 의무를 다해야만 했다.


내 옆에는 이런 안타까운 몰골의 대통령이라도 보필하는 애국심이 대단한 비서실장이 있었다.

그랬기에 마지막을 추하게 장식할 순 없었다.


말해야 할 때였다.


-국민 여러분, 대통령입니다.


나는 잠시 말하는 것을 쉬어야 했다.

목이 참을 수 없이 메어왔다.

하지만 나는 결국에는 말하기를 재개했다.


2xxx년 x월 x일에 시작된 초자연 현상이 대한민국에 재앙을 불러온 것을 모두 아실 겁니다.


전국적으로 닥쳐온 이 미증유의 괴현상들은 도시 하나하나에 궤멸적인 파괴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대구는 주종의 개념이 반대가 되어 사람이 짐승의 애완동물이 되었고,


부산은 존재 미상의 두족류를 숭배하는 사이비 교도들에게 점거되었으며


목포는 신안에서부터 시작된 도덕 소멸 현상으로 치안이 마비되었습니다.


끔찍한 일들이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 앞의 시야가 아찔하고, 명멸했다.


부산을 공략하다가 실패했을 때, 연락이 끊긴 해군의 일부가 사이비를 숭배하며

배신했을 때는 입 천장에 권총을 당기고 싶었다.


군종목사들의 정신 오염이 원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우리가 막대한 인력과 물자를 희생시킨 이후였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이에 맞서 국가와 국민 여러분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최전선에서의 죽음을 각오한 사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광주에서 시민들을 학살하는 언데드 군부대를 진압했고,


부천에 열린 판타지 세상의 게이트를 폐쇄했으며


인천에 창궐한 좀비 사태를 효율적으로 척결해내었습니다.


이제서야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대한민국이 패배하기만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전훈.


우리는 무능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두려운 재난으로부터 수차례 판정승을 거둬내었다.


대한민국은 무능해서, 내분으로 멸망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입이 바싹 말라서 숨조차 잘 쉬어지지도 않았다.

이런 가혹한 임무를 부여한 하늘이 이리도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럼에도 허리를 곧게 펴고, 입을 열었다.

최대한 의젓한 자세를 취했음에도 내 목소리는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 금일 오전 부로 서울에 '진짜' 사람과 구분할 수 없는 괴생명체의 출현이 확인되었습니다.


...사실상 최초 발생은 3일 전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필수 인력들이 상당수 이 '도플갱어'들로 대체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수도방위사령부 고위 간부의 순수성도 의심됩니다.


고로 수방사의 전투인력은 초자연대응대책수립원과 합류하여 자정 조치를 시행할 예정입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조직 스스로의 자정 조치를 통해 순수성을 유지해낸 초자연대응대책수립원을 제외한 모든 서울 내 정부 조직을 해산합니다.


모든 행정조직과 국회는 해체됩니다.


순수성을 검증한 수방사의 일부 전투인력이 도플갱어에게 점거당한 것으로 확인된 정부 조직을 '청소'할 예정입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한마디도 하지 못하겠는 것은 나의 이기심일까.

아니면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야말로 나의 이기심일까.


입술은 이미 수차례 씹혀 피범벅이었다.

이 한마디를 하는 것이 가진 권력의 전부인 대통령이라니.


고개를 떨구고 넝마가 된 입술을 겨우 움직였다.


아아,


하느님이여, 대한민국을 보우하소서.


대한민국 정부는 패배했습니다.


타다다당!


총성이 귓가에 울려퍼졌다.

탈출하지 못한 대통령을 잡아먹고 대한민국을 통째로 뒤집어쓰려는 도플갱어 무리가 어느새 정문의 경호처 인원을 뚫은 모양이었다.


VIP에게 가지 못하게 막아!


귓가에 울리는 이름 모를 경호원의 익숙한 목소리.

저 애국자들의 목숨을 잡아먹을 만큼 나는 가치있는 존재인가.


하지만...

저들이 투철한 애국심으로 목숨을 던지는 동안,

나는 나의 의무를 다해야 했다.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며, 혹은 내고 싶지 않다며 비명을 지르는 목을 억지로 꿈틀거리며 말을 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초자연 현상에 대응하지 못하여 패배했습니다.


모든 행정조직은 저들에게서 안전과 순수성을 보장하지 못하여 해체하였고,


전투 병력들은 명확한 적에게 화력을 집중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저들의 약점을 미처 다 소명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서울 내의 존재들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초자연 존재들을 저들이 인간을 죽이는 것만큼 쉽게 죽이지 못합니다.


도플갱어들은 지금 청와대를 침범했습니다.


제 목숨은 지금 경각에 다달았고,


자결에 실패한다면 제가 죽을 때, 이 나라의 대통령을 연기하는 도플갱어가 탄생할 지도 모릅니다.


입술을 침으로 한번 적시고, 겨우 말했다.


고로, 저희는 패배한 것이 맞습니다.


철컥.


명확한 쇳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비서실장이 권총을 장전하고 있었다.

짤막한 9mm 탄환이라도 화력을 더해 시간을 벌 모양이었다.

나는 그를 막지 못했고, 그는 문을 열고 나갔다.


이제 오롯이 나 혼자 뿐이었다.

주먹이 세게 쥐어졌다.


빌어먹을 패배감과 허무함, 그러니까 공허함.

그리고 자살하고 싶을 정도의 자괴감.


하지만

아직, 아직이었다.


나는, 우리는, 정부는.


실패하였지만서도.


아직 대한민국의 근간이자 나라의 위기가 올 때마다 국가를 지탱하던 민초들은, 국민들은 패배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 존재한다.


목에 핏대를 세웠다.

나에게는 대통령으로서의, 국가 원수로서의 모든 권한이 있었지만


단 하나.


포기할 권한은 가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소리 질렀다.


그 포효는 나 스스로도 어떻게 내질렀는지 모를 정도로 놀라운 소리였다.


하지만, 하지만!


우리가, 정부가 패배했을지언정.


우리에게 이 나라를 이끌, 대표해서 일할 권리를 주실 여러분은.


이 나라의 근본이자 전부이자 주인이신 국민 여러분은.


아직,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전국 각지에는 아직 대한의 국군들이 남아 있습니다.


초자연대응대책수립원 또한 그들과 함께합니다.


바다 너머의 동맹들은 우리를 지원하기 위한 모든 방법을 모색 중이고,


심지어 과거의 숙적들도 인류를 위한 대투쟁에 합류하기 위해 손을 뻗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를 꺾지 못한 재앙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기 때문에...!


다음으로 선택될 이를 위해 모든 업을 지고 가리라.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리라.


현 시간부로 각 지방자치단체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지금 우리는 생존의 가치만을 위해 이렇게 분열됩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우리의 민족이 하나되어 굳건한 힘을 선보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숨을 한번 골랐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국민 여러분!


우리 민족은 수천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외침이 있었음에도 외세에 의해 완전히 말살되지 아니하였고


기어코 버텨내어 최고의 문화를 전세계에 자랑할 만큼 발전시켜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짓밟으려는 존재 미상의 상위 개체의 악의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저는 패배자 주제에 감히 선언합니다.


우리는 더욱 참혹한 시기마저 이겨낸 족속입니다.


적들이 당장 제 목숨을 끊게 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영혼마저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설령 그럴 능력이 있을지라도.


우리의 패배는 민족의 멸망이 아닐 지니.


한민족은 끝끝내 생존하리라!


대한, 만세!


민족, 만세!


인류, 만세!


투쟁하십시오, 승리하십시오, 영원하십시오!


...


나는 숨을 몰아쉬느라 잠깐 말을 멈춰야 했다.

기력을 다 쓴 노인처럼 나는 빌빌거렸지만


영혼의 고동이 증명했다.


내가 지금 초선 의원에 도전했을 때의 전율을 쥐고 있다고.

지금 나의 실패는 이 나라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이라고.


그리고 이런 패배자라도 그런 미래에 기여했음을.


나는 내가 뿌린 씨앗을 꾹 밟아주듯 마무리의 선언을 했다.


국민 여러분, 대통령 이태영이었습니다.


송출이 끝나고, 나는 뒤로 몸을 쭉 밀어 넣었다.

푹신한 의자가 나를 감싸주었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틱,틱

치이익-


불똥만 튀기는 라이터가 겨우 불을 뿜었을 때, 고요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막아내는 것에 성공한 것인가?


그럼 이런 설레발도, 그러니까 이런 쪽도 다 없을 텐데.


그러나 일말의 기대에는 그런 쪽팔림을 당해도 괜찮으니까

대통령 경호처의 인원들이 도플갱어들을 격퇴하는 것에 성공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각하, 비서실장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나는 담배에 불을 붙혔다.


"이보게 비서실장을 사칭하는 아무개 씨. 우리 비서실장께서는 나를 이태영 대통령 각하라고 길게 부른다네. 내가 그래 달라고 했거든"


아무개는 답이 없었다.

그러다가는 곧 문을 부수려는 듯이 거세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이 정도에 본색을 드러내다니, 이 멍청한 아무개야! 당연히 거짓말이지. 그런 귀찮은 짓을 왜 해?"


나는 낄낄 거리며 그들을 비웃었다.

기대가 산산히 깨어졌지만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담배 한모금을 2할쯤 겨우 마시니 문이 부서졌다.

과연, 연기가 불안정한 것도 당연한 것이 도플갱어가 얼굴을 여럿이서 나눠 먹었는지,

조각조각 생판 남의 얼굴에 삽입되어 있었다.


이제 내 차롄가.


하지만 쉽게 갈 수는 없지.


부서진 문의 잔해를 밀쳐내며 도플갱어들이 달려왔다.

나는 그에 대응하여 라이터를 땅에 던졌다.

역겨운 기름 냄새를 지금까지 참은 보람이 있었다.


화아악!


불길이 기름을 타고 크게 솟아 도플갱어와 내 육신을 잡아먹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외쳤다.


"내가 대한민국의 마지막 대통령이다! 대한 만세! 민국 만세! 아 어쩌고 만만세!"


하하하하하!


도플갱어의 비명과 전직 대통령의 웃음소리가,


청와대를 맴돌았다.